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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interview

누구나 머물고 싶은 ‘광개토 태안’을 꿈꾸며

가세로 군수의 열정 땀 눈물

EDITOR 조윤

2018. 11. 01

말 그대로 ‘보수의 텃밭’이던 태안에서 민선 24년 만에 처음 민주당 후보로 당선된 가세로 군수. 그에게 4번의 도전은 군민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그의 꿈을 더 정교하게 그리는 시간이었다.

황금빛으로 옷을 갈아입은 벼와 빨갛게 얼굴을 붉히는 고추가 지평선 위로 펼쳐진 시골길이 눈부시다. 어느 인상파 화가의 그림에서나 본 듯한 풍경. 끝없이 이어지는 해안길엔 청량한 바닷바람이 가슴 속을 파고들고, 그 바람에 흩날리는 억새들의 춤사위는 흥을 북돋운다. 도시에선 만끽할 수 없는 깊고 진한 충남 태안의 가을은 지금 자연이 빚어내는 축제가 한창이다. 

6·13 지방선거에서 당선되며 취임한 가세로(62) 태안군수의 꿈은 ‘광개토 태안’. 많은 사람들이 태안의 아름다운 자연을 찾아오고, 찾아온 사람들이 머물러 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따뜻한 행정을 펼치는 것이다. 

“서울서 오시는 데 힘들었죠? 태안은 고속도로가 통과하지 않는 전국의 몇 안 되는 곳이에요. 이원면 끝자락에 만대라는 작은 항구가 있는데, 고속도로가 가로림만으로 단절돼 있어 여기 당도하려면 약 80km를 에둘러 가야 해요. 접근성이 떨어지니 자연히 발길이 줄어들 수밖에 없죠. 연륙교로 만대를 서산, 대산과 이어지게 하려고 해요. 고구려 광개토대왕처럼 물리적으로 영토를 넓힐 수는 없지만 전국적인 네트워크에 태안군이 포함되게 해서 다양한 기회를 확대하는 게 목표입니다.” 

광개토 대사업은 충청남도와 서산시는 물론 중앙정부와도 협력이 필요한 거대 프로젝트다. 30년 가까이 경찰에 몸담았던 가 군수는 9년 동안 재선거를 포함해 세 번의 고배를 마신 끝에 올해 당선됐다. 역경을 딛고 오른 자리인 만큼 ‘광개토 태안’ 만들기 공약 이행에 대한 의지가 누구보다 강하다.

젊은이들이 머물고 싶은 태안 만들기

“대학 가기 전까지 태안에서 나고 자랐어요. 서울서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10년 전에 고향에 내려와 군수에 도전했는데 쉽지 않더군요. 9년 동안 늘 새벽 5시면 집에서 나갔어요. 어느 마을에 둑을 쳐야 하고, 어떤 할머니가 어디가 아픈지까지 다 메모를 해뒀죠. 군민들에겐 ‘이렇게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해보고 싶습니다’ 하며 열심히 저를 알렸어요. 시간이 걸렸지만 군민들이 제 진심을 알아주신 것 같아요.” 



‘가고 싶은 태안’을 만드는 군수에게 여행지와 먹거리를 추천해달라 요청했다. 

“태안의 섬은 어느 곳이나 좋고, 송림이 우거진 안면도의 걷기 길도 추천하고 싶어요. 태배길은 중국의 시선 이태백이 반해 시를 한 수 남겨놓고 갔단 설화가 전해질 만큼 이름다운 곳이죠. 먹거리로는 게국지가 유명한데 꽃게장, 대하, 주꾸미, 오징어도 많이 맛보시면 좋겠어요. 전어 냄새엔 며느리가 돌아온다지만 대하 냄새엔 온 가족이 돌아온대요.” 

