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레 ‘사타넬라(왼쪽). 일 팔라지오 ‘우리가 춤을 출 때’ 2019.
라벨을 살펴보면 가면을 쓴 고양이가 양팔을 위로 높이 든 채 토슈즈를 신고 와인병 위에 위태롭게 서 있다. 가면은 춤과 뗄 수 없는 관계다. 당장 ‘가면무도회’가 떠오를 것이다. 매년 2월 하순에 열리는 ‘베네치아 사육제’ 기간에는 거리마다 화려한 의상에 가면을 쓴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산마르코 광장에서 사람들은 흥겨운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얼굴만 가렸을 뿐인데 평소 할 수 없던 행동을 하며 자유를 만끽하는 모습이다.
가면은 여러 예술 작품에서 다양한 장치로 활용됐다. 베네치아 사육제를 배경으로 한 발레 ‘사타넬라(Satanella)’에도 가면이 등장한다. 국내에서는 ‘베니스(베네치아의 영어식 표현) 카니발’이라는 제목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안무가 마리우스 프티파의 손길을 거쳤으나 아쉽게도 그의 안무는 일부만 남아 있는데, 그중 ‘파드되(pas de deux·2인무)’가 발레 팬들의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해준다. 발레리나는 발레리노에게 의지해 새처럼 가볍게 날아오르며 공중에서 브리제(bris´e·앞발을 뒷발과 마주치는 동작)를 연속하여 선보인다. 음악이 느려지고 발레리노가 발레리나의 얼굴을 가린 검은 가면을 벗겨내고 인사를 청한다. 이어 시작되는 두 사람의 춤에는 남녀 간 밀당이 보인다. 어딘지 모르게 긴장감이 느껴지지만 밝고 경쾌한 동작이 이어진다. 음악이 절정에 이르면 발레리노는 사랑하는 연인을 놓칠까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발레리나의 두 다리를 꼭 끌어안고 끝을 맺는다.
가면은 발레리나의 아름다운 외면을 의미하는 동시에 자신의 모습을 감추는 장치다. 발레리노가 발레리나의 가면을 벗겨내는 것은 서로의 진심을 마주 보자는 것이며, 가면을 벗은 채 춤을 추는 것은 진정한 사랑을 찾는 여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18세기 이탈리아 베네치아 출신 화가 주세페 데 고비스가 그린 ‘수녀원의 응접실’.
본래의 나를 감추기 위해 얼굴을 가리고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 되어 자신을 초월한 누군가로 사는 것, 이것이 바로 가면의 본질이다. 내가 아닌 또 다른 내가 되기 위해 쓰는 가면, 이러한 가면을 쓴 인격체를 우리는 ‘페르소나(persona)’라고 부른다. 가면은 때로는 얼굴을 가려 나를 감추는 비겁한 도구가, 때로는 그 뒤에 감춰진 진실을 찾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필요하다면 쓰고, 필요치 않을 때는 드러내며 자신만의 페르소나를 갖게 되는 것이다. 언젠가 무도회는 끝나고 우리는 가면을 벗어야 한다.
#와인과춤 #와인라벨 #여성동아
사진제공 이찬주
사진출처 유니버셜발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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