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EOPLE

“딸에게 계속 도전하는 모습 보여주고 싶어요”

최강 빌런으로 독하게 돌아온 장윤주

김명희 기자

2025. 11. 24

넘치는 카리스마로 런웨이를 주름잡던 장윤주가 드라마에서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착한 여자 부세미’ 종영 이후 장윤주와 나눈 대화들.

‘톱 모델 장윤주’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녀는 작은 얼굴에 큰 키, 균형 잡힌 몸매로 ‘신이 내린 몸매’라는 찬사를 들으며 1990년대 말부터 한국 패션계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군림했다. ‘무한도전’ 등에서 유쾌한 예능감으로 대중적 사랑을 얻는가 하면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며 음악적 재능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요즘은 흥행의 여왕으로 자리매김 중이다. 사실 장윤주는 서울예대 영화과 출신으로 10년간 꾸준히 배우의 길을 다져왔다. 영화 데뷔작 ‘베테랑’은 1341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첫 드라마 ‘눈물의 여왕’은 tvN 역대 최고 시청률(24.9%)을 기록했다. 그리고 최근 종영한 드라마 ‘착한 여자 부세미’에서는 데뷔 이후 첫 악역을 맡아 ENA 올해 최고 시청률(7.1%)을 견인했다. 

‘착한 여자 부세미’는 흙수저 경호원 김영란(전여빈)이 시한부 가성호(문성근) 회장과 계약 결혼을 맺으며 벌어지는 재벌가 복수극을 그린다. 장윤주는 가성호의 의붓딸이자 연극영화과 교수인 가선영으로 분해, 교도소 심리치료 극을 통해 사람을 조종하고 살인까지 부추기는 극악의 빌런을 소화했다. 그녀는 처음으로 악역을 연기하며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다고 한다. ‘모델 장윤주’의 스타일링을 보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베테랑’에선 왈가닥 형사로 후줄근한 트레이닝복 차림을, ‘눈물의 여왕’에선 ‘용두리 패피’ 미선의 촌스러운 패션을 힙하게 소화했던 그녀가 이번엔 날 선 캐릭터를 위해 각 잡힌 명품 의상을 입고 나온다. 드라마 속 의상 대부분은 장윤주의 실제 소장품으로, 그녀만의 감각이 캐릭터에 깊이를 더한다.

2015년 네 살 연하의 사업가와 결혼해 2017년 딸을 출산한 장윤주는 런웨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시절과 달리, 배우로서는 단역부터 시작해야 했다. 낯선 자리에서 ‘이 길이 맞을까’라는 고민도 수없이 했지만, 그럴 때마다 “엄마, 연기 계속해”라는 딸의 한마디가 가장 큰 힘이 됐다. 딸에게 도전의 롤 모델이 되고 싶은 그녀에게 ‘착한 여자 부세미’는 새로운 도약을 증명한 작품이었다.

드라마 ‘착한 여자 부세미’에서 처음으로 악역을 맡은 장윤주. 

드라마 ‘착한 여자 부세미’에서 처음으로 악역을 맡은 장윤주. 

몸에서 우러나는 존재감 큰 배우

드라마가 종영했습니다. 소감이 어떠세요.

그동안은 사람들과 함께 드라마를 보다가 마지막 12회는 혼자 집중해서 봤는데, 정말 많이 울었어요. 문성근 선배님과 함께한 감정신이 너무 잘 표현이 됐고, 제가 나오는 장면은 아니지만 가성호 회장이 영란에게 남긴 영상 메시지도 좋더라고요. “내 욕심으로 복수를 시작했지만, 너는 이제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대사가 너무 뻔한 말 같으면서도 울컥하더라고요. 아직도 여운이 남아서 작품이 끝난 것 같지 않아요. 많은 분이 사랑해주시고 시청률도 잘 나와서 신기하고 감사한 마음이에요. 문성근 선배님께는 장문의 감사 문자를 드렸어요.



문자 메시지 내용이 궁금한데요.

가성호와 가선영의 마지막 대결 장면을 10시간 넘게 찍었거든요. 문성근 선배님이 출연한 영화 ‘초록물고기’를 보며 자란 세대라 그런 분과 연기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어요. 제가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한 게 영화 ‘세자매’ 때부터인데, 모델로서 무대에서 쌓은 에너지를 연기하며 발산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너무 답답했어요. 선배님께 그 이야기를 했더니 “너는 발끝에서부터, 몸 전체에서 나오는 존재감이 크다. 그건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특별함”이라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내가? 정말?’ 싶어 반신반의하면서도 정말 큰 힘이 됐어요.

