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각이란 무엇인가. 선문답 같은 이 질문에 황농문 몰입아카데미 대표는 명쾌한 답을 내놓는다. “‘오늘 저녁 뭐 먹지’ ‘차가 달려오면 피해야지’가 생각일까요? 이런 건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생각이 ‘나는’ 거예요. 본능의 뇌가 특별한 노력 없이 반응하는 거죠. 진짜 생각은 의식의 뇌, 전전두엽을 써서 파고드는 거예요.” 그리곤 이렇게 덧붙인다. “경험상 90% 아이들은 생각이 뭔지, 어떻게 하는 건지 잘 몰라요.”
3년 전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로 정년을 마친 황 대표는 현재 몰입아카데미에서 학생들에게 몰입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그에게 교육이란 몰입하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고, 몰입이란 곧 생각하는 능력을 되살리는 과정이다. 몇 날 며칠을 풀리지 않는 난제에 몰두해 종국에는 그를 해결해내는 게 학습의 핵심이라는 것.
황 대표가 이토록 몰입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 자신이 몰입의 효과를 체감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고도의 몰입 상태에서 ‘세라믹의 비정상 입자 성장’과 같은 공학 분야의 오랜 난제를 규명했다. 그 성과로 서울대 교수에도 임용됐고, 이후 자신의 몰입 경험과 구체적 방법론을 다룬 책 ‘몰입’ ‘슬로싱킹’ 등을 출판하기도 했다.
황 대표는 “교육에 대한 정의를 새로 쓰는 것은 AI 시대라는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고 말한다. 그는 “지식을 단순 암기해서 문제를 푸는 행위는 AI에 의해 전부 대체될 것”이라며 “AI가 학습한 적 없는 새로운 문제를 자기 힘으로 해결하는 사람만 살아남을 수 있고, 이런 관점에서 몰입을 바라보면 성적 향상은 덤으로 따라오는 이점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잠재력 엄청난 뇌 전전두엽, 능력 십분 발휘하려면”
어떤 상태가 몰입에 성공한 것인지 감이 확 오지는 않아요. ‘몰입하면 이렇게 된다’를 설명해주세요.아무 진전이 없는 문제 하나를 길을 걸을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샤워할 때도 계속 의도적으로 생각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의식 속에 나와 그 문제 오롯이 둘만 존재하는 시간이 와요. 굉장히 특이한 경험인데, 갑자기 내 머리가 슈퍼 두뇌가 된 것처럼 평소에는 도저히 생각나지 않던 창의적 아이디어가 마구 쏟아지죠. 이러면 문제를 해결하는 게 괴로운 게 아니라 즐거워져요. 매일매일 전율할 정도의 기적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르니까요. 이 경험을 하고 ‘대체 원리가 뭘까’ 싶어 뇌과학 공부도 많이 했어요.
원리가 뭔가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이라는 책 얘기를 먼저 할게요. 이 책에서 카너먼은 우리 사고의 층위를 시스템 1과 시스템 2로 구분해요. 시스템 1 사고는 그냥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들이에요. 직감이 그렇고, 교과서를 달달 외워서 ‘A를 보면 B가 생각난다’ 하는 것도 시스템 1 사고에 해당하죠. 시스템 2 사고는 달라요. 뉴턴이 ‘만유인력’을 발견한 뒤에 “내내 그 생각만 했다”고 말했다고 해요. 여기서 말하는 생각이 바로 시스템 2 사고예요. 계속 현상을 분석하고 이유를 궁리하는, 뇌 전전두엽을 쓰는 사고죠. 이 부분을 평소에 발달시켜 놓으면 엄청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게 돼요. 앞서 말했듯 모든 아귀가 맞아떨어지면서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르죠. 그런데 대부분 사람이 이런 능력을 평생 제대로 써보지 않고, 이런 능력이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아요.
그래서 몰입아카데미를 열었나요.
사실 저는 정년을 기다렸어요. 교수를 할 사람은 저 말고도 많지만 뇌를 어떻게 써야 할지를 알려줄 사람은 별로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무엇보다 저는 수년간 몰입 상태를 반복적으로 경험했어요. 어떤 경험이 재현된다는 건 과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뜻이에요. 이걸 활용해서 사람들이 한 단계 진일보할 수 있다고 하면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어디 있겠어요.

