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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노희영의 성공 레시피

꿈 한 컵, 영감 한 스푼

글·구희언 기자 | 사진·CJ제일제당 제공

2013. 11. 15

‘미다스의 손’은 그를 위해 존재하는 말인 것만 같다. ‘CJ푸드월드’의 어머니 같은 존재인 노희영 CJ그룹 브랜드전략 고문의 필승법.

노희영의 성공 레시피


올’리브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 ‘마스터셰프 코리아’를 보며 줄곧 ‘쇼트커트 그녀’의 진짜 정체가 궁금했다. 강레오나 김소희 같은 셰프가 아니면서도 맛에 예민하고 요리를 어떻게 예우할지 아는. CJ그룹 브랜드전략 고문이라는 직함을 벗어던지고도 그의 삶은 충분히 궁금했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 누벨 퀴진 레스토랑 ‘궁’과 도산대로의 카페 ‘느리게 걷기’, 유기농 레스토랑 ‘마켓오’ ‘그릴 H’ ‘트라이베카’, 갤러리아 백화점 명품관과 WEST 식품관, 호면당 등을 성공적으로 론칭한 걸 보면 그의 남다른 ‘촉’을 알 수 있다. 그러던 중 그가 자신의 삶과 브랜드를 만들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정리한 책을 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가 쓴 ‘히노스 레시피’를 집어들었을 때의 첫 느낌은 ‘무겁다’였다. 찬찬히 다 읽고 나서 든 생각은 ‘무거울 만하다’. 책에는 브랜드 마케팅의 귀재이자 외식업계 미다스의 손으로 꼽히는 그의 인생사와 소울 푸드 레시피, 거기에 CJ그룹 식품 사업의 역사가 총망라돼 있었다. 개인의 인생이 곧 기업의 역사라는 느낌마저 들 정도로.

부모의 손맛 녹여낸 브랜드로 대박 행진

노희영의 성공 레시피

노희영은 오래 전 경험한 맛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새로운 메뉴를 만든다.



▼ ‘히노스 레시피’, 개인의 인생사가 담겼지만 CJ그룹의 역사서 같기도 해요. 책을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5~6년 전부터 구상했고, 본격적으로 집필을 시작한 건 2년 전부터예요. 사람들이 소장하고 싶은 요리책을 낼 요량으로 이제까지 만든 식품·외식 브랜드 이야기와 레시피를 함께 엮고, CJ 브랜드 스토리텔링을 담아 작업했어요. 이제까지의 삶도 한번 되돌아보고 싶었죠. 그래야 스스로 공부가 되니까요. 매 순간 즐기면서 일한 제 경험을 나누고 싶었어요.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 일은 즐기며 할 때 가장 경쟁력 있다는 것, 그래야만 스스로 행복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죠.”



▼ 레시피가 많아서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배고파져요. 음식 선정 기준이 궁금해요.
“유년 시절부터 집에서, 성장한 뒤 여행지에서 제게 영감을 준 음식과 제가 설계한 브랜드의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는 음식들을 골랐어요.”

▼ 노희영이라고 하면 ‘마스터셰프 코리아’의 심사위원이나 셰프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
“저는 의식주 문화 전반에 걸친 라이프스타일 콘텐츠를 기획하는 사람이에요. 직접 요리하지는 않지만 맛있는 요리, 감각 있는 사람들이 다시 찾을 만한 제품이나 공간에 대한 스타일을 연구하고 그것을 현실화하죠. 어찌 보면 영화감독의 일과 비슷해요. 영화감독이 영상·음악·미술이란 도구를 써 시나리오를 작품으로 만드는 것처럼, 저는 음식·공간·서비스·마케팅 등 모든 것에 하나의 스타일을 부여해 외식·식품 브랜드를 만들어요.”

▼ ‘마스터셰프 코리아’ 출연을 ‘교통사고’에 비유했는데, 촬영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요?
“‘마스터셰프 코리아’는 새로운 깨달음의 장이었어요. 인간과 인간이 소통할 수 있게 해주는 최고의 툴이자 사랑의 매개체인 요리에 수많은 도전자가 자신의 삶과 희로애락, 때론 시기와 경쟁심 등 모든 걸 내보이잖아요. 그들의 열정을 보며 ‘나는 저들처럼 내 일에 올인하고 있나’ 되돌아봤어요. 요리를 매개로 소통한 시간은 최고의 힐링 타임이었죠. 도전자들이 발전하거나 좌절하는 과정에 제 모습을 투영하며 같이 아파하고 같이 웃었어요.”

