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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마에스트로 정명훈&둘째 아들 정선·신예원 부부

음악으로 뭉친 정명훈家

글·구희언 기자 | 사진·이기욱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13. 10. 16

지휘자 정명훈과 둘째 아들 정선·신예원 부부가 세계적인 음반 레이블 ECM에서 뭉쳤다. 독일 레이블에서 한국어 앨범을 낸 며느리 신예원과 마에스트로가 아닌 시아버지 정명훈 이야기.

마에스트로 정명훈&둘째 아들 정선·신예원 부부


세계적인 음반 레이블 ECM(Editions of Contemporary Music)의 이름 아래 마에스트로 정명훈(60) 가족이 뭉쳤다. ECM은 피아니스트 키스 재릿, 기타리스트 팻 메스니 등의 명반을 낸 재즈·클래식 분야에서 권위를 자랑하는 독일 음반 레이블이다. 이곳에서 정명훈의 둘째 며느리이자 재즈보컬리스트인 신예원(32)이 한국어로 된 음반을 냈고, 정명훈도 올해 말 생애 첫 피아노 연주 앨범을 낼 예정이다.
정명훈은 1979년 구순열 씨와 결혼해 슬하에 진·선·민 세 아들을 뒀다. 첫째 정진(33)은 건축설계사로, 셋째 정민(19)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정명훈의 둘째 아들인 기타리스트 정선(31)은 ECM의 프로듀서로 일한다. 뉴욕의 재즈 명문 뉴스쿨대에서 재즈기타를 전공하고 뉴욕에서 활동하던 그는 지난해 9월 ECM의 첫 한국인 프로듀서가 됐다. 지금은 ECM 본사가 있는 독일 뮌헨에서 아내, 딸 루아(1)와 살고 있다. 9월 3일부터 7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ECM 페스티벌’이 열린 것도 그가 열정적으로 제안한 덕분이었다. 이번 페스티벌 첫날은 신예원이 노래를 불렀고, 마지막 날은 정명훈이 지휘자로 나섰다. 페스티벌의 시작과 끝을 가족이 담당한 셈이다.

며느리가 열고 시아버지가 닫은 공연

9월 3일 개막 무대에 선 신예원은 잔잔하지만 아름답게 ‘섬 집 아기’를 불러 박수를 받았다. 이 곡은 남편 정선의 프로듀싱으로 최근 ECM에서 나온 그의 첫 동요 앨범 ‘루아 야(Lua ya)’에 수록된 곡이다. 신예원은 동덕여대 실용음악과 재학 중인 2002년 앨범 ‘러블리’를 내고 ‘별’이라는 노래로 대중음악계에 데뷔했다. 가수 윤상, 이승환, 래퍼 김진표, 힙합 그룹 씨비매스의 작업에 참여하며 가수로 이름을 알려온 그가 재즈로 방향을 선회한 건 MBC ‘수요예술무대’ 진행자이던 피아니스트 김광민 교수의 ‘음악감상론’ 수업에서 재즈와 보사노바를 접하면서부터다. 이후 남편의 권유로 2006년 뉴욕에서 재즈 보컬을 공부한 뒤 2010년 발표한 앨범 ‘예원’으로 라틴 그래미 어워즈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앨범 명은 딸의 이름에서 따왔다. 루아는 포르투갈어로 달(moon)을 뜻하는데, 아이 아버지의 이름(선·Sun)과도 연관된다. ‘섬 집 아기’ ‘과수원 길’ ‘달맞이’ ‘오빠 생각’ 등 우리에게 익숙한 동요와 즉흥곡을 더한 13곡에 그만의 감성을 담아 재즈풍으로 재해석했다. 신예원은 “엄마가 된 힘이 아니었다면 만들지 못했을 신비한 앨범”이라고 설명했다.
‘ECM 페스티벌’이 열리기에 앞서 기자간담회에서 정명훈과 신예원을 만났다. 신예원은 “이 자리에 나와 아버님과 함께한다는 것 자체가 떨리고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도 “시아버지는 깊이 있는 인생관, 따뜻하고 진실한 마음씨를 가진 음악인”이라며 치켜세운 바 있다. 세계적인 독일 레이블에서 한국어 앨범을 발매한 소감도 밝혔다.
“남편의 무한한 노력으로 이렇게 ECM에서 앨범이 나오게 돼서 굉장히 영광스러워요. 동요는 우리를 과거의 순수한 마음으로 되돌리는 마술적이고도 은은한 힘을 가졌어요. 이런 점을 이 기회에 나름대로 제 안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대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신예원이 이 앨범을 만들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2011년 11월 남편 정선이 피아니스트 아론 파크스의 앨범을 녹음하던 미국 우스터의 메커닉스홀을 찾은 그는 구경을 하다가 “음향이 좋으니 시험 삼아 사운드 체크를 해보자”는 남편의 말에 무심결에 아무 멜로디나 흥얼거렸다. 그게 ‘섬 집 아기’였다. 당시에는 임신한 상태라는 걸 몰랐다는 신예원은 “엄마가 될 사람이라 직감으로 그 노래를 부른 것 같다. 아마 아기가 준 메시지가 아닐까”라고 그 일에 대해 언급했다. 이후 같은 장소에서 파크스와 아코디언 연주자 롭 쿠르토와 함께 정식으로 앨범을 녹음했다. 노래를 들은 만프레트 아이허 ECM 대표도 마음에 든다며 앨범 발매를 결정했다.

