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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달콤한 인생

오는 5월이면 두 아이 아빠 래퍼 김진표의 행복일기

“내가 지키고 싶은 아내, 그리고 두 아이…, 음악 욕심도 커지는 요즘”

글 정혜연 기자 사진제공 김진표

2010. 01. 19

무수히 많은 별이 뜨고지는 가요계에서 랩 하나로 10년 넘게 살아남은 건 대단한 일이다. 이적과 함께 듀오 ‘패닉’으로 데뷔한 뒤 올해로 15년 차가 된 래퍼 김진표. 오는 5월이면 두 아이의 아빠가 되는 그는 모든 것이 안정된 듯한 모습이었다.

오는 5월이면 두 아이 아빠 래퍼 김진표의 행복일기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경쾌한 랩음악으로 꾸준히 사랑받아온 래퍼 김진표(33). 15년 전 ‘패닉’으로 데뷔할 당시 이적 옆에서 랩을 하며 색소폰을 불던 고등학생 김진표는 어느덧 5장의 솔로 앨범을 낸 중견 가수가 됐다. 거기다 예쁜 아내와 자신을 똑 닮은 아들까지 생겼다. 지난 12월, 발매한 미니앨범 ‘Romantic 겨울’에서는 그의 따스하고 행복한 일상이 묻어났다.
“한량 기질이 있어서 케이블 방송 tvN ‘E-News’의 MC를 그만두고 한동안 잘 쉬었어요. 프로그램을 진행한 3년 동안 음악 활동을 하지 않아서인지 몸이 근질근질해지더라고요. 겨울에 들을 만한 랩송을 만들고 싶어 싸이 형과 뜻을 함께했죠.”
앨범 중 특히 한 곡이 눈에 띈다. 이적 김동률 류시원 김원준 김조한 싸이 길이 함께한 ‘친구야’라는 노래. 평소 친분이 있던 이들에게 “친구를 주제로 한 노래를 만들 계획”이라고 하자 모두 흔쾌히 시간을 내줬다고 한다.
“제 인맥이 화려할 거라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딱 요 멤버가 다예요(웃음). 제가 형들을 좋아하고 그분들도 동생이라고 저를 잘 챙겨주셔서 만날 때마다 즐거워요.”

아내와의 첫 만남, 그리고 기적 같은 결혼
아내 윤주련(28)과의 만남도 평소 친하게 지내던 김원준 덕분이었다. 2007년 가을 김원준과 술을 마시던 중 윤주련이 인사를 하러 왔다. 두 사람은 한 일일드라마에 함께 출연하며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다고. 김진표는 “아내를 처음 본 순간 느낌이 참 좋았다”고 한다.
“제가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 이성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질 못해요. 사실은 전화번호를 묻고 싶었는데 저도 모르게 ‘일촌 맺어요~’라는 말을 하고 있더라고요. 주련이가 ‘네~’라고 답했지만 그냥 한 말 같았어요. 그날 원준이 형 홈페이지에 ‘형 어제 잘 들어갔어?’라고 메시지를 남겨 제 이름이 눈에 뜨이도록 했죠(웃음).”
그의 소원대로 아내는 이튿날 인터넷상으로 알은척을 해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자연스럽게 전화번호까지 알게 됐다. 당시 영화 ‘권순분 여사 납치 사건’의 촬영을 끝내고 쉬고 있던 아내는 그에게 시사회에 같이 가자는 제안을 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겼다. 다정하게 영화를 보던 두 사람의 모습이 사람들의 눈에 띄었고, 휴대전화 카메라에 찍힌 사진이 인터넷상에 떠돌았다. 2006년 이혼한 김진표가 새로운 여자를 만나고 있다는 사실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만난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기자가 전화를 걸어 사실인지 묻더라고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이 됐어요. 제 입장에서는 열애기사가 나면 뭇매를 맞을 게 뻔했죠. 아니라고 대답하면 주련이가 서운함을 느낄 거고, 그러면 주련이를 놓칠 것 같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러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좋은 감정을 갖고 만나는 사이’라고 솔직하게 말했어요.”
곧바로 열애 기사가 나갔고 예상대로 사람들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고. 마음에 두고 있던 여자가 완전히 내 여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선물을 양손에 들고 윤주련의 부모에게 인사를 드리기 위해 경남 통영으로 향했다.

오는 5월이면 두 아이 아빠 래퍼 김진표의 행복일기


다행히 장인은 그를 처음부터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다고 한다. 서먹해하는 예비사위에게 술을 권하며 이런저런 속깊은 이야기와 당부를 들려주었다. 장모는 그가 자주 전화를 걸어 살갑게 굴자 믿음을 주기 시작했다고 한다.
“인사를 드리고 나니 결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사실 이혼하고 1년 반 동안 ‘다시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을 했어요. 그런 제가 결혼 생각을 하다니…. 정말 사람 일은 모르는 것 같아요.”



