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 소비자들이 직접 굿즈를 구매하는역직구 시장이 호황을 맞자 몇몇 중국 온라인 플랫폼에서는 짝퉁 콘텐츠를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K-팝에 열광하는 해외 팬이 늘고, 희소성과 소장 가치가 있는 굿즈가 등장하면서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해외 소비자들이 직접 굿즈를 구매하는 역직구 시장이 호황을 맞고 있다. 과거 해외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K-팝 아이돌의 굿즈를 구매하는 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몇몇 온라인 몰에 접속하면 한국 내에서처럼 원하는 굿즈를 얼마든지 손쉽게 손에 넣을 수 있다. 물론 판매자의 입장에서도 새로운 기회의 장이 열린 셈이다. 누구든 리셀, 역직구 플랫폼을 통해 물건을 팔 수 있기에 마음만 먹으면 짭짤한 수익과 비즈니스 기회를 노릴 수 있다.
“효자 역할 톡톡” 역직구 시장판 키운 K-팝
역직구 시장이 호황을 맞은 데는 플랫폼의 등장이 주효했다. 전 세계 K-팝 팬들의 포카 거래를 지원하는 플랫폼 포카마켓에서는 월평균 11만 명의 유저가 약 30만 종 이상의 포카를 거래하고 있다. 연 매출 역시 2023년 59억 원에서 2024년 78억 원으로 껑충 뛰었다. 앞서 언급한 번개장터의 해외 이용자 전용 중고 거래 서비스 글로벌 번개장터의 경우 스타 굿즈, 포카 등이 주로 거래되고 있으며 론칭 1년 만에 이용자가 131% 늘었다. 2024년 한 해 거래액만도 약 720억 원에 이른다. 역직구 스타트업 딜리버드 코리아 역시 월평균 40만 명이 넘는 18~35세 MZ세대 고객들이 K-팝 관련 제품과 문구류, 화장품, 의류 등을 거래하는 성지로 꼽힌다. 뿐만 아니라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에서 직접 구매 대행을 수행하는 개인들이 적지 않아 실제로는 훨씬 더 큰 규모의 K-팝 아이돌 굿즈가 해외로 팔려나가는 실정이다. 이러한 흐름은 통계상으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통계청 해외직접판매액 자료를 살펴보면 한국 역직구 금액은 2023년 기준 1조972억 원으로 2014년 6791억 원과 비교하면 무려 149%나 폭증했다. 일본, 미국, 아세안 지역 등으로 의류, 화장품, 음악 관련 상품 역직구가 폭발적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관세청 역시 비슷한 통계를 내놨다. 지난해 전체 온라인 역직구 수출액은 29억400만 달러(약 4조2500억 원)로 전년 동기 대비 26%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팬덤을 등에 업은 K-팝 굿즈의 활발한 거래가 큰 몫을 했다”고 분석했다.해외 팬들은 왜 K-팝 아이돌 굿즈에 이토록 열광하는 것일까? 여러 이유가 혼재돼 있지만, 이른바 ‘디깅 소비’가 전 세계 K-팝 팬들 사이에서 일종의 문화이자 세계관으로 자리 잡은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디깅 소비란 ‘파다’를 뜻하는 영어 단어 ‘dig’에서 파생한 말로, 자신이 관심을 쏟는 영역에 돈을 아끼지 않는 소비 형태를 의미한다. MZ세대는 자신의 개성이나 취향을 충족하는 분야를 만나면 이를 깊게 탐색할 뿐 아니라, 취향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다양한 정보를 확산시키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나가길 원한다. 이 과정에서 관련 제품을 소비하게 되는데, K-팝 팬들은 국내 아이돌 굿즈를 구매하고 소장하는 데에 디깅 소비를 하고 있는 것. 디깅 소비의 대상은 희소성이 강할수록, 소장 가치가 높을수록 더 인기 있다. K-팝 아이돌 굿즈, 그중에서도 포카가 인기 있는 이유다.
