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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명사의 체험교육

“풍부한 감수성, 상상력 키워준 내 어머니의 교육…”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들려줬어요!

글·송화선 기자 / 사진·지호영 기자

2007. 01. 24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최근 문예지에 시를 발표하며 문학평론가에서 시인으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그를 만나 어린 시절 이성과 감성을 동시에 키워준 어머니의 남다른 교육법, 아이의 상상력과 열정을 키워주는 방법에 대해 들었다.

“풍부한 감수성, 상상력 키워준 내 어머니의 교육…”

어머니의 교육이 오늘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말하는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73)에게는 늘 수많은 직함이 따라다닌다. 지난 56년 22세의 나이로 한국일보에 평론 ‘우상의 파괴’를 발표하며 등단한 뒤, 반세기 동안 대학교수, 문학평론가, 문화행정가 등 여러 영역에서 활동해왔기 때문이다. 그가 ‘우리 시대의 석학’으로 불리는 것은 ‘이성’과 ‘감성’ 두 날개를 모두 가진 ‘지성인’이기 때문. 그는 논쟁적인 평론으로 지성계를 뒤흔드는 ‘지식인’이면서 동시에 초대 문화부 장관, 새천년준비위원장, 2002 월드컵 조직위원장 등을 역임한 활동적인 ‘문화인’으로도 평가받는다.
“제게는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저만의 감수성이 있는 것 같아요. 그 사실에 늘 감사하죠. 제가 쓴 산문집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에는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하나의 공간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조그만 이파리 위에 우주의 숨결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왜 내가 혼자인가를 알았다. 푸른 나무와 무성한 저 숲이 실은 하나의 이파리라는 것을…’이라는 구절이 있어요. 흔들리는 나뭇잎을 보며 오직 저만 가질 수 있는 감정, 그 순간 제 안에서 샘솟는 느낌을 적은 거죠. 이런 감수성은 공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이어령에게 이처럼 남다른 감성을 길러준 건 그의 어머니였다고 한다. 그는 1934년 충남에서 6남매 가운데 다섯째, 아들 중에서는 막내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큰형과 열여섯 살이나 차이가 나는데다 어린 시절 병치레가 잦았던 그를 각별히 아꼈다고 한다.
“지금도 어릴 때를 생각하면 제가 열에 들떠 누워 있던 장면이 떠올라요. 겨울이면 자주 감기에 걸렸는데, 어머니는 열이 올라 의식이 몽롱한 채 누워 있는 제 옆을 지키고 앉아 늘 책을 읽어주셨죠. 제 뜨거운 이마 위로 느껴지던 어머니의 차가운 손, 그리고 끊어질 듯 이어지며 귓가를 울리던 어머니의 이야기 소리가 아직 생생합니다.”
어머니의 이야기 소리는 아픈 그에게 ‘산에 나무를… 갔단다… 도둑놈들이 에워싸는데… 깊고 깊은 우물 속이었지… 휘두르기만 하면 금덩어리가 쏟아져 나오는데… 숨이 턱에 차서 영 도망칠 수도 없었다는구나…’처럼 띄엄띄엄 들려왔다고 한다. 그는 중간 중간 비어 있는 이야기의 틈을 상상력으로 메우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철가면’ ‘장발장’ 같은 고전도 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목소리를 통해 처음 ‘읽었는데’, 그때 그에게 “토막난 이야기의 쪼가리들은 신비롭고 경이로운 것이었다”고. 그가 글씨를 배운 뒤 바로 책을 집어든 건 이런 체험 덕분이었다.
“스스로 읽을 수 있게 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책에 빠져들었죠. 어머니와 같은 책을 읽으며 속독 경쟁을 하기도 하고, 책 내용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어요. 형이 많은 것도 행운이었죠. 집에 늘 형님들 책이 있었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수준 높은 책을 읽었거든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세계문학전집’을 봤을 정도로요. 어려운 책을 읽다 보면 제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낯선 공간, 생소한 상황이 등장하잖아요. 그걸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자연스럽게 상상력이 자라났어요. 러시아 소설을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저만의 러시아를 그려보는 식이었죠. 그 당시 제가 상상한 러시아가 실제의 그 나라와는 달랐지만, 어린 시절 그렇게 거침없이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길러진 상상력은 지금도 제게 큰 자산으로 남아 있어요.”
어린 소년이 미처 느낄 수 없었던 인간의 깊이 있는 감정을 처음 알려준 이도 어머니였다고 한다.
“제가 어릴 때 큰형이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방학을 맞아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가 버선발로 뛰어나가 형을 잡고 펑펑 우시는 거예요. 어린 마음에 그 모습을 보며 ‘보고 싶어하시던 형이 왔는데 왜 저리 우시나’ 궁금해했죠. 그때는 슬퍼야만 눈물이 나는 줄 알았으니까요. 나중에 책을 읽으며 기쁨이 극에 달해 울음이 터지는 부분을 읽을 때 어머니의 그 모습이 떠올랐어요.”

