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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INTERVIEW

아픈 청춘으로 견딘 15년, 시간이 서현진에게 가르쳐 준 것

글 · 김지영 기자 | 사진 제공 · 점프엔터테인먼트 | 디자인 · 김영화

2016. 08. 02

얼마 전까지 서현진은 ‘지극히 평범한’ 배우였다. 드라마 〈또 오해영〉에서 그가 맡은 ‘그냥 오해영’처럼. 그러나 이 작품으로 그녀는 많은 지지와 사랑을 받으며 별처럼 빛나는 배우로 거듭났다. 연예계에 데뷔한지 15년 만에 다재 다능한 매력을 제대로 인정받으며 안방극장의 블루칩으로 떠오른 그녀의 일과 사랑에 관한 고백.

단추를 잘못 끼운 옷은 다시 끼우면 그만이지만 한번 꼬이기 시작한 인생은 이내 바로잡기가 쉽지 않다.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tvN 드라마 〈또 오해영〉에서 배우 서현진(31)이 연기한 여주인공 ‘그냥 오해영’의 그것처럼.

‘그냥 오해영’은 고교 동창인 ‘예쁜 오해영(전혜빈)’과 이름이 같아 빚어진 오해 때문에 걷잡을 수 없이 인생이 꼬인다. 약혼자에게 결혼식 전날 느닷없이 파혼을 당하고, “네가 밥 먹는 게 꼴 보기 싫어졌다”는 폭언까지 들은 건 서막에 불과했다. 옆집 남자가 자신의 결혼식을 망친 장본인인 줄도 모르고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자신이 어처구니없는 오해의 희생양이었음을 알고 나서도 그녀는 옆집 남자에게 직진한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 망가지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자존심 버리고 사랑에 ‘올인’하는 서현진의 솔직한 매력은 매회 보는 이들을 울리고 웃기며 화제를 뿌렸다. 드라마가 종영된 다음 날인 6월 29일 만난 서현진은 “방송이 끝난 게 아직 실감이 안 난다”며 복잡한 감정을 드러냈다.

“함께한 스태프들과 헤어지는 게 너무 아쉬워요. 연애의 민낯을 다 보여드려야 시청자들이 공감할 것 같아서 밀착 다큐멘터리를 찍는 기분으로 연기했는데, 저도 사람인지라 내심 창피할 때도 있었어요. 그때마다 스태프들이 용기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셨죠. 또 드라마가 방송될 때마다 본방 보면서 실시간으로 수다를 떨던 배우들에게도 정이 많이 들었어요. 어제는 저희끼리 마지막 회를 함께 보면서 새벽까지 한잔했어요. 다들 마지막 회가 제일 재미있다고 했는데 역시나 시청률이 가장 많이 나왔더라고요(웃음). 제가 울고 웃을 때 공감해주시는 분들이 많다는 게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인 줄 몰랐어요.”





‘그냥 오해영’처럼 솔직하게, 용기 있게 사랑하자

▼ 오해영을 연기하면서 스스로도 격하게 공감한 부분이 있나요.

옆집 남자 박도경(에릭)과 통화하면서 “너한테 그렇게 쉬웠던 나를,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는 나를 어떻게 그렇게 쉽게 버리니?” 하는 부분이 가슴 깊이 와 닿았어요.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지만 저도 그런 말을 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거든요. 한 번도 연습을 안 하고 현장에서 처음 그 대사를 뱉었는데, 정말 하염없이 눈물이 나더라고요.

▼ 드라마 찍으면서 연애하고 싶은 마음이 들진 않던가요.

박도경의 옆집으로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설렜던 것 같아요. 방이 붙어 있어서 물리적으로 가깝다 보니까 자꾸 보면 정들고 저도 모르게 감정에 젖어들게 되더라고요. 가장 설레었던 신은 바닷가에서 데이트를 하는 장면이었어요. 본방을 모니터링하면서 보니 그 장면에서 제가 엄청 웃고 있더라고요. 되게 좋았나 보다, 했죠. 호호.   

▼ 실제로도 오해영처럼 좋아하는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사랑에 ‘올인’하는 스타일인가요.

저는 해영이처럼 좋아하는 사람에게 다가가지도 못하고, 상대가 다가오게 하지도 못해요. 좋아하는 감정을 내색도, 고백도 못 해서 친한 지인이 결혼하면서 ‘널 어쩌면 좋으니?’ 하고 걱정하더라고요. 근데 이번 드라마를 하면서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예전에는 연애와 결혼을 별개로 여겼는데 해영이만큼 나이를 먹어선지 이제 연애하면 결혼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사람 만나는 게 점점 더 어려워져요.

▼ 오해영처럼 어머니와 사이가 특별한가요.

