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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EY

기업 오너 인플루언서의 아슬아슬 줄타기

정세영 기자

2024. 05. 20

재벌가 CEO는 물론이고 스몰 브랜드 대표들까지 뛰어들고 있는 인플루언서의 세계. 기업 홍보를 목표로 오늘도 열심히 피드를 올리곤 있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아쉬울 것 없어 보이는 재벌가 오너들이 SNS 활동에 진심인 이유는 무엇일까.

SNS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며 과거엔 상상할 수 없었던 많은 것을 간접 경험하게 되는 요즘이다. 그중 하나가 바로 ‘오너의 삶’이다. 과거엔 그들이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영위하고 사는지 알 수 없었다면, 요즘은 직접 SNS 활동에 뛰어든 재벌들 덕분에 제한적으로나마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게 됐다. 나아가 댓글창을 통해 재벌과 ‘호형호제’하거나, ‘재벌도 뚜껑에 묻은 요플레를 먹나요?’ 같은 질문을 던지며 소통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바쁘디바쁜 오너가 왜 귀한 시간을 쪼개 SNS를 하는 걸까? 단순히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서? 많은 전문가가 오너의 SNS 활동에 어느 정도 ‘의도’가 있다고 설명한다. 그들의 피드와 멘트가 기업에 대한 평판, 브랜드 가치 등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넘사벽이라고 생각했던 재벌이 SNS를 통해 국밥을 먹고, 카페 투어를 하며, MBTI로 자신을 드러낸다. 또 크고 작은 실수를 소개하며 귀엽고 예쁜 것에 환호하는 모습을 보면 어쩐지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점에서 ‘호감’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런 그들이 자사의 신제품이나 서비스를 소개하면 대중은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이는 이른바 ‘오너 마케팅’의 효과인 셈. 이처럼 브랜드 공식 계정과는 별개로 또 다른 마케팅 효과를 볼 수 있어 크고 작은 기업의 오너들이 SNS 활동을 고민한다.

국내 기업인 중에서는 대표적으로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박용만 전 두산인프라코어 회장 등을 꼽을 수 있다. 일부 누리꾼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SNS 활동을 적극 권유하며 팬심을 드러내기도 한다. 하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오너 마케팅에도 득과 실은 분명 존재한다. 유명해지고 영향력과 파급력이 높아질수록 감수해야 하는 것 또한 늘어나기 때문이다. 불특정 다수 앞에 자신을 노출하는 과정에서 악플이나 불필요한 오해를 사게 되는 경우도 있고, 의도치 않게 기업의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잘 쓰면 약, 못 쓰면 독’이라는 격언이 오너 마케팅에도 예외는 아니다.

대중 앞에 서는 대기업 회장님, “왕관의 무게를 견뎌라”

1 전(前) 두산그룹 박용만 회장, 2 현대카드 정태영 부회장,
3 신세계 정용진 회장, 각 기업의 고위급들이 SNS를 통해 기업 홍보는 물론 친근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1 전(前) 두산그룹 박용만 회장, 2 현대카드 정태영 부회장, 3 신세계 정용진 회장, 각 기업의 고위급들이 SNS를 통해 기업 홍보는 물론 친근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정용진 회장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가족들과의 소소한 일상, 맛집, 야구복을 입고 있는 구단주의 모습 등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공개해왔다. 일명 ‘신세계 홍보팀장’ ‘이마트 아저씨’ 등으로 불리며 단번에 누리꾼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팔로어도 84만 명이 넘는다. 인스타그램에 자사의 노브랜드, 프로야구단 SSG 랜더스 등을 언급하는가 하면 맛집 소개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그런 그가 지난 1월 돌연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해 또 한 번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4월 13일 다시 계정을 열고 15개의 게시물을 노출했지만 그간 쌓아온 게시물은 대부분 사라진 상태. 그 배경을 두고 여러 해석이 분분한데, 현재 신세계그룹이 처한 엄중한 상황 때문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최근 그는 18년 만에 부회장에서 회장으로 승진해 강도 높은 경영을 펼치고 있다. 이마트가 지난해 연결 기준 첫 영업손실을 기록할 만큼 사정이 어려워져 창립 31년 만에 첫 전사 희망퇴직을 시행하고 있다. 어떻게든 실적을 개선하고 경영을 정상화해야 하는 미션이 주어진 만큼 대외 활동을 자제한 채 오로지 사업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을 터. 과거 인스타그램을 통해 다소 과격하게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거나 특정 정치인에 대한 저격으로 구설에 오른 적이 있는 만큼 ‘오너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방편이라 볼 수 있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역시 SNS를 활용해 자사의 이미지를 드높이고자 애쓴다. 현대카드의 신규 서비스, 이벤트 등 회사의 크고 작은 이슈를 자신의 SNS에 소개하며 대중과 밀접하게 소통하고 있다. 특히 현대카드와 관련된 음식, 음악, 미술, 건축 등 다양한 문화생활을 업로드하며 문화 마케팅을 활발히 펼친다. 또 여행에서 만난 분위기 좋은 펍이나 신상 맥주 리뷰, 감명 깊게 읽은 책 등 개인 라이프스타일이 엿보이는 흥미로운 콘텐츠도 자주 올린다. 이처럼 공과 사를 적절히 섞어 자신만의 고유한 SNS 스타일을 완성한 그는 트렌디하고 혁신적인 CEO의 이미지를 구축해갔다. 그 덕분에 5만5000명이 넘는 팔로어가 그의 피드를 통해 현대카드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키워나가는 중. 하지만 SNS 활동이 늘 평탄한 것만은 아니다. 지난해 열렸던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브루노 마스’ 공연과 관련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무려 10만여 명이 몰린 이틀간의 공연에 BTS, 블랙핑크, 르세라핌, 지드래곤, 류준열, 한가인, 연정훈 등 톱스타가 관객으로 등장했는데, 이들 대부분이 공연 무대가 잘 보이는 명당자리를 차지했다는 점에서 유명 연예인에게 무료로 좋은 좌석을 제공하는 ‘스타 마케팅’을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흘러나왔다. 다수의 관객이 피 튀기는 예매 전쟁을 벌이고도 원하는 좌석을 확보하지 못한 현실과 대조된다. 이런 상황에서 정태영 부회장이 브루노 마스와 함께 찍은 사진을 게시하자 여론의 반응은 싸늘할 수밖에 없었다. 해당 게시물에는 “지인 잔치 아주 볼만했습니다”라는 항의성 댓글이 달렸다. 이에 대해 정태영 부회장은 “아티스트 초대석을 말씀하시는 듯합니다”라는 답변을 달며 팔로워들과 직접 소통했다. 