촬영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요.

박유영 감독님, 촬영감독님, 배우들, 스태프 모두 정말 한마음이었어요. 스타 작가나 톱 배우가 없어도 현장이 이렇게 단단하고 유쾌할 수 있다는 걸 느꼈죠.

재벌가 일원이자 대학교수인 가선영은 각 잡힌 슈트, 셔츠, 가죽 소재 의상을 주로 입고 등장하는데, 대부분은 장윤주와 스타일리스트의 소장품이라고.  

재벌가 일원이자 대학교수인 가선영은 각 잡힌 슈트, 셔츠, 가죽 소재 의상을 주로 입고 등장하는데, 대부분은 장윤주와 스타일리스트의 소장품이라고.  

모델 시절 알바로 찍은 영상 보고 캐스팅  

가선영 역은 어떻게 맡게 됐나요.

박유영 감독님 제안이었어요. 20대 초반 제가 패션쇼 무대에 섰을 때 아르바이트로 영상을 찍은 적이 있는데, 그때의 저를 ‘카리스마 있는 모델’로 기억하고 계셨어요. 그러다 제가 출연한 독립영화 ‘최소한의 선의’를 보시고 ‘장윤주 배우가 가진 시니컬한 힘이 가선영에게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했대요. 제작사에서는 “장윤주 씨요?” 하며 놀랐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감독님의 전작 ‘유괴의 날’을 재미있게 봤고, 가선영의 전사부터 연기 방향까지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셔서 ‘이분이라면 믿고 가도 되겠다’ 싶었죠.

가선영 역할에 대해선 역대급 빌런이었단 평이 많았어요.

저도 대본을 처음 봤을 땐 ‘내가 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악역 제안이 몇 번 있었지만, 제가 감당 가능한 범위 안에서 즐기며 할 수 있는 역할만 하자는 주의라 고사했었거든요. 이번에도 처음엔 “가선영보다는 코믹한 캐릭터인 유치원 원장이 낫지 않을까요?” 했을 정도였어요(웃음). 그러다 감독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확신이 생겼고, 결국 믿고 도전했죠.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시간이 걸리지만,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스타일이에요.

가선영이란 인물을 어떻게 구축했나요.

배역을 맡으면 그 인물의 성향, MBTI까지 구체적으로 상상해요. 연극영화과 교수라는 직업 때문에 자세, 걸음걸이, 헤어스타일까지 세세하게 구상했죠. 머리를 묶는 위치 하나도 계산했어요. 너무 높으면 발랄해 보이고, 낮으면 나이 들어 보이니까요. 저는 그 균형을 ‘숨 막히는 완벽주의자’의 상징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의상도 화제였어요. 전투복 같다는 반응도 있던데요.

초반엔 장례식 장면이 많아 블랙이나 화이트 옷을 주로 입었고, 이후엔 블루 또는 레드 등 강렬한 컬러로 갔어요. 전투복처럼 보였다면 성공이에요. 첫 회에서 입은 샤넬 트위드재킷은 블랙핑크 제니 씨가 광고에서 입었던 것과 같은 제품인데, 스타일리스트가 직접 구입했어요. 드라마는 방영할 때가 되면 시즌이 지나기 때문에 명품 협찬이 어려워서 제 옷을 많이 활용했죠. 특히 스카프들은 모두 제 소장품이에요.

눈빛과 목소리가 강렬했는데, 어떻게 만들어갔나요.

대학교 때 친구가 “윤주야, 너 목소리 되게 많다”라고 했던 게 기억나요. 노래할 때, 예능 할 때, 내레이션 할 때 다 다르거든요. 이번엔 그중 하나를 꺼내 썼어요. 감독님이 “윤주 씨는 말할 때 어미를 늘어뜨리는데, 가선영은 에지 있게 어미를 딱 끊자”고 디렉션을 주셔서 그걸 집중적으로 연습했죠. 눈빛은 ‘비릿한 미소’ ‘깔보는 시선’ ‘분노’ 등 여러 결을 실험했어요.

자신의 연기를 보며 아쉬운 점도 있었나요.

