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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안타까운 소식

개구리소년 유가족들의 안타까운 사연

■ 기획·최호열 기자(honeypapa@donga.com) ■ 글·김정미 ■ 사진·박진관

2002. 11. 21

“아이들은 뼈 조각이 되고 유가족은 폐인이 되었어요” 끝내 앙상한 유골로 돌아온 5명의 개구리소년들. 그 유가족들의 가슴 아픈 사연이 다시 한번 국민들을 울리고 있다. 생업도 포기한 채 직접 아이들을 찾아나섰다 결국 간경화로 숨진 김종식군 아버지의 안타까운 사연 등 유가족들의 사연을 취재했다.

개구리소년 유가족들의 안타까운 사연

11년 전 실종 당시의 개구리 소년들.

지난 10월11일, 개구리소년 김종식군(당시 9세, 성서초교 3년)의 집에는 또 한번의 피맺힌 절규가 새어나왔다. 10여년이란 세월 동안 생업도 포기한 채 아들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 헤매다 결국 지난해 10월 간경화로 안타까운 삶을 마감한 종식군의 아버지 김철규씨(당시 49세)의 첫 기일이었기 때문이다.
“내 할 도리는 다한 것 같다며 종식이를 만나러 간다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셨습니다. 그렇게 찾아 헤매던 아들을 유해로나마 만날 수 있는 시간을 눈앞에 두고 이 세상을 떠났으니 하늘이 무심하기만 합니다. 1년만 더 살아계셨더라도….”
먼저 간 형을 대신해 고사리손으로 술잔을 올리는 종식군의 동생 종협이(8)를 보면서 어머니 허도선씨(47)는 가슴이 미어진다. 살아 있다면 스무살의 건장한 청년이 되어 있을 종식이를 대신해 늦둥이로 얻은 종협이. 어머니에게 늦둥이 아들은 아버지와 형의 빈 자리를 채워주는 유일한 기둥이자 희망이다. 그러나 실종사건 이후에 태어나 형에 관한 이야기를 모르는 종협이는 요즘 매일같이 어머니와 누나에게 ‘개구리소년이 뭐냐’며 대답을 재촉한다.
비록 형의 얼굴을 단 한번도 보지 못한 동생이지만 피는 속일 수 없는 법인지 개구리소년 이야기를 물어올 때마다 어머니는 고개를 돌려 못 들은 척 허공만 바라본다. 수시로 현장을 오가느라 변변히 밥 한번 챙겨주지 못하는 어머니. 지난 9월27일에는 아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가을운동회가 있는 날이었지만 숙모에게 뒷바라지를 부탁한 채 유골감식 현장으로 무거운 걸음을 옮겨야 했다.
무심히 흘러가 버린 11년의 세월. 허도선씨를 대신해 인터뷰에 응한 삼촌 김질규씨(45)는 “유골이 발견되기 며칠 전부터 형수님이 꿈자리가 심상치 않다고 하시더군요. 하지만 가족들 모두 아이들이 살아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에 설마설마 했는데”라며 아직도 개구리소년의 유골발견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건 충격으로 요즘 형수님은 그동안 고이고이 간직해두었던 종식이의 유품들을 꺼내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이러다가 형수님마저 몸져눕는 건 아닌지 눈앞이 캄캄합니다. 혈압에다 당뇨까지 겹쳤으니 걱정이 말이 아니에요.”
돌아가신 형님을 대신해 사건 해결에 나선 김질규씨는 아이들을 바로 지척에 두고 그것도 모른 채 차마 입에 담지 못하는 고통의 세월을 보낸 지난 11년간의 시간이 그저 야속하기만 하다.
학교시절 유도선수로 활약했을 정도로 건강했던 몸이 금지옥엽 같은 아들을 잃고 망가져 간경화와 간암 합병증이라는 진단을 받은 지 6개월 만에 세상을 떠난 김철규씨. 잊을 만하면 나타나 온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수없는 제보와 황당한 예언들. 특히 가족들은 지난 96년 개구리소년 가운데 한명이 자신의 집 마당에 암매장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발굴작업을 펼칠 때의 치욕을 잊을 수가 없다.
“차마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죠. 다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일축했지만 끝까지 형님이 고집을 피우셨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마지막까지 그 황당무계한 예언을 믿고 집 마당을 파헤쳤죠.”
실종 어린이들의 가족들뿐만 아니라 전국민의 눈과 귀가 쏠렸던 어느 범죄심리학자의 제보는 결국 해프닝으로 끝났다. 하지만 경찰의 수사, 이웃주민들의 눈초리, 특히 전국 방방곡곡을 헤맨 다른 부모들의 의혹의 시선이 모두 종식이 아버지 김철규씨에게로 쏠리는 것 같아 정신적 충격은 물론이고 가정마저 쑥대밭이 될 지경이었다. 거기다 유해가 발굴된 후에도 종식이 어머니 허도선씨가 가출을 했다는 오보기사가 나와 또한번 가족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허씨는 유해 발견이라는 갑작스런 소식을 듣고 충격으로 인해 당일날 못 가고 다음날 사건현장을 찾은 것뿐이었다.
동생의 유골발견 소식을 들은 뒤 실신해 안타까움을 더했던 누나 순옥씨(23, 계명대 경찰학과 3년). 그는 ‘경찰이 되어 잃어버린 동생을 찾겠다’고 마음먹고 대학진학도 경찰학과에 입학했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충격에 휩싸인 어머니와 어린 동생을 돌보기 위해 학교를 1년 휴학, 이제 겨우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있었는데 동생의 유해발굴 소식에 다시 망연자실한 상태다.

