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EOPLE

이 부부가 사는 법

영화감독 박흥식·편집기사 박곡지

남편이 만든 영화 아내가 편집해요~

기획·구가인 기자 / 글·최연정‘자유기고가’ / 사진·조영철 기자

2007. 07. 23

박흥식 감독과 박곡지 편집기사. 이들은 충무로에서는 유명한 영화인 부부다. 최근 박흥식 감독의 신작 ‘경의선’에서 함께 작업을 한 이들을 만나 영화계 동료로, 10년차 부부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었다.

영화감독 박흥식·편집기사 박곡지

데뷔작 ‘역전의 명수’에 이어 최근 두 번째 영화 ‘경의선’을 내놓은 박흥식 감독(45). 그는 이번 작품도 편집기사인 아내 박곡지씨(42)에게 편집을 맡겼다. 박곡지 기사는 87년부터 여성에게는 불모지였던 영화 편집 일에 뛰어든 베테랑 중의 베테랑. ‘접속’ ‘태극기 휘날리며’ ‘쉬리’ ‘미녀는 괴로워’ 등의 화제작을 비롯한 수많은 작품들이 그의 손을 거쳐갔다.
“제가 겉으로 보기엔 목소리가 크고 성격도 괄괄해서 여장부 같고, 남편은 평소 조용하니까 주변에서는 얌전하게만 보는데 실제로는 그 반대예요. 저는 화가 나는 일이 있으면 오히려 냉정하고 차분해지는데 남편은 조용히 있다가 확 열을 내거든요. 그럴 때는 제가 해열제가 되죠. 그래서인지 10년 동안 살면서 싸운 적이 거의 없어요. 좀 다른 게 있어도 서로 맞춰가는 데 익숙한 편이거든요.”
감독과 배우 혹은 배우 커플은 익숙하지만 감독과 편집기사의 만남은 흔치 않은 조합이다. 더구나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96년 당시, 박 감독은 이제 막 충무로에 발을 들여놓은 새내기 감독이었던 데 반해 박 기사는 이미 영화계에서 편집기사로서 인정받고 있던 상황. 부부의 연을 맺게 된 이들의 만남이 궁금했다.

처음 만난 날 먼 곳까지 짐 들어주며 호감 보인 남편
“독일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돌아와서 바로 ‘진짜 사나이’란 영화의 조감독을 맡았어요. 한창 그 작품을 편집하고 있을 때였는데, 아내가 저희 작품을 맡고 있던 편집기사 분께 인사한다고 찾아온 거예요. 한국에 들어온 지 얼마 안됐을 때라 ‘박곡지’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몰랐어요. 영화 크레딧에 이름이 써 있는 걸 보긴 했지만 남자로 생각했거든요. 처음 봤을 때 인상은 똘똘해 보이더라고요(웃음). 그날이 마침 명절날이었는데 짐이 많다고 하기에 편집실에 계속 있기도 갑갑해 바람이나 쐴까 해서 제가 짐 옮기는 일을 도와주겠다고 했죠. 특별히 처음부터 관심이 갔던 건 아니고요.”
“저 역시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그리고 지금 박 감독이 ‘바람 쐬기 위해 그랬다’고 하는데 그때 바람만 잠깐 쐰 게 아니거든요. 짐을 들어다주고 또 먼 데까지 저를 데려다줬어요. 그래서 제가 ‘아무한테나 이렇게 친절하냐’고 물었더니 여자한테만 그런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고맙게 생각한다, 다시 오면 밥 한 번 사겠다’며 예의상 말을 했는데 나중에 다른 사람 통해서 ‘밥 안 살거냐’ 하고 연락이 왔죠.”
첫 만남에서 모두 자신은 상대에게 관심이 없었다며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왠지 정겹다. 10년을 알아온 오랜 친구 같기도 하고 어딘가 닮아 보이는 남매 같기도 하다. 다시 박 감독이 억울하다는 듯 얼른 말을 보탠다.
“제가 먼저 연락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예요. 저는 오히려 ‘밥 사주겠다’는 연락을 받았고 박 기사가 아무래도 선배다 보니 어려운 마음에 사양하고, 나중에 감독되면 잘 부탁한다고만 했죠.”(박흥식)
“이 사람도 저도, 이렇게 서로 발뺌하는 걸 보면 어쩌면 정말 우리 두 사람은 서로 관심이 없었는데 주변 사람들이 저희 둘이 잘 맞을 거라고 생각하고 연결해주었나봐요.”(박곡지)
이번엔 “맞다”며 맞장구를 치는 박 감독. 당사자끼리는 관심 없었지만 두 사람이 잘 어울려 보였기에 주변 사람들이 여러 모로 물밑 작업을 한 것 같다며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확실히 인연은 인연인 듯하다. 동성동본인 탓에 처음엔 연애조차 생각지 못했다던 이들은 동성동본 금혼제가 폐지되면서 결혼까지 이르게 됐으니 말이다.

