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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아름다운 그녀

멜로 배우로 변신한 영화 ‘나비’의 히로인 김정은

■ 글·이지은 기자(smiley@donga.com) ■ 사진·홍상표

2003. 02. 28

영화와 드라마, CF 등을 통해 발랄하고 코믹한 모습을 보여줬던 톱스타 김정은이 멜로 배우로 변신한다. 오는 5월 개봉하는 영화 ‘나비’에서 3류 깡패와 비극적인 사랑을 나누는 요정 출신의 혜미 역을 맡은 것. “영화에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많아 촬영 내내 두통에 시달렸다”는 그가 털어놓은 촬영 뒷얘기 & 근황.

멜로 배우로 변신한 영화 ‘나비’의 히로인 김정은

영화 ‘나비’를 촬영하고 있는 강원도 산골에서 만난 김정은(27)에게서 톱스타의 모습을 찾기는 힘들었다. 메이크업을 하지 않은 맨얼굴에 촌스러운 체크무늬 치마를 입고 분홍색 털귀마개와 원색의 목도리를 한 그는 순박한 산골 처녀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한 신용카드 CF에서 “부자되세요”라는 말을 유행시키며 주목받은 후 영화 ‘재밌는 영화’와 ‘가문의 영광’으로 톱스타 반열에 오른 김정은. 그동안 영화와 드라마, CF 등에서 주로 발랄하고 코믹한 이미지를 보여줬던 그가 오는 5월 개봉하는 영화 ‘나비’에서는 80년대초 어지러운 시대를 배경으로 3류 깡패 민재와 가슴 아픈 사랑을 하는 혜미 역을 맡아 본격적인 멜로 배우로 변신한다. 상대역인 민재는 김민종이 맡았다.
혜미는 세상 물정 모르는 순박한 산골 처녀로 한동네에서 자란 민재를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한다. 하지만 민재는 ‘인생 한번 폼 나게 살아보자’는 야망을 안고 서울로 떠나고 5년 동안 그를 기다리던 혜미 역시 무작정 상경한다. 그러나 순박한 산골 처녀에게 세상은 만만치 않았고 그 역시 세월의 모진 풍파를 겪으면서 술집 등을 전전하다가 결국 세력가의 정부가 되고 만다.
기자와 만난 날 김정은은 타락하기 전 순진 무구했던 혜미를 연기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남자가 탄 기차를 쫓아가며 “오빠, 꼭 돌아와야 해”라고 외치고 엉엉 우는 그의 얼굴은 추운 날씨에 메이크업도 하지 않아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아무리 산골 처녀라지만 맨얼굴을 보여주는 게 부담스럽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타락한 후에는 얼마나 진하게 화장하는데요, 지금은 자제해야죠”라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환하게 웃었다.
“처음 ‘나비’의 시나리오를 읽고 ‘이거 저한테 준 게 맞아요’라고 되물었을 정도로 깜짝 놀랐어요. 제게 코믹한 이미지가 많고 또 그런 연기만 해왔기 때문에 당연히 코믹한 배역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혜미는 순박한 처녀부터 요염한 정부의 모습까지 다양한 캐릭터가 보여지죠. 처음에는 제가 이 역할을 제대로 연기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됐어요. 하지만 연기자라면 누구든 하고 싶어할 매력적인 배역이었고 최선을 다할 자신도 있었기에 출연을 결정했죠.”
김정은이 캐스팅된 후 ‘산골 처녀’ 혜미의 대사는 재미있게 바뀌었다고 한다. 코믹한 이미지가 강한 김정은의 갑작스러운 변신이 관객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제작진의 판단 때문. 분홍색의 촌스러운 복장도 그 일환이라고 한다.


하지만 김정은의 본격적인 연기 변신은 타락한 후에 나타난다. 세력가인 허대령의 정부로 허무하게 살아가는 모습과 민재와의 사랑을 알아차린 허대령에게서 몰매를 맞으면서도 오히려 독기에 찬 눈빛으로 쳐다보는 모습, 자신 때문에 아무 죄 없이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민재를 보고 오열하는 모습 등을 보면 그가 과연 우리가 알던 코믹 배우 김정은일까 싶다. 특히 허대령에게 맞는 장면은 제작진이 권유한 대역도 쓰지 않고 촬영해 화제를 모았다.
“독고영재 선배님이 허대령 역을 맡았어요. 촬영에 들어가기 전 선배님 손을 쳐다봤는데, 손이 정말 커서 거의 얼굴만 하더라고요. 게다가 혁대로 온몸을 맞는 장면까지 있으니 얼마나 두려웠겠어요. 사실 처음에는 클로즈업에서 맞는 장면만 제가 찍고 나머지는 대역을 쓰기로 했죠. 그런데 한두 번 맞고 나니까 오기가 생기더군요. 그 아픔을 온몸으로 느껴야 제대로 연기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냥 대역 없이 맞겠다고 했어요. 물론 촬영중 사방에서 혁대가 날아올 때는 그런 오기를 왜 부렸는지 후회가 되더군요(웃음).”
촬영이 끝난 후 온몸에 멍이 들었다는 그는 특히 손을 많이 다쳤다며 손바닥을 펴보였는데, 온통 상처투성이었다. 하지만 김정은은 육체적인 고통보다 복잡하게 나타나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훨씬 힘들었다고 한다. 특히 울어야 하는 장면이 많아 무척 고생했다고.
“영화에서 절반은 우는 것 같아요. 정말 슬픈 장면에 대비해서 눈물을 아껴놓아야겠다고 생각했을 정도예요. 많이 운 날은 두통에 시달리곤 했죠. 하지만 제 모습을 보면서 저와 함께 눈물을 흘리고 가슴 아파할 관객들을 생각하며 더욱 열심히 했어요.”
영화 ‘가문의 영광’에서 ‘나 항상 그대를’을 불러 화제를 모았던 그에게 “이번 영화에서는 노래 부르는 장면이 없느냐” 물었더니 옆에 있던 김민종이 “영화가 아닌 회식 자리에서 항상 싸이의 ‘챔피언’을 부르며 춤을 춰 분위기를 돋웠다”고 말하며 “영화 홍보할 때 정은씨가 ‘챔피언’을 부르고 내가 백댄서를 할까 생각중”이라고 대답했다.
97년 MBC 공채 탤런트로 연예계에 들어선 김정은은 그동안 드라마, 영화, 각종 오락 프로그램, CF 등 다방면에서 꾸준한 활동을 펼쳐 큰 사랑을 받아왔다. 지난해에는 마약을 복용 의혹에 휩싸여 심한 마음고생을 하기도 했지만 검찰 조사 결과 음성 판정을 받아 결백을 입증했다. 이런 구설수 속에서도 공백기 없이 활동을 계속했는데, 그 이유는 일이 좋고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라고.
“당시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파요. 하지만 그런 이유로 잠시라도 활동을 쉰다면 결국 제가 지는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 마음가짐이 온갖 역경을 이길 수 있게 한 것 같아요. 지금은 영화 ‘나비’ 촬영에만 몰두하고 있어요. 촬영이 끝난 후 좋은 작품이 들어오면 영화나 드라마에 상관없이 바로 출연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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