K-팝 아이돌 굿즈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포카, 키 링, 가방, 티셔츠, 그립톡, 우산, 다이어리 등 헤아릴 수 없는 다양한 품목이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팬들은 유독 포카에 열광한다. 단순히 예뻐서만이 아니다. 그만큼 희소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요즘 앨범이 어떤 식으로 발매되는지 살펴봐야 한다. 과거의 앨범이 표지 이미지가 동일한 한 가지였다면 요즘은 사정이 다르다. 같은 앨범이라도 표지가 제각각이다. 특히 그 속에 담긴 포카, 이벤트 응모권 등이 또 달라 구매에 앞서 고민이 많아진다. 예컨대 5명의 멤버로 이루어진 아이돌 그룹의 경우 포카를 멤버별로 4장씩, 총 20종으로 구성한 뒤 앨범 하나에 랜덤으로 2장씩 넣어 판매하는 식이다. 갖고 싶은 멤버의 포카가 따로 있어도 막상 앨범에 해당 포카가 없을 가능성이크다. 대부분의 아이돌 앨범이 이처럼 구성되므로 일부 팬들은 음반을 무더기로 구매해 포카만 뽑아내는 일명 ‘앨범깡’도 서슴지 않는다. 실제로 지난 5월 일본 시부야에서 포카만 뺀 세븐틴 앨범이 대량으로 버려져 논란이 된 바 있다.
K-팝 아이돌의 앨범이 발매된 직후에는, 운 좋게 손에 넣은 자신의 포카를 SNS에서 자랑하거나 ‘포카를 양도하겠다’ 혹은 ‘교환하자’는 취지의 글들이 넘쳐난다. 이렇게 덕질의 중심에 포카가 있다 보니 로또처럼 희소한 포카에는 프리미엄이 붙기 마련이다. 비싸고 희귀하다는 의미에서 ‘반포자이 포카’ ‘한남더힐 포카’라는 별칭마저 생겨났다. 이렇다 보니 “듣지도 않는 CD에 포카를 끼워 파는 건 너무하다” “앨범을 많이 팔기 위한 기획사의 지나친 상술이다” 등 앨범이나 포카를 둘러싼 비난이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좋아하는 가수의 포카를 얻기 위한 팬들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번개장터에서 운영하는 글로벌 번장에서 가장 고가에 팔린 굿즈로 BTS 지민의 얼굴이 담긴 여러 장의 포카가 선정됐다. 300만 원의 거래액으로 2023년 말 발매된 지민의 디지털 싱글 앨범 ‘Closer Than This’를 기념해 제작된 콘텐츠다.
짝퉁부터 부가세 영세율까지, 제도적 보완책 시급
K-팝 아이돌 굿즈 역직구가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에 따른 문제점 또한 적지 않다. 먼저 짝퉁 문제를 들 수 있다. 우리나라의 영화나 드라마 등을 무단으로 유통해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켰던 중국이 요즘에는 K-팝 아이돌 굿즈의 짝퉁을 제작해 버젓이 판매하고 있다. 실제로 중국의 한 온라인 상거래 플랫폼에서 ‘포카’를 검색하자 아이브, 트와이스, 베이비몬스터 등 유명 아이돌 그룹의 출처를 알 수 없는 포카가 단돈 몇천 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분명 소속사에서 공식적으로 제작한 포카와는 무관한 상품들이다.지난 2024년에는 인천세관을 통해 들여오려던 불법 K-팝 굿즈가 대량으로 적발돼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강진석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 고문변호사는 “인정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인격권이나 퍼블리시티권(초상사용권), 초상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불법 복제 상품과 가품이 시장에 유통되며 정품의 가치를 훼손하고 소비자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어떤 식으로 제재해야 할지 구체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중국 정부 역시 저작권법을 강조하고 있긴 하나 실질적인 제재가 가능한지는 미지수다. 한편 국내에서는 2023년 12월 ‘저작권 강국 실현 4대 전략’을 내놓는 등 K-콘텐츠의 저작권 보호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일본, 중국, 태국, 필리핀, 베트남 등 아시아 5개국과 지속적인 협력을 통해 불법 유통을 억제하고 합법적인 시장 확대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점점 늘어나는 역직구 시장을 고려해 제도적인 보완책 역시 필요하다. 예를 들어 굿즈 등이 해외로 판매되는 수출품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수출품에 적용되는 부가세 영세율(0%) 혜택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수출을 지원하기 위해 수출품에 대해서는 부가세율을 0%로 책정해 부가가치세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있다. 이중과세 문제도 해결해야 할 부분이다. 한국중고수출협회 관계자는 “개인과 개인 간의 거래 시 증빙이 어려워, 판매자가 국내에서 세금(부가가치세)을 납부했음에도 불구하고 해외 구매자 역시 자국에서 세금을 이중으로 납부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며 “역직구 시장이 잘 운영되기 위해서는 유연한 수출 정책과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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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게티이미지 사진출처 인스타그램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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