저희 엄마도 오해영의 엄마와 비슷한 캐릭터인데, 김미경 선생님처럼 딸을 때리진 않아요. 화가 나도 옷은 벗지 않고요. 엄마는 화나면 공원을 거닐다 들어오세요. 산책하면서 화를 삭이시는 거죠. 제가 좋은 딸이 아니거든요. 그래도 엄마에게는 미주알고주알 다 이야기해요. 저희는 모녀라기보다 친구 같은 사이죠.

▼ 실제로 드라마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전 남친 한태진(이재윤)과 박도경 중 누구를 결혼 상대로 선택할 건가요.

한태진이 제가 싫어서 파혼을 한 게 아니었다는 걸, 저를 위해서 그런 선택을 했다는 걸 알게 되더라도 제 마음이 그가 내뱉은 독한 말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감정이 회복되지 않을 것 같아요. 저였더라도 박도경 같은 남자를 좋아할 거예요. 도경이는 자신의 못난 부분을 보여줄 정도로 저를 신뢰하고, 스스로 달라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니까요.    

▼ 평소 바라는 남편상이 있나요.

바람 안 피우는 남자요. 제가 모르면 괜찮지만 알게 되면 용서가 안 될 것 같아요.

▼ 오해영처럼 운명의 상대를 만난다면 지금의 모든 걸 버릴 수 있나요.

직접 만나보기 전까진 모르겠어요. 제가 가진 것이 많진 않지만 그런 걸 버리도록 하는 사람을 좋아할 것 같지는 않아요. 저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들을 깡그리 무시하는 사람과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요.

▼ 최근 걸 그룹 ‘밀크’ 출신 배우 박희본 씨의 결혼식에 참석했던데, 그때는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희본 언니가 정말 좋은 사람 만난 게 엄청 부럽고 기뻤어요. 결혼하고 싶은 남자를 만나면 어떤 기분이 들지도 궁금했고요. 그날 결혼식에서 무슨 사연 있는 사람처럼 울었어요.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저 스스로도 창피할 정도였어요. 언니를 보면 참 용기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언니처럼 솔직하게, 용기 있게 사랑하다 결혼하고 싶어요.



‘매너남’ 에릭과 ‘큰사람’ 전혜빈에게 한 수 배워

서현진도 한때 밀크 멤버였다. 그녀는 2001년 SM엔터테인먼트에서 박희본과 함께 밀크 멤버로 데뷔했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17세. 가수가 되려고, 어릴 때부터 고1 때까지 전공한 한국무용을 포기했지만 밀크는 앨범 한 장을 내고 해체됐다. 이후 그녀는 연기자로 전향해 2006년 드라마 〈황진이〉를 시작으로 〈불의 여신 정이〉 〈제왕의 딸, 수백향〉 〈삼총사〉 등의 사극에 출연하며 연기력을 다졌다. 그리고 지난해 〈식샤를 합시다 2〉에서 백수지 역을 맡아 밝고 사랑스러운 매력을 뿜어내 〈또 오해영〉의 여주인공으로 발탁되는 행운까지 거머쥐었다. ‘그냥 오해영’ 역에는 원래 다른 배우가 물망에 올랐으나 결과적으로 보면 제작진이 캐스팅 난항을 겪은 덕분에 서현진이라는 숨은 진주를 찾아낸 셈이다.

▼ 서현진과 오해영의 싱크로율은 얼마나 될까요.

한 30%쯤요. 저는 술을 잘 못 마시고 엉엉 울면서 걸어본 기억도 없어요. ‘FM’ 스타일이라  흐트러지거나 엇나가는 게 잘 안 돼요. 그래서인지 마음 가는 대로 거침없이 말하고 행동하는 오해영으로 살면서 저 스스로도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어요.

▼ 에릭 씨와의 스킨십과 키스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첫 키스 신으로 ‘벽 키스’를 워낙 세게 해서 거침없어진 면이 있어요. 모든 스킨십 장면과 키스 신을 찍을 때는 액션 연기처럼 합을 짜고 리허설을 거쳐서 NG가 난 적도 거의 없어요. 어떤 스킨십이나 키스 신을 할 때도 불편함은 못 느꼈어요. 박도경 방에서 돌아다니며 찍은 마지막 회의 키스 신도 에릭 오빠가 아이디어를 내 동선을 정해놓고 촬영했죠.

▼ SM엔터테인먼트에 몸담고 있을 때부터 에릭 씨와 알고 지냈나요.

그때 오빠는 제게 하늘 같은 선배님이셨어요. 만나면 감히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배꼽 인사를 했으니까요. 오빠는 그때의 저를 기억하지 못하시더라고요. 대신 김동완 씨와 찍은 단막극 회식 자리에서 옆 테이블에 앉았던 건 기억하시더군요.

