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EOPLE

화제의 현장

러시아에서 처음으로 공연한 가수 서태지

■ 글·김민경‘주간동아 기자’

2004. 06. 04

서태지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장악했다. 지난 5월8일 한·러 수교 1백20주년과 한인 러시아 이주 1백40주년을 기념해 한국 가수 최초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콘서트를 연 것. 53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대규모 문화탐험대와 함께 러시아 젊은이들을 사로잡은 서태지 러시아 공연 동행 취재.

러시아에서 처음으로 공연한 가수 서태지

지난 5월7일 가수 서태지(32)와 8백명의 문화탐험대는 러시아의 동쪽 끝,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다. 동해를 거슬러 뱃길로 20시간 넘게 달려간 길이었다. 긴 여정에 보답하듯 5월8일 디나모 종합운동장 무대에서 펼쳐진 서태지의 공연에는 1만5천명에 달하는 러시아의 젊은 관객들이 모여 아낌없는 환호를 보냈다. 그들은 대부분 서태지의 이름도 알지 못했고, 한국의 ‘록’ 음악을 처음 접했지만 강한 비트와 화려한 무대에 매료돼 국경과 문화의 경계를 뛰어넘어 열광했다.
공연 시작은 저녁 8시였지만, 오후 5시부터 공연장 부근은 젊은이들로 붐볐다. 현지 주재원들은 “러시아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노래와 춤을 좋아한다. 게다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렇게 큰 콘서트가 열리는 일이 드물어 젊은이들의 기대가 최고에 이른 것 같다”고 말했다.
오프닝은 블라디보스토크의 인기 록그룹 ‘멕시칸 벌잡이’가 했고, 서태지컴파니 소속의 록그룹 ‘넬’과 ‘피아’가 다음 무대를 이었다. 마지막으로 등장한 서태지는 ‘로보트’ ‘슬픈 아픔’ ‘이 밤이 깊어가지만’ 등의 히트곡을 들려주고 ‘라이브 와이어’와 호화로운 불꽃놀이로 일종의 ‘록 이벤트’를 연출했다. 러시아의 젊은이들은 서태지의 한국식 록에 낯설어하면서도 기꺼이 빠져들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바닷바람은 두꺼운 코트를 뚫을 만큼 매서웠지만, 젊은이들은 너나 없이 웃옷을 벗어 깃발처럼 흔들며 환호성을 질렀다.

옷을 벗어 흔들며 환호한 러시아 젊은이들
러시아에서 처음으로 공연한 가수 서태지

서태지의 이번 블라디보스토크 라이브 공연은 러시아 진출 계획을 세우고 있는 KT&G(옛 한국담배인삼공사)와 서태지측의 공동 기획으로 이뤄졌다. ‘상상예찬’ 등 젊은 기업이미지 구축에 노력하고 있는 KT&G가 청년실업 등으로 사기가 떨어진 ‘한국 청년의 기 살리기’ 프로젝트로 서태지의 블라디보스토크 라이브 공연을 기획한 것. 이번 공연은 영화나 드라마 같은 문화 콘텐츠가 아니라 문화사절단이 직접 방문해 ‘한류’를 전달한 최초의 사례가 될 것이다.
그러나 화려한 성과만큼 이번 문화체험단과 블라디보스토크 공연은 아쉬움도 많이 남겼다. 가장 큰 문제는 8백명이 참여하는 대형 프로젝트임에도 불구하고 기획이 탄탄하지 않았던 것. 일부 참가자들이 매우 열악한 선실 환경에 대해 항의했고, 이 때문에 행사기간 내내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문화체험단의 일원으로 선상 강의에 나선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강제규 감독과 탐험가 허영호씨도 예기치 못한 상황에 당황스러워했다. 문화의 소통과 전파는 물량 공세나 대형 이벤트만으로 이뤄질 수 없는 일이라는 점, 무엇보다 사람들 사이의 공감이 우선돼야 한다는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