▼ 소울 푸드가 있나요?
“몸이 으슬으슬한 날이면 어머니의 손맛이 담긴 콩나물사태찜이 생각나요. 그걸 먹으면 이내 몸에 온기가 돌고 기운이 나죠. 충청도에서 ‘진니국’이라 불리는 김칫국도 좋아해요. 어려서부터 어머니 손맛에 길들여져서인지 진하고 걸쭉한 국물보다 맑고 담백한 국물을 좋아해요. 덕분에 제가 개발한 국물 요리 대부분이 시원하고 담백하죠. 스키야키는 아버지가 자주 만들어주시던 음식이에요.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걸 좋아하셔서 자신만의 레시피를 활용하셨는데, 이 레시피는 제일제면소의 메뉴에도 반영됐어요. 제겐 아버지의 사랑이자 어린 시절의 따뜻한 추억을 일깨워주는 맛이죠.”

▼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나요?
“심미안을 지닌 미식가셨어요. 먼 미래가 어떤 인재를 원하는지도 알고 계신 분이었죠. 아버지의 혜안 덕에 저와 동생은 일찌감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어요. 방학 땐 유럽을 여행하며 자연스럽게 맛의 세계에 익숙해질 수 있었죠. 시각적·미각적으로 완벽주의자인, 아주 독특한 분이에요. 그런 기질을 제가 이어받았어요.”

▼ 어린 시절 허약했던 아이를 이렇게 키워내신 어머니의 뿌듯함도 남다르겠어요.
“맞아요. 어머니는 자녀 양육에 관해서만큼은 아주 대담하고 철저한 전략과 철학을 갖고 계셨어요. 저와 동생은 스타일이 완전히 다른데, 언제나 각자의 장점을 강조하며 자신감을 불어넣어주셨고 딸들 성격에 맞게 스타일링도 달리해주셨어요. 제게 처음으로 ‘아이덴티티’를 심어준 분이에요. 이런 양육 방식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전 굉장히 콤플렉스 많은 사람이 됐을지도 모르죠.”

▼ 스키야키의 맛, 진니국의 담백함. 결국 ‘노희영 표 브랜드’의 키워드는 부모의 사랑인 거네요.
“많은 예술가가 어린 시절의 기억이나 경험에서 영감을 얻듯, 저도 오래전 경험한 맛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새로운 메뉴를 만들죠. 어린 시절 부모님과의 추억부터 세계 곳곳에서 인상 깊게 먹은 음식 등 여러 방면에서 영감을 얻어 메뉴를 개발해요. 다양한 음식을 경험했기에 머릿속에서 맛과 향을 조합해 아이디어를 현실화할 때도 있어요.”

세상 모든 것이 궁금한 사람
▼ 지금의 노희영을 만드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준 사건은 뭔가요?
“1978년 미국으로 유학을 갔던 경험이에요. 해외 유학이 드문 시절이었기에 미국 학교에 입학하니 모든 게 막막하고 낯설었죠. 새로운 세상에 재빨리 적응하고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해야 했던 시절, 본능적으로 미국 친구들에게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공부 잘하는 아이’가 된 일이나 비지스·맥도널드같이 생소한 문화를 접한 일 등 당시의 모든 경험이 제게 영향을 줬어요.”

▼ 특별히 음식 브랜드 마케팅을 업으로 삼은 이유가 있나요?
“문화는 의식주를 기본으로 역사, 패션, 종교, 정치, 인문학 등 다양한데 이 모든 것을 이해하고 깊이 공부해야만 제대로 알 수 있는 게 바로 ‘음식’이었어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도 음식이죠. 음식이 사람을 만드니까요. 먹는 음식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해요.”

▼ 요리는 잘하나요?
“요즘은 업무로 바빠서 자주 하진 못하지만 꽤 잘하는 편이에요. 한식 대부분과 중국 요리를 특히 잘 만들어요.”

▼ 브랜드를 ‘지속해서 관심 주고 돌봐야 할 아이’라고 표현한 게 인상적이었어요. 아이 여럿 중 하나만 소개해주세요.
“비비고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글로벌 인재로 키우려고 결심한 아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비빔밥’과 ‘비비다’의 우리말 어원을 살리고 ‘To-go’의 의미를 넣어 누구나 발음하기 쉽고 친숙하게 느끼도록 개발했어요. 한식을 좋아해서 자주 찾아요.”

▼ 소비자의 움직임은 어떻게 읽나요? 영감은 어디서 얻는지도 궁금하고요.
“전 세상 모든 것이 궁금해요. 역지사지도 많이 해요. ‘내가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내가 그 가격을 주고 살까? 언제 내가 저 제품을 원할까? 다른 사람들은 어떤가?’ 끊임없이 묻고 확인하죠. 웹 서핑을 자주 하는데 영감은 그때 찾은 꼭 가보고 싶은 곳, 경험하고 싶은 것을 찾아 나선 ‘여행’을 통해 얻어요.”