똑 닮은 아들이 행복의 근원, 셋까지 낳을 생각
아내를 만난 지 석 달쯤 됐을 때 결혼 승낙을 받으러 다시 예비처가를 찾았다. 장인·장모는 1년 정도 만나고 나서 천천히 결혼하기를 원했다고. 그렇게 허락을 받는 둥 마는 둥 지내다가 결혼을 서두르는 계기가 찾아왔다. 아기가 생긴 것이다.
“결혼을 밀어붙이고 싶은 마음이 크던 차에 아이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큰 축복으로 느껴지더라고요. 저희가 처음 만났던 때부터 시작해서 모든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어요. 영화 시사회를 함께 가고 열애 기사가 난 것도 돌아보면 다 운명이었던 것 같아요. 어쩌면 매듭이 착착 풀리듯 일이 그리도 잘 풀리는지…, 인연이었던 모양이에요.”
이듬해 5월 두 사람은 백년가약을 맺었다. 5개월 뒤에는 그를 쏙 빼닮은 아들도 태어났다. 아들의 이름은 ‘민건’. 온화하고 굳세게 자라라는 의미라고. 그즈음 소속사와 계약이 만료된 아내는 가족을 위해 기꺼이 전업주부가 되기로 했다.
“아내는 정말 10점 만점에 10점이에요. 제가 보수적이어서 아내에게 ‘일하지 말고 집에만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더니 순순히 따라주더라고요. 아내의 가능성 중 하나를 빼앗은 셈이니 무조건 최고의 점수를 주고 싶어요. 살다 보니 말다툼도 하고 트러블이 생길 때도 있는데, 그래도 참 대견해요. 어리지만 집안일도 척척 해내고 양쪽 부모님한테도 잘하거든요.”
올 5월에는 둘째가 태어날 예정이다. 아직까지 성별은 모르지만 아들이든 딸이든 하나 더 낳아서 3남매를 만드는 것이 그의 소망이다. 아빠 김진표는 어떤 모습일지 잘 그려지지 않는다.
“사실 제가 놀고 싶을 때만 놀아줘요. 아이가 예쁘긴 하지만 한두 시간 보다 보면 기운이 빠지더라고요(웃음). 그런 점에서도 아내가 정말 존경스러워졌어요. 그래도 노력은 해요. 기저귀도 갈아주고, 밥도 가끔 먹여주고, 이유식 먹기 전까지 젖병 소독은 제 담당이었어요.”
아이들이 그를 닮아 음악을 하고 싶어하면 말리지 않을 생각이라고. 학창시절 그가 음악을 한다고 했을 때 아버지가 결국 승낙을 했듯 말이다. 아버지는 그가 중학교 때 ‘모든 예술의 기본은 사진’이라며 수동 카메라를 건네주기도 했다. 그 덕에 김진표는 음악만큼이나 사진에도 일가견이 생겼고, 지난해에는 케이블채널 QTV 리얼리티 프로그램 ‘포토그래퍼’의 MC를 맡기도 했다.
젊은 사람들 가운데는 그를 MC로 아는 이도 있다. 그가 특히 애착을 가졌던 프로그램은 ‘E-News’. 이혼 후 아무도 찾지 않을 때 유일하게 손을 내밀어줬기 때문이다.
“초반에 프로그램을 안착시키려고 콘셉트를 독하게 잡았어요. 연예인들한테 항의 전화도 많이 들어오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어요. 그래도 매일 밤 9시면 어김없이 진행해야 하는 생방송이라 보수가 괜찮아서 꾸준히 했죠(웃음). 농담이고, 물론 그런 이유도 있지만 매일같이 스태프와 같이 진행하다 보니 정이 들었고 또 내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에 애착이 갔죠.”
MC에 치중하다보니 음악 작업에 쏟을 시간은 자연히 줄었고, 본의 아니게 공백기도 생겼다. 3년째가 되자 그는 ‘그만둬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아내는 처음에는 모험을 시작하려는 그를 말렸다. 아내의 뜻에 따라 6개월을 더 했지만 음악에 집중하고 싶어 결국 MC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올해는 음악 통해 팬들과 만나고 싶어
올해로 그는 데뷔 15년 차 가수가 됐다. 장수 비결을 묻자 한참 고민하더니 “그러게요. 왜일까요?”라며 웃었다.
“적당히 분수껏 했기 때문 아닐까요?(웃음) 패닉으로 데뷔할 당시 하나도 준비된 게 없었어요. 음대에 진학하려고 색소폰을 막 배우던 때였고, 랩을 좋아해서 열심히 하기는 했지만 동네 래퍼 수준이었거든요. 스스로 생각해도 민망할 정도였기 때문에 그 이후 음악 공부를 많이 했죠. 사실 순서가 바뀐 건데, 정말 운이 좋아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그는 ‘이적 옆에 서 있는 쟤는 도대체 정체가 뭐야?’라고 말하는 이들의 시선이 싫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의 말이 사실이었기에 그는 악착같이 스스로를 갈고닦았다. 이후 그를 주축으로 한 그룹 ‘노바소닉’에서 활동하며 차츰 음악성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간간이 낸 솔로 앨범도 반응이 좋았고, 꾸준히 발표한 덕에 5장의 개인 앨범을 갖게 됐다. 이쯤 되면 개인 콘서트를 열 법도 한데 그는 한 번도 콘서트를 연 적이 없다.
그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그의 노래 대부분이 다른 가수와 함께 부른 탓에 콘서트 현장에 모두 초청할 수 없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심장이 좋지 않아서라고. 2001년 어느 날 그는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심장에 이상이 생겨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다행히 옆 좌석에 앉아 있던 간호사가 응급조치를 했고, 20분 뒤 깨어났다.
“그런 적이 없었는데 이상해서 검사를 받으러 갔더니 우심실이형증이라고 하더라고요. 의사는 당장 수술 안 하면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며 그때 그 비행기에 간호사가 없었으면 식물인간이 됐을 수도 있다고 했죠. 곧장 수술을 받았는데 심장에 전기다리미 같은 작은 칩을 넣어서 문제가 생기면 응급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해놨어요. 수술 이후로 운동을 심하게 한 적이 없는데 서너 시간 동안 무대에서 노래하는 건 당연히 무리겠죠.”
대신 그는 꾸준한 음악 작업을 통해 팬들과의 접촉 기회를 늘릴 생각이다.
“이번 앨범처럼 좋은 사람들과 작업하면서 의미 있는 노래를 많이 들려드릴 생각이에요. 한 곡씩 발표하다 보면 차곡차곡 쌓여서 자연스럽게 정규 6집도 낼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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