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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영원한 ‘까멜리아 레이디’ 강수진

글 | 구희언 기자 사진 | 홍중식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크레디아 제공

2012. 07. 17

언제나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발레리나 강수진.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수석무용수인 그가 대표작 ‘까멜리아 레이디’로 다시 한국을 찾았다. 고국에서의 전막 공연은 이번이 마지막이란 이야기에 벌써부터 팬들은 탄식한다. 만인의 연인, 영원한 ‘까멜리아 레이디’를 다시는 한국에서 볼 수 없다니!

영원한 ‘까멜리아 레이디’ 강수진


세계 5대 발레단 중 하나인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수석무용수 강수진(45). 그가 우리에게 ‘춘희’로 잘 알려진 작품 ‘까멜리아 레이디’ 전막 공연을 위해 고국을 찾았다. 2002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2회 전석 매진 기록을 세운 이후 10년 만이다. ‘까멜리아 레이디’는 ‘오네긴’ ‘로미오와 줄리엣’과 함께 강수진을 대표하는 3대 작품으로 꼽힌다. 이 작품으로 그는 1999년 동양인 최초로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이라는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 여성 무용수 상을 받았다.

10년 만에 같은 배역으로 고국 찾아
‘까멜리아 레이디’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원작인 프랑스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의 자전적 소설을 바탕으로 한 드라마 발레. 까멜리아(동백꽃)를 너무 사랑해 숭배자로부터 많은 동백꽃을 받은 코르티잔(부유층의 공개 애인) 마르그리트 고티에와 순수한 귀족 청년 아르망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그린다.
“슈투트가르트 발레단과 함께 한국 무대에 다시 서게 돼 기뻐요. ‘까멜리아 레이디’는 배역부터 마음에 와 닿은 작품이에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편하게 즐기면서 볼 수 있는 작품이죠. 관객들이 공연 끝나고 재미와 슬픔, 감동을 안고 행복하게 집으로 돌아갈 것을 확신합니다.”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예술 감독 리드 앤더슨은 “감히 말하지만 (우리는) 세계 최고의 무용수를 가졌다”며 강수진을 치켜세웠다.
“존 크랑코(1960년부터 1973년 사망할 때까지 발레단 예술 감독을 맡음)가 살아 있을 때 한 말이 기억납니다. 재능은 가졌거나 가지지 않았거나 둘 중 하나다. 스텝과 테크닉을 배울 수 있는 무용수는 많지만 정말 ‘춤을 춘다’고 할 만한 무용수는 많지 않아요. 최고의 무용수는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어야 하죠. 그처럼 뛰어난 실력을 본다면 누구든 춤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느낄 수 있고, 그건 평생 기억에 남는 경험일 겁니다. 정말 뛰어난 무용수는 관객은 물론이고 함께 춤 추는 사람에게도 변화를 불러오거든요.”
강수진과 작품에서 사랑을 나누는 귀족 청년 아르망 역의 파트너 마레인 라데마케르에게도 ‘까멜리아 레이디’는 잊을 수 없는 작품. 2006년 그는 강수진과 이 작품을 공연하고 주역 무용수로 승격됐다. 같은 해 독일 공연상 최고 무용수 부문에서 젊은 무용가 상을 받았다. 독일에서도 강수진과 함께 “가장 슈투트가르트다운 한 쌍”으로 평가받고 있다.
“강수진 씨의 춤은 직관적이에요. 함께 춤을 추면 재밌죠. 수진 씨에게는 음악 안에서 춤을 추는 게 아니라 감정을 온몸으로 번역해내는 놀라운 능력이 있어요. 그와 함께 춤추는 건 보물처럼 소중한 경험이죠.”
강수진도 “무용할 때 상대와 호흡이 맞는 게 중요한데 처음부터 잘 맞는 무용수는 드물다”라며 “마레인과 출 때는 잘 맞아서 운이 좋았다”며 웃었다.

영원한 ‘까멜리아 레이디’ 강수진

순수한 귀족 청년 아르망과 아름다운 여인 마르그리트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까멜리아 레이디’.오른쪽은 아르망 역을 맡은 마레인 라데마케르와 강수진.



