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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이방카 트럼프, 카다시안 패밀리도 푹 빠진 아카이브룩

김명희 기자

2025. 03. 24

이방카 트럼프부터 켄달 제너까지, 옷 잘 입기로 소문난 셀럽들이 아카이브 룩에 빠진 이유.

패션계에는 코코 샤넬과 크리스티앙 디오르부터 위베르 드 지방시, 존 갈리아노, 알렉산더 매퀸까지 천재 디자이너들이 창조해낸 ‘보물 창고’, 컬렉션 아카이브가 있다. 유행은 돌고 도는 것이고, 내로라하는 디자이너들도 이러한 아카이브에서 영감을 얻는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디자인의 아이디어를 얻는 유일한 방법은 과거를 돌아보는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최근엔 디자이너들뿐 아니라 셀럽들도 아카이브 룩에 푹 빠졌다. 킴 카다시안이 2022년 마릴린 먼로의 누드 드레스를 입고 멧 갈라에 등장해 센세이션을 일으킨 이후 점점 더 많은 스타가 레드카펫의 중요한 순간을 빛낼 의상을 과거 컬렉션에서 찾고 있다. 가수 리한나는 2024년 패션 어워드에서 크리스티앙 라크루아가 2002 F/W 오트쿠튀르 의상으로 선보인 코발트블루 컬러 퍼 트리밍 코트와 초현실적 디자인의 모자를 매치했고, 카이아 거버는 지난해 아카데미 뮤지엄 갈라에서 지방시의 1997 F/W 드레스를 입었다. 배우 테일러 러셀은 지난해 8월 베니스영화제에서 샤넬의 1993 F/W 오트쿠튀르 드레스를 선택했는데 허리 윗부분은 몸에 피트되는 코르셋 디자인, 엉덩이 부분은 풍성한 레이스 오버레이로 장식한 이 드레스는 1993년 컬렉션 당시 슈퍼모델 클라우디아 시퍼가 입었던 작품이다.

트럼프 가문과 LVMH의 연결고리, 이방카의 헵번 드레스

최근 아카이브 룩이 대중의 관심을 얻은 건 1월 20일(현지 시간)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무도회에서 장녀 이방카 트럼프가 오드리 헵번이 영화 ‘사브리나’(1954)에서 입었던 지방시 드레스를 그대로 착용하고 등장하면서다. 화이트 컬러의 오간자 실크 소재에 검은색 꽃 자수가 놓인 이 드레스는 헵번 스타일을 대표하는 아이코닉한 의상 중 하나다. 이방카는 여기에 팔꿈치 길이의 검은 오페라 장갑, 스틸레토 힐, 다이아몬드 초커를 매치해 헵번의 고전적인 룩을 완벽히 재현했다. 이 드레스는 ‘사브리나’ 촬영 이후 배우이자 할리우드의 유명한 의상 수집가인 데비 레이놀즈의 손에 넘어갔다가 그녀가 사망한 직후인 2017년 경매로 나와 21만7000달러(약 3억 원)에 낙찰됐고, 2024년 2월 다시 한번 경매에 부쳐져 12만5000달러(약 1억8000만 원)에 새로운 주인을 찾았다. 이방카가 헵번의 드레스를 입고 나왔을 때 많은 사람은 헵번이 입었던 드레스와 똑같은 오리지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방카와 헵번의 신체 조건이 다른 점, 그리고 경매에 나왔을 당시 원본 드레스는 색이 누렇게 바랬는데 이방카가 입은 드레스는 순백색이었던 점 등으로 미루어 복제품일 거라는 추측이 우세해졌고, 이후 이방카가 자신의 SNS에 “지방시가 나를 위해 새로 제품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방카는 평소 오드리 헵번 스타일에서 영감을 얻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그녀가 헵번의 상징성을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그대로 가져온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이 흘러나오고 있다. 헵번의 장남은 한 인터뷰에서 “돌아가신 어머니에게서 영감을 얻어 우아함과 품격을 추구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면서도 “어머니의 정치 성향은 트럼프와는 맞지 않는다”고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방카의 헵번 아카이브 룩이 지방시와 디올 등을 거느린 세계적인 명품 그룹 LVMH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성사됐다는 것이다. 이방카는 앞서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서도 디올의 1950년대 컬렉션에서 영감을 얻은 녹색 스커트 정장과 베레모를 착용했다. 그녀는 취임식과 무도회 의상 사진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의상을 제작해준 디올과 지방시 아틀리에에 감사를 표했다. 트럼프 가문과의 돈독한 관계를 반영하듯 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과 아내 엘렌 메르시에, 디올 CEO이자 맏딸인 델핀 아르노, 주얼리 브랜드 티파니앤코의 커뮤니케이션 총괄을 맡고 있는 셋째 아들 알렉상드르 아르노 등이 트럼프 취임식 귀빈석에 초대받았다.


