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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With specialist | 김선영의 TV 읽기

드라마 ‘세계의 끝’

세상 끝에서 사랑을 외치다

글·김선영 대중문화평론가

2013. 05. 07

드라마 ‘세계의 끝’

질병관리본부 강주헌 팀장은 동료 나현이 바이러스에 감염돼 격리되자 비로소 자신의 감정을 깨닫는다.



만약 사랑하는 연인 혹은 가족이 하루아침에 치사율 90% 이상의 괴바이러스에 감염된다면? 그리고 치료 백신도 없는 상태에서 그들과의 접촉은 물론이고 같은 공간에서 숨쉬기만 해도 자신 역시 감염될 확률이 높다면? JTBC 주말드라마 ‘세계의 끝’은 역사상 가장 위험한 바이러스라는 에볼라조차 ‘순한 양’으로 여겨질 정도로 치명적인 독성을 지닌 바이러스를 소재로 한 스릴러다.
흔히 재난 드라마의 공포가 자신이나 사랑하는 이들의 파국을 상상하는 것으로부터 온다면, 바이러스 재난 드라마는 전염성이라는 특징으로 인해 한층 복합적인 비극성을 띠게 된다. 감염자가 된 순간부터 그는 ‘걸어다니는 시한폭탄’과도 같이 주변 사람에게 위험한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바이러스 재난 드라마는 처음의 가정처럼 보는 이들을 향해 질문을 던진다. 사랑하는 이가 감염자가 됐을 때, 우리는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그의 곁을 끝까지 지킬 수 있는가.
‘세계의 끝’ 역시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어느 날, 원인을 알 수 없는 괴질이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팀장 강주헌(윤제문)과 항체 전문가 윤규진 박사(장현성)는 이 정체불명의 바이러스 추적에 나선다. 그 과정에서 주헌은 본래 북극 빙하에 원형 그대로 얼어 있던 바이러스가 지구 온난화로 인해 떨어져 나온 빙산 조각에서 유출됐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규진은 그것이 아주 독특한 특성을 지닌 바이러스임을 알게 된다.
그 특징은 바로 역사상 전무후무한 높은 전염력이다. 가령 규진의 동료 의사이자 M바이러스 세 번째 사망자는 죽기 직전 그에게 이런 유언을 남겼다. “전에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아주 강렬한 욕구였어. 퍼뜨리고 싶다는.” 즉, M바이러스는 숙주에게 그것을 주변에 전염시키라는 욕망을 주입하는 무서운 특징을 지닌 바이러스다.
이렇듯 전례 없는 전염성 때문에 ‘세계의 끝’에서는 유독 격리와 단절의 드라마가 두드러진다. 첫 회에서 주헌이 동료들에게 강조한 대사는 그것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실험실에서 치명적인 바이러스 노출 사고가 생기면 어떻게 대처하는지 압니까? 실험실 문을 외부에서 봉쇄해버립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선 미친 짓입니다. 감염된 순간 더 이상 동료도, 뭣도 아닌 목숨 걸고 막아야 할 감염체일 뿐입니다.”
바이러스가 불러일으키는 진정한 비극은 여기에 있다. 높은 전염성으로 인한 공포가 감염자에 대한 격리를 강화하고 타인에 대한 불신을 확산시킨다. 이 비극이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난 사례가 원양어선 해심호 사건이다. 명태 보호를 위해 바다에서 옮겨 실은 빙하 때문에 M바이러스에 노출된 해심호 선원들은 전염될까봐 두려워 서로를 감금하고 죽이다가 결국 모두가 파멸한다. ‘세계의 끝’은 이 극단적인 격리의 비극을 통해 역설적으로 처음의 질문에 대한 강한 울림을 갖게 된다. 다시 한 번 물음을 떠올려보자. 만약 사랑하는 이가 감염됐을 때, 우리는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끝까지 그의 곁을 지킬 수 있는가. 그리고 이에 대한 작품의 대답은 분명하다. 격리와 단절이 강화될수록 오히려 인간 간의 접촉과 유대의 가치가 소중해진다는 것을.
이는 “감염된 순간 더 이상 동료도, 뭣도 아닌 감염체일 뿐”이라고 냉정하게 말하던 주헌의 변화를 통해 잘 나타난다. 냉철한 이성의 화신과도 같던 그는 동료 나현(장경아)이 M바이러스에 감염돼 격리되자 비로소 그녀를 향한 사랑을 깨닫는다. 평범한 환경이었다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를 감정을, 모든 접촉이 금지된 단절의 순간에 확인한 것이다. 그리고 끝까지 나현의 곁을 지키려던 주헌의 노력은 해심호의 비극과는 반대로 희망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결국 ‘세계의 끝’은 어쩌면 재난 드라마의 외피를 빌려, 가족마저 해체되고 갈수록 인간관계가 파편화되는 이 시대의 비극과 그 구원으로서 유대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작품인지도 모른다.

드라마 ‘세계의 끝’


김선영은…
텐아시아, 경향신문, 한겨레21 등의 매체에 칼럼을 기고 하고 있으며, MBC, KBS, SBS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에서 드라마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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