마에스트로 정명훈&둘째 아들 정선·신예원 부부

시아버지 정명훈과 며느리 신예원 씨. 웃는 모습이 아버지와 딸처럼 닮았다.





마에스트로 정명훈&둘째 아들 정선·신예원 부부


정명훈은 서울시향을 이끌고 페스티벌의 마지막 날인 9월 7일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시프, 오보이스트 하인츠 홀리거와의 협연으로 밤을 수놓았다. 시프와 홀리거는 세계적인 음반 레이블 ECM의 대표적 클래식 아티스트다. 시프는 베토벤 피아노 전곡을 비롯해 바흐와 슈베르트를, 홀리거는 윤이상과 바흐의 작품을 ECM을 통해 음반으로 내놓았다. 이날 시프는 브람스의 ‘피아노협주곡’ 1번을, 홀리거는 윤이상의 ‘오보에 협주곡’을 연주했다. 정명훈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단어가 가족”이라며 이번 페스티벌에 참여한 이유를 밝혔다.
“둘째 아들(정선)이 ECM 프로듀서이고, 며느리인 신예원이 ECM과 처음으로 협업했기 때문에 저도 페스티벌에 참여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간 클래식 음악만 해왔는데, 재즈는 좋아하지만 기회가 닿지 않았죠. ECM은 클래식도 하고 재즈도 한다는 점에서 우리 가족과 잘 맞았어요. 그래서 두 가지를 합친 이 페스티벌에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게 됐죠.”
그는 “이번에 함께 연주한 두 사람 모두 톱 레벨의 연주자이고 개인적으로도 참 좋아한다”며 “평생 음악을 하고 살면서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과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게 음악가로서 좋은 점”이라며 설렘을 감추지 않았다.
“홀리거와는 파리에서 여러 가지를 같이 한 사이인데, 최고라서 근처에도 갈 사람이 없을 정도예요. 작곡도 하고 지휘도 하는 완벽한 음악가죠. 게다가 사람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굉장히 겸손하고 순진하고, 특별한 사람이에요. 시프는 제가 21세 때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처음 만났는데, 40여 년 전부터 연주가 제일 마음에 드는 피아니스트라고 생각했죠. 그렇게 레퍼토리가 다양한 피아니스트는 없을 거예요. 다이내믹하고 리듬이 특별해요. 저는 지휘 쪽으로 갔고, 시프는 피아노 쪽으로 갔지만 저도 피아노를 그만큼 칠 수 있었으면 아마 연주를 계속했을지도 모르죠(웃음).”

며느리 노래, 천사의 목소리 같아
그렇다면 며느리의 목소리는 어떻게 생각할까. 정명훈은 “천사의 소리”라며 극찬했다.
“음악에서는 기술보다 부르는 사람의 내면에서 나오는 소리가 중요한데, 예원이의 목소리는 천사의 소리 같아요. 제가 재즈 음악을 조금이라도 할 수 있었다면 정말 재밌었을 텐데 아쉬워요. 아마 노래를 들어보시면 내면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음악을 통해 그대로 느껴질 겁니다. 재즈 음악을 이런 목소리로 들을 수 있어 행복하고, 아들 덕에 이런 기회가 생겨서 기뻐요.”
이들 가족과 ECM과의 인연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정명훈이 생애 첫 피아노 독주 음반을 ECM에서 내기로 했기 때문이다. 정선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와 아내는 자신에게 정직하고, 그런 면이 음악에 그대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좋은 아티스트”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는 “아버지가 얼마나 열심히 피아노를 연습하는지 늘 지켜봤기에 꼭 하고 싶은 작업이었다. ‘엄마와 아이에게 친숙한 곡’이라는 콘셉트로 아버지가 곡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수십 년간 여러 레이블에서 피아노 음반 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해왔던 정명훈을 움직인 건 역시 가족이었다. 정명훈은 “아들이 몇 달 전 손녀 둘을 위해 피아노 리코딩 앨범을 만들면 어떻겠냐고 제안해서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고 했다. 그는 “7월 말 이탈리아 베니스 오페라 극장에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슈베르트, 슈만, 쇼팽, 드뷔시, 모차르트 등의 곡들을 녹음했다”며 ‘손녀 바보’의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애정을 담아 작업한 정명훈의 피아노 독주 앨범은 올겨울 세상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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