“풍부한 감수성, 상상력 키워준 내 어머니의 교육…”

어린 시절 어머니의 손을 잡고 외가에 다녀오던 기억도 선명하다.
“떠나야 할 때가 돼 집을 나서면 외할머니는 긴 돌담을 돌아 우리가 서낭당 고개를 넘어갈 때까지 서 계시곤 했죠. 뒤돌아보기만 하면 빨리 가라고 손짓을 하시면서요. 어머니는 그런데도 계속 뒤를 돌아보며 ‘어서 들어가시라’고 또 손짓하셨어요. 그렇게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서로 손짓을 하며 헤어지던 그 장면은, 헤어짐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상으로 아직도 제 마음에 남아 있어요.”
이런 어린 날의 기억은 한 장의 그림처럼 선명하게 자리 잡아 평생 사라지지 않는 그의 감수성의 원천이 됐다. 이어령은 이 때의 감상을 담아 이후 ‘어머니와 나들이’라는 제목의 수필을 쓰기도 했다.
그는 어린 시절 외출하기 전이면 어머니가 늘 뒤주를 열고 쌀 위에 손가락으로 글씨를 쓰던 일에 대해서도 들려줬다.
“하루는 어머니께 왜 글씨를 쓰시는 거냐고 여쭤봤어요. 그랬더니 ‘쌀 위에 글씨를 써놓으면 그게 지워질까봐 다른 사람이 양식을 퍼내 갈 수가 없게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가난한 사람은 그냥 도와줘야지, 그들이 훔쳐가고 싶은 마음을 품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요.”
이어령의 어머니는 “뒤주를 자물쇠로 잠그면 남을 의심하는 것이니 그들이 상처를 받게 된다. 그렇다고 그냥 놔두고 집을 비우면 나쁜 짓을 할 생각이 없던 사람까지 나쁜 짓을 하게 되지. 쌀을 퍼간 사람보다 그런 틈을 준 사람이 더 죄를 짓게 되는 거란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이가 조금 어려워할 것 같은 책 함께 읽고 대화 나누면 생각하는 기쁨 배워
그렇게 자신의 삶을 통해 이어령을 기른 어머니는 그가 열한 살 때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이어령은 “지금도 어린 시절 10년 동안 어머니가 전해준 감수성의 힘으로 살고 있다”고 할 만큼 그 시간이 절대적이었다고 고백한다. 그가 최근의 자녀교육 풍토에 불만이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자녀를 ‘1등’으로 만드는 것이 최선의 교육이라고 여기는 것, ‘독서’를 ‘논술교육’의 전 단계로 여기고 필독 도서를 정해 마치 공부시키듯 책을 읽게 하는 것이 아이들의 감수성을 망치고 있어요. 요즘 아이들에게 책은 지루하고 달달 외워야 하는 대상이 됐잖아요.”
이어령은 아이가 책을 읽기를 바란다면 어머니가 먼저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통해 자녀의 감수성과 상상력을 길러줘야 한다고.
“아이가 조금 어려워할 것 같은 책을 골라 함께 읽으며 대화를 나눠보세요. 아이는 자연스레 생각하는 기쁨, 창조의 열정, 무엇이든 꿈꿀 수 있는 상상력을 배울 겁니다. 그게 밑바탕이 되면 자녀는 지성과 감성을 갖춘 행복한 사람으로 자라게 되죠. 세상 모든 사람이 같은 방향으로 뛰면 1등은 한 명밖에 나올 수 없어요. 하지만 동서남북으로 뛰면 네 명이 1등을 하지 않겠습니까. 360도 둥근 원에서 뛰어나가면 3백60명의 1등이 나올 거고요. 어머니가 아이의 개성을 살려주고, 원하는 방향으로 마음껏 달려나갈 수 있게 해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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