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작 그리고 실패를 모르는 배우
연기는 28세 때, 연극 ‘오이디푸스’로 시작했고 10년 가까운 무명 생활을 거쳤다. 이후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와 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를 통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는 ‘추앙’을 부른 구씨 역으로 누군가의 숨통을 틔워주는 존재가 되었다. 염미정의 삶을 해방한 그 구씨의 말투와 눈빛은 시청자들의 막힌 감정선도 여지없이 뚫어주었다. 손석구를 추앙하는 팬들이 생기고 ‘구찌 말고 구씨’ ‘손석큐티’ 등 수많은 별명이 따라붙었다. 이후 영화 ‘범죄도시2’와 넷플릭스 오리지널 ‘살인자o난감’에 이어 최근엔 ‘천국보다 아름다운’까지 연이어 주목받으며 실패 없는 필모그래피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나인 퍼즐’에서 강력반 형사 김한샘 역을 맡아 몰입감 높은 연기를 선보였다.‘나인 퍼즐’은 10년 전 미제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프로파일러(김다미)와 그를 의심하는 형사 한샘(손석구)이 연쇄살인사건의 비밀을 추적하는 스릴러물이다. 미결 사건과 현재의 연쇄살인을 잇는 서스펜스의 정중앙에서 그는 캐릭터의 여백을 자신만의 감정선으로 메워냈다. 덕분에 ‘나인 퍼즐’은 디즈니+에서 ‘무빙’에 이어 한국인이 가장 많이 시청한 콘텐츠 2위에 올랐고, 전 세계에서 디즈니+ 한국 콘텐츠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글로벌 인기도 입증해냈다. 손석구는 한국기업평판연구소가 선정하는 5월 배우 브랜드 평판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손석구는 여전히 배우로서 ‘진행형’이다.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하고 20대 초반에 연기에 뛰어든 여느 배우들과 달리 늦은 출발이 아쉬웠던 듯 쉴 새 없이 다작을 해온 그는 이제 단순히 ‘많이’보다는 ‘깊게’ 남는 배우가 되기 위해 속도 조절을 시작했다. 연기를 넘어 글쓰기에 관심을 가지며 “어쩌면 언젠가는 연출도 하고 싶다”고 말하는 그는 오늘도 자신이 할 수 있는 표현의 가능성을 탐색 중이다. 그리고 그런 여정을 함께 지켜보는 건 관객의 기쁨이다.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나인 퍼즐’ 인터뷰 자리에서, 그는 여전히 진지하고 담담했다. 그리고 솔직했다. 아래는 손석구와의 일문일답이다.

추리물이라는 장르적 재미에 충실하고 미장센과 촬영도 좋았던 것 같습니다. 초반에 뿌린 떡밥들이 다 회수되면서 마무리도 잘됐고요. 예전에 이미 한 번 봤는데 이번에 다시 보면서도 시청자들이 굉장히 몰입해서 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내부적으로는 오늘(전편 공개일)부터가 본게임이라는 말을 많이 했고, 그래서 더 기대가 큽니다.
‘나인 퍼즐’ 시나리오에서 가장 끌렸던 점은 뭔가요.
낯선 장르와 세계관이라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었어요. 캐릭터적으로도, 제가 맡은 한샘은 대본상 여백이 많아서 배우가 해석을 많이 담을 수 있었죠. 다른 배우가 했다면 전혀 다르게 나올 수 있는 캐릭터였고, 그래서 ‘나만 할 수 있는 걸 해보자’는 의미가 있었어요.
예전에 추리물에는 자신이 없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요.
저는 감정을 쌓아가는 연기에 자신이 있는데, 추리물은 정보 전달과 사건 추론이 중요해서 많이 긴장했어요. 나와 맞는 장르일까, 고민도 했죠. 윤종빈 감독님이 “나만 믿고 오면 된다”고 말씀해주셔서 큰 힘이 됐어요. 다만 추리만큼이나 이나와의 티키타카도 중요했습니다. 그런 쉬어가는 구간이 없었다면, 이 긴 회차를 끌고 가지 못할 것 같았어요. 제가 잘하는 것과 장르에 필요한 연기를 적절히 섞으려고 했는데, 잘된 것 같습니다.
김한샘 형사 캐릭터는 어떻게 분석했나요.