10년 전에도 강수진은 같은 작품의 같은 배역으로 고국 무대에 섰다. 10년의 관록이 붙은 발레리나의 연기는 어떻게 변모했을까.
“1998년에 처음 이 작품을 시작했는데 경험을 쌓을수록 훨씬 여유로워지는 느낌이에요. 더 많이 배우게 되죠. 발레뿐만 아니라 인생에서 배우는 것이 있으니까 다른 역도 굉장히 가깝게 와 닿더라고요. 파트너가 바뀔 때마다 제가 맡은 역도 바뀌는 것이 예술의 멋이랄까. 매일 아침 일어나면 컨디션이 다르잖아요. 매일매일의 강수진이 달라서 지금은 과거보다는 굉장히 프레시한 느낌으로 하고 있어요. 이 세상에 태어나 아름다운 예술을 할 수 있어 감사드려요.”



세상에서 가장 밉지만 예쁜 발
그에게는 늘 ‘최고’‘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1985년 세계 4대 발레 콩쿠르인 스위스 로잔 국제 콩쿠르대회 동양인 최초 우승. 이듬해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최연소이자 최초의 동양인 입단. 2007년 동양인 최초 독일 최고 예술 장인 궁중무용가 선정. 우리로 치면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인 셈이다.
죽 곧은 길을 걸어온 것처럼 보이지만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1999년 ‘브누아 드 라 당스’에서 수상한 직후 걸을 수조차 없는 고통이 찾아왔다. 고질적인 정강이뼈 악화였다. 한창 날개를 펴고 도약할 시기에 1년 넘게 무대에 서지 못했다. 원래 두 달 정도 쉬면 완치될 증상이었지만, 왼쪽 정강이의 통증을 참아가며 수년간 연습과 공연을 거듭해온 것이 무리하게 작용했다. 그래도 긍정의 발레리나에게 후회란 없었다. 그는 “지금은 그 정강이가 몸의 어느 부위보다도 강해졌으니까요”라며 활짝 웃었다.
강수진의 언니와 여동생은 하피스트, 남동생은 건축학도 출신의 비즈니스맨이다. 외할아버지는 ‘한국의 로트레크’로 불린 야수파 화가 고 구본웅 화백. 날 때부터 흐르던 예술인의 피도 무시할 수는 없었겠지만, 최정상에 오르기까지에는 인고의 세월이 있었다. 하루에 15시간씩 연습하며 닳아버린 토슈즈만 서너 켤레. 남들 같으면 2주는 사용할 발레 슈즈를 하루에 망가뜨리는 무서운 연습벌레였다. 오죽했으면 비품 담당 직원이 “그만 좀 쓰라”고 농담처럼 말했을까. 호수 위 우아하게 떠 있는 백조가 가라앉지 않으려 물밑에서 치열하게 발을 놀리듯, 독하게 연습해서 살아남은 순백의 발레리나는 누구도 넘보지 못할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영원한 ‘까멜리아 레이디’ 강수진


영원한 ‘까멜리아 레이디’ 강수진


2002년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종신회원이 된 그는 같은 해 발레단 동료 툰치 소크만(52)과 결혼했다. 그의 말을 따르면 “계단에서 내려오는 내 모습에 남편이 첫눈에 반했다”고. ‘학생중앙’ 표지모델을 할 정도로 예뻤던 강수진은 중학생 시절에도 남보다 큰 키에 늘씬한 자태로 뭇 남성들을 울렸다. 아버지 강재수 씨가 KBS2 예능 프로그램 ‘승승장구’에 출연해 “딸을 쫓아다니는 남학생이 많아서 현관문 앞에서 야구방망이를 들고 서 있었다”고 말할 정도. 발레리노였던 남편은 외면만큼이나 아름다운 강수진의 내면을 꿰뚫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못생겼지만 가장 아름다운 강수진의 발’ 사진은 남편의 작품이다.
“남편이 제 발을 보더니 피카소 작품이라고 가만히 있으라면서 사진기를 가져와서 찍더라고요. 거실에 크게 포스터로 장식해놨던 게 방송을 타면서 유명해졌죠. 동료들도 ‘진짜 고생한 발 보고 싶으면 수진이 발 봐라’라고 해요. 지금도 여름에는 샌들을 잘 안 신어요. 선천적으로 제 발둘째 발가락이 길거든요. 토슈즈가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아플 때도 있고 건강에도 치명적이지만 제겐 훈장처럼 기특한 발이죠.”
남편은 단 하나뿐인 솔메이트. 속내까지 터놓을 수 있는 유일한 친구다. 그런 그와 남편에게 휴가는 먼 나라 이야기다.
“항상 공연 일정에 맞춰 움직이기에 휴가는 생각도 못해요. 한국에 와서도 가족들과 한두 번 만나고, 운이 좋으면 저녁식사를 먹죠. 부모님께는 항상 죄송한데 다행히도 저를 많이 이해해주세요. 감사하죠. 언젠가 사흘 정도 휴가가 생긴다면 제주도에 가는 게 소원이에요. 다른 나라를 다 가봤지만, 제주도만 못 가봤어요. 제가 오랫동안 건강한 몸을 유지할 수 있는 건 남편 덕분이에요. 특별히 컨디션 조절을 하지는 못하는데 대신 남편이 저를 굉장히 챙기고 뒤에서 지켜줘요. 사랑을 많이 받고 많이 주면 젊어지는 것 같아요. 컨디션 좋을 때는 20대 시절보다 훨씬 나을 때도 있다니까요(웃음).”

