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서 우리 부부가 ‘해산물 킬러’임을 고백했고, 지난 5년간 미국 뉴욕에 살면서 맛본 모든 종류의 굴에 실망한 사실도 털어놓았다. 로랭과 나는 코네티컷산 석화가 품질이 뛰어나다는 미국인 친구들의 말만 믿고 1박2일 예정으로 코네티컷 여행을 시도했다. 어디로 갈까 궁리하면서 대도시보다 작은 항구 도시를 찾았다. 로랭이 구글을 통해 ‘코네티컷의 작은 항구 도시’라고 검색하니 바로 미스틱 시포트(Mystic Seaport)가 떴다. 다른 곳도 있었지만 Mystic이라는 지명에 괜히 끌렸다. 뉴욕에서 차로 2시간 30분 정도면 도착하는 곳. 주민 수는 4천~5천 명. 전형적인 뉴잉글랜드 항구 도시. 미스틱 시포트를 발견한 로랭이 나보다 더욱 적극적이었다.
“Mystic이라는 이름이 신비롭지 않아? 게다가 유명한 해양 박물관도 있어. 레스토랑도 많고. 코네티컷산 석화를 생산지에서 직접 맛보게 되는 거야.”
여름 휴가 때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의 카르나크(Carnac: 고인돌과 입석등 거석군이 있는 도시)나 라 트리니테 쉬르 메르(La Trinite′-sur-Mer)에 있는 가족 별장에 갈 때 늘 그랬던 것처럼 미스틱 시포트를 중얼거리는 로랭의 에메랄드 빛 눈이 반짝거렸다. 그가 정말 가보고 싶어 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로랭이 찾아낸 미스틱 시포트 관련 사이트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내가 관심을 보이자 로랭은 더욱 신이 나서 설명을 시작했다.
“해양 박물관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래잡이 목선을 전시 중이래. 선박 이름이 찰스 W. 모건(Charles W. Morgan). 18~19세기 미국 뉴잉글랜드 어촌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놓았나봐.”
로랭이 상기된 표정으로 해양 박물관에 무려 5백 종이 넘는 배 관련 유물이 전시돼 있다고 했다. 나는 미스틱 시포트로 가자는 로랭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주말 1박2일을 계획했지만 호텔을 예약하지 않아 미스틱 시포트에 도착하자마자 호텔부터 찾아 짐을 풀었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호텔 리셉셔니스트에게 이곳 주민들이 자주 가는 해산물 전문 레스토랑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6개 정도의 레스토랑 이름과 주소를 적어주며 “실망하지 않을 거예요. 유명한 곳들이에요”라며 자신 있게 말했다.
코네티컷까지 왔는데 기대 이하의 맛에 실망
그 리스트 중 호텔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 아닌 게 아니라 나이 지긋한 동네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었다. 타지인은 우리가 유일한 것 같았다. 레스토랑에 들어가 종업원의 안내에 따라 자리를 잡고 앉아 셸피시 샘플러(Shellfish Sampler: 굴, 조개, 새우 등 갑각류 모둠), 정통 뉴잉글랜드 클램 차우더 수프, 화이트와인과 샬로트, 디종 머스터드를 넣고 조리한 홍합 요리, 연어 구이를 주문했다. 셸피시 샘플러에는 블루포인트 석화 6개, 대합 6개, 새우 6개가 나왔는데 달착지근한 미국식 해산물용 칵테일소스도 따라 나왔다. 우리가 너무 큰 기대를 했던 탓인가? 매우 시장한 상태였음에도 도무지 식사를 즐길 수 없었다. 음식은 정말 형편없었다. 코네티컷산 석화는 물론 대합, 홍합, 새우도 기대 이하였으며 생선이나 홍합도 너무 익혀 연어와 홍합 고유의 맛을 즐길 수 없었다. 우리는 디저트조차 포기했다. 음식 수준을 보면 디저트는 보나 마나 한 것 아니겠는가.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호텔 리셉셔니스트가 추천해준 레스토랑들이 전부 이런 수준이면 어떻게 하지?” 내가 볼멘소리를 하자 로랭은 “저녁 식사는 우리가 돌아다니다가 마음에 끌리는 레스토랑에서 하자”라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별로 행복하지 않은 점심 식사였지만 우리는 미스틱 시포트의 아름다운 전경에 금방 기분이 풀렸다. 이곳 해양 박물관은 구경할 것이 너무 많아 한나절도 모자랐다. 박물관 직원은 입장권을 한 번 사면 다음 날에도 다시 들어올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뉴욕으로 떠나기 전 다시 박물관에 들러 나머지 전시물을 보기로 했다.
1 블루포인트 석화. 2 미스틱 시포트는 인구 4천~5천 명의 작은 항구 도시다.도시다.
