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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2배 더 행복해지는 협상기술

협상 전문가 최철규 꼼꼼 공개

글 이설 기자 | 사진 지호영 기자

2009. 07. 10

협상은 딱딱한 테이블 위로 오고가는 것만은 아니다. 친구와 여행지를 정하거나 동료와 점심메뉴를 고를 때도 우리는 각자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가족 간 협상은 그야말로 일상. 행복한 가족관계를 위한 협상기술을 공개한다.

가족이 2배 더 행복해지는 협상기술

“협상은 내가 원하는 바와 상대가 원하는 바가 다를 때 설득을 통해 나의 것을 극대화하는 작업이에요. 협상을 잘한다는 것은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술이 뛰어나다는 뜻이죠.”
세계경영연구원(IGM) 최철규 부원장은 협상 전문가다. 미국 미시간 경영대와 샌디에이고주립대에서 협상교육과정을 수료한 뒤 5년째 기업인에게 협상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아직 낯설지만 미국 등 경영 선진국의 웬만한 종합대학에는 협상 관련 과목이 개설돼 있다.
성공과 행복은 타인과의 관계에 의해 좌우된다. 원하는 관계를 만드는 능력이 있다면 이상적인 삶에 반쯤은 도달한 셈이다. 협상은 관계를 해치는 갈등을 다루는 비책. 이런 의미에서 놓칠 수 없는 삶의 기술임이 분명하다.
이는 국가간 관계, 비즈니스상 일처리뿐 아니라 가족 구성원 간 조화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최철규 부원장에게 흔히 겪는 가족 간 갈등을 협상으로 지혜롭게 극복하는 방법을 한 수 배웠다.

마음에 차지 않아도 일단은 공감하라
앞에서보다 뒤에서 세는 것이 더 빠른 성적표를 들고 온 아들. 노력만큼 결과가 좋지 않은 것 같아 안쓰러운 마음을 뒤로하고 좋게 타일러본다. 하지만 이에 “해도 안 되는 걸 어떡하느냐”며 쏘아붙이는 아이. 반성의 기미 없이 당당한 반응에 그만 “엄마는 4시간 자며 공부했다” “최선을 다하고도 이 성적이 말이 되느냐”라며 아이에게 상처를 주고 말았다.

관계와 이익. 모든 협상은 이 2가지를 목표로 삼으며, 둘은 보통 반비례한다. 예컨대 시장에서 물건값을 깎을 때는 상인과의 관계보다 이익을, 오랜 비즈니스 파트너와의 협상에서는 순간의 이익보다 관계를 우위에 둔다. 가족 간 협상과 기타협상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이 둘 사이의 무게중심. 혈연으로 뭉친 가족은 자연히 관계에 중심이 쏠려 있다.
“다른 협상은 잘하면서 가족협상에는 ‘꽝’인 사람이 있어요. 가족은 나를 당연히 이해할 것이라는 생각에 감정적으로 대응하기 때문이죠. 이슈에 대한 불만을 사람에게 전가하면 협상 수준이 떨어지기에 이슈와 인간관계를 분리하는 것은 협상의 기본이에요. 가족 간 협상에서 가장 많이 저지르는 실수가 이 부분이죠.”
가족 간 협상에는 대안이 적다는 것도 관계를 중요하게 하는 요소다. 협상을 성사시키는 관건은 배트나, 즉 상대방을 매료할 만한 대안이다. 나와 상대의 욕구를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따라 협상에는 수많은 배트나가 존재한다. 하지만 가족 간 협상에는 이 배트나가 제한적이다. 의견을 좁히기 위해 혈연을 끊거나 집을 나가는 등의 행동을 한다면 관계를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가족 간에는 누구도 일방적인 협상력을 가질 수 없기에 감정조절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관계에 중점을 둔 협상은 어떻게 가능할까. 최 부원장은 이에 대해 ‘먼저 공감한 뒤 인정 여부를 결정할 것’과 ‘U메시지보다 I메시지를 쓸 것’이라는 2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공부를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는 아이에게 싫은 소리를 하는 것은 협상원칙에 맞지 않아요. 상대의 반응에 공감하는 절차를 빠뜨렸기 때문이죠. ‘너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구나’라고 공감하면 상대를 설득할 여지가 생기지만, 바로 평가를 한다면 의견차를 좁힐 가능성마저 없어지니까요.”
I메시지를 쓰는 것도 공감하기와 관련이 있다. 메시지는 나의 감정을 상대에게 충실이 전달하는 화법으로, 팩트를 근거로 나의 감정과 의도를 전달하는 절차를 따른다. 예컨대 남편의 늦은 귀가시간이 불만이라면 “1주일 연속 새벽 2시에 들어오고 있다” “그래서 나는 건강과 안전이 걱정된다” “그렇기 때문에 귀가시간을 당기거나 만약 늦으면 꼭 전화를 해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식이다. 이에 비해 U메시지는 하나의 행동으로 상대의 정체성을 판단하는 것. 예컨대 늦게 들어오는 남편에게 “당신은 역시 안 돼”라고 말하거나 늦잠 자는 아이에게 “너는 게을러”라고 단정하는 것이다.