“어려운 수학 문제 하나, 50시간 동안 풀어봐야죠”
몰입을 처음 얘기한 게 20여 년 전이에요. 학생들의 몰입 능력은 어떻게 변화했나요.점점 악화하고 있죠. 우리 뇌는 ‘use it or lose it(쓰거나 잃거나)’이라는 대원칙을 따라요. 사용하면 계속 발달시키고 안 쓰면 퇴화시키죠. 스마트폰으로 SNS나 유튜브를 볼 때 우리는 시스템 1 사고를 해요. 본능이나 감정에 관련된 뇌만 활성화되죠. 이러면 전전두엽 기능, 몰입 능력은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스마트폰이라는 게 내가 집중하려고 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집중이 되잖아요. 콘텐츠가 자극적이니까요. 이러면 글을 읽거나 문제를 풀 때처럼 일부러 몰입하려는 노력을 안 하게 되니까 관련 뇌 기능이 자꾸 퇴화하는 거죠.
몰입을 연습하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가장 좋은 방법은, 관련 지식은 있지만 풀기 어려운 수학 문제에 도전하는 거예요. 처음에는 30분~1시간 안에 풀리는 수준이면 좋아요. 그러다 차차 난도를 높여서 10시간, 20시간, 제가 “50시간 몰입의 법칙”이라고 말하는 50시간까지 가보는 거죠. 생각을 하면 할수록 몰입도는 계속 올라가요. 그동안은 아이들이 늘 풀리는 문제를 푸니까 혹은 어려워도 금방 해설을 보니까 이런 경험을 하기 어려웠을 거란 말이죠. 이렇게 해서 45시간쯤 됐을 때부터는 평지를 걷듯 저절로 문제가 해결되는 경험을 해요. 여기서 핵심은 몰입은 아주 편안한 상태로 해야 한다는 거예요. 각 잡고 책상에 앉아서 하는 게 아니죠. 편안하게 등을 기댈 수 있는 의자에 눕듯이 앉아서 ‘평생 이 문제 하나만 풀면 된다’는 마음으로 느긋하게 생각해야 해요. 졸리면 선잠도 자가면서요. 편안함이 중요한 이유는 몸이 이완된 상태일 때 뇌가 훨씬 활발하게 작동하기 때문이에요.
몰입에 실패하는 사람도 있었나요.
초등학생도, 중학생도, 60세 넘은 분도, 최종 학력이 초졸인 분들도 대부분 성공했어요. 어린아이들은 도파민이 잘 나와서 성인보다 더 잘하죠. 다만 시스템 2 사고를 너무 오랫동안 안 하고 산 사람들은 시간이 꽤 걸려요. 생각이라는 것을 해본 경험이 없다 보니, 예를 들어서 제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라’는 문제를 주면 ‘이렇게 살아야지’를 찾는 게 아니라 주문을 외듯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계속 되뇌어요. 그게 생각이라고 여기죠. 그렇게 나가떨어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10명 중 7~8명 정도가 성공한다고 할 수 있겠네요.
학교, 학원으로 바쁜 아이들이 한 문제에 오래 매달리는 게 가능할까요.
저는 100문제를 푸는 것보다 한 문제를 제대로 푸는 교육이 좋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건 이미 객관적 데이터로 검증된 교육법이기도 하고요. ‘헝가리 현상’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나요. 헝가리는 전체 국민 수가 1000만 명 정도밖에 안 되는데, 그중 노벨상 수상자가 16명이나 돼요. 미국 ‘맨해튼 프로젝트’의 주역들이 모두 헝가리 출신이기도 하죠. 이들이 어떻게 교육을 받았는가 하면, 어린 시절에 어려운 문제에 도전할 기회가 충분히 주어졌다는 거예요. 웨트베스라는 전 교육부 장관의 이름을 붙인 수학 경시대회에서 우승하는 게 굉장히 큰 붐이고, 그와 관련해서 한 수학 교사가 만든 수학 월간지 ‘쾨말’의 문제를 아이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머리를 싸매고 푸는 분위기가 있었다는 거죠. 그렇게 시간을 들여서 수학적 고민을 하다 보니 역사적으로 이렇게 많은 천재가 나올 수 있던 거예요.