농장·바다를 식탁으로, 오이스터 클럽
오후 5시쯤 박물관을 나와 항구를 거닐다 새로운 레스토랑을 발견할 때마다 메뉴와 인테리어를 꼼꼼하게 체크했다. 토요일 저녁 시간을 즐기는 미국인들은 여유롭고 평화로워 보였다. 개를 끌고, 혹은 연인이 다정하게 손을 잡고 산책하는 모습을 바라보거나, 아름다운 집이 나오면 열심히 카메라에 담았다. 그렇게 수 시간을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저녁 8시가 가까워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 만족스럽지 못한 점심 식사를 한 터라 시장기가 느껴졌다.
워터 스트리트(Water Street)에 들어섰을 때 ‘오이스터 클럽(Oyster Club)’이라는 레스토랑이 눈에 확 들어왔다. 네이비블루와 흰색으로 칠한 통나무집이라 가정집 분위기가 물씬했고, 나무로 된 간판에는 ‘농장·바다를 식탁으로(Farm · Sea to Table)’라고 적혀 있었다. 그 문장만 읽어도 입안에 침이 고였다. 레스토랑 입구에 붙여놓은 메뉴를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단순한 메뉴판이 해산물 전문 식당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얼마나 싱싱한 식자재를 사용할까? 근처 바다와 농장에서 직접 공수한 것일까? 벽에 붙은 메뉴에 코를 박고 쳐다보며 중얼거리는 우리를 레스토랑 입구에 서서 지켜보던 웨이트리스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입고 있는 유니폼만 보아도 깨끗한 비스트로 스타일이다. 이처럼 한눈에 오이스터 클럽에 끌렸지만, 로랭과 나는 호텔 리셉셔니스트가 “must”라고 추천한 캡틴 대니얼 패커 인(Captain Daniel Packer Inne Restaurant and Pub)도 둘러본 뒤 결정하기로 했다. 이 레스토랑은 오이스터 클럽에서 불과 몇 야드 떨어진 곳에 있었다.
“저 레스토랑에도 가보자. 메뉴를 확인한 뒤 아닌 것 같으면 다시 이곳으로 오면 되잖아?”
나의 제안에 로랭도 동의했다. 이곳 주민들이 자주 가는 명소라고 하니 호기심이 생겼다. 우리는 캡틴 대니얼 패커 인 안으로 들어가 직원이 내미는 메뉴를 체크했다. 실내는 유서 깊은 뉴잉글랜드식 코티지 같은 분위기여서 운치가 있었다. 하지만 메뉴는 이탤리언식, 미국식, 프랑스식 뒤범벅이었다. 이런 메뉴는 전문성이 없다. 결국 오이스터 클럽으로 다시 왔다. 그러나 입구 앞에서 다시 망설였다. 점심 식사 때의 끔찍한 경험을 또 하게 되면 어쩐다? 그렇게 망설이는 우리를 보고 웨이트리스가 웃으며 말한다. “그만 망설이고 들어와요. 다시 우리 집으로 올 줄 알았어요. 컴 온 인! ”
우리가 마침내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서자 웨이트리스가 매우 기뻐했다. 입구 오른쪽에 바가 있고 왼쪽 넓은 홀이 레스토랑이었다. 양쪽 모두 손님들로 꽉 차 있었다. 우리는 아페리티프로 웨이트리스가 추천한 로컬 맥주를 시음하기로 하고 각자 다른 것을 택했다. 내가 택한 코네티컷산 맥주는 알코올 도수가 8도나 돼 독했다. 로랭의 맥주는 알코올 도수가 5도로 벨기에산 맥주인 스텔라 아르투아(Stella Artois) 같은 향과 맛이 났다. 당장 로랭의 맥주와 바꿨다. 우리는 소파와 테이블이 있고 잡지를 비치해놓은 응접실에서 편안하게 아페리티프를 마신 뒤 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옮겼다.
1 ‘농장&바다를 식탁으로’라는 문구가 쓰인 오이스터 클럽 간판. 2 오이스터 클럽에서 우리 부부는 4가지 종류의 석화를 골고루 맛보았다.
3 4 오이스터 클럽의 디저트인 코코넛 케이크와 초콜릿-캐러멜 타르트. 5 버터로 살짝 시어링한 관자 요리. 6 벨기에산 맥주 스텔라 아르투아 맛을 연상시키는 코네티컷 맥주.
망설임이 감격으로, 환상적인 굴 맛
입구에서부터 우리를 ‘유혹한’ 웨이트리스가 계속 서빙을 했다. 미스틱 시포트 출신이라는 웨이트리스가 추천한 석화를 시식하기로 했다. 롱아일랜드산 니니그렛 넥타(Ninigret Nectars), 코네티컷산 노앵크(Noank), 로드아일랜드산 주디스 솔트 폰즈(Point Judith Salt Ponds), 뉴욕산 피셔스 아일랜드(Fishers Island). 이렇게 4가지 석화를 한 쌍씩 8개를 준비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굴을 좋아하는 자기가 제일 선호하는 석화 종류만 추천했으니 결코 실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점심 식사에서 너무 실망했던 터라 큰 기대 없이 맛을 보기 시작했다. 깊은 대양의 맛이 느껴지는 피셔스 아일랜드, 프랑스 브르타뉴의 야생적인 해안가에 늘어선 눅눅하고 축축한 암석의 맛이 나는 니니그렛, 천연의 해초 맛이 부드럽기 그지없는 노앵크, 풀 바디로 요염하게 살찐 주디스.