개구리소년 유가족들의 안타까운 사연
개구리소년 가족들은 찬인이네를 제외하고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아이들이 뛰어놀던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유골이 발견되기 전까지 이들은 서로 모여 술이라도 한잔 기울일 기회가 있어도 절대 아이들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다들 가슴속에만 묻어두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런던 중 지난 9월26일, 개구리소년 5명의 유골이 와룡산에서 발견되었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사건현장은 언론과 경찰, 마을 주민들로 하루종일 북새통을 이루었다. 그안에 가족들도 오열마저 잊은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망연자실 앉아 있었다.
호연군(당시9세, 성서초교 5년) 어머니 김순녀씨(46)는 실종 당시 아들에게 해줬던 치아 보철 흔적이 이날 발견된 유골 중에서 확인됐다는 경찰관의 말에 “운동화는 비슷한 것 같은데 아이의 옷은 아니다”며 여전히 아들이 살아 있을 것이라는 실낱 같은 희망을 버리지 않아 주위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영규군(당시 11세, 성서초교 4년)의 아버지 김현도씨(58)는 “영규의 체육복을 보는 순간 가슴이 멎는 것 같았다”며 “10여년의 세월 동안 전국을 누비고 다녔던 것을 생각하니 기가 막힌다”라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영규가 실종 당시 중학생이었던 누나 윤정씨(26)는 ‘좋은 일을 많이 하면 하늘이 영규를 찾아줄 것’이라는 생각에 경북대 간호대로 진학, 지역의 종합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동생의 유골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에 윤정씨 역시 제대로 일을 못 해 동료들의 애를 태웠다.
찬인군(당시 10세, 성서초교 3년)의 아버지 박건서씨(48)는 지난 8월14일 아들 생각에 술을 마시고 동네주민과 시비를 벌이다 파출소에서 조사를 받던 중 경찰관을 폭행해 구속까지 되었다. 2대 독자인 찬인군의 유골발견 소식을 들은 박씨는 지난 10월8일에야 겨우 보석으로 풀려나 유해발굴 현장을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아니야, 아니야”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나는 폐인이 되고 아들은 뼈 조각만 남았다”라고 허탈감을 감추지 못해 주위 사람들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찬인이 가족은 지난 92년 화재로 집을 잃고 경산으로 이사했다가 경북 달성군 화원읍에 정착해 살고 있다.
실종 어린이들 가운데서 가장 맏형이면서 보이스카웃 활동과 태권도로 운동신경이 남달랐던 철원군(당시 13세, 성서초교 6년). 그래선지 아버지 우종우씨 역시 아들의 죽음을 믿기 어렵다. “바람 불고 비 오는 그 차디찬 땅에 아이들이 묻혀 있었다고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진다”며 지금이라도 아들이 돌아올 것 같아 장난감이며 참고서 등 철원이가 가지고 놀던 물건들은 하나도 없애지 않고 모두 가지고 있다고 했다.
풀리지 않는 의문투성이의 개구리소년 사건. 경찰이 초동 수사를 하면서 발굴현장을 상당 부분 훼손시킨 것이 사건해결에 결정적인 실수였다는 지적과 함께 당시의 사고 원인을 찾기 위해 정밀감식을 실시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어떠한 증거도 찾아내지 못해 가족들의 마음은 더욱 애가 탄다. 혹시나 또 미제사건으로 남지나 않을까 마음 졸이는 가족들은 만나는 사람마다 개구리소년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을 부탁한다. 11년 만에 앙상한 유골로 가족의 품에 돌아온 개구리소년들. 절규하는 그들의 한맺힌 사연을 하루 속히 풀어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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