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샤넬 드레스 안에 새틴 점프슈트를 매치해 젠지적 감수성을 더한 제니.
5월 5일 열린 올해의 주제는 ‘Superfine: Tailoring Black Style’. 코스튬 인스티튜트의 객원 큐레이터 모니카 밀러의 2009년 저서 ‘패션의 노예: 흑인 댄디즘과 흑인 디아스포라적 정체성의 스타일링(Slaves to Fashion: Black Dandyism and the Styling of Black Diasporic Identity)’에서 영감을 받은 이번 주제는, 블랙 댄디의 출현과 확산을 중심으로 흑인 정체성 형성에 패션 스타일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조명한다. 블랙 댄디즘은 모던과 클래식이 조화를 이루는 비스포크 슈트, 페도라와 보터 해트 같은 모자, 화려한 액세서리로 대표되며 리한나, 퍼렐 윌리엄스, 루피타 뇽오 등 수많은 셀러브리티가 올해 멧 갈라에서 이런 스타일의 의상으로 블랙 댄디즘의 역사성과 아름다움에 경의를 표했다. 이런 가운데 K-팝 대표 그룹 블랙핑크의 세 멤버 제니, 로제, 리사도 샤넬과 생로랑, 루이비통의 하우스 미학을 체현하는 글로벌 앰배서더로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제니 X 샤넬, 하우스의 고전과 젠지 감각의 조화
제니는 2017년부터 샤넬 앰배서더, 2022년부터는 글로벌 캠페인 모델로 활약하며 ‘인간 샤넬’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브랜드와 완벽한 파트너십을 이어왔다. 2023년 샤넬의 화이트 미니드레스를 입고 멧 갈라에 성공적으로 데뷔했지만, 2024년 알라이아의 파란색 드레이프 미니드레스를 선택해 다소 난해하다는 반응을 얻기도 했던 그녀. 올해는 다시 샤넬로 돌아와 하우스 특유의 고전적 아름다움을 자신만의 감성으로 재해석해냈다.화이트 포인트가 더해진 모던한 오프숄더 블랙 드레스에 보터 해트를 매치한 제니의 룩은 오드리 헵번을 연상시키는 우아한 스타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특히 드레스 안에 새틴 점프슈트를 겹쳐 입어 제니다운 젠지적 감수성을 더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 카멜리아 플라워 장식과 진주 디테일로 마무리된 이 드레스는 무려 330시간 이상의 수작업을 거쳐 완성됐으며, 샤넬의 장인 정신이 오롯이 담겨 있다. 화려한 장식이 더해진 드레스인 만큼 목걸이는 생략하고, 다이아몬드가 세팅된 18K 화이트 골드 소재의 샤넬 하이 주얼리 링 하나만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 결과, 제니는 ‘하퍼스 바자’ ‘피플’ ‘보그’ 등 수많은 외신이 선정한 ‘멧 갈라 베스트 드레서’에 이름을 올렸다. ‘하퍼스 바자’는 그녀를 “마치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튀어나온 듯했다”고 평했다. 단순히 샤넬을 입은 스타가 아닌, 브랜드와의 오랜 신뢰와 개인적 미감을 바탕으로 샤넬의 아이덴티티를 자연스럽게 구현하는 ‘살아 있는 아이콘’다운 룩이었다.

생로랑의 슈트에 오버사이즈 트레인을 걸친 로제.
로제 X 생로랑, 클래식한 관능
싱어송라이터 브루노 마스와 협업한 싱글 앨범 ‘아파트(APT.)’를 통해 빌보드 차트에서 장기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로제는 음악뿐만 아니라 패션계에서도 입지를 다져가는 모습이다. 생로랑이 가장 사랑하는 이미지, ‘무심한 관능’을 절제된 방식으로 구현한 그녀의 룩은 이번 멧 갈라에서 단연 눈에 띄었다.클래식한 블랙 테일러드슈트에 오버사이즈 트레인을 더한 이번 룩은 마치 힘을 뺀 듯한 스타일이지만, 강렬한 개성과 절제된 우아함이 공존하는 균형미로 완성됐다. 티파니앤코의 14캐럿 이상 사파이어 펜던트 네크리스와 레드 힐은 단조로울 수 있는 올 블랙 룩에 확실한 포인트를 더했다.
이 룩은 생로랑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안토니 바카렐로의 디자인 철학과도 깊이 맞닿아 있다. 최근 파리 뤼 드 벨레샤스 본사에서 열린 컬렉션에서 안토니 바카렐로는 생로랑의 시그니처인 테일러드슈트와 보헤미안 드레스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여성이 지닌 다면성을 조명했다. 드레스 한 벌, 주얼리 하나까지도 치밀하게 계산된 로제의 룩은 단순한 아름다움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생로랑의 과거, 현재, 미래가 로제라는 인물을 통해 호흡하며 만들어낸 우아한 헌사였다.

리사의 시스루 재킷에 들어간 인물화 초상화는 미국 아티스트 헨리 테일러의 작품. 헨리 테일러도 초상화 장식 셔츠를 입고 멧갈라 무대에 섰다.(위) | 리사는 루이비통의 과감한 하의실종 패션을 선택했다. (아래)
리사 X 루이비통, 멧 갈라 주제를 관통하는 화두
미래주의적 미학을 입고 멧 갈라 레드카펫에 등장한 리사는 올해 행사에서 가장 많은 화제를 모은 인물 중 하나였다. 시스루 재킷과 레이스 보디슈트, 루이비통 모노그램 스타킹, 하이힐, 스피디 반둘리에 20 미니백으로 구성된 그녀의 룩은 구조적이면서도 대담했다. 여기에 티파니앤코의 볼드한 펜던트와 금발 업두 헤어, 미니멀한 메이크업이 어우러져 한층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하지만 그녀의 보디슈트 하의에 자수로 장식된 초상화가 흑인 인권운동가 로자 파크스를 닮았다는 주장이 제기되며 논란이 일었다. 온라인에서는 존경받는 인권운동가의 얼굴이 하의에 새겨진 것에 대해 “저속하다” “불쾌하다”는 반응이 이어졌고, 이에 초상화를 작업한 아티스트 헨리 테일러 측은 “리사의 루이비통 룩에 등장한 인물은 로자 파크스가 아니라 헨리의 평범한 이웃 중 한 명”이라고 해명했다.
헨리 테일러는 풍부한 색채와 간결한 선으로 세련되면서도 감정이 깃든 초상화를 그리는 미국의 흑인 아티스트로, 2023년 퍼렐 윌리엄스의 루이비통 데뷔 컬렉션에서도 협업한 바 있다. 이번 리사의 스타킹에 수놓인 초상화 역시 2023년 컬렉션 당시 루이비통에 제공한 작품 중 하나이며, 헨리 테일러 본인도 자신의 초상화가 그려진 셔츠를 입고 올해 멧 갈라에 참석했다.
논란은 온라인을 뜨겁게 달굼과 동시에 올해 멧 갈라의 주제인 ‘흑인 스타일의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다시금 던지는 계기가 됐다. 리사는 그 중심에서 루이비통이 띄운 화두를 온몸으로 구현해낸 셈이다.
#블랙핑크 #멧갈라 #여성동아
사진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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