▼ 옆에서 지켜본 에릭 씨는 어떤 사람이던가요.

무뚝뚝하고 어려운 선배님인 줄 알았는데 상냥하고 매너가 좋아 어려움이 없었어요. 제가 극 중 해영이처럼 가끔 반말을 섞어 써도 다 받아주시더라고요. 이번 작품을 함께하면서 선배라기보다 굉장히 좋은 친구 같은 느낌이 생겼어요. 그게 오빠의 매력이자 장점인가 봐요. 어떤 사람에게든 똑같이 잘해주거든요. 현장에서 남자 배우들이 오빠를 되게 좋아해요. 박도경의 음향 작업실 ‘폴리’ 팀 식구들은 끝까지 ‘에릭바라기’ 할 거래요(웃음).

▼ 극 중에서는 라이벌이었던 전혜빈 씨와도 잘 지냈나요.

물론이죠. 저희끼리는 전우애 같은 게 있어요. 언니도 저와 같은 시기에 ‘러브’라는 그룹의 멤버로 데뷔했다가 연기자가 됐거든요. 언니는 아주 좋은 사람이에요. 작가님이 모든 배우에게 골고루 애정을 나눠주셨지만 대본을 받고 속상했던 적도 있었을 거예요. 저도 그런 피해의식이 많았던 시절이 있거든요. 그때는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뾰족하게 받아들였죠. 그런데 언니는 저처럼 내색하지 않고 애정으로 함께했어요. 그런 언니를 보면서 ‘아주 큰사람이구나’ 했어요.



그냥 ‘견뎌낸’ 슬럼프

▼ 배우를 그만두고 싶을 만큼 힘든 시기가 있었나요.

있죠. 배우는 불안정한 직업이잖아요. 늘 캐스팅을 당하는 입장이니까 섭외가 안 되면 미련 없이, 아쉬울 것 없는 사람처럼 이 세계를 떠나고 싶었어요. 정작 행동으로는 옮기지도 못하면서 한 발 빼고 있었죠. 배우라는 자각이 없었어요. 직업란에 ‘배우’라고 쓰기 시작한 것도 지난해 뮤지컬 〈신데렐라〉에 출연하면서예요. 그러다 〈식샤를 합시다 2〉를 찍으면서 저를 가두고 있던 연기의 틀을 깰 수 있었고요. 연기의 방식과 뉘앙스를 달리해보니 재미있더라고요.

▼ 슬럼프를 어떻게 극복했나요.

심장 발작을 하다시피 힘들게 그 시간을 그냥 버틴 거지, 극복은 안 되더라고요. 다른 일을 할 용기가 없어서 연기 학원을 꾸준히 다니고 뮤지컬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힘들었을 때 생긴 응어리가 완전히 사라지진 않더라고요. 그래도 이 직업으로 먹고살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 가장 후회되는 일은 뭔가요.

네 살 때부터 고1 때까지 배운 한국무용을 그만둔 거요. 타임머신을 탈 수 있다면 고 1때로 돌아가고 싶어요. 무용을 한 게 연기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돼요. 한국무용이 집중력을 향상시키는 효과가 있거든요.

▼ ‘그냥 오해영’의 패션과 고운 피부가 방영 내내 화제였어요.

다 스타일리스트 덕분이에요. 전 진짜 옷을 못 입어요. 패션에 관심도 없고요. 유일하게 신경 쓴 건 피부예요. 수분크림과 선크림을 자주 바르고 틈만 나면 팩을 붙였어요. HD 화질 때문에 작은 뾰루지도 보인다고 하더라고요.

▼ 롤 모델이 있나요.

국내 배우 중에는 닮고 싶은 사람이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예요. 해외 배우 가운데는 메릴 스트립이 롤모델이에요. 그녀가 출연한 영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최근에야 봤어요. 너무 유명해서 제쳐놨던 그 작품을 보면서 사람을 예뻐 보이게 하는 건 눈코입이 아니라 표정이라는 걸 알았어요. 날씬하지도 않은 중년 여성의 표정에서 설레는 마음을 읽었어요. 그녀 덕분에 저도 열심히 연습하면 남을 설레게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을 얻었죠.

▼ 부업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나요.

 커피숍 아니면 꽃집을 운영해보고 싶어요. 지금은 꽃집이 더 욕심나요. 지난해 잠깐 꽃꽂이를 배웠는데 시간이 엄청 잘 가더라고요. 꽃 시장 구경도 재미있고요. 하지만 그것도 직업이 되면 싫을 수도 있겠네요(웃음).

▼ 앞으로 어떤 캐릭터에 도전해보고 싶나요.

전문직이면 좋겠어요. 검사, 변호사 같은 법조인도 좋고, 사기꾼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말로 상대의 콧대를 누르는 입심 좋은 캐릭터를 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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