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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종이 인간’이 클라이밍으로 ‘근육 부자’ 된 사연

임정원 EBS ICT기획센터 PM

2023. 05. 16

이제 고작 3년 차이지만 클라이밍은 내게 평생 함께하고 싶은 운동이 됐다. 앞으로 부딪쳐볼 수많은 벽이 있다는 것에 설렌다. 

임정원 PM이 클라이밍하는 모습.

임정원 PM이 클라이밍하는 모습.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같은 마음의 짐을 하나쯤 메고 살 것이다. 3년 전 내게도 운동은 정말 하기 싫지만 언젠가는 해야만 하는 숙제 같았다. 이제 주변 지인들은 나를 운동 좋아하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다. 우연한 계기를 통해 스포츠클라이밍을 접한 뒤다. 수평으로 누워 있는 걸 누구보다 좋아한다고 자부했던 직장인을 수직으로 공중에 매달리게 만든 그 운동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우선 클라이밍에 대한 오해를 짚고 넘어가자. 헬멧을 쓰고, 긴 줄을 매단 뒤 인공암벽을 타고 높이 올라가는 걸 상상한다면 당신은 클라이밍을 해본 적이 없을 확률이 높다. 이는 스포츠클라이밍 중 ‘리드’ 종목으로, 아마추어 클라이머가 주로 하는 클라이밍인 ‘볼더링’ 종목과는 다른 것이다.

2020 도쿄올림픽에서 처음 정식으로 채택된 올림픽종목인 스포츠클라이밍 기준으로 설명하면 클라이밍은 크게 볼더링, 리드, 스피드로 나뉜다. 쉽게 말해 리드는 높이, 스피드는 속도로 승부를 겨루는 종목이다. 일반인이 취미로 가장 많이 접하는 볼더링은 3~5m 벽을 별다른 안전장비 없이 맨손으로 도전하는 종목이다. 암벽화와 초크만 있으면 누구나 도전할 수 있어 진입 장벽이 낮다. 서울·경기권에서는 어느 동네건 실내 볼더링 암장이 있기 때문에 지리적 접근성이 높은 편이다. 올림픽 덕분인지 수년간 볼더링에 대한 인기가 크게 상승했다. 주말엔 정말 발 디딜 틈이 없는 곳도 있으니 예약 ‘눈치 게임’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아둬야 한다.

내가 처음 클라이밍을 시작한 건 2020년 여름이었다. 새 직장으로 옮긴 뒤 적응을 마치고 나니 운동에 대한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평소 간헐적으로 하던 수영을 꾸준히 할까 고민했지만 당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수영장이 문을 닫았다. 그때 갑자기 영화 ‘엑시트’가 떠올랐다. 클라이밍 동아리 출신 용남(조정석)이 철봉에서 기상천외한 동작을 멋있게 소화해내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마침 집 근처에 대형 실내 암장이 있었고, 클라이밍 경험은 없지만 평소 일 처리가 빠른 나는 그 길로 바로 암장으로 가 3개월 기간권과 초급반 수업을 등록했다.

마른 비만에서 턱걸이 10개 성공까지

영화 ‘엑시트’의 주인공 조정석(왼쪽)과 임윤아는 클라이밍 동아리에서 선후배 사이로 만났다.

영화 ‘엑시트’의 주인공 조정석(왼쪽)과 임윤아는 클라이밍 동아리에서 선후배 사이로 만났다.

전형적인 마른 비만에 근육량이 0에 가까웠던 나는 처음부터 ‘여자 조정석’이 될 수는 없었다. 수업이 끝나면 나머지 연습이 필수였다. 처음엔 집 근처 암장만 1년이 넘도록 다녔다. 느리지만 분명히 성장하는 게 느껴졌다.



참고로 클라이밍은 벽을 등반하는 영상을 찍은 뒤 SNS에 업로드하는 독특한 문화가 있다. 이걸 매번 누군가 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삼각대를 들고 다녀야 한다. 나는 왠지 쑥스러워서 클라이밍을 시작한 지 1년이 지난 시점에도 삼각대를 사지 않았다. 1년하고도 6개월이 지나자 처음 클라이밍을 시작했을 때 ‘저 정도만 올라도 좋겠다!’고 생각하던 단계로 올라섰다. 그때야 처음으로 삼각대를 사서 영상을 찍기 시작했고, 내 등반 모습을 직접 확인하면서 스스로 자세 교정을 하다 보니 탄력을 많이 받았다. 그러니까 조금 부끄럽더라도 초심자 시절 삼각대를 빨리 구입하는 것이 좋다.

영상을 찍고 SNS에 업로드한 시점부터 본격적으로 ‘원정 훈련’을 시작했다. 홈짐(home gym)이 아닌 서울과 경기 방방곡곡의 다른 암장에 가보는 것. 이동시간이 꽤 걸리는 만큼 한번 암장에 들어가면 짧게는 3시간, 길게는 5시간 동안 벽을 탔다. 이제는 광화문, 홍대, 강남, 분당 등 수도권에서 안 가본 암장이 드물 정도가 됐다.

1년간 주 2회 원정을 나가는 삶을 생활화하면서 근력과 체력, 악력이 엄청나게 늘었다. 클라이밍뿐 아니라 등산에도 푹 빠져서 운동이 삶의 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가 됐다. 가장 기쁜 변화는 로망이었던 턱걸이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시작한 후 1년 동안 단 하나도 힘들었는데 어느 순간 너무 쉽게 2개를 성공했다. 하나를 성공한 뒤로는 개수 늘리는 것이 비교적 쉬워서 지금은 턱걸이 10개도 가능하다.