태안군은 긴 해변과 아름다운 해수욕장이 많아 낭만적인 여행지를 찾는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많다. 국내 최대의 모래언덕이 있는 신두리 해안사구, 아시아 최초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 인증 등의 화려한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천리포수목원, 하늘에 닿을 듯한 해송이 울창한 안면도 자연휴양림은 어느 해외 명소가 부럽지 않을 만큼 특색 있는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이들과 함께 옹도 등대와 청산수목원, 팜카밀레 허브농원, 꽃지해수욕장, 나문재 관광농원 등 8곳은 군에서 선정한 ‘셀프 웨딩 촬영 명소’다. 

또한 만리포를 우리나라 최고의 서핑 중심지로 육성한다는 계획 하에 서핑 스폿 조성 사업도 진행 중이다. 더불어 수요자 친화형 특화 개발 전략을 수립, 시행하고 글로벌 해양 축제 등 관광 상품도 개발키로 했다. 28곳에 이르는 태안군의 해수욕장들은 외국인 전용 해수욕장, 애완견 해수욕장 등 테마형으로 탈바꿈시키고 몽산포 조개잡이, 청포대 독살 체험 등을 확대해 휴양 문화 공간으로 만들려는 구상이다. 가 군수는 “태안의 미래를 위해선 관광 인프라 구축이 가장 중요하다. 관광지는 단일로 개발해선 안 되고 복합 벨트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 군수가 가장 자랑스럽게 내놓은 관광 사업 중 하나는 ‘해양헬스케어’ 복합단지를 육성하는 것이다. 해양헬스케어란 해양의 기후와 지형, 해수, 해산물 등 각종 해양 자원을 이용해 질병 치료에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독일 등 선진국에선 이 시장의 성장세가 놀라울 만큼 확대되고 있다. 태안군은 국내 유일의 해안 국립공원으로 훼손되지 않은 생태 환경을 갖추고 있는 데다 소금과 염지하수, 황토 등 해양 치유 자원도 풍부하다. 이러한 천혜의 조건을 바탕으로 의료와 관광을 융합해 2020년까지 전국 최초의 해양헬스케어 복합단지를 만들 예정이다. 

“태안에서 ‘모아’라는 해양 치유 자원이 전국 최초로 발견됐어요. 피부병, 호흡기 질환, 류머티즘 등에 엄청난 치료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죠. 이걸 집중 개발할 계획이에요. 헬스케어 단지에서는 모아 등을 이용한 치료를 받는 동시에 바다와 숲을 보면서 휴식도 취하고 여행도 하는 거예요. 치료와 치유를 함께 하는 거죠. 대개 이런 시설은 부유한 노년층을 위한 거라 생각하지만 의료보험이 적용되게 해 누구나 부담 없이 이용하도록 할 겁니다.”

누구나 만날 수 있는 군수

도시민들이 잠시 머물다 가는 여행지로서뿐 아니라 ‘살고 싶은 태안’을 일구는 일도 가 군수에게 빼놓을 수 없는 과제다. 6만4천 명의 태안 인구를 임기 안에 7만 명으로 늘리는 것이 목표. 

“태안에선 해상 풍력발전소에 주력할 겁니다. 우리나라엔 제주에 딱 하나가 있는데 만리포 앞바다가 아주 적지더군요. 더불어 바이오산업과 같은 6차 산업도 육성할 계획입니다. 고용이 창출되면 인구는 자연히 늘어나요.”
 
가 군수는 소외된 사람이 없고 열심히 일한 만큼 인정받는 태안을 꿈꾼다. 이를 위해 군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에 세심하게 귀 기울이려 한다. 이러한 고민 끝에 나온 방안이 ‘군수실 개방’. 누구나 언제든 군수를 직접 만나 이야기할 수 있다. 하루 평균 30~40명에서 많게는 70~80명이 군수실 문을 두드리고 있다. 최근에는 태안화력발전소 화재로 피부병을 앓고 있는 주민들의 오랜 민원을 가 군수가 직접 해결하고자 나섰다. 가 군수는 주민 편에서 발전소 측을 설득했고, 결국 원점에서부터 해결책을 모색하겠다는 답변을 받아냈다고 한다. 