여기에 곁들인 프랑스 알자스 지방의 실바네르(Sylvaner) 와인은 완벽하게 어울렸다. 미국에 와서 그렇게 맛있는 굴을 먹어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까 2007년부터 뉴욕에 거주한 지 5년이 지난 2012년에 드디어 우리가 원하던 굴 맛을 찾았다.
“노앵크는 정말 환상적이네. 대단하다! 구마모토보다 훨씬 맛있어. 브르타뉴 굴 맛이 나는데?”
내가 환성을 질렀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굴마다 얼마나 맛이 다르고 개성이 다른지 놀라울 정도다. 어떤 굴은 뛰어난 맛을 자랑하고, 어떤 굴은 품질이 열등하다. 품질이 떨어지는 굴은 날것으로 먹을 수 없을 정도다. 강하고 자극적인 소스로 질이 떨어지는 굴 맛을 감춘다면 모를까.
그날 최고의 굴은 단연 코네티컷산 노앵크였다. 롱아일랜드 해협에서 생산되는 노앵크는 품질 관리를 위해 사람이 굴 하나하나를 직접 고른다고 한다. 노앵크 굴이 다른 굴보다 비싼 이유는 그래서다. 오이스터 클럽의 굴들은 싱싱하고 맛있어서 미국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찍어 먹는 칵테일소스가 필요 없을 정도다. 토마토케첩에 서양 고추냉이, 칠리소스 등을 섞어 코를 찌를 듯 매콤한 소스와 토마토·마요네즈를 섞은 소스 두 가지가 테이블에 서빙됐지만 우리는 소스에 손도 대지 않았다. 싱싱한 레몬즙만 약간 뿌려 환상적인 바다의 맛을 즐겼다. 천연적인 굴 맛, 깊은 자연의 맛을 그대로 즐겼다.
7 오이스터 클럽의 셰프 제임스 웨이먼(오른쪽)과 대화하는 로랭.
환상적인 굴 맛에 이어 저녁 식탁의 즐거움은 계속됐다. 부드러운 게 요리, 버터로 살짝 시어링한 관자 요리, 오징어 요리, 그리고 디저트로 초콜릿-캐러멜 타르트와 코코넛 케이크를 먹었다. 여기에 조너선 에드워드 와이너리에서 주조한 스톤 테이블(Stone Table) 레드와인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우연히 발견한 이 레스토랑에서 우리는 미국 북동부산의 환상적인 굴 맛을 경험하고 감격해서 식사 후 셰프에게 직접 인사를 하고 싶다고 웨이트리스에게 부탁했다. 오픈 키친에 있던 제임스 웨이먼(James Wayman) 셰프가 나오자 로랭은 자기도 요리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셰프가 즉석에서 “제 키친 보여드릴까요?”라고 제안했다. 밤 11시가 넘어 키친은 조금 한가해진 상태였다. 그는 주방 스태프들을 일일이 소개해주고 레스토랑의 메인 키친, 보조 키친을 보여준 뒤 뒷동산을 테라스로 개조할 계획이라는 것까지 설명했다. 테라스 자리 옆에는 그가 애지중지하는 자그마한 텃밭이 있었다.
“저는 여기에서 제가 직접 키우는 채소와 허브를 음식에 사용해요.”
우리는 거듭 감사의 인사를 했다. 날아갈 듯 행복했다. 우연히 발견한 미식 천국! 뉴욕을 방문하는 지인들에게 미스틱 시포트 여행을 적극 권할 것이다. 우리가 발로 찾아낸 레스토랑들도 추천할 것이다. 그 리스트에 오이스터 클럽은 빼놓을 수 없다.
푸드칼럼니스트 이미령, 셰프 로랭 달레는…
로랭 달레는 프랑스 노르망디 루앙 출신으로 파리 에콜 데 카드르, 시티 오브 런던 폴리테크닉을 졸업하고 뉴욕에 오기 전까지 프랑스 르노 사와 브이그 텔레콤에서 일했다. 마흔 살이 되기 전 요리를 배우고 싶다는 꿈을 실현하러 2007년 2월 말 뉴욕으로 와 맨해튼 소재 프렌치 컬리너리 인스티튜트에서 조리를 배우고 지금은 뉴욕 주재 프랑스 영사관 수 셰프로 근무하고 있다. 이미령은 연세대 음대, 런던대 골드스미스 칼리지, 파리 에콜 노르말 드 뮤직에서 피아노를 전공했고, 브이그 사에서 국제로밍 및 마케팅 지역 담당 매니저로 일했다. 현재 뉴욕에서 Le Chef Bleu Catering을 경영하며 각종 매체에 음식문화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두 사람은 런던 유학 중 만나 결혼했다. 저서로는 ‘파리의 사랑 뉴욕의 열정’이 있다. mleedallet@yahoo.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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