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영등포점에서 할인 치킨을 구매하기 위해 늘어선 줄. 치킨은 판매 시작 약 3분 만에 소진됐다.
3년 전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신년사에서 유통업계에 중간은 사라지고 초저가와 초고가 시장으로 양분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최근 급등하는 물가는 정 부회장이 예측한 상황을 더욱 앞당겼다. 지갑이 얇아진 소비자를 겨냥한 마트 업계의 반값 전쟁은 초저가 시장의 경쟁 판도를 잘 보여준다.
시발점은 홈플러스의 ‘당당치킨’이다. ‘국민 야식’의 대표 주자인 치킨마저 프랜차이즈 기준 배달비를 포함한 가격이 3만원에 달하는 상황. 홈플러스가 출시한 6990원 당당치킨(달콤 양념은 7990원)은 특정 시간에 한정된 수량만을 판매하는 희소성까지 가미해 온라인상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는 곧 마트에서 줄을 서 치킨을 사 가는 ‘오픈런’으로 이어졌다. 당당치킨은 1분에 5마리꼴로 팔리며 판매 시작 후 두 달간 약 46만 마리가 소진됐다.
당당치킨의 흥행을 목격한 경쟁사들은 맞불을 놓았다. 이마트는 9980원에 판매하던 ‘5분치킨’을 4000원 인하해 ‘(9호)후라이드 치킨’을 내놓았고 롯데마트는 ‘한통치킨’을 8800원에 판매했다. 품목은 치킨에서 피자(홈플러스 시그니처 피자·2490원), 초밥(이마트 스시-e 베스트 모둠초밥 18입·1만2980원), 탕수육(롯데마트 한통가득 탕수육·7700원)으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델리 부서 전면에 배치해 우연한 대박
사상 초유의 ‘치킨 오픈런’을 유발한 홈플러스의 당당치킨은 판매 두 달 만에 46만 마리가 팔려나갔다.
당당치킨 아이디어 제공자는 델리사업팀의 막내 MD(상품기획자) 최유정 주임으로 알려져 있다. 최 주임은 1996년생으로 한 경제지 인터뷰에서 5월부터 매일 치킨만 먹으며 메뉴 개발에 열을 올렸다는 일화를 밝히기도 했다. A 씨는 최 주임이 활약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조주연 부사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A 씨의 설명이다.
“홈플러스가 25주년 리뉴얼 매장에서 ‘메가푸드 마켓’이라는 이름으로 델리 부문에 힘을 줬다. 조 부사장이 델리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 르 꼬르동 블루 출신 한상인 이사 영입에 공을 들였고, 외부 인사를 영입하며 후방에 배치돼 있던 델리 부서를 마케팅 부서로 옮겼다. 델리 부서가 마케팅팀 전면에 배치된 결과 막내 MD의 아이디어가 상품화될 수 있었다.” A 씨가 언급한 조주연 부사장은 마케팅 전문가로 전 직장인 맥도날드 대표를 지낼 당시 네티즌 사이에서 ‘파괴왕’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많던 메뉴를 돌연 삭제하고 점심시간 할인 메뉴인 ‘맥런치’를 중단하는가 하면 ‘맥딜리버리’ 가격을 인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당당치킨의 성공은 조 부사장에게는 일종의 명예회복으로 볼 수도 있다.
한편 당당치킨의 흥행이 홈플러스에게 반등의 기회가 될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홈플러스는 2018년부터 4년간 매출이 하락해 2021년에는 1335억 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했다. 그나마 올해 매장 리뉴얼과 당당치킨 흥행에 힙입어 8월 매출은 전년 대비 28% 상승했다.
유통가 저가 경쟁, 소비자에게는 좋은 일
고물가 시대에 지갑이 얇아진 소비자를 겨냥한 ‘반갑 치킨’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롯데마트 ‘한통치킨’(위)과 이마트 5분치킨.
과거와 달리 골목상권 침해 논란이 일지 않는 이유에 대해 박 교수는 “2010년에는 정치가 개입해 롯데의 ‘통큰치킨’이 이슈가 된 측면이 있다. 지금은 고물가 시대라 소비자의 반응이 뜨거워 정치권에서 쉽사리 문제 삼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2010년 정진석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본인의 SNS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롯데마트의 통큰치킨을 비판하는 글을 게재해 골목상권 침해 이슈를 촉발했었다.
박주영 교수는 이어 “배달이 주된 판매 경로인 프랜차이즈 치킨 업체들이 이번 마트 업계의 저가 경쟁으로 크게 피해를 입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오히려 과도하게 오른 치킨 가격이 내려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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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게티이미지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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