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여수는 서울에서 상당히 거리가 있는 곳이라 KTX나 비행기가 다니기 전에는 사실상 당일치기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지난해 열린 ‘여수세계박람회’ 덕분에 서울에서 가기가 편해져, 하루 여행도 가능하다. 아직은 스산한 서울을 떠나, 먼저 다가온 봄 내음을 흠뻑 맡으러 전라도 여수로 향했다.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에서 여수공항까지는 50여 분 남짓. 귀가 멍멍해져서 침을 꿀꺽 삼키며 신문 하루 치를 대충 훑어보니 벌써 여수공항에 다다랐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이 먼 곳까지 오다니’ 새삼 비행기의 편리함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공항에서 내려 렌터카를 빌리고, 여수의 전통 시장인 교동시장으로 향하는 길. 차창 밖으로 보이는 상점들 중 절반은 수산물 관련 상가라고 할 정도로, 도시 곳곳이 해산물과 어업에 관련된 상가들로 가득했다. 이렇게 즐비하게 생선, 해산물들이 거래된다니 내 마음도 어느새 기대감에 부풀어 콩닥콩닥 뛰고 있었다. 사실 여수 교동시장은 전통 시장치고 그리 역사가 오래된 곳은 아니다. 1960년대 좌판이 하나 둘 생기며 크기를 늘린 시장인데 지금은 길이가 1km에 다다를 정도로 상당한 규모의 상설 시장이 됐다. 상가보다 좌판이 많아 대도시 시장과는 달리 지방 5일장 같은 푸근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시장을 쭉 둘러보니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자연산 해삼과 조개류가 가득하다. 남해인 여수나 통영에 위치한 작은 포구 앞바다는 너무나 깨끗해 해녀할머니들이 해삼을 많이 따는데, 그렇게 채집된 것들이 이 시장에 가득가득 차 있다. 서울에서는 절대로 구할 수 없는 왕밤송이게나 말린 바지락꽂이 같은 귀한 식재료도 모두 보고 살 수 있으니, 교동시장만큼 여수의 식재료나 먹을거리를 함축해놓은 곳이 없는 것 같다.
뭐니 뭐니 해도 여수에서 가장 유명한 재료는 돌산갓. 톡 쏘는 맛이 일품인 여수 돌산갓으로 담근 김치를 파는 곳도 많고, 갓만 묶어서 파는 좌판도 많은데 싱싱하고 품질이 좋아 비행기로만 오지 않았다면 몇 다발 사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교동시장에서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생선 중 하나인 ‘금풍생이’도 만나볼 수 있었다. 군평선이로도 불리는 이 생선에게는 재미난 별명이 있는데 바로 ‘샛서방고기’다. 생선 맛이 너무 좋아 본서방은 구워주지 않고 예쁜 샛서방만 몰래 구워준다고 해 그리 불렀다고 한다. 사실 작년만 해도 가끔씩 노량진수산시장에서도 금풍생이를 볼 수 있었는데, 요즘은 여수에서도 잘 잡히지 않아서 더욱 귀한 몸이 됐다. 오래간만에 본 녀석이니 점심 메뉴로 금풍생이구이 당첨! 삼삼하면서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으로 특히 내장이 진미이다. 금풍생이는 내장까지 먹는 생선이므로 집에서 맛볼 기회가 생긴다면 비늘을 벗기고 내장을 빼지 않고 살에만 살짝 칼집을 넣은 뒤 간장, 참기름, 다진 파, 깨 등을 넣어 만든 양념간장을 끼얹어 먹는다. 한 손에는 흑설탕을 듬뿍 넣고 찐 흑설탕찐빵을 들고 시장을 구석구석 둘러보니, 눈과 입이 이렇게 즐거운 여행이 또 있을까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1 저마다의 향과 맛을 뽐내는 각종 나물들.
2 다양한 말린 생선들을 볼 수 있는 교동시장.
3 길이가 1km에 달할 만큼 규모가 큰 교동시장 전경.
4 샛서방에게만 주었다는 귀하신 몸 ‘금풍생이구이’.
5 여수의 명물 ‘돌산갓’.
6 자연산 해삼, 조개 등 싱싱한 해산물의 천국 교동시장.
권우중 셰프는…
경희대학교 조리과학과를 졸업하고 다수의 한식 레스토랑에서 셰프로 활동했으며, 올리브TV, SBS ‘모닝와이드’ 등의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현재 이스트빌리지 오너 셰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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