모든 장면이 아쉽죠. 아직 카메라 앞이 낯설어요. 그래도 이번엔 덜 어색했어요. 모델처럼 사진 찍힐 때의 에너지를 연기에도 써먹으면 참 좋겠는데, 아직 잘 안 돼요. 편집된 장면을 보면서 ‘내가 저렇게 눈썹을 움직였어? 귀도 움직이네?’ 하고 놀랐어요. 솔직히 내가 봐도 좀 무섭더라고요(웃음). 

가선영처럼 상속을 위해 가족을 해하는 경우가 뉴스에 가끔 나오기도 하죠. 

저는 가선영의 목표가 가업 상속이나 돈이 아니라 ‘복수’라고 봤어요. 어린 시절부터  ‘우리 가족을 망친 건 새아빠(가성호) 때문이야’라는 믿음이 각인돼 있었던 거죠. 가성호 회장이 선영을 증오하듯, 선영도 그를 향한 증오로 살았을 거예요. 불쌍한 아이였다고 생각했어요.

악역을 하면서 참고한 인물이나 자료가 있었나요.

있어요. 근데 말하면 큰일 나요(웃음). 감독님이 주신 참고 자료도 있었고, 제 일상이 평화롭고 삶의 풍파가 있지 않다 보니 실제 다큐멘터리를 많이 봤어요. ‘사람이 왜 이렇게까지 될까?’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만든 걸까?’ 같은 질문을 던지며 분석했어요. 그런 과정이 큰 도움이 됐어요.

악역이 잘 어울린다는 반응이 많아요.

계속 시켜주세요(웃음).

댓글 반응을 살펴보는 편인가요. 

댓글을 찾아보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괜히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요. 인스타그램에 달린 댓글 정도만 봐요. 가끔 안 좋은 글이 있으면 “뭐야, 넌?” 하고 싶지만(웃음), 그냥 넘깁니다.

슬럼프에 빠졌을 때 딸이 “연기 계속하라”며 응원  

연기를 조금 일찍 시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없나요. 

모델 할 때는 “윤주가 키가 조금만 더 컸으면 좋겠다”는 말이 제일 싫었어요. 지금은 “윤주가 연기를 어릴 때부터 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말이 그렇게 듣기 싫더라고요(웃음). 이미 지나서 되돌릴 수 없으니까요. 저는 지금이 좋아요. 체력도 경험도 조화롭게 쓸 수 있는 시기니까요. 앞으로도 제 속도로 꾸준히 걸어가고 싶어요.

엄마가 된 이후 달라진 점이 있나요.

지금까지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없다면 ‘이 일을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은 들어요. 임산과 출산 기간 1년 6개월 정도 쉬면서 좀 더 넓은 눈으로 제가 일하는 세계를 봤던 것 같아요. 만삭이었을 때 노희경 작가님의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를 봤는데, 정말 배우분들이 부럽더라고요. 저 나이가 될 때까지 좋은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우라는 직업은 참 좋겠다는 생각이었죠. 남편과도 “우리가 아이에게 먼저 도전하는 삶을 보여주자”는 이야기를 자주 얘기해요. 그런 시간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죠.

딸이 엄마가 연기하는 걸 좋아하나요.

그럼요. 사실 모델로서는 늘 무대의 주인공이었는데, 연기는 비중이 큰 것도 아니고 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도 아니어서 ‘이게 내 길이 맞는 건지, 내가 과연 잘하고 있는 건지’ 고민이 됐죠. 그래서 언젠가 아이에게 “엄마 연기 계속해야 할까?” 물었더니 “엄마, 당연하지. 연기해야지!” 하더라고요. 그 한마디에 힘이 났어요. 딸이 제가 연기하는 걸 너무 좋아해요. 지난번 ‘눈물의 여왕’은 정주행했는데, 이번 작품은 너무 자극적이라 “조금 더 크면 보자” 했더니 울더라고요(웃음).

지금까지 작품들이 모두 흥행해서 앞으론 부담이 좀 될 것 같아요. 

잘되면 감사하지만, 결과에 휘둘리진 않아요. 요즘은 그냥 ‘그랬어? 고마워!’ 하는 마음이에요.

앞으로 해보고 싶은 역할은요.

최근 본 드라마 ‘은중과 상현’처럼 잔잔하고 감성적인 작품이 좋아요. 화려하지 않아도, 깊고 섬세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착한여자부세미 #장윤주 #여성동아

사진제공 엑스와이지스튜디오 사진출처 장윤주 인스타그램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