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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멋진 인생!

유료 공연 펼쳐 불우 이웃 돕는 아줌마 록 밴드 화려한 외출

글·김수정 기자 / 사진·조세일‘프리랜서’

2007. 12. 24

마흔이 넘은 나이에 록 그룹을 결성해 열정을 불태우는 아줌마들이 있다. 지난해 6월 인천지역에 사는 중년 여성 4명이 모여 만든 록 밴드 ‘화려한 외출’.좋아하는 음악을 마음껏 하면서 선행까지 펼칠 수 있어 행복하다는 이들을 만났다.

유료 공연 펼쳐 불우 이웃 돕는 아줌마 록 밴드 화려한 외출

11월 둘째 주 목요일 자정에 가까운 시각. 인천광역시 중구 인현동에 위치한 음악연습실을 찾았을 때 그곳을 차지하고 있던 이들은 음악에 미친 중·고등학생도, 언더그라운드 무대에서 활동하는 젊은이도 아니었다. 깊이 팬 주름 사이에서 넉넉한 웃음이 배어나오는 중년 여성 네 명이 시원한 록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던 것. 이들은 록 밴드 ‘화려한 외출’의 멤버들이다.
지난해 6월 결성된 이 록 밴드는 리더이자 보컬과 전자기타를 맡고 있는 서순희씨(44)를 비롯해 드럼을 맡고 있는 김정미씨(48), 키보드를 치는 안혜숙씨(48), 베이스기타를 연주하는 김오현씨(46)로 구성돼 있다. 아마추어 이상의 실력을 갖춘 록 밴드 ‘화려한 외출’은 70~80년대 사랑받던 록 장르의 팝이나 대중가요를 주로 연주하는데 영국의 3인조 밴드 바나나라마의 ‘비너스’, 미국의 4인조 밴드 포넌블론즈의 ‘What’s up’부터 ‘한동안 뜸했었지’ ‘빗속의 여인’까지 20여 곡의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다.
“아줌마 밴드라고 얕보면 섭섭해요. 모든 멤버가 젊을 때부터 악기를 다뤄 기본 실력이 탄탄하거든요. 매주 화·목요일마다 두세 시간씩 손발을 맞추고 한 달에 세 차례 이상 공연을 갖기 때문에 인천에서는 실력 있는 록 밴드로 소문났어요. 앞치마를 벗고 악기를 연주하는 순간 아줌마에서 로커로 화려하게 변신하는 거죠(웃음).”

유료 공연 펼쳐 불우 이웃 돕는 아줌마 록 밴드 화려한 외출

밴드 활동을 통해 삶의 활력을 얻고 있다는 ‘화려한 외출’의 서순희·김오현·김정미·안혜숙씨(왼쪽부터).


‘화려한 외출’ 멤버들의 이력을 봐도 이들의 내공을 짐작할 수 있다. 20년째 악기사를 운영하고 있는 리더 서순희씨는 2001년 ‘샤인’이라는 국내 최초의 중년 여성 밴드를 결성해 수년간 무대에 오른 경력자. 고등학생 시절 가야금을 배운 김정미씨는 3년 동안 실용음악 학원에서 드럼을 배운 뒤 라이브 카페에서 연주를 했다고 한다. 부산에서 음악학원 강사 생활을 한 안혜숙씨는 2004년부터 서씨와 함께 ‘샤인’에서 활동해왔으며, 현재 음악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오현씨는 가족끼리 밴드를 결성해 공연을 펼치고 있는 음악인이라고.
“처음 밴드에 들어간다고 했을 때 ‘당신이 무슨?’이라며 콧방귀를 뀌던 남편이 지금은 든든한 지원군이 됐어요. 취미로만 하는 게 아니라 굵직굵직한 지역행사에 나가 프로 못지않은 연주를 하니까 저를 다시 보게 된 거죠. 학교 동문회장을 맡고 있는 남편이 얼마 전 ‘연말에 우리 동문회 행사에 와서 연주해주면 안될까?’ 하고 부탁하는데 저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더라고요(웃음).”
중앙대 창작음악과 4학년에 재학 중인 아들과 올해 수능시험을 본 딸을 둔 김정미씨는 “드럼을 치면서 남편이나 아이들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날려버린다”고 한다. 처음 시작할 때와 달리 아내의 공연을 챙겨 보면서 고칠 점을 지적해주는 남편 김형규씨(49)와 두 아이들은 그가 공연준비로 바쁠 때면 집안일을 많이 거들어준다고.
키보드 연주자 안씨는 군 복무 중인 아들 덕분에 밴드에 합류하게 됐다고 한다. 3년 전 대학에 입학한 아들이 기타를 사달라고 해 우연히 서씨가 운영하는 악기사에 들렀다가 서씨가 밴드 활동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멋지다. 내가 가진 피아노 연주 실력이면 밴드에 합류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는 것. 그리고 서씨의 제안으로 ‘샤인’에서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기타를 사달라고 한 아들은 자기보다 제가 더 열심히 하니까 많이 놀랐죠(웃음). 가끔 군부대에 가서 공연하곤 하는데 그때마다 아들 생각이 많이 나요. 얼마 전에 전화가 왔는데 ‘선임병이 엄마가 신문에 나온 걸 봤다며 저를 부러워해요’라고 하더라고요. 아들이 제대할 때쯤엔 지금보다 더 멋진 연주를 하는 엄마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음악학원에서 쓸 악기를 사기 위해 서씨의 악기사에 들렀다가 팀에 합류하게 됐다는 베이시스트 김오현씨는 “낮에는 아이들에게 클래식 음악을 가르치다가 밤에는 로커로 변신한다”며 웃었다. 경찰관인 남편 노국환씨(49)와 결혼, 중앙대 작곡과에 재학 중인 큰아들과 단국대 기악학부에 재학 중인 작은아들을 둔 김씨는 지난 2005년 경찰의 날 행사 때 가족들과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고 한다. 키보드를 치는 큰아들, 색소폰을 부는 작은아들과 함께 그가 연주했던 악기는 드럼. 그러나 다른 악기에도 도전하고 싶어 ‘화려한 외출’에서는 베이스기타를 맡게 됐다고. 가족밴드에서 베이스기타를 연주하는 남편은 이런 김씨를 위해 개인코치를 자청했을 만큼 그를 열성적으로 도와준다고 한다.
팀의 유일한 미혼인 서씨는 이런 멤버들의 모습이 부러우면서도 “노래 부르고 악기 연주하면서 지내는 지금의 삶에 만족한다”고 말한다. “더 늙기 전에 좋은 짝을 만나라”는 부모의 권유 때문에 몇 해 전만 해도 결혼을 생각했지만, 밴드를 결성한 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생활이 계속되면서 그런 생각이 사라졌다고.