숨은 욕구를 공략하라
시어머니가 하와이를 가고 싶다고 하시는데 나는 홋카이도에 갔으면 한다. 하와이는 거리가 멀어 시간계획도 빠듯하고 지난번에 다녀왔기 때문이다. 싫은 기색을 눈치 챈 어머니의 심기가 불편해져 여행은커녕 한동안 냉전을 겪어야 했다.

숨을 헐떡이며 상점에 들어와 “콜라 있어요?”라고 묻는 고객은 꼭 콜라만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이때 그가 원하는 것은 목을 축일 무언가다. 이렇게 눈에 드러나는 경우가 아니라도 모든 행동에는 숨겨진 욕구가 있다.
협상에서는 이 욕구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사람이 협상을 할 때 단순히 요구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는 실수를 저지른다. 반대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상대의 욕구를 읽을 수 있다면 협상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아내가 남편에게 ‘아이가 말을 안 듣고 시어머니가 잔소리를 해서 힘들다’고 불만을 토로합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남편은 ‘도우미 아주머니를 불러줄까? 어머니한테 전화해서 고충을 전할까?’라고 반응하죠. 하지만 아내가 원하는 것은 그런 해결책이 아닙니다. 내가 집에 있지만 이러한 힘든 점이 있으니 내 존재감과 힘든 부분을 공감하고 위로해달라는 뜻이죠. 이렇듯 협상에서도 말로 드러내는 요구를 단순히 해석하면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없어요.”
요구와 욕구를 구분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속내를 그대로 드러내면 좋지만 협상을 할 때면 본능적으로 진심을 숨기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이때 도움이 되는 것은 질문과 경청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경청을 하거나 ‘왜’ ‘어째서’라는 질문을 하다보면 숨겨진 욕구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협상 관련 욕구뿐 아니라 기존 다른 욕구를 찾아내는 방법도 유익하다. 세상에는 여러 가치가 있으며,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저마다 다르다. 이런 가치들을 자극하면 현재 진행하는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본인은 홋카이도로 여행을 가고 싶은데 상대는 하와이에 가고 싶어 합니다. 하와이에 가고 싶다는 요구 뒤에는 로맨틱한 분위기와 친구에게 자랑하고 싶은 욕구 등이 있을 수 있겠죠. 의견조정을 할 때 본인이 하와이에 가기 싫은 이유에 초점을 맞추면 설득이 힘들어요. 대신 상대방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다른 이유를 대면 이야기가 수월해지죠. 예컨대 하와이는 자외선이 강해 피부가 망가지지만 홋카이도에 가서 온천을 하면 건강과 피부 모두 좋아질 거다, 경비가 절감되면 그 돈으로 면세점 가서 선물을 사드리겠다, 어머니 오랜 시간 비행하면 힘드실 것 같다 등 아름다움·건강·쇼핑 등의 다른 기본욕구를 공략하는 거죠.”
특히 시어머니와 의견차가 있을 때는 남편과 아이의 편의에 초점을 맞춰 설득하는 것이 좋다. 시어머니의 욕구는 며느리의 그것보다 아들의 행복과 편의를 향해 있기 때문이다. 주말에 지방에 내려오라는 요구에 따르기 힘들다면, 아이 시험이 있거나 남편이 피곤하다는 이유를 대는 식이다.
우리나라 사람이 협상에 약한 데는 순응이 미덕으로 통하는 사회 분위기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기질적인 이유 등이 있다. 가족 간에는 이런 이유들이 극대화된다. 세상에 둘도 없는 가족인데, 기분 상하지 않게 양보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최 부원장은 “감정을 쌓아두면 순간 사소한 것으로 폭발한다. 해결할 일이 있으면 솔직하되 세련된 방식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어색하고 힘들지만 6개월만 노력하면 가족 간 협상이 자연스러워질 것”이라며 협상 잘하는 아이로 키우기 위한 조언을 건넸다.
“협상은 곧 표현이고 논리입니다. 어떤 이야기든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죠. 자녀를 윽박질러 혼나지 않을 이야기만 하는 아이로 키우기보다 실수를 해도 자꾸 질문을 해야 해요. 예컨대 용돈을 올려달라고 말하면 ‘용돈이 왜 부족하냐’ ‘객관적 기준이 뭐냐’ ‘돈이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다’라며 용돈을 올려줄 수 없는 이유를 들려주는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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