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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무해한 매력! 롱폼 전성시대

오한별 객원기자

2025. 07. 24

최근 시청자들의 시선이 다시 ‘길고 느린 콘텐츠’로 향하고 있다. 화려한 편집 없이도 오래 머무르게 만드는 롱폼 콘텐츠의 매력은 무엇일까.

평소 스타일과 유머를 엿볼 수 있는 한소희의 블로그.  blog.naver.com/jjunnk

평소 스타일과 유머를 엿볼 수 있는 한소희의 블로그.  blog.naver.com/jjunnk

백상예술대상 예능 작품상을 수상한 유튜브 채널 ‘뜬뜬’의 ‘풍향고’. @ddeunddeun

백상예술대상 예능 작품상을 수상한 유튜브 채널 ‘뜬뜬’의 ‘풍향고’. @ddeunddeun

올해 5월 5일 열렸던 제61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유튜브 채널 ‘뜬뜬’의 웹 예능 ‘풍향고’가 예능 작품상을 수상했다. 숏폼 전성기 속 100분 안팎의 긴 러닝타임으로 승부한 이 콘텐츠가 지상파·OTT 예능을 제치고 트로피를 거머쥔 건 이례적이다.

‘풍향고’는 ‘핑계고’의 스핀오프 콘텐츠로 유재석, 황정민, 지석진, 양세찬이 스마트폰 없이 베트남 사파를 여행하는 리얼 버라이어티. ‘애플리케이션(앱) 사용 금지’라는 설정 아래 출연진이 길을 헤매고, 사소한 일에도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그대로 담겼다. 제작진의 개입을 최소화한 대신 긴 호흡으로 인물의 자연스러운 관계성과 서사를 드러낸 점이 시청자에게 깊은 몰입감을 안겼다. 단순한 여행 예능을 넘어 ‘기획 없는 진정성’만으로 서사를 이끌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누적 조회수는 4000만 회를 넘어섰다. “아저씨들의 대환장 케미” “1시간 반? 11시간짜리는 없나요?”라는 댓글이 줄을 이었고, 자극 없이도 오래 집중할 수 있는 콘텐츠라는 인식을 바꿔놓은 대표 사례로 자리 잡았다.

게스트를 초대해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함께 진솔한 이야기도 나누는 콘텐츠 형식인 유튜브 채널 ‘요정재형’. @fairyjaehyung

게스트를 초대해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함께 진솔한 이야기도 나누는 콘텐츠 형식인 유튜브 채널 ‘요정재형’. @fairyjaehyung

‘풍향고’의 성공이 예외적인 사례는 아니다. 유튜브 채널 ‘침착맨’의 ‘삼국지’ 강의는 5시간이 넘는 분량에도 불구하고 누적 조회수 2400만 회를 돌파했다. 최근에는 팟캐스트 형식의 토크 콘텐츠인 ‘침착맨의 둥지’도 대부분 영상 길이가 100분에 달하며, 회당 조회수 70만~80만 회, 댓글 1500개 이상을 기록 중이다. 정재형의 ‘요정식탁’은 블랙핑크 제니, BTS 제이홉, 배우 이영애 등 톱스타들이 출연해 1시간 넘는 분량의 토크를 나누는 형식임에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이 밖에 유튜브 채널 ‘채널십오야’의 ‘나영석의 와글와글’, 신동엽의 ‘짠한형 신동엽’, 찰스엔터의 ‘월간 데이트’ 등도 롱폼 콘텐츠로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TV에서 보기 어려웠던 톱스타의 진솔한 대화를 오히려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이 이들 콘텐츠의 공통된 매력으로 꼽힌다.

시청자 반응은 명확하다. “쇼츠에 길들여졌다고 생각했는데, 1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냥 틀어놓고 보기 좋아서 ‘밥 친구’로 자주 찾게 된다”는 댓글이 이어진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라이브 방송에 익숙해진 MZ세대에게 롱폼은 일상 속 ‘틈새 몰입’과 ‘정서적 백색소음’을 동시에 제공하는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도파민에 절은 뇌, 순한 콘텐츠를 찾다

숏폼 콘텐츠의 대표 주자인 틱톡조차 이제 30분 영상 업로드를 지원하는 등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는 분위기다. 사실 그동안 빠르고 자극적인 숏폼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도파민 중독, 집중력 저하, 팝콘 브레인(열을 가하면 팝콘이 톡톡 터지듯 강렬한 자극에만 뇌가 반응하고 일상생활에는 무감각해지는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짧은 시간 안에 자극적인 정보만 소비하게 되면 정제된 맥락이나 깊이 있는 메시지를 받아들이기 어려워진다.