인플루언서와 악플러 사이

‘세터(SATUR)’의 손호철 대표.

‘세터(SATUR)’의 손호철 대표.

사람들의 취향이 다양하고 세심해지는 요즘, 이를 충족할 만한 스몰 브랜드의 출현 또한 빈번하다. 각자의 취향과 팬심으로 특정 브랜드를 지지하고 옹호하는 소비자도 늘어나고 있다. 이런 스몰 브랜드에서 줄곧 관찰되는 특징 중 하나가 인플루언서 못지않은 대표의 출현이다. 브랜드의 공식 계정과 별도로 대표가 계정을 운영하며 개인적인 라이프스타일을 비롯해 브랜드와 관련된 다양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풀어놓는 식이다.

‘원파운드’ 이지훈 대표.

‘원파운드’ 이지훈 대표.

대표가 전면에 등장하기 때문에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친밀감, 소소한 공감대 등을 훨씬 더 밀접하게 느낄 수 있다. 이를 통해 브랜드에 대한 애정이 더욱 공고해져 충성 고객이 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액상 콜라겐 브랜드 ‘오니스트’의 김재현(@alexis.ownist) 대표와 패션 브랜드 ‘세터(SATUR)’의 손호철(@play_saturday) 대표는 브랜드 공식 계정과 대표의 계정을 서로 연동해 유기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전략을 펼쳤다. 심지어 브랜드보다 대표의 계정이 더 활성화된 경우도 적지 않다. 패션 브랜드 ‘원파운드’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이지훈 대표는 @easyboyisfree라는 계정을 별도 운영해 18만 명이 넘는 팔로어를 끌어모았다. 패션 브랜드 대표지만 그는 콘텐츠를 ‘패션’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아내가 차량 손잡이를 망가뜨린 이야기, 에어팟 분실한 썰, 연말 모임에서 보여주면 경품 싹쓸이하는 장기 자랑 등 코믹한 요소로 시종일관 눈길을 사로잡는다. 몇 개의 피드만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유쾌하고 기분 좋은 태도로 인생을 살아가는지 느껴질 정도. 이러한 인간적인 호감이 결국 브랜드에 대한 관심과 구매로 이어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오니스트’의 김재현 대표.

‘오니스트’의 김재현 대표.

하지만 대표가 전면에 나설 경우 그에 따른 리스크도 수반되기 마련이다. 개인 인스타그램을 통해 운영 중인 의류 쇼핑몰을 간접 홍보하곤 했던 A 씨는 “인플루언서로서 홍보 효과를 톡톡히 보긴 했지만 사생활 침해나 악플 등으로 큰 고통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사진마다 얼굴이나 몸매를 평가하는 무례한 댓글은 기본이고, 실시간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통해 머물고 있는 식당이나 카페로 찾아와 몰카를 찍는 경우도 있었다는 것. 또 브랜드와 관련한 사소한 실수도 모두 대표 탓으로 몰아 일방적으로 비난받는 경험도 적지 않았다. 단순한 배송 착오를 두고 불특정 다수가 보는 댓글을 통해 ‘양심이 없다’ ‘옷이 저질이다’ 같은 비방을 늘어놔 곤란했던 적이 꽤 많았다는 것. 그는 게시물을 통해 노출된 가족에게까지 원색적인 인신공격이 돌아오면서 개인사가 드러나는 SNS 활동을 일체 포기하고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다고 털어놨다.

과거 뷰티 브랜드 대표이자 인플루언서로 활약했던 B 씨 역시 “당시 돈은 많이 벌었지만 악플과 인신공격으로 정신이 피폐해졌다”며 “SNS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좋지만 개인적인 생각이나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창구가 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SNS는 치열한 욕망으로 들끓는 곳이다. 브랜드의 성공을 질투하고, 탐하고, 험담하는 이들이 분명 존재한다. 이 모든 걸 정신적으로 감당할 수 있을 때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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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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