영원한 ‘까멜리아 레이디’ 강수진

2011년 남편 툰치 소크만과 ‘더 타임리스 토크 콘서트’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강수진.



마흔 넘기며 ‘발레의 맛’ 깨달아

자신을 “세계 최고령 발레리나”라고 소개한 강수진에게 나이는 그저 ‘넘버(number)’에 불과하다. 그는 “한국에서 ‘까멜리아 레이디’ 전막 공연을 다시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저도 은퇴 시기가 5년 후일지, 언제일지 몰라요. 서른 살 때에는 오히려 은퇴에 대해 많이 고민했어요. 마흔 전에 은퇴할 줄 알았어요. 당분간 은퇴할 생각은 없지만, 이 작품이 다시 한국에 들어온다고 해도 몇 년 뒤가 될 거고, 그때쯤엔 제가 은퇴했을지도 모르죠(웃음).”
강수진은 마흔이 넘어가면서부터 “발레가 더 재밌어졌다”고 했다.
“마흔 넘어가면서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강수진 입단 20주년 헌정공연’을 해줬어요. 이게 마지막 공연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공연을 마쳤는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 더 재밌네? 계속 해보지 뭐.’ 그래서 요즘은 훨씬 더 즐기면서 해요. 저로서는 절정에 있을 때 은퇴하고픈 생각이 있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어요. 당연히 언젠가는 은퇴하겠지만, 지금은 열심히 살고 열심히 공연하는 것이 더 중요해요.”

영원한 ‘까멜리아 레이디’ 강수진


은퇴 후에는 후배들을 위해 사는 것이 꿈이다.
“발레 세계에도 여러 개의 문이 있고 지도자든 감독이든 할 수가 있는데, 어느 방향으로 갈지는 모르죠. 그때 가서 제가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문을 열 겁니다. 저도 쉬고 싶을 때가 많은데 쉬는 법을 잘 몰라요(웃음). 3일을 쉰다고 해도 첫날은 그럭저럭 빈둥대다가 둘째 날부터 슬슬…, 셋째 날에는 못 참고 연습을 나가요. 좋아서 하는 것이거든요. 그렇게 연습하다 보니까 이런 날이 왔어요. 아직도 배울 게 너무 많아요. 발레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게 하나의 공부예요. 지금의 제겐 오늘, 지금, 침대에 들어가기 전까지가 중요해요. 그걸 경험으로 배웠고, 미래에 대한 계획은 있어도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괜한 시간 낭비가 아닐까요.”
발레에서는 가장 아름답고 중요한 자세로 아티튀드와 아라베스크를 꼽는다. 한 발에 몸을 지탱한 채 다른 발은 무릎을 90도로 꺾어 올리는 건 아티튀드, 곧게 쭉 뻗는 건 고전 발레에서 가장 우아한 자세인 아라베스크다. “맥시멈에 있을 때 은퇴하고 싶다”는 강수진에게도 언젠가 무대에서 내려와 갈림길에 설 때가 올 것이다. 그곳에서 어디로 다리를 뻗을지는 그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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