배우 박병은의 소박한 휴가를 담은 ‘나는 일반인이다’. 슴슴한 매력 덕분에 마니아층의 사랑을 받고 있다. @15ya_egg

배우 박병은의 소박한 휴가를 담은 ‘나는 일반인이다’. 슴슴한 매력 덕분에 마니아층의 사랑을 받고 있다. @15ya_egg

롱폼에 집중하는 흐름은 콘텐츠 소비뿐 아니라 제작 환경에도 영향을 미쳤다. 짧고 임팩트 있는 편집이 아닌 느슨한 호흡과 심심한 매력의 ‘무해함’이 콘텐츠의 키워드로 떠오른 것이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트렌드 코리아 2025’에서 ‘무해력’을 올해 키워드 중 하나로 선정하며 “자극 없는 순한 콘텐츠가 사랑받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최근 나영석 PD의 ‘채널십오야’는 ‘박병은의 나는 일반인이다’를 통해 배우 박병은의 낚시, 걷기 등 정적인 취미를 따라가며 ‘무해한 콘텐츠’의 정수를 보여줬다. 별다른 사건이나 웃음 장치 없이도 “그냥 틀어놓기 좋은 영상” “계절마다 보고 싶다”는 반응이 이어졌고, 이에 힘입어 콘텐츠는 봄→여름→가을→겨울로 이어지는 계절 연작 시리즈로 확장되었다. 화려한 포맷 없이도 진정성과 잔잔한 감정만으로 롱폼 콘텐츠의 힘을 증명한 사례다.

롱폼의 인기는 영상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네이버에 따르면 2022년 개설된 신규 블로그 계정 중 76%가 MZ세대였다. 짧고 휘발성 강한 숏폼으로는 자신을 온전히 표현하기 어렵다는 자각에서 비롯된 흐름이다. 실제로 배우 신민아, 한소희, 김도연 등도 SNS보다 블로그를 더 즐겨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극 없이 감정과 취향을 길게 풀어놓을 수 있다는 점, 광고나 타인의 피드백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공간을 조용히 꾸릴 수 있다는 점에서 블로그는 지금 다시 비밀스러운 소통 창구가 되고 있다.

유튜브의 일상 브이로그 역시 길어지는 분위기다. 여행 유튜버 곽튜브는 최근 40~50분짜리 여행 영상도 잘라내지 않고 업로드하고 있다. 호주에서 일상을 공유하는 유튜버 해쭈 역시 40분 이상 분량의 영상으로 수십만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이들 영상과 관련해 “그냥 흐르듯 보는 느낌”이라는 평이 주를 이룬다. 

곽튜브가 짧은 어학 연수차 떠난 ‘홋카이도 유학길’ 영상은 5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에도 172만 회 이상 재생됐다. @JBKWAK

곽튜브가 짧은 어학 연수차 떠난 ‘홋카이도 유학길’ 영상은 5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에도 172만 회 이상 재생됐다. @JBKWAK

롱폼과 숏폼이 공존하는 시대 

숏폼과 롱폼의 대결 구도는 제로섬이 아니다. 실제로 많은 유튜브 제작자가 롱폼 영상의 하이라이트만 편집해 쇼츠로 업로드하고, 쇼츠로 유입된 시청자들이 전체 영상을 보게 만드는 선순환 구조를 이어가고 있다. 플랫폼의 알고리즘도 이 같은 전략에 유리하게 작동 중이다. 중요한 건 콘텐츠의 길이가 아니라 어떤 이야기를 얼마나 진정성 있게 전하느냐다. 짧은 콘텐츠가 필요한 순간도, 긴 이야기가 위로되는 순간도 있다. 지금은 그 둘이 나란히 공존하는 시대다.

#롱폼 #핑계고 #침착맨 #여성동아
‌사진출처 네이버 블로그 유튜브 채널 ‘뜬뜬’ ‘채널십오야’ ‘요정재형’ ‘침착맨’ ‘해쭈’ ‘곽튜브’ ‘찰스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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