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ISSUE

에르메스, LVMH 꺾고 럭셔리 제국 왕좌에 오르다 

김명희 기자

2025. 06. 27

오랜 기간 업계 정상을 지켜온 LVMH가 에르메스에 시가총액 1위 자리를 내주며 명품 산업의 권력 구도가 재편되고 있다.

최근 럭셔리 시장이 침체를 맞은 가운데 에르메스는 희소성을 앞세워 독보적인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럭셔리 시장이 침체를 맞은 가운데 에르메스는 희소성을 앞세워 독보적인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글로벌 명품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명품 제국’ 루이비통모엣헤네시(LVMH)가 30여 년 만에 시가총액 1위 자리를 에르메스에 내줬다. 글로벌 경기 둔화, 관세 부담 속에서도 장인정신과 희소성을 무기로 내세운 에르메스의 전략이 시장에서 통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5월 15일(현지 시각) 프랑스 증시에서 LVMH 주가는 전일 대비 7.82% 급락한 488.65유로로 마감했다. 시가총액은 2444억 유로로 줄어들었다. 같은 날 에르메스는 시가총액 2486억 유로를 기록하며 LVMH를 제치고 명품 업계 1위 자리에 올랐다. 이는 1990년대 이후 꾸준히 시가총액 1위를 지켜온 LVMH가 처음으로 ‘왕좌’를 내준 상징적인 전환점이다. 이후로 두 회사의 시가총액 차이는 점점 더 벌어져 6월 16일 현재 에르메스의 시가총액은 약 2400억 유로, LVMH의 시가총액은 2300억 유로다. 

LVMH는 루이비통, 디올, 펜디, 셀린, 로에베, 지방시, 불가리, 티파니, 마크제이콥스 등 70개가 넘는 브랜드를 보유한 세계 최대 명품 그룹이다. 2021년에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급증한 중국 소비에 힘입어 유럽 기업 중 시가총액 1위에 올랐고 2023년에는 4000억 유로를 돌파하며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2024년 들어 상황이 급변했다. 중국 경기 둔화와 미국과의 관세 갈등, 글로벌 소비 위축이 겹치며 실적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2024년 연간 매출은 847억 유로로 전년 대비 2% 줄었고, 2025년 1분기 매출도 203억 유로로 증권가 컨센서스인 212억 유로에 크게 못 미쳤다. 특히 핵심 부문인 패션·가죽 제품 매출은 3% 줄어 410억 유로에 그쳤으며, 영업이익은 10% 가까이 감소했다. 전체 매출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아시아 시장에서는 11%의 감소 폭을 기록했고, 북미 시장도 3% 하락세를 보였다. 

이 같은 흐름은 샤넬과 케어링에도 유사하게 나타났다. 샤넬은 베르트하이머 가문이 소유한 비상장사이기 때문에 시장에서 주식이 거래되지 않고 있으며 공시도 다른 기업에 비해 늦은 편이다. 그럼에도 최근 들어 실적 하락의 징후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 5월 말 발표에 따르면 2024년 매출이 173억 유로로 전년 대비 4.3%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거의 3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팬데믹 이후 가격을 크게 인상한 점이 소비자 반발을 불러온 것이다. 대표 제품인 클래식 라지 플랩백의 가격은 2023년 1480만 원에서 현재 1795만 원으로 2년 만에 300만원 넘게 올랐다. 이러한 가격 정책은 희소성과 프리미엄 전략을 노린 것이지만, 실질 구매력이 둔화된 시장 분위기와 맞물리며 특히 아시아 지역에서의 매출 하락(7.1%)이 두드려졌다. 실제로 한때 오픈런의 대명사였던 샤넬 매장은 요즘 거의 대기 없이 입장 가능해 매출 감소를 체감할 수 있는 분위기다. 

구찌의 모회사인 케어링은 2024년 매출이 전년 대비 12% 감소한 172억 유로에 그쳐 시장에 실망감을 안겼다. 2025년 1분기 매출도 전년 동기 대비 14% 하락했다. 그룹 내 가장 큰 수익원인 구찌는 매출이 25% 감소했고, 생로랑(-9%)과 발렌시아가, 알렉산더맥퀸이 포함된 기타 하우스(-11%)도 일제히 부진했다. 다만 보테가베네타는 4%, 안경 사업부는 3% 성장하며 부분적으로 선방했다. 2020년대 초반부터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한 케어링그룹은 200억 유로가 넘는 채무 부담까지 안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최근 전문가들의 의견을 인용, 케어링그룹의 부채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몇 년 내에 신용 등급이 강등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케어링 CEO 프랑수아 앙리 피노는 “우리는 현재의 역풍 속에서도 전략적·재무적 목표 달성을 위해 집중하고 있다”며 “이번 위기를 성장 기회로 전환하겠다”고 강조했다.



LVMH·샤넬·케어링 흔들리는 사이, ‘느린 성장’ 고집한 에르메스의 반격

반면, 에르메스는 명품 시장 전반의 침체 속에서도 홀로 ‘역주행’하며 탄탄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2024년 연간 매출은 152억 유로로 전년 대비 15% 증가했고, 2025년 1분기 매출 역시 9% 증가한 41억3000만 유로를 기록했다. 아시아 시장은 중국의 경기 둔화와 소비 감소에도 불구하고 7% 성장했다.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도 각각 두 자릿수 매출 증가를 기록하며 글로벌 수요가 견고함을 증명했다.

에르메스의 대표 제품인 버킨백과 켈리백은 수년의 대기 시간을 거쳐야 구매할 수 있을 만큼 높은 희소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는 고객의 브랜드 충성도와 재구매율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에르메스는 한 해에 생산할 수 있는 가방 수량 자체를 제한하며, 장인의 수작업을 고집하는 ‘느린 성장’ 전략을 통해 브랜드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이어가고 있다.

에르메스의 제품들은 자산 가치 측면에서도 독보적인 위상을 갖고 있다. 버킨백은 중고 시장에서 상당히 인기 있는 아이템이다. 미국의 럭셔리 가방 거래 플랫폼 ‘백헌터(Baghunter)’의 자료에 따르면, 버킨백은 지난 35년간 연평균 14.2%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는 같은 기간 금이나 주식의 수익률보다 높은 수준이다. 불확실한 거시경제 상황 속에서 일부 고소득층 소비자들은 금, 예술품과 함께 버킨백을 ‘안전자산’으로 간주하고 투자하는 경향까지 보인다. 2021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악어가죽에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에르메스 켈리백 ‘히말라야’가 400만 홍콩달러(약 6억9000만 원)에 낙찰돼 화제에 올랐으며, 7월에는 버킨백 탄생에 영감을 준 영국 출신 가수 겸 배우 제인 버킨이 소장했던 오리지널 버킨백이 경매에 나올 예정이다. 희소성에 이런 서사들이 더해지면서 에르메스의 브랜드 가치는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럽산 제품에 대해 20%의 고관세 부과를 언급하며 최근 한 달간 LVMH 주가는 19.85% 하락했으며, 프라다(-19.34%), 케어링그룹(-25.45%), 버버리(-27.69%) 등도 큰 폭의 주가 하락을 경험했다. 그러나 에르메스의 주가는 같은 기간 5.27% 하락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에르메스의 독자적인 브랜드 전략이 시장 불확실성에 완충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시장에서는 “에르메스는 단순한 명품 브랜드를 넘어 하나의 자산군”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이런 가운데 LVMH는 일부 생산 라인을 미국으로 이전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샤넬 #에르메스 #LVMH #여성동아

사진 게티이미지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