한샘의 키워드는 ‘집요함’이었어요. 완전한 현실도, 완전한 만화도 아닌 중간 지점의 세계관에서 적절한 톤을 맞추는 게 중요했죠. 의상, 대사, 도발적인 행동 등 현실성과 비현실성을 자연스럽게 섞으려 했습니다.

디즈니+ ‘나인 퍼즐’에서 집요한 형사 역을 맡아 김다미와 케미를 보여준 배우 손석구.
“윤종빈 감독의 오랜 팬, 이번 역할은 감독 아내의 추천”
‘카지노’와 ‘살인자o난감’에서도 형사 역을 했는데, 이번엔 어떤 차별점을 뒀나요.각각의 설정과 배경 자체가 이미 다르니까 굳이 차이를 만든다기보다는 ‘발견’하는 방식이었어요. ‘살인자o난감’의 장난감과 ‘나인 퍼즐’의 한샘은 이미 너무 다른 사람이에요. 그래서 굳이 의도적인 차별화를 하지 않아도 되더라고요.
평소 윤종빈 감독의 팬이라고 밝혔는데, 함께 작업한 소감은요.
감독님은 경험도 많고 본인의 스타일도 확고하세요. 배우는 그 안에서 연기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저는 “현장에서 진짜 연기만 했다”고 주변에 자주 얘기했을 정도예요. 감독님은 촬영 전부터 굉장히 철두철미하게 준비하시고, 그 안에서 배우의 창작을 존중해주세요. 감독님과 함께해서 더 좋았고, 아이디어도 많이 냈지만 학생처럼 배운다는 마음이 컸어요. 인생 선배이자 멘토 같았죠.
윤 감독은 아내의 추천으로 손석구 배우를 추천했다고 하던데요.
저도 그 얘길 들었습니다. 형수님 눈이 정확하신 것 같습니다. 하하하.
윤종빈 감독 영화 중 특히 좋아하는 작품은 뭔가요.
‘용서받지 못한 자’ ‘비스티 보이즈’ ‘범죄와의 전쟁’ 등 윤 감독의 작품을 다 봤어요. 제 또래의 시네필이라면 윤종빈 감독 작품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을 거예요. 젊은 나이에 그런 영화를 만들었다는 게 존경스럽기까지 하고, ‘나는 저 나이에 뭐 했지’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최근엔 영화 ‘공작’을 봤는데, 벌써 꽤 시간이 흐른 작품이잖아요. 그 당시에 그렇게 세련된 작품을 만들었다는 게 정말 대단하다 싶더군요.
김다미 배우와의 호흡은 어땠나요.
다미 씨는 굉장히 열정적인 배우예요. 아이디어도,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친구죠. 처음부터 본인이 하고 싶은 캐릭터도 명확했어요. 반대로 저는 처음엔 좀 헤맸고, 그래서 “이거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이 물어봤고, 그럴 때마다 다미 씨가 굉장히 디테일한 부분까지 아이디어를 줬습니다. 이번 드라마는 감독님 그리고 다미 씨를 비롯한 다른 배우들과 함께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재미가 컸던 작품이에요.
‘D.P.’에서 상관이었던 현봉식 배우가 이번엔 막내로 나오던데요.
처음 ‘D.P.’에서 만났을 땐 어렵게 느껴졌는데, 이제는 너무 편하고 귀여워요. 실제로 저보다 어리기도 하고요. 같이 연기할 때 즐겁고 든든한 존재예요. 극중 제가 현봉식 배우에게 ‘산아, 왜 대답을 안 하니? 그러니까 니가 MZ 소리 듣는 거야’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는데, 제가 제안해서 넣은 대사에요.
극 중 모자를 착용하고 나오는데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요.
우연히 모자를 썼는데, 감독님이 좋아하셨어요. 모자를 썼다가 벗는 동작도 화면적으로 재미있어서 지속했죠. 드라마는 결국 ‘행동’으로 관객과 소통하는 예술이라, 그런 요소들이 의미를 만들 수 있다고 감독님께 배웠어요. “영화는 배우가 뭘 하는지를 보러 오는 거다”라는 감독님 말씀이 정말 진리처럼 다가왔습니다.
대본을 받았을 때 범인이 누구일 거라 생각했나요.
저는 추리를 정말 못하는 편입니다. 대본을 보면 범인을 한쪽으로 몰아가는데 ‘어쩌려고 벌써 범인이 나오지? 4부밖에 안 되는데…’ 그런 식으로 열 번 속이면 열 번 다 속아요.
