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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긍정의 힘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을 일깨워준 ‘독배(毒杯) 명상’

글·문요한‘정신과 전문의’

2007. 05. 08

매일 반복되는 삶에서 더 이상 희망을 찾을 수 없었을 때 산사를 찾았다. 명상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4박5일 동안 온전한 자기 대면의 시간이 펼쳐졌다. 그중 특히 기억나는 것은 ‘독배(毒杯) 명상’ 이었다. 독이 든 잔이 앞에 있다는 것을 상상하면서 눈을 감았다. 잔을 들어 마시라는 스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거운 침묵이 방안 가득 흘렀다….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을 일깨워준 ‘독배(毒杯) 명상’

정명화, 바람부는 날, 33.3×33.3cm, 아사천에 오일스틱, 2002


몇년 전 개인의원을 운영하던 나는 삶의 방향성 문제로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매일 반복되는 삶에서 더 이상 의미와 희망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평생을 살다가는 서서히 말라죽어갈 것 같았다. 나는 우선 하던 일을 멈추었다. 반복적인 일상의 사슬에 갇혀서는 새로운 방향을 찾아가는 것이 어려웠다. 나는 외부를 향해 열려 있는 감각을 안으로 돌려 나의 내면과 만나고 싶었다. 내 마음에서 간절히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들어보고 싶었다. 그 일환으로 산사에서 행해지는 명상 프로그램을 찾아갔다. 4박5일 동안의 온전한 자기 대면의 시간이 펼쳐졌다. 그중에 특히 기억나는 시간은 ‘독배(毒杯)명상’이었다. 말 그대로 독이 든 잔이 앞에 있고 이를 마셔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고 가정한 가운데 명상에 잠기는 것이었다. 눈을 감았다. 잔을 들어 마시라는 스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저승사자의 부름처럼 느껴졌다. 무거운 침묵이 방안 가득 흘렀다. 하지만 잠시였다. 이내 여기저기에서 긴 탄식과 흐느낌이 쏟아져나왔다. 방안을 떠도는 감정의 거친 파동에 나의 마음도 예외일 수 없었다. 마음이 출렁거렸다. 생각은 계속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마실 것인가? 말 것인가?’

나는 좀처럼 마실 수가 없었다. 마음에서 칡넝쿨처럼 피어나오는 삶의 욕망들이 내 손을 잡아 묶었다. 내 팔은 컵을 향해 내려갈 수 없었다. 먼저 부모님 생각이 났다. 갑작스레 떠나버린 아들의 죽음 앞에 비통한 슬픔에 젖어 있을 부모님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렸다. 가상의 잔을 들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분들 역시 잘 이겨내실 것이라는 믿음이 들었다. 다시 잔을 들려고 시도하였다. 이번에는 어디선가 억울함이 한 뭉치 올라와 무거운 납덩이처럼 내 손을 잡아끌었다. ‘이제 좀 새롭게 살아보려는데 시작도 못 해보고 죽어야 하나!’ 싶었다. 그러나 이 역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약해지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버릴 수 없는 것만은 아니었다. ‘꼭 무엇을 이루어야만 하는 것일까? 세상에 억울하지 않은 죽음이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왜 나만 그 예외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욕심을 붙잡고 계속 그 정체를 들여다보고 캐물었다. 그러다 보니 욕심의 무게가 한결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실제라면 못했겠지만 나는 가상의 상황이 주는 안도감 때문에 다시 독배에 손을 내밀었다.

그 순간 마음속에는 내 손을 붙잡는 또 다른 손이 나타났다. 바로 아이와 아내의 손이었다. 세 살짜리 큰아이와 당시 둘째를 임신 중이었던 아내의 손이 내 손을 잡아챘다. 마치 눈앞의 광경처럼 내 손에는 그 무게와 온기가 전해졌다. 나는 그 손을 도저히 뿌리칠 수 없었다. 눈앞이 흐려졌다. 나를 붙잡는 그 손은 분명 내 마음이 만들어낸 허상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나는 끝까지 뿌리치지 못했다. 내가 없더라도 아내는 아이들을 잘 키울 것이라고 되뇌었지만 그럴수록 마음은 복잡해졌다.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눈을 더 감고 그 자리에 앉아 있기가 힘들었다. 그때 어디선가 명상을 끝내라는 스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떴다.

나는 마시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마신 뒤였다. 사람들의 얼굴은 다양했다. 어떤 이들은 아주 편안한 표정으로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미 혼백이 돼어 망각의 강을 건너버린 사람들처럼 무심한 얼굴 표정이었다. 어떤 이들은 눈물로 범벅이 돼어 어깨를 들썩거리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욕망의 끈을 놓지 못했다는 진한 아쉬움이 얼굴에 배어났다. 그 다양한 얼굴 표정에 담긴 의미는 달랐지만 우리는 그 시간을 통해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다시금 돌아보게 됐다. 나는 내게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나의 꿈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그날 앞으로 어떤 길을 걷더라도 가족을 팔아 나의 꿈을 사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을 일깨워준 ‘독배(毒杯) 명상’

정명화, 두 의자, 72.7×53cm, 아사천에 오일스틱, 2002


이렇듯 죽음을 통해 삶을 비추어보면 무엇이 더 소중한지 명확해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어떤 이들은 고통스러운 현실에 대한 대안으로 죽음을 선택하려 든다.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 때문에 나는 그런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그들이 짊어진 삶의 무게를 경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때로 이렇게 묻는다. ‘죽고 싶은데 왜 안 죽었죠?’ 듣기에 따라서는 참 도발적인 질문이다. 대개는 머뭇거린다. 그러다가 ‘차마 죽을 수가 없어서요’라는 답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는 이 대답을 역으로 되묻는다. ‘그 말은 다시 말하면 삶에 대한 어떤 가능성과 미련을 남겨두었다는 의미인가요?’물론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도 사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나는 그 가능성과 미련이 무엇인지를 함께 찾아간다. 죽으려는 사람들에게는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는 것 말고 다른 해결책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니체는 이를 이렇게 표현했다.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시련)도 견뎌낼 수 있다.’



살다 보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할 때가 있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될 것 같지만 변화의 두려움 때문에 한 발도 움직이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죽음에서 삶을 바라보자. 어떻게 죽을지를 떠올려보자. 유서를 미리 써보고 장례식을 찾은 지인들에게 들려주는 마지막 이야기를 녹음해보자. 죽음은 늘 삶의 거품과 가짜 욕망을 걷어내준다. 덜 중요한 것과 더 중요한 것의 서열을 드러내준다. 삶에 절실함과 에너지를 불어넣어준다. 별이 빛나는 것은 밤하늘의 어둠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우리의 삶에 생기를 불어넣고 색깔을 입혀주는 것도 바로 죽음 때문이 아니겠는가.

문요한 94년 전남대 의대를 졸업하고 99년 국립서울병원에서 전공의 수련을 마치고 정신과 전문의를 취득했다. 국립부곡병원, 아산정신병원 등에서 알코올 클리닉을 운영하면서 중독자의 회복을 도왔으며 2005년에는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 1기 연구원으로 들어가 한국형 자기계발 프로그램을 연구했다. 게으름도 일종의 중독이라는 관점에서 카운슬링하듯 쓴 자기계발서 ‘굿바이 게으름’을 펴냈다. ‘더 나은 삶 정신과’와 ‘정신경영 아카데미(www.mentalacademy.org)’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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