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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사랑의 힘

김점선의 글과 그림으로 만나는웅녀 이야기

2006. 10. 18

웅녀는 하늘에서 내려온 남자를 사랑한다. 하늘에서 내려왔으니, 땅에 대해서는, 웅녀보다는 그가, 더 잘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웅녀는 그에게 다가가기 위해,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부터 시작한다. 상대를 변화시키려 하기 전에 우선 자신이 변한다.

김점선의 글과 그림으로 만나는웅녀  이야기

그남자는 아름다웠다. 그는 하늘에서 내려온 남자다. 그는 눈부시게,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답다. 산꼭대기에서, 곰 한 마리가 불현듯 그를 보았다. 커다란 나무 밑에 그가 서있었다. 수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서있었다. 그를 본 곰은 한눈에 반했다. 그를 사랑하기 시작한다. 그 순간부터, 사랑을 느끼는 순간부터, 비참한 자기 모멸이 시작된다. 그의 매혹에 감응되는 순간부터 자신에 대한 성찰이 시작된다.
그 곰은 길고 뻣뻣한, 충충한 털로 뒤덮인 동물이다. 그 곰이 사랑하는 인간은 매끈한 피부를 가진 사람이다. 그 곰은 그 순간부터 있는 머리를 다 굴린다. 끙끙 앓는다. 정보망을 총동원한다. 드디어, 그 아름다운 남자를 사랑할 수 있는 몸이 되는 길을 알아낸다. 곰처녀는 노력한다. 마늘과 쑥을 가지고 어두운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 맵디매운 마늘을 먹는다. 쓰디쓴 쑥을 먹는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곰답게 참고 참아낸다.
드디어 환한 인간 여자로 변신한다. 그 아름다운 남자에게로 간다. 소원을 성취한다. 아들을 낳고 산다. 이것이 간략한 웅녀열전이다. 우리 민족 최초의 여자 웅녀 열전!

곰이면, 수곰이나 사랑할 일이지, 곰 주제에 사람을! 그것도 하늘에서 내려온 귀한 존재를 가슴에 품다니! 이것이 여자의, 인간의 본성인지도 모른다. 주제를 잊어버리고, 아름다움에 접하는 순간, 순수하게 그 아름다운 것에 빠져드는 것이. 그런데 그 곰은 아웃사이더 곰이다. 엉덩이에 뿔난 곰이다. 감성적으로 아름다움을 느끼는 곰은 많이 있을 수도 있다. 그래도 그 감동을 실제 생활에서, 자기의 생애 안에서 실제로 성취하면서 살려고 덤비는 곰은 웅녀뿐이었다.
원래 그 산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아예 그 근처에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늘에서 수많은 사람이 내려온다. 큰 나무를 타고 내려온다. 천재지변 같은 굉장한 변화가 그 산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도 웅녀는 놀라지 않는다. 놀라기는커녕 그들을 향해 다가간다. 변화에 무지 긍정적이다. 웅녀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물체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 곧장 반할 수 있는 직감을 가진 곰이다. 낯설어서 도망가거나 무서워하지 않고 사랑에 빠지다니…. 굉장한 곰이다. 우리 민족의 시작이 되는 이 부분에서 나타난 여성성은 이렇게 천진난만하다. 변화를 향해 호기심과 열정으로 다가가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웅녀는 사랑을 느낀 후 비로소 자기 성찰에 몰입한다. 그래서 사랑이 성장판인 것이다. 곰 자신은 거무튀튀한 긴 털로 온몸을 휘감은 육중한 동물이다. 그 아름다운 남자와는 어떤 방법으로도 감정을 소통할 수도 없는 동물일 뿐이다. 그 곰처녀는 꿈을 위해 변신할 작정을 한다. 맨 먼저 습관을 바꾼다. 우선 태어나서 쭉 먹어오던 음식을 버린다. 자연스런 식욕에 의해서, 편안히 먹고 살던 습성을 버린다. 맵기만 하고, 쓰디쓴, 고통뿐인 식사를 시작한다. 간식도 없이 맵고 쓴 물질만을 씹어 삼킨다. 어둠 속에 고립돼서.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몸의 힘을 쓰지 않고 머리를 쓴다. 이성적인 판단으로 자신을 변화시킨다. 정확한 방법으로 천천히 자신을 변화시킨다. 그 어떤 고통도 감내하면서.

