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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인생 사용설명서 열 번째 | 내 생애 최고의 여행

“여행지에서 훌쩍 커버린 딸, 영어 실력보다 소중한 가족 사랑 체험”

조인숙·김민소 모녀 런던에서 보낸 꿈 같은 한 달

글 | 권이지 객원기자 사진 | 이기욱 기자

2012. 08. 16

누구보다 끈끈한 줄 알았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소원해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조인숙·김민소 모녀가 영국으로 여행을 떠났다. 영국인의 삶과 문화를 체험하고 온 두 사람의 일기를 살짝 들춰봤다.

“여행지에서 훌쩍 커버린 딸, 영어 실력보다 소중한 가족 사랑 체험”


4년 전 영국 런던을 다녀온 뒤 그간의 이야기를 엮어 ‘90일간의 London Stay’(2008) 라는 책을 함께 내며 끈끈한 모녀의 관계를 보여줬던 조인숙(37)·김민소(11). 하지만 이들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엄마가 여덟 살 터울인 동생 민유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자 모녀 사이가 전과 다르게 서먹해진 것이다. 민소는 집에 오면 방문을 닫아걸었고, 엄마는 그런 딸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민소가 ‘엄마가 동생을 부를 때 나를 부르는 목소리보다 훨씬 따뜻하다’며 ‘동생 이름으로 바꾸고 싶다’고 말했을 때 큰 충격을 받았죠.”
‘엄마가 누구 한 사람만 더 예뻐하고, 미워하진 않았는데…’ 엄마의 마음을 몰라주는 딸과의 관계를 이대로 내버려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씨는 어느 날 예쁜 엽서를 딸에게 건넸다. “영국 여왕님이 우리를 초대한대.” 사실이 아닌 걸 알면서도 민소는 빙긋이 웃었다. 그렇게 모녀 단둘이 2011년 7월 런던행 비행기에 올랐다.
일곱 살 때 다녀오기도 했지만 영국은 민소가 가장 좋아하는 나라. 이번에는 현지 분위기도 익히고 영어에 대한 자극을 받기 위해 2주간 서머스쿨에 등록했다. 영어뿐 아니라 학교에서처럼 수학, 미술, 체육 등 여러 과목을 함께 배울 수 있다는 게 장점이었다. 민소는 사교적인 편이 아닌 데다 영어도 익숙지 않아 학교에 들어가자 첫 주에는 “친구한테 말을 걸기 힘들다”는 내용의 일기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인 쌍둥이 자매 아야카와 아마니를 만난 뒤 영어에 자신감이 생기면서 서머스쿨이 끝날 무렵에는 “3주일이나 4주일이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다. 더 다니고 싶다.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흐를까?”라고 했다. 그러나 모녀의 다음 일정이 있어 아쉬움만 남겨야 했다.
런던에서 머무는 동안 모녀가 주로 방문한 곳은 미술관. 미술관은 핸드메이드 작가로 활동하는 엄마와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한 민소에게 놀이터 같은 곳이었다. 조씨는 “물가가 비싼 영국이지만 웬만한 미술관, 박물관은 입장료가 없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다”고 했다. 아이들에겐 전시된 작품들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박물관에 비치된 자료와 인터넷 검색을 활용하면 문제없다.
“주요 미술관은 한국어 가이드북이 있어서 불편하지 않아요. 워낙 작품이 많으니까 모르는 건 넘어가고 아이가 흥미로워하는 작품 위주로 살펴보는 게 좋죠. 영어 설명을 보며 간단히 설명해주고, 더 알고 싶은 작품은 제목을 적어놓았다가 숙소에서 검색하면 그 자체가 공부가 되죠.”
모녀는 ‘테이트 브리튼’과 ‘내셔널 갤러리’를 자주 찾았다. ‘백팩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는 ‘V·A 뮤지엄’도 민소가 무척 즐거워한 곳이다. 백팩 프로그램이란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안내 데스크에서 빌려주는 백팩 안에 있는 미션을 수행하는 액티비티다. 민소와 함께한 주제는 매지컬 글라스. 글라스라는 이름처럼 도자기 찾기, 원료 맞히기, 작은 모형 보고 진짜 도자기 찾기, 창작 도자기 그리기 등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어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많다.
영국인들의 일상을 체험하기 위해 ‘애프터눈 티 스쿨’도 찾았다. 17세기 중국으로부터 차가 수입되자 영국에서는 오후 2~4시 무렵 차를 마시는 애프터눈 티 파티가 성행했고, 애프터눈 티는 지금까지 영국의 고유한 식문화로 자리 잡았다. 애프터눈 티 파티에서는 3단 트레이에 샌드위치, 스콘, 디저트 등을 올려놓고 차와 함께 즐긴다. 모녀는 애프터눈 티 스쿨에서 간단한 티 푸드를 만들어보고, 홍차 고르는 법과 애프터눈 티를 즐길 때 예의 등을 배웠다. 나머지 시간에는 뮤지컬을 보러 가거나 미술용품이나 인테리어 소품 등을 파는 숍을 구경 다녔다.
요리조리 뛰어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민소에게 런던 공원은 그 자체가 놀이터였다. 런던에는 ‘하이드파크’ ‘리젠트파크’ ‘프림로즈힐’ 등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녹지가 많아서 아이에게는 더없는 천국이었다.

아이가 내 뜻대로 자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다
조씨는 이번 여행을 통해 민소가 자기주장이 강해지고, 응석도 투정도 더 잘 부리는 등 감정 표현이 풍부해진 것을 발견했다. 딸이 엄마가 하자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던 일곱 살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고. 또 민소가 눈썰미가 뛰어나고, 옷이나 신발보다는 재미있는 장난감이나 개성 있는 인형들을 좋아하며, 어린아이들만 보면 동생 민유가 보고 싶다고 할 만큼 동생을 사랑하는 것도 알게 됐다. 소소하지만 지나치기 쉬운 장점들이었다. 조씨는 여행을 다녀온 뒤 주위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아이의 영어 실력이 늘었느냐였는데 이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앞으로 내 자식을 남과 비교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도 이 여행에서 얻은 선물이다.
“서머스쿨을 다니긴 했지만 영어 실력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기로 했어요. 아이가 여행에서 재미를 느낀 것만으로도 만족하거든요. 민소가 낯을 가리는 편이지만 굳이 활발해지라고 강요할 필요도 없을 것 같고요. 남과 비교하는 것이 불행하다고 생각해왔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그 생각이 굳건해졌습니다.”
긴 여정에서 돌아온 모녀는 얼마 전 책 ‘런던에서 보낸 여름방학’을 펴냈다. 두 사람의 여행 에피소드와 함께 쇼핑정보를 한데 모은 것이다. 7월 말 북유럽으로 18일간의 여행을 떠나는 모녀. 연말에는 홍콩 가족여행도 계획돼 있다. 온 가족이 함께 뭉칠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다. 같이 여행을 해봐야 그 사람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는 말처럼 가족에게도 여행은 서로를 재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여행지에서 훌쩍 커버린 딸, 영어 실력보다 소중한 가족 사랑 체험”

여행은 딸에게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이 됐고, 엄마에게는 딸의 진면목을 발견하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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