가족들의 응원으로 록 밴드 활동, 유료 공연으로 얻은 수익금은 불우 이웃에게 전달
‘화려한 외출’은 지난해 9월 첫 공연을 가진 뒤 ‘결식아동 돕기 사랑의 ROCK 콘서트’ ‘백혈병 환아 돕기 자선 음악의 밤’ ‘독거노인 돕기 자선공연’ 등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공연을 많이 펼쳤다. 이들은 때와 장소에 따라 무료 공연을 하기도 하지만 주로 유료 공연을 고집하며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이 “돈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수준 높은 공연을 보이려 애쓴다고.
“무대에서 실수를 하면 대부분 ‘아줌마니까 그렇지’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 인식이 정말 싫어서 최대한 실수하지 않으려고 정신을 바짝 차려요. 한 곡을 제대로 연주하려면 석 달을 꼬박 연습해야 하는데, 아줌마들이라 그런지 건망증이 심해 예전에 연습한 곡도 한 번씩 연주해봐야 하죠(웃음).”
‘화려한 외출’의 공연 입장료는 5천원 내외. 티켓 판매로 얻은 수익금과 공연 중 모금한 성금은 모두 불우한 이웃에게 전달한다. 그들은 현재 인천광역시 중구 자원봉사단으로 등록돼 있기도 하다.
“평소에 ‘나보다 어려운 이웃을 돕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실천하기가 어려웠어요. 그런데 밴드 활동을 하니까 좋아하는 음악을 마음껏 하면서 선행을 펼칠 수 있어 참 좋더라고요. 특히 겨울이 되면 결식아동이나 혼자 사는 어르신들의 생활이 더 어려워지잖아요. 그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요.”
‘화려한 외출’의 꿈은 더 많은 아줌마·아저씨 밴드가 생겨나 함께 활동하는 것. 앞으로 ‘화려한 외출’이라는 이름으로 2기·3기 멤버를 영입할 예정이라는 그들은 “여든이 넘은 할머니가 돼서도 음악활동을 계속해 많은 이에게 웃음과 용기를 주고 싶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마흔이 넘으니까 삶이 무기력해지고 아무 일도 아닌 일에 우울해지더라고요.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하다 어느새 내 젊은 날은 사라져버렸고…. 그런데 요즘은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진짜 외출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 저만의 시간을 갖는 느낌이랄까요. 얼마 전 ‘아저씨 밴드’를 다룬 영화 ‘즐거운 인생’을 보면서 ‘중년이 쓸쓸하고 외로운 시기만은 아니다. 노년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하는 아름다운 시간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희들은 록 밴드 활동을 통해 중년의 삶을 만끽하며 살 겁니다.”
‘화려한 외출’은 11월 말 두 차례의 자선공연을 펼친 뒤 12월1일 인천 한중문화원에서 단독콘서트를 가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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