10~11회가 공개되기 전까지 한샘이 범인일 거라고 추리한 시청자들도 많았는데, 알고 있었나요.
알고 있었고, 그 자체가 재미있었어요. 일부 연기나 행동이 추리의 단서처럼 보인 것도 의도하지 않았는데 흥미로웠죠. 제 주변에서 범인을 맞힌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어요. 그래서 더 성공적인 전개였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몇 년간 쉬지 않고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데, 재충전은 어떻게 하나요.
얼마 전에 혼자 여행도 다녀왔고, 뮤지컬도 자주 봐요. 그런 것들이 큰 재충전이 되더라고요.
농구도 좋아한다고요.
원래는 좋아하는데 이상하게 배우들이 작품 들어가기 전에 운동하다가 다치는 경우가 많아서 요즘은 잘 안 해요. 쉬지 않고 작품을 하다 보니 육체적으로 무리하는 건 피하려고 해요.

“이젠 많이보다 깊이… 속도를 조절할 때”
작품을 고르는 안목이 좋은 것 같아요.우선은 재미있어야 해요. ‘재미’라고 하면 가볍게 들릴 수도 있지만, 재밌게 본 시나리오는 주변 사람들에게 작품에 대해 쉽게 설명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황혼을 넘긴 여자가 천국에 가서 한 남자를 만났어’라든가, ‘10년 동안 프로파일러가 범인이라고 의심한 형사가 서로 공조해서 범인을 찾는 이야기’처럼. 이게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예전에 다작 배우가 목표라고 하셨는데, 여전히 같은 생각인가요.
촬영 현장이 즐거워 쉬지 않고 달리고 싶었고, 또 많이 배우고 흡수하기 위해 다작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는데 지금은 의미 있게 발산하는 게 더 중요해졌어요. 그래서 지금 촬영하고 있는 작품들이 끝나면 한동안 공백을 가질 생각이에요.
생각이 바뀐 계기가 있나요.
늘 누군가와 함께하는 역할을 많이 했고, 그런 환경이 좋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무게중심을 저한테 온전히 두는 작업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쓰임새의 변화랄까요.
몸이 좋아진 것 같아요.
한동안 많이 쪘다가 다음 작품 때문에 좀 뺐어요. 앞으로는 외형뿐 아니라 배운 것들을 더 공들여서 한 작품에 의미 있게 녹여내고 싶어요.
‘천국보다 아름다운’에서 김혜자 배우와 함께한 소감은요.
선생님은 인생이 묻어난 연기를 하는 분이셨어요. 철학을 가지고 사신 삶이 그대로 연기에 녹아 있었고, 저도 그렇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이후로는 작품에 들어가기 전 선생님을 한번 찾아뵙자는 다짐을 해요. 연기와 삶이 다르지 않은 분, 연기의 순수함을 느끼게 해주신 스승님 같은 존재예요.
‘천국보다 아름다운’과 ‘나인 퍼즐’이 연이어 주목받고 있는데, 기분이 어떤가요.
제 지분은 크지 않다고 생각해요. 특히 시리즈물은 정말 많은 사람이 힘을 모아야 하니까요. 좋은 작품 안에서 제가 쓰인다는 건 감사한 일이죠. 작품을 하면 할수록 ‘내가 잘해서 성공했다’는 생각이 사라지고 주변에 감사하게 됩니다.
‘나인 퍼즐’이 손석구 배우의 필모그래피에서 어떤 의미가 될까요.
작품이 어떻게 평가될지는 지나 봐야 알겠지만, 제가 추리 장르에서 이런 연기를 펼친 작품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큰 의미 있는 작품으로 남길 바라는 마음이 큽니다.
나무위키에서 손석구 배우를 “대한민국의 사업가 출신 배우”라고 소개하고 있어요. 배우로선 상당히 독특한 이력인데, 그 경험이 연기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사업가와 배우는 상당히 다른 분야의 직업이고, 덕분에 저는 균형이란 걸 늘 생각하고 사는 것 같아요. 낭만적이지만 동시에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부분도 있죠. 정신적으로도 건강하고요.
연출이나 글쓰기를 해보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현재 진행 중인 작업이 있나요.
연출은 아직 준비 중이 아니고, 글쓰기는 계속하고 있어요. 지금은 그 꿈을 가지고 조금씩 써나가고 있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습니다. 만약 글이 완성된다면 그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손석구 #나인퍼즐 #여성동아
사진제공 디즈니+ 스태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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