“군민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게 있어요. 잘난 사람이건 못난 사람이건 차별하지 말라는 거예요. 오히려 어려운 사람 먼저 군이 도와줘야죠. 누구는 군수를 알아서 일이 쉽게 해결되는데 누구는 그렇지 못해 삶의 문턱이 높다 하죠. 이런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고민한 끝에 군민들에게 보다 살갑게 접근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어요. 태안 군민 중에는 저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이를 취사선택하지 않고 정책을 펼쳐야죠.” 

하루를 분 단위로 쪼개 쓰는 군수는 집에 와서야 숨을 고른다. 군청에서 20분가량 떨어진 조그만 마을에 위치한 한옥은 시골의 가을 풍경과 한 쌍인 양 제대로 어우러진다. 주황 열매가 농도를 더해가는 감나무와 독야청청 잎을 벼린 소나무가 우거진 기와집은 화려한 동시에 고풍스러운 느낌을 준다. 태안은 우리나라 가씨의 절반이 거주하는 집성촌이 있는 곳으로, 가 군수의 집도 집안 어른이 살던 곳이라고 한다. 대학 시절 시를 써 공모에 당선될 만큼 문학적 감각이 뛰어난 가 군수와 참 잘 어울리는 듯하다. 그는 “집 관리만 해도 세월 가는 줄을 모른다”며 가을바람에 풍경 소리가 찰랑대는 집 곳곳을 소개했다. 

태안의 가씨 집성촌에 감나무와 소나무가 우거진 기와집은 대학 때 시를 썼던 가 군수와 참 잘 어울린다. 부인 신현숙 씨는 “늦게 들어오는 남편을 기다리며 다도와 가야금을 했다”면서도 “한번 시작한 도전은 끝까지 해내야 했다”고 말한다.

태안의 가씨 집성촌에 감나무와 소나무가 우거진 기와집은 대학 때 시를 썼던 가 군수와 참 잘 어울린다. 부인 신현숙 씨는 “늦게 들어오는 남편을 기다리며 다도와 가야금을 했다”면서도 “한번 시작한 도전은 끝까지 해내야 했다”고 말한다.

유년을 온전히 보낸 고향이지만 어릴 적 친구들은 대부분 떠나고 남아 있지 않단다. 부인 신현숙(62) 씨가 최고 안식처다. 다기를 꺼내 오미자차와 말차를 직접 내리면서 신씨는 “늦게 들어오는 남편을 기다리며 다도와 가야금을 했다”며 웃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한 번도 남편의 귀향과 출마를 말려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한번 시작했으니 도전은 끝까지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보면 바보스럽죠. 둘 다 툭툭 털어내는 성격이니 여러 번 선거에서 떨어져도 버틴 것 같아요.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선거를 하면서 그런 점이 많이 바뀌었어요. 저도 군민들에게 다가가야 하니 노력했죠. 정작 당선 후에 우리 생활은 바뀐 게 없지만요.” 

태안의 가을 농촌은 육쪽마늘과 호박고구마 수확에 한창이다. 황토빛 밭에 쭈그려 앉은 농부들의 호미질이 가열하다. 가 군수는 “군민들의 고단한 땀방울을 보면 열정이 일어난다”면서 태안을 향한 발길을 독려했다. 

“태안은 인심이 넉넉하고 갈 곳이 참 많습니다. 이리 가면 소나무숲, 저리 가면 바다가 펼쳐지죠. 바다가 싫으면 산으로 가면 되고 걷기가 어려우면 물속으로 들어가도 됩니다. 도시를 벗어나 고즈넉한 이곳에서 재충전의 시간을 가져보세요. 세월에 속아 살 것이냐, 세월을 속이며 살 것이냐는 스스로 정하는 겁니다.” 

가 군수는 인생에서 여러 굴곡과 눈물을 경험했다. 어려운 사람들의 입장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 셈이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는 태안의 변화가 꼭 필요하다고 믿게 됐다. ‘광개토 태안’의 미래가 선명하게 그려지는 이유다.

기획 김민경 기자 사진 지호영 기자 디자인 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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