무엇보다 난제를 끝까지 해결하려는 자세가 다가오는 시대에 정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AI가 대체하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죠. 앞으로 사회에서, 기업에서 처음 마주하는 문제가 나타날 것 아니에요. 그런 건 AI도 학습한 적 없으니 답을 줄 수 없죠. 이때 몰입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자기 힘으로 문제를 풀 거예요. 기업에서 말하는 ‘창의성과 도전 정신을 가진 인재’는 바로 이런 사람을 말하는 거죠. 이런 사람만 몸값이 오를 거예요.

“저녁 8시 스마트폰 반납 후 몰입 시간 가지세요”
몰입에 재미를 붙이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좋은 방법을 알려주세요.도파민 보상을 경험하면 재미를 느낄 수 있어요. 뇌의 편도체는 어떤 경험이 얼마나 즐겁고 유쾌했는지, 힘들고 고통스러웠는지 강도를 전부 계산해서 그 계산값을 전두엽에 저장해요. 그리고 나중에 보상이 컸던 행동을 기억하고 선택하게 하죠. 처음 어려운 문제를 접하면 답답하고 짜증 나고 부정적인 감정이 계속 올라와요. 그러다 문제가 탁 풀리면 엄청난 도파민이 나오면서 기분이 좋아지죠. 이 과정을 몇 번 경험하면 뇌는 몰입을 보상이 큰 행위로 기억해요. 사람들이 등산을 즐기는 것도 이와 비슷하죠. 오르막길을 가는 건 너무 힘든데, 정상에서 아름다운 경치를 내려다보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 어려웠던 과정이 다 상쇄되잖아요. 그래서 반복적으로 등산을 하는 거고요.
부모들 중에도 몰입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이 많을 듯해요. 부모에게는 어떤 몰입 연습이 필요할까요.
매일 저녁 가족들이 다 같이 몰입 시간을 가지면 좋아요. 저녁 식사를 하고 8시쯤부터 잠들기 전까지 각자 무언가 한 가지에 몰입하는 거죠. 부모까지 스마트폰을 전부 반납하고요. 아이들은 앞서 말한 어려운 수학 문제에 도전하면 되겠죠. 부모는 책을 읽는다든지 평소 하고 싶던 공부를 하고요. 이때 아이가 생각보다 문제를 빨리 풀었다면 자축의 시간을 갖고 더 이상 문제를 안 풀게 해도 돼요. 남은 시간은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 다른 활동을 하게 해주세요. 반대로 잠들 때까지 문제가 안 풀렸다면 그 문제는 자연스럽게 ‘오늘의 문제’에서 ‘이 주의 문제’로 넘기면 돼요. 천천히 다시 생각해보고 도전하도록요.
몰입을 잘하는 사람의 인생은 무엇이 달라질까요.
기본적으로 생각이 날카로워져요. 그리고 이건 행복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죠. 버나드 바스의 ‘의식의 통합 작업 공간 이론’에 따르면, 뇌에는 의식의 무대와 무의식의 무대가 있고 그중 주인공인 의식의 내용이 무의식에 계속 생중계된다고 해요. 다시 말해 의식의 내용이 무의식을 바꾸고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거죠. 이때 의식의 무대에 시스템 1 사고에 해당하는 내용들, 말하자면 잡념이나 걱정, 불안 같은 것만 있다면 이 사람의 삶 자체가 우울해지겠죠. 그리고 그게 싫으니까 다시 자극적인 콘텐츠로 도피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고요. 몰입은 의식의 내용을 자기가 필요로 하는 생각으로 채우는 과정이에요. 의미 있는 생각으로 의식을 채우면 무의식 속 쓸데없는 걱정들이 사라지죠. 몰입은 인생 전체의 행복도를 끌어올리는 데도 도움이 돼요.
#황농문 #몰입교육 #여성동아
사진 이상윤 게티이미지 디자인 강부경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