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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x-file 김진 기자의 먹거리 취재 파일

당신이 먹은 것은 치즈케이크가 아 니 다

editor 김진 채널A <먹거리 X파일> 진행자

2017. 06. 01

그동안 커피와 함께 즐겨 먹었던 치즈케이크에선 왜 치즈의 향과 풍미가 느껴지지 않았을까. 그 답을 찾아가다 만난 착한 치즈케이크 이야기.

한겨울 체코 프라하에선 사람들이 줄서서 먹는 음식이 있다. 따뜻한 와인과 구운 치즈가 그것이다. 치즈는 그 자체로도 훌륭한 먹거리지만, 열을 가하는 순간 새로운 풍미와 향을 지닌 음식이 된다. 고소함은 배가되고, 치즈 특유의 시큼한 향엔 날개가 돋는다. 꾸덕한 식감은 또 어떤가! 사람들이 왜 그렇게 줄을 서는지 먹어본 사람만 안다. 어쩌면 치즈케이크도 이런 이유로 태어났는지도 모르겠다. 고소한 쿠키 베이스에 크림치즈를 얹어 구워낸 치즈케이크. 노랗게 익은 치즈를 식힌 후 케이크처럼 잘라내면 그 어떤 음식보다 훌륭한 디저트가 된다. 치즈를 케이크로 만들어 먹는 주된 이유는 구운 치즈의 맛을 풍성하고 고급스럽게 즐기기 위해서다. 

요즘 우리나라에선 디저트 전문점은 물론이고, 카페, 레스토랑, 심지어 예식장 뷔페에서도 쉽게 치즈케이크를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이들 케이크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치즈의 풍미나 향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케이크가 잘 부스러진다는 점이다. 예민한 독자들은 아마 지금껏 먹어왔던 치즈케이크에 이 같은 특징이 있었다는 것을 곧바로 기억해낼 것이다. ‘원래 치즈케이크가 그런가보다’라고 생각하며 무심코 지나쳤을 이러한 공통점이 가리키는 한 가지 불편한 진실이 있다.

바로 시중에서 판매되는 대부분의 치즈케이크가 언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는 ‘냉동 제품’이란 것이다. 냉장 보관을 해서 소비자들이 먹을 때까지 신선함을 유지하는 다른 케이크들과 달리, 치즈케이크는 거의 대부분 만들어진 즉시 냉동고로 들어간다. 그런데 이 같은 냉동의 대가는 참혹하다. 치즈의 풍미를 잃을 뿐 아니라, 케이크의 조직이 부스러지는 ‘참사’를 낳기 때문이다. 원래 치즈케이크는 얼려서 먹는 음식이 아니다. 구운 뒤 하루 정도 냉장 숙성을 하고 얼리지 않은 상태로 먹어야 치즈의 풍미를 제대로 풍성히 느낄 수 있다. 말 그대로 케이크이지 않은가.




치즈 없는 치즈케이크
그러고 보면 우리가 지금까지 먹었던 치즈케이크에선 치즈 특유의 꼬릿한 냄새도 나지 않았다. 부드럽고 달콤하긴 한데, 고소하면서도 느끼한 풍미가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는 케이크 속에 치즈가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치즈 빠진 치즈케이크?’ 상상도 해본 적 없을 테지만 사실이다. 카페나 뷔페,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판매하는 치즈케이크 중에는 치즈가 20%도 들어가지 않은 경우가 많다.



다른 식재료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가인 치즈 값을 아끼기 위해 치즈는 말 그대로 소량만 첨가하고 밀가루와 요거트 등을 섞어서 치즈케이크 흉내만 낸 것이다. 거기에 바닐라 향 등 각종 향을 첨가하고 단맛을 가미해 소비자들의 미각을 속일 수 있다면, 고급스런 치즈케이크로 포장해 비싼 값을 받고 팔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 치즈케이크를 먹어도 치즈의 제대로 된 맛과 향을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거기에 냉동까지 시키면 치즈 맛은 더더욱 안녕이다.

그래서 진짜 치즈케이크를 찾고 싶었다. 전국을 다 뒤져서라도 프라하에서 느꼈던 진한 치즈의 풍미를 다시 느껴보고 싶었다. 치즈 함유량 50% 이상, 어떠한 합성첨가물도 쓰지 않으면서 절대 냉동하지 않은 치즈케이크. ‘불가능에 가까운 수준’의 까다로운 기준을 충족시키는 치즈케이크를 찾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지방의 유명한 수제 케이크 전문점도 가봤고, 서울의 유명한 케이크 브랜드 매장도 모두 들러봤지만, 치즈 함유량이 모두 아쉬웠다.