취미가 삶에서 중요한 영역이 되면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프로선수는 아니지만 지금도 목표치를 한참 밑도는 성적으로 클라이밍을 마치고 집에 올 때면 그렇게 화가 날 수가 없다. 클라이밍은 여전히 나에게 쓴맛과 좌절감을 맛보게 하지만 그 이상의 즐거움과 기쁨을 주는 취미이기도 하다.

3년 만에 애증이 엇갈릴 만큼 클라이밍에 빠져든 건 그 스포츠가 가진 매력 때문이다. 볼더링에서는 스타트 지점에서 시작해 끝점에 도착하면 “그 문제를 풀었다”고 표현한다. 쉬운 문제는 금방 풀리지만 어려운 문제에 도전하다 보면 수십 번씩 실패하고 떨어진다. 문제를 한번 풀어내면 전완근이 강하게 펌핑되기 때문에 근육이 회복될 때까지 벽 아래 앉아 기다려야 한다.

자연스럽게 같은 구역에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앉아 서로 등반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타인을 응원하게 되고 아깝게 떨어지면 함께 아쉬워한다. 나도 올라가다 너무 힘들어서 손을 놓거나 떨어지려고 할 때 누군가가 “안 돼요! 밑에 발 있어요. 조금만 더!”를 외치는 소리에 속으로는 ‘제발 저 응원하지 말아주세요!’를 부르짖으며 이 악물고 한 번 더 손을 뻗는다. 그 응원 소리에 힘입어 마침내 성공하면 기쁨과 더불어 관중의 기대에 부응했다는 데 약간의 뿌듯함을 느낀다.

나이 먹을수록 누군가에게 칭찬받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암장에서는 모르는 사람끼리도 진정성 있는 칭찬이 오간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나조차도 나와 같은 문제를 풀다 먼저 성공한 사람에게는 “멋있어요”라고 말하며 엄지를 슬쩍 올린다. ‘암장 동료’에게 문제 푸는 ‘꿀팁’을 서로 알려주며 성장하는 것도 클라이밍의 훈훈한 미덕이다.

또 클리이밍은 게임의 형식을 띠다 보니 중독성이 엄청나다. 한 번만 더 도전하면 클라이밍에 성공할 것 같아서 이미 체력이 바닥을 찍었는데도 자진해서 몸을 혹사시키게 된다. 마지막 힘을 짜내서 성공했을 때의 쾌감은 말로 다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정신없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다 보면 다음 날 엄청난 근육통에 시달리는 일이 부지기수다. 그래도 파스를 덕지덕지 붙이고 또 암장으로 향한다.

몸이 가벼워지고 근육이 붙으면서 내 몸을 원하는 대로 컨트롤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일이든 인간관계든 어디 내가 원하는 대로 컨트롤할 수 있는 게 있던가. 그런 스트레스를 받은 날에는 짐을 챙겨 암장에 나가 운동하다 보면 마음이 씻은 듯이 개운해진다. 몸이 가벼워지니 일상의 피로감이나 예민도가 훨씬 낮아졌다. 실제로 클라이밍을 시작하기 전엔 체지방률이 28%인 전형적인 마른 비만이었는데, 식단 조절 없이 체지방률이 14%까지 떨어졌다.

물론 단점도 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볼더링은 따로 안전 장비가 없어 부상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운동 전 충분한 스트레칭은 필수다. 떨어졌을 때를 대비해 필요한 낙법도 습관화하는 것이 좋다. 예상치 못하게 높은 곳에서 힘이 빠져 떨어지게 되면 크게 다칠 수도 있다. 대부분의 클라이머는 크고 작은 부상을 경험하지만, 잘하면 잘할수록 리스크가 큰 동작을 시도하기 때문에 오히려 숙련자가 더 크게 다치는 경우가 많다. 클라이밍에 도전하게 된다면 1순위로 둬야 할 것은 무조건 안전이다. 즐거움을 느끼고자 하는 취미인데 몸이 상하면 안 되잖나. 욕심은 내려놓고 안전을 생각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3년 차 클라이머의 꿈

앞으로는 볼더링뿐만 아니라 리드를 비롯한 다른 클라이밍 종목으로 영역을 넓혀볼 계획이다. 최근 화제가 된 넷플릭스 시리즈 ‘피지컬: 100’에 출연한 김민철 선수의 주 종목인 아이스 클라이밍도 체험해봤는데, 같은 클라이밍이라도 종목에 따라서 주로 쓰는 근육이 달라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최근 루즈하게 느껴지던 나의 클라이밍 라이프에 새로 눈을 뜨게 해준 신선한 경험이었다.

장기적으로 클라이밍을 내 생애와 함께할 운동으로 발전시키고 싶다.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볼더링 전용 실내암벽장에 오는 사람 대다수가 20~30대여서, 40대 이상 클라이머들은 다 어디 계신가 궁금했는데 리드나 자연 암벽등반 쪽에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앞으로 부딪쳐볼 수많은 벽이 있다는 것에 설렌다. “클라이밍 그거 언제까지 하게?”라는 질문에 “평생!”이라고 대답하는 클라이머를 꿈꾼다.

#클라이밍 #직장인칼럼 #임정원 #여성동아

임정원
전형적인 공대생. 
항상 문제를 풀어내야 하는 클라이밍에 끌린 것은 필연일지도 모른다



사진제공 임정원 
사진출처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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