김점선의 글과 그림으로 만나는웅녀  이야기

이것이 사랑의 힘이다. 웅녀는 사랑의 힘으로 동물에서 사람으로 거듭난다. 저 자신의 판단과 결정, 그리고 실천으로 스스로를 다시 태어나게 한다. 이것이 우리 민족 최초의 여자다. 사랑의 힘으로 자신을 변화시킨 여자가 웅녀다.



깨어지는 사랑은 결국은 힘이 없어서 그렇다. 자신을 변화시킬 만큼의 강한 힘으로 상대를 사랑하면 사랑은 깨어지지 않는다. 불타오르는 듯이 열렬하던 사랑이 개인적인 집착 속으로 떨어질 때 사랑은 깨어진다. 독수리보다 더 강한 힘으로 영혼의 날개를 움직일 힘이 있을 때 사랑은 진행형이 된다. 우중충한 털로 뒤덮인 겉껍질을 벗겨낼 만큼의 힘, 어둠 속에서 오랫동안 칩거할 수 있는 힘, 오로지 사람이 되겠다는 꿈만으로 완전한 고독을 이겨낼 수 있는 힘, 맵고 쓴 쑥과 마늘만으로 쓰린 속, 뒤틀리는 위장을 참고 견뎌낼 수 있는 힘. 미래에 대한 강한 확신과 열망을 가질 수 있는 힘. 실패한다면 깨끗이 전체를 포기할 수 있는 결단의 힘. 이런 모든 힘이 사랑에서 나온다. 이런 힘들이 영혼과 육신 속에 깃들어 있을 때 웅녀처럼 한없이 인자한 큰 인간이 된다.

웅녀는 하늘에서 내려온 남자를 사랑한다. 하늘에서 내려왔으니, 땅에 대해서는, 웅녀보다는 그가, 더 잘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웅녀는 그에게 다가가기 위해,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부터 시작한다. 상대를 변화시키려 하기 전에 우선 자신이 변한다. 하늘에서 내려온 잘난 남자와 곰의 결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금 우리들의 생각으로는. 그런데 그런 생각 속에서 우리 민족이 탄생한다. 있을 수 없는 커플에게서 뻗어나온 민족이 우리다. 그 어떤 사랑도 이루어질 수 없는 경우는 없다. 웅녀를 보라! 그 어떤 꿈도 이룰 수 있다. 마늘과 쑥과 어둠이라는 정보를 캐내고, 그 정보를 실제로 실천하는 곰을 보라! 누가 곰을 미련한 동물이라고 말하는가? 곰이었던 여자! 그 웅녀가 우리의 조상이라는 점이 자랑스럽다. 그 사실은 지금도, 수없이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그런 조상!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있을 수 없는 일들을, 미래를 꿈꾸고, 열망하는지도 모른다.
사랑의 힘만으로 인생을 밀고 나가서 성공한 여자! 웅녀!
김점선씨는요...
김점선의 글과 그림으로 만나는웅녀  이야기
이화여대 교육공학과, 홍익대 미대 대학원을 졸업한 화가(58). 개성 넘치고 창의적인 그림으로 최근 더욱 주목받고 있다. 83년 첫 전시회를 연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개인전을 거르지 않을 정도로 부지런하다. 올해 서강대 장영희 교수의 글에 그림을 붙인 ‘생일’, ‘축복’ 등의 책을 펴냈고, ‘바보들은 이렇게 묻는다’ ‘김점선 스타일’ 등의 에세이집을 통해 문필가로도 이름을 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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