마릴린 먼로의 관능을 닮고 싶었던 킴 카다시안

인스타그램 팔로어 360만 명을 거느린 파워 인플루언서 킴 카다시안은 2022년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코스튬 인스티튜트가 개최한 멧 갈라에 마릴린 먼로의 누드 드레스를 입고 참석, 그해 멧 갈라 주인공에 등극했다. 카다시안이 입은 드레스는 마릴린 먼로가 사망하기 두 달여 전인 5월 19일,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생일 파티에서 입었던 역사적인 의상이다. 먼로는 1만5000여 명의 관중 앞에서 당시 염문설이 돌던 케네디 대통령을 향해 “생일 축하해요, 대통령님(Happy Birthday Mr. President)”이라고 인사를 건넨 뒤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고, 덕분에 이 드레스에는 ‘해피 버스데이 미스터 프레지던트’라는 별칭이 붙었다. 디자이너 윌리엄 트라빌라가 스케치하고 할리우드 영화 의상을 담당하던 장 루이가 제작한 이 드레스는 몸에 딱 붙는 실루엣 덕분에 섹시 심벌로 불리던 마릴린 먼로의 관능미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장 루이는 ‘세상에 하나뿐인’ 이 드레스를 만들기 위해 2500여 개의 크리스털과 인조 다이아몬드를 직접 수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드레스는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있는 ‘리플리의 믿거나 말거나’ 박물관이 2016년 11월 경매에서 480만 달러(약 68억 원)에 구매하며 ‘기네스북’ 세계 기록을 세웠다. 킴 카다시안은 마릴린 먼로의 체형에 꼭 맞게 맞춤 제작된 이 드레스를 입기 위해 3주 동안 몸무게를 7kg 감량했다. 그럼에도 엉덩이 부분의 지퍼를 잠그지 못했다. 카다시안은 레드카펫 행사가 끝난 후에는 드레스의 훼손을 막기 위해 미리 준비한 레플리카 드레스로 갈아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1 2> 이방카 트럼프가 대통령 취임식 무도회에서 입은 드레스(왼쪽)는 오드리 헵번이 영화 ‘사브리나’에서 입었던 의상을 모티프로 삼았다.
<3 4> 마릴린 먼로가 사망하기 두 달 전 입었던 드레스(왼쪽)를 그대로 입은 킴 카다시안.

<1 2> 이방카 트럼프가 대통령 취임식 무도회에서 입은 드레스(왼쪽)는 오드리 헵번이 영화 ‘사브리나’에서 입었던 의상을 모티프로 삼았다. <3 4> 마릴린 먼로가 사망하기 두 달 전 입었던 드레스(왼쪽)를 그대로 입은 킴 카다시안.

킴 카다시안은 지난해 4월에는 머라이어 캐리가 1997년 VH1 패션 어워드 레드카펫에서 입었던 구찌의 블랙 드레스를 입은 사진을 SNS에 올리기도 했다. 톰 포드가 구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시절 디자인한 이 의상은 가슴 상단 부분을 얇은 가죽 스트랩으로 장식한 심플하면서도 멋스러운 오프숄더 드레스다. 카다시안은 이 드레스를 중고 명품 딜러에게서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25년 동안 잠자던 드레스 깨운 켄달 제너

킴 카다시안의 이부동생인 켄달 제너도 요즘 아카이브 패션 놀이에 푹 빠져 있다. 그녀는 2024년 멧 갈라에서 지방시의 1999 F/W 오트쿠튀르 드레스를 입었다. 알렉산더 매퀸이 디자인한 이 의상은 구조적인 네크라인과 허리 부분 컷아웃이 인상적인 블랙 컬러의 튤 드레스로, 10만 개 이상의 비즈와 스팽글로 장식해 움직일 때마다 찬란하게 빛을 발한다. 지방시는 1999년 컬렉션 당시 모델 없이 마네킹에 입힌 채 이 드레스를 선보였고, 패션쇼가 끝난 후엔 바로 브랜드 아카이브에 옮겨 보관했다. 때문에 켄달 제너는 멧 갈라 당시 자신이 이 드레스를 입은 최초의 모델이라고 밝혔다. 네티즌들이 배우 위노나 라이더가 1999년 한 잡지 화보에서 이 드레스를 입은 사실을 밝혀내며 진실 공방이 일었으나, 결국 위노나 라이더가 입은 드레스가 레플리카인 것으로 확인됐다.



지방시의 아카이브룩을 입은 켄달 제너(왼쪽)와 1999년 컬렉션 당시 마네킹에 의상을 입힌 모습. | 티에리 뮈글러의 시대를 앞서간 로봇 아미 슈트(왼쪽)와 젠데이아가 영화 ‘듄’ 행사에서 이를 입은 모습.

지방시의 아카이브룩을 입은 켄달 제너(왼쪽)와 1999년 컬렉션 당시 마네킹에 의상을 입힌 모습. | 티에리 뮈글러의 시대를 앞서간 로봇 아미 슈트(왼쪽)와 젠데이아가 영화 ‘듄’ 행사에서 이를 입은 모습.

시대 앞서간 천재 디자이너 소환한 젠데이아

‌‌영화 ‘듄’에서 인류를 구원할 사막의 여전사 챠니 역을 맡은 젠데이아는 2024년 2월 ‘듄: 파트2’ 프리미어 행사에서 캐릭터가 돋보이도록, 티에리 뮈글러가 1995년 컬렉션 당시 선보인 전설적인 로봇 아미 슈트를 착용했다. 1948년 프랑스 태생의 디자이너 뮈글러는 화려하고 볼륨이 살아 있는 구조적인 디자인의 의상으로 주목을 받았다. 덕분에 마이클 잭슨, 비욘세, 데이비드 보위 등의 무대의상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특히 젠데이아가 ‘듄’ 행사를 위해 선택한 드레스는 금속과 플라스틱 재질의 미래지향적 디자인으로, 1990년대 패션계에서 컬트적인 사랑을 받아온 룩이다.

아카이브 룩은 과거에 대한 향수와 패션 역사의 상징적인 순간에 대한 경의, 지속 가능 패션에 대한 철학을 담은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하지만 패션 셀럽들이 SNS에 과거 유명 인사들의 의상을 그대로 복제한 사진을 올리며 아카이브 룩 착용이 값비싼 취미 활동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새로움이 더해지지 않은 아카이브 룩은 그저 패션의 시계를 수십 년 전으로 되돌린 퇴보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있다.

#이방카트럼프 #오드리헵번 #아카이브룩 #여성동아

‌사진 게티이미지 
‌사진출처 이방카 트럼프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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