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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영화 ‘명량’ 신드롬, 그 뒷얘기

사상 최초 1천5백만 관객 돌파

글·김지은 자유기고가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CJ E&M 제공

2014. 09. 15

“신에게는 12척의 배가 있습니다.” 우리에겐 너무 익숙한 이 한마디가 대한민국 영화의 흥행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개봉과 동시에 거의 매일 1백만 명의 발길을 극장가로 이끌며 한국 영화 최초 1천5백만 관객과 1천1백억원 매출 달성이라는 신기록을 동시에 수립한 것. 영화의 제작 비화와 흥행 비결을 살펴봤다.

영화 ‘명량’ 신드롬, 그 뒷얘기

‘명량’ 제작보고회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는 김한민 감독과 배우들. ‘명량’은 역대 한국 영화 최고 흥행 기록을 경신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8월 19일 현재까지 ‘명량’(7월 30일 개봉)을 관람한 관객 수는 1천5백17만7천6백4명. 대한민국 국민 3명 중 1명은 ‘명량’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다는 얘기다. 국내 개봉 영화 사상 최고 수준이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개봉된 영화 중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할리우드 영화 ‘아바타’가 세운 1천3백62만 명의 기록도 개봉 18일 만에 가볍게 넘어섰다.

‘명량’이 8월 19일까지 달성한 총매출액은 약 1천1백66억7천만원이다. 한국 영화 중에서는 누적 매출액이 정확하게 집계되지 않은 봉준호 감독의 ‘괴물’을 제외하면 1천2백98만 명을 모은 ‘도둑들’이 9백36억원으로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외화로는 ‘아바타’가 1천2백84억원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책임감 있는 리더십 바라는 국민들의 염원 담겨

“소위 리더라는 분들, 국민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칠 것처럼 말은 번지르르하게 하지만 실상은 반대인 경우가 많죠. 문제가 발생하면 이순신 장군처럼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라도 사지에 먼저 뛰어들어 솔선수범해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발뺌하거나 아랫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일쑤잖아요. 잘못한 게 들통 나면 ‘제가 물러나겠습니다’ 하고 자리를 피해버리고요. 우리는 끝까지 책임지는 리더를 원했던 건데….”

‘명량’을 본 한 네티즌의 후기다. ‘명량’은 1597년 단 12척의 배로 3백30척에 달하는 왜군의 공격에 맞서 싸운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을 그린 작품이다. 실력파 배우 최민식, 류승룡, 조진웅 등이 출연해 개봉 전부터 기대를 모으긴 했지만 배우들의 이름값만으로 관객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맞추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실제로 국내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는 배우들이 주연으로 등장한 영화들이 예상 밖의 흥행 참패를 기록한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게다가 지금까지 숱하게 많은 드라마와 영화의 소재로 활용돼 왔고 온 국민이 결말을 아는 명량대첩을 메인 테마로 삼은 것은 흥행 실패의 요인을 고스란히 떠안고 출발한, 대단한 모험이 아닐 수 없었다.



영화 ‘명량’ 신드롬, 그 뒷얘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량’이 흥행에 성공한 첫 번째 이유는 ‘리더십 부재’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과 사회 지도층에 대한 불신을 대변한다는 점 때문이다. 사회 지도층에 대한 반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세월호 참사와 육군 28사단 윤 일병 사건 등 온 국민을 공노케 하는 굵직한 사건들이 잇따라 터지면서 리더십과 책임 의식 부재에 대한 각성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커진 것이다. 관객들은 익히 알고 있던 이순신이라는 위인의 활약상을 박진감 넘치는 영상으로 즐기면서 지금껏 품었던 정치권에 대한 답답한 심경을 대신 털어놓는 듯한 시원함과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이순신 역을 맡은 배우 최민식 역시 “여러 가지로 지금 나라가 답답한 상황이다. 괜히 슬프고 기운 빠지고 그런다. 영화를 통해 조금이라도 위로 받으셨으면 한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연기했다”고 밝혔다.