노희영의 성공 레시피


▼ 한식의 세계화에 대해서는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나요?
“우리가 한 달에 짜장면을 한 번은 먹는다고 쳤을 때, 그 사람의 주방에 춘장이 있을 확률은 매우 낮아요. 이처럼 재료만으로 한식 세계화를 이룰 수는 없어요. 음식은 문화로 알려야 하죠. 제가 그리는 그림은, ‘비비고’라는 레스토랑으로 한식을 충분히 경험한 외국인이 그걸 집에서 만들어보려고 한국 식재료를 사는 거예요. 그게 진정한 한식 세계화죠.”

▼ 셀레브러티와의 협업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아티스트가 있나요?
“소지섭과 함께한 ‘투썸플레이스by51k’, YG엔터테인먼트 테디와 함께한 ‘투썸스튜디오’, 싸이와 함께한 ‘싸이고 비비고’ 등 스타를 모델로 쓰는 데 그치지 않고 같이 많은 작업을 해오고 있어요. 싸이는 ‘One of Those’가 아닌 ‘One of a Kind’예요. 누굴 따르지 않고 한국 노래로 전 세계를 즐겁게 하는 모습이, 퓨전이 아닌 한국 음식으로 세계 시장에 나아가려는 비비고와 닮았죠. 영화 ‘설국열차’ 촬영장인 프라하에서 만난 틸다 스윈턴도 인상적이었어요. 언어·인문학 등 문화 전 분야에 대한 관심과 지식의 범위가 놀랄 정도로 넓고, 패션 스타일까지도 그가 사유하는 것과 일치하는 스타였죠.”

▼ 스스로를 영화감독에 비유했는데, 영화 좋아하세요?
“업무 외에 제일 시간을 많이 투자하는 게 영화 감상이에요. 그만큼 좋아하고, 영화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느껴요. SF를 제외하면 모든 장르를 즐기죠. SF는 저를 대입할 수가 없어서 흥미가 가질 않더라고요. 전 늘 새로운 걸 상상하지만, ‘발견’을 좋아하지 ‘발명’을 좋아하지는 않아요. 저는 콜럼버스형 인간이지, 에디슨형 인간이 아니거든요.”

▼ 롤 모델은 누구인가요?
“체 게바라와 스티브 잡스. 늘 공부하는 혁명가이자 창조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요. 또 현장에서 직접 뛰면서 더 큰 미래를 설계하는 방법을 많은 후배에게 알려주고 싶고요. 사람은 항상 진화하며 미래를 맞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 또한 그러길 바라고요.”

굿 리더보다 그레이트 리더 되고파
▼ 이것만큼은 노희영이 특출하다 싶은 게 있다면?
“눈과 혀가 굉장히 정확해요. 의대 재학 시절에도 인체 세부도 작업을 할 때면 항상 제가 톱이었죠(웃음). 슬쩍 보고도 2mm 차이까지는 잡아낸다고 해서 닉네임이 2mm였어요. 메뉴의 색과 형태만 봐도 그 음식의 간과 힘 정도까지 바로 알 수 있죠. 혀도 정확해서 한번 맛본 음식은 모두 기억하고, 간이나 재료가 살짝 달라져도 바로 짚어낼 수 있어요.”

▼ 노희영은 어떤 리더인가요?
“제가 회사를 떠난 다음에 회사가 어려워진다면 ‘굿’ 리더, 제가 없더라도 성공이 이어지도록 인재를 키웠다면 ‘그레이트 리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직도 현장에서 많은 일에 관여하지만, 가장 큰 비전은 사람을 키우는 거예요. 후배를 가르치고 진화시켜 언젠가 제가 하던 일을 스스로 하게끔 하는 것, 이게 제 소명이에요.”

▼ 결국 헝그리 정신, 남과의 경쟁의식, 전략적으로 자신을 드러내기, 승부사 기질, 콤플렉스 같은 것들이 지금의 단단한 노희영을 만든 셈이네요.
“그렇죠.”

▼ ‘노희영의 푸드 월드’를 사랑하는 독자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직업은 그 자체로 자신의 삶이기 때문에 가족이나 그 어떤 것보다도 ‘나’와 직결돼 있어요. 그런데 일이 행복하지 않다면 그 시간을 견딜 수 없을 거예요. 삶의 가치와 시간적 효용의 측면에서도 그런 일을 하는 건 낭비고요. 일이 좋아서, 미쳐서 할 때 진화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죠. 일을 즐기세요. 그래야 삶이 행복할 수 있어요.”

참고도서·‘히노스 레시피’(포스트페이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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