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상암동과 방이동 두 곳에 자리하고 있는 식당 ‘수산항’은 이 두 음식을 내는 해산물 요리 전문점입니다. 강원도 양양에 수산리라는 마을이 있는데, 그곳에 있는 항구가 바로 수산항입니다. 두 식당의 사장님도 이곳 수산항 출신입니다. 강원도 양양의 수산항 인근에는 섭국과 도치알탕을 판매하는 식당들이 많은데, 서울에선 재료를 조달하기 힘든 탓에 이 음식을 내는 식당이 드문 것이 현실이지요.
동해안 바닷가에서 나는 ‘섭’이라는 놈은 흔히 ‘자연산 홍합’으로 불리는 조개입니다. 홍합과 생긴 모양이 비슷해 섭을 처음 접한 사람들중에는 ‘대체 뭐가 달라?’ 하는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차이점을 설명하자면, 섭은 홍합에 비해 크기가 훨씬 크고 무게도 많이 나가며 껍질 안도 꽉 찼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 자란 섭은 크기가 손바닥만 합니다. 식감도 훨씬 쫄깃한데, 바람이 많이 불면 해녀들이 채취할 수 없어서 가격 면에서도 10배 정도 차이가 나는 귀한 식재료입니다.
양양의 섭국은 땀이 날 정도로 매콤한 맛이 특징인데 수산항의 섭국은 그보다는 덜 매운 편입니다. 나름대로 서울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재해석한 셈이죠. 주택가 골목 사이에 있는 식당인데도 점심 무렵이면 섭국 한 그릇 먹으려고 찾아오는 사람들로 붐빕니다.
사실 양양 현지에서도 집집마다 섭국을 끓이는 레시피는 조금씩 다릅니다. 저희 어머니께서는 고추장과 된장을 풀어 팔팔 끓인 물에 섭의 살을 발라 다져서 넣고, 여기에 밀가루 반죽을 턱턱 떼어 넣어 수제비처럼 만들어 주셨습니다. 수산항의 섭국은 ‘살짝 익힌 섭의 살을 발라내 숭숭 썰어 넣은 것이 전부’라고 할 만큼 기교를 부리지 않았습니다. 국가대표 사이클 선수였던 이곳 사장이 어깨너머로 어머니의 손맛을 재현한 것이지요. 그래서 더 집밥 같은 느낌이 난다고나 할까요. 시원한 국물은 해장하기에 제격이지만, 도리어 술 생각이 나게 만든다는 것이 이 음식의 이중적인 매력이라고 할 수 있죠.
겨울에 맛보아야 할 동해안의 별미들

메인 메뉴 없이도 술을 술술 부른다는 수산항의 밑반찬도 일품입니다. 섭국 한 그릇을 시켜도 총 여섯 가지의 반찬이 따라 나오는데 그중에서도 가자미식해와 꽃게장, 대구아가미깍두기는 다른 식당에서는 맛보기 힘든, 딱 동해안 스타일이죠. 깍두기 반찬에 명태 아가미를 넣은 것은 봤어도 대구아가미깍두기는 처음 본다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요즘은 동해안에서 명태가 안 잡히다 보니 명태 대신 대구를 넣는 게 대세입니다. 이 원고를 쓰는 순간에도 입에 침이 고이네요.

VIP도 제가 소개한 이 맛깔나는 음식들을 좋아하셨냐고요? 안타깝게도 섭국과 도치알탕은 딱 한 번씩밖에 식탁에 올리지 못했습니다. 제 입맛엔 딱이었는데 아무래도 ‘그분’ 입맛에는 맞지 않았나 봅니다. 당시 주방에서도 섭국과 도치알탕에 대한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렸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럼에도 한 번쯤은 꼭 이 음식을 맛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 겨울이 너무 길 테니까요. 가격은 섭국 8천원, 도치알탕 4만원(大)3만원(中).
상암점 서울 마포구 성암로15길 8 TEL 02-372-3300
방이점 서울 송파구 오금로11길 30-7 TEL 02-413-7777

한 상 훈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다 우연히 멧돼지 발골 장면을 보고 요리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웨스턴 조선 호텔과 그랜드 인터콘티넨탈 호텔을 거친 뒤 7년간 청와대 서양 요리 담당 조리장을 지냈다. 깐깐한 VIP의 입맛을 맞춰낸 ‘절대 미각’으로 레스토랑을 엄선해 소개한다.
기획 여성동아
진행 정희순
사진 홍중식 기자
디자인 최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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