배우 최민식의 카리스마가 지갑 열게 만들어

영화 ‘명량’ 신드롬, 그 뒷얘기

최민식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명량’ 돌풍에도 불구하고 평론가들은 ‘명량’을 보는 시선이 썩 탐탁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작품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이유다. 문화평론가 진중권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명량’은 이순신 장군의 인기에 기댄 졸작”이라고 혹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량’을 작품성 떨어지는 졸작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우선, 배우들의 활약상이 눈부시다. 최민식은 촬영 중 이순신이라는 인물에 몰입해 쓰러지기까지 했을 정도로 열연을 펼쳤다. 최민식은 영화 개봉 후 “20kg이 넘는 갑옷을 매번 입고 벗을 때마다 힘들었지만 장군의 마음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더 어려웠다. ‘난중일기’와 관련 문헌을 자세히 읽어보며 이순신 장군의 인간적인 면모를 찾고자 노력했지만 활자를 통해서는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어떻게 고뇌하고 어떻게 슬피 울었을까. 결코 함부로 상상할 수 없었다. 중압감이 정말 심했다”고 밝혔다. 이런 최민식의 깊은 고민과 노력이 이순신 캐릭터에 진정성을 불어넣었다.

배우 류승룡과 조진웅, 김명곤 등 왜군 장수로 등장한 배우들의 포스도 최민식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특히 극 중 왜장 구루지마 역으로 분한 류승룡의 첫 등장은 관객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왜군에게 혀를 잘린 비운의 여인 정씨 역을 맡으며 오랜만에 스크린에 얼굴을 비친 이정현의 절절한 연기도 관객들의 마음을 울렸다. 관객들은 그녀가 절벽을 타고 올라가 붉은 치맛자락을 흔드는 장면에서 탄성을 지르며 마음속으로 함께 치맛자락을 흔들었다. 출연 장면은 얼마 되지 않지만 그녀의 존재감은 강렬했다.

1백억 돈방석에 앉게 된 김한민 감독

영화 ‘명량’ 신드롬, 그 뒷얘기

삼성영상사업단 출신 김한민 감독은 ‘극락도 살인사건’ ‘최종병기 활’ 등의 메가폰을 잡았다.

기존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대규모 해상 전투와 스펙터클한 액션을 스크린에 담아낸 점도 높이 살 만하다. 숱한 작품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명량’은 철저한 고증에 기대 완성된 작품이다. 세트와 소품은 물론 왜군이 입은 갑옷까지 섬세하고 철저한 고증에 입각해 완성된 것이라 하니 그 준비 과정의 고단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명량’을 진두지휘한 김한민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촬영 현장에서 생전 처음 신경통을 앓았다. 그만큼 ‘명량’은 내게도 부담이었던 것은 확실하다”고 밝혔을 정도다. 그는 ‘명량’을 준비하기 위해 각종 서적들은 물론 이순신 장군을 연구하는 교수들의 자문을 두루 거쳤다.

작품을 준비하면서 이순신을 다룬 전작들은 물론 드라마까지 모조리 섭렵했다. ‘다르게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는 “드라마보다 많은 제작비가 투입됐기 때문에 스케일이 큰 전투 신에 공을 들였다. 또 ‘불멸의 이순신’이 인간 이순신의 고뇌에 집중했다면 나는 거기에 ‘무인’ 이순신의 느낌을 더 살렸다”면서 ‘명량’은 ‘이순신의 재해석’이 아닌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최대한 현실감 있게 가져오는 것에 무게를 두었다고 밝혔다.

김한민 감독의 독특한 이력도 눈길을 끈다. 1969년생으로 연세대 경영학과 출신인 그는 졸업 후 동국대 대학원에 들어가 영화를 전공한 뒤 삼성영상사업단에서 근무하다 단편 작업을 거쳐 ‘극락도 살인사건’(2007)을 통해 장편 감독으로 데뷔했다. ‘명량’ 제작사 빅스톤픽쳐스의 대표이자 최대주주이기도 한 김 감독은 이번 영화의 흥행으로 1백억원 이상의 수입을 올린 것으로 예상된다.

‘명량’에서 또 한 가지 기대되는 점은 한국 영화 최초로 시리즈 대작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김한민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명량이 ‘명량’과 ‘한산’ ‘노량’ 3부작으로 기획된 작품이라 밝힌 바 있다. 이 때문에 드라마적 전개가 미흡하고 캐릭터의 입체감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뒤따르기도 했지만 관객들은 다음 작품에서 각각의 캐릭터들이 어떻게 발전할지 벌써부터 기대하는 눈치다. 할리우드 액션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블록버스터급 연작을 눈앞에서 볼 날도 머지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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