영화감독 박흥식·편집기사 박곡지

얼마 전 개봉한 박흥식 감독의 영화 ‘경의선’에 박곡지 기사는 편집뿐 아니라 제작에도 참여했다.


“둘 다 밀양 박씨예요. 그런데 어느 날은 박 감독 조수였던 사람이 와서 동성동본인 거 상관없다면서 박 감독 누나와 여동생들도 다 박씨랑 결혼했다고 알려주더군요. 그게 그 집의 징크스라면서(웃음). 그래서 우리 집은 명절 때 모이면 다 박씨예요.”
이들이 부부로서 호흡을 맞춰온 지는 10년째. 올 12월21일이 10주년 결혼기념일이라고 한다. 특별한 이벤트가 없냐는 질문에 박 기사는 “사는 게 이벤트”라며 호탕하게 말을 받는다.
“10주년을 의식하고 그런 건 아니지만 올 초 아이들과 함께 호주로 한 달간 가족여행을 다녀왔어요. 아무래도 같은 분야에서 일하고, 다른 직업 종사자들보다 시간을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어 가족이 훌쩍 함께 여행을 떠나는 일이 종종 있죠.”(박곡지)
“같이 있는 시간이 많긴 한데, 둘만 있는 시간은 별로 없어요. 그래서 나름대로는 둘만의 시간을 가지려고도 하는데 그게 잘 안돼요. 집 사람이나 저나 아이들하고 있을 때가 가장 즐겁거든요. 지방에 1박2일 일정으로 놀러갔다가도 아이들을 안 데리고 가면 후회하니까 늘 아이들과 함께 가죠.”(박흥식)
박 감독 부부는 일곱 살짜리 딸과 다섯 살짜리 아들을 두고 있다. 박 감독과 박 기사 모두 6남매, 9남매 틈바구니에서 자라서인지 “아이들과 함께하지 않으면 허전하다”고 입을 모은다.
“우리 집 상황을 영화로 찍는다면 아이들 아빠는 막 뛰고, 아이들이 ‘아빠 힘내세요’ 하고 노래하는 모습을 교차편집으로 넣으면 돼요(웃음).”
아이들을 유치원과 영어학원에 보내고 있다는 이들 부부는 남다른 자녀교육법을 가지고 있진 않다고 한다. 다만 아이들이 책을 가까이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하는 편이라고.
“이야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이야기를 많이 접하면 상상력도 키우고 감성교육에 좋은 것 같아서요.” 박 감독의 말이다.

남편 영화의 제작자로 나서 물심양면 지원한 아내
박 감독은 최근 개봉한 영화 ‘경의선’을 세상에 내놓기까지 아내인 박곡지 기사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박곡지 기사가 든든한 지원군이 돼준 것.
“가족이니까요. 돈을 벌겠다는 욕심보다는 남편이 원하는 일을 돕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남편이 행복한 모습을 보고 싶으니까요. 가족의 행복이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제 영화에 보면 주인공 한나가 자신이 ‘무가치한 인간 같다’고 하자 그의 선배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산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변한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어요. 저도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살기 전에는 산다는 게 추상적이었는데 결혼을 하고 나니 행복도 고통도 구체적인 데서 오더라고요. 당장 눈앞에 있는 아이들만 봐도 행복해지고, 아이들을 어떻게 잘 키우고 교육시키나 걱정도 되고요.”
이번 영화에 박 기사는 편집기사로서 뿐 아니라 제작자로도 참여, 그 역할을 톡톡히 했다. 시나리오 검토는 물론이고 충무로의 A급 스태프로 제작진을 구성했다. 또한 촬영지 섭외와 더불어 카메라 뒤편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해결했다. 같이 작업을 하다 보면 간혹 충돌이 있을 법도 하다. 영화감독과 편집기사라는 각자의 일에 대한 자존심 때문에 부딪친 적은 없었을까.
“그런 적은 없어요. 워낙 베테랑인데다가 박 기사를 믿으니까요. 같이 영화 일을 하는 동료로서도 그렇고 배우자로서도 그렇고 ‘이 사람이다’ 하는 신뢰가 있어요. 앞으로도 계속 제 영화는 박 기사가 편집할 거예요. 또 가족의 행복도… 아, 이건 같이 만들고 편집해나가야죠(웃음).”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