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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자글자글한 매력! 런웨이 휩쓴 주름 패션 리포트

안미은 프리랜서 기자

2025. 03. 06

할머니의 눈가처럼 주름이 자글자글한 옷들이 런웨이에 나타났다. 주름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 자신만만한 태도로 말이다.. 

교복 셔츠를 열심히 다려 입던 시절. 빳빳하게 깃을 세운 새하얀 셔츠는 물질적 풍요를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수단이었다. 다 똑같은 교복 차림에 품격을 높이는 스타일의 척도가 되기도 했다. 청결한 옷차림은 곧 삶을 대하는 태도로 여겨졌다. 어쩌다 구겨진 옷을 입고 거리에 나서면 죄라도 지은 것처럼 부끄러움에 고개를 푹 숙이고 다녔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전기다리미가 발명되기 훨씬 전인 고대 로마인들조차 금속 망치를 들고 옷을 두드려가며 구김을 폈다고 하니, 깨끗하게 다림질한 옷은 현대인이 갖춰야 할 필수 덕목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런 신의에 배치되는 일이 일어났다. 올 시즌 디자이너들이 각설하고 주름진 옷들을 런웨이에 쏟아냈다. 자고로 옷은 깔끔하게 다려 입어야 한다는 패션 관념에 반기를 들며 패션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것. 믿기 어렵겠지만 페라가모가 가장 먼저 선두에 섰다. 클래식의 정수로 불리는 패션 하우스에서 주름진 옷이라니! 페라가모의 2025 S/S 컬렉션에는 이탈리아 현대미술 작가 피에로 만초니(Piero Manzoni)의 작품이 깃들었다. 특유의 바삭바삭한 질감을 살린 주름 공법을 대거 적용한 다채로운 피스들로 구김의 미학을 역설하고 나섰다. 뒤이어 보테가베네타는 군더더기 없는 옷들로 무대를 주름잡았다. 가까이 다가올수록 더 새로운 면모들이 여실히 드러난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셔츠와 원피스에 재킷까지, 주름 디테일을 쇼의 전면에 내세우며 오피스웨어의 한계를 실험하는 듯했다. 올해로 수장 자리를 맡은 지 2년 차에 접어든 디자이너 마티유 블레이지는 이번 컬렉션을 두고 “완벽한 차림으로 학교에 보낸 아이가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재현했다”고 말했다. 어딘지 해이하고 흐트러진 ‘어른이’ 같은 보테가베네타의 모델들을 보고 있자니 묘한 해방감마저 들었다. 어디 그뿐인가. 리넨 소재 본연의 구겨진 멋을 살린 우아한 드레스로 시선을 끈 피터도와 핀 스트라이프 패턴으로 주름과 앙상블을 이룬 셋업을 선보인 앤드뮐미스터, 다리미를 잘못 눌러 생긴 것 같은 뻣뻣한 주름 장식으로 엄격한 슈트에 위트를 한 방울 섞은 프라다까지 트렌드에 동참하고 나섰다.

한편 진보된 하이패션 신을 이끈 하우스들도 있다. 아크네스튜디오는 구겨지다 못해 쪼그라들기까지 한 독특한 가죽의 주름 텍스처로 장인정신을 드러냈고, 루이비통은 드레이핑과 주름 장식이 돋보이는 과장된 실루엣의 스커트로 존재감을 굳혔다. 에로틱한 달력을 구겨서 만든 듯한 장난스러운 프린팅 드레스로 색다름을 안긴 아브라도 있다.

이제 주름 디테일은 패션 신에서 엄연한 키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더는 감춰야 할 약점이 아니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서랍장에서 주름이 자글자글한 옷을 꺼내 입고 거리로 뛰쳐나가라는 얘기는 아니다. 세월의 주름이 드러난 옷과 의도적으로 주름을 잡아 만든 옷 사이에는 제법 큰 간극이 존재한다. 프라다의 공동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라프 시몬스는 주름 트렌드에 대해 “삶과 일상 속 아름다운 오류의 몸짓”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느긋함을 누릴 틈도 없이 살아가기 바쁜 현대인들에게 자유를 허한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될 이이다. 돌아온 주름 트렌드와 함께 잠시나마 성실함을 벗고 이 구겨지고 주름진 여유를 한껏 즐겨보자. .

#주름패션 #주름디테일 #여성동아

‌기획 강현숙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 뉴시스 
‌사진제공 루이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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