그러던 중 우연히 서울 도봉구 창동에서 ‘카페오븐’이라는 착한 치즈케이크 가게를 발견했다. 평범한 아파트 단지 상가 2층에 위치한 작은 동네 키페인 이곳 입구에는 ‘무방부제, 무첨가물, 100% 동물성 생크림, 우유버터 등 좋은 재료로 10년 경력의 셰프가 직접 만드는 착한 케이크’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과연 그럴까?’라는 의구심을 품으며 카페에 들어갔다. 작고 낡았지만 깔끔하게 정돈된 실내.

40대 초반의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카페는 남편이 카운터에서 반갑게 맞아주고, 부인이 오픈된 주방 안에서 열심히 케이크를 만들고 있었다. 카운터 앞 작은 유리 냉장 진열장 안에 있는 단 네 종류의 케이크만 판매한다. 아다지오 치즈케이크(뉴욕치즈케이크), 레어 치즈케이크, 티라미수 케이크, 제철 생크림 케이크. 단출한 메뉴. 하지만 케이크를 추천하는 사장의 목소리엔 자신감이 묻어 있었다. 종류별로 케이크를 모두 주문한 뒤 따뜻한 에스프레소 한잔을 주문했다. 커피는 바리스타인 남편이 직접 내려줬다.

차원이 다른 리얼 치즈케이크의 맛

향긋한 커피 향과 함께 나온 노란 치즈케이크는 고소해 보이는 치즈를 듬뿍 얹은 먹음직스런 자태였다. 포크로 치즈케이크를 뜨는 순간, 부드럽고 꾸덕한 질감에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의 치즈케이크와는 전혀 다른 질감이었다. 냉동을 하지 않은 게 분명했다. 입으로 들어가기 전 치즈케이크에서 치즈 특유의 고소하면서 꼬릿한 향이 풍겨나와 침샘을 자극했다. 혀에 닿는 순간 어느 곳과도 비교할 수 없는 풍성한 치즈의 풍미가 입안 가득 퍼졌다. 진짜 구운 치즈의 맛 그 자체였다. 부드러우면서도 치즈 향이 오래도록 입에 머무는 이 느낌!  지금껏 먹었던 치즈케이크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맛이었다.

우리가 접했던 유명한 치즈케이크조차 치즈 함유량 30%를 넘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치즈 이외의 것들이 70% 가까이 차지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니 치즈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곳 치즈케이크에선 정말 진한 치즈 맛과 향이 느껴졌다. 비결은 치즈 함유량 90%에 있었다. 케이크 시트도 이곳에서 직접 만든다.

오븐에 쿠키를 구워 잘게 부순 후 얇게 펴서 치즈를 잘 얹을 수 있도록 모양을 잡아준다. 그리고 순도 100% 크림치즈를 듬뿍 얹은 다음 오븐에서 노릇노릇 구워주면 된다. 여기에 사장이 오랜 시간 연구한 비법이 하나 추가된다. 치즈가 90%나 들어가다 보니 느끼한 맛이 강해 이를 상쇄하기 위해 요거트를 넣는 것이다. 요거트 역시 직접 만든다. 이 집에서는 직접 만들지 않는 게 하나도 없다. 노랗게 구워낸 치즈케이크는 바로 팔지 않는 게 원칙. 하루 정도 냉장으로 숙성을 해야 치즈의 깊은 맛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손님이 아무리 몰려와도 숙성하지 않은 치즈케이크는 절대 팔지 않는다.

진짜 치즈의 풍성한 맛을 느끼고 싶다면, 치즈케이크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집의 90% 리얼 치즈케이크를 꼭 한 번쯤 맛보길 추천한다.




김진
동아일보 기자로 채널A 〈먹거리 X파일〉을 진행하며 많은 여성 팬을 확보하고 있다. 유해 식품, 음식에 관한 편법이나 불법은 그냥 지나치지 못해 직접 실험에 참여하거나 형사처럼 잠복근무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기획 여성동아 사진 조영철 기자 디자인 박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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