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모라면 누구나 아이의 발달 속도를 걱정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와 조금 다른 것 같은데 검사를 받아야 할까, 말아야 할까’ 고민하고, 작은 행동 하나에도 신경이 쓰이는 것이 부모 마음이다.
천근아 교수를 만나기 전 포털사이트에 ‘천근아 진료’라고 검색해봤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과학교실 교수이자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과장인 그는 30년간 15만 명 이상의 아이를 진단하고 치료해온 소아청소년 발달장애 분야의 명의로 꼽힌다. 블로그와 육아 커뮤니티에는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다”는 진료 후기가 가득했다. 실제로 초진 예약은 2029년 말까지 마감돼 있다.
올해 3월 천 교수는 자폐스펙트럼장애·ADHD·경계선지능 등 발달이 느린 아이들을 진료한 경험을 바탕으로 육아 지침서 ‘천근아의 느린 아이 부모 수업’을 펴냈다. 그는 “아이가 또래와 조금만 달라도 느린 건 아닐지 지나치게 걱정하는 경향이 있다”며 “부모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느림’과 치료가 필요한 ‘증상’을 구분할 수 있길 바라는 취지로 책을 썼다”고 말했다. 아이의 발달을 둘러싼 오해와 불안 속에서 부모는 어떤 기준을 세워야 할까. 그 해답을 듣기 위해 4월 22일 그를 만났다.
느림과 다름을 구분하는 법
요즘 부모들은 육아 커뮤니티와 SNS에서 끊임없이 정보를 접하며 아이와 관련된 사소한 차이에도 불안함을 느낀다. 천 교수는 “아이의 증상을 빠르게 눈치채서 진료를 일찍 예약하는 건 바람직하지만, 정상 발달임에도 지나치게 걱정하거나 과열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느림’과 ‘다름’ 그리고 ‘지연’과 ‘장애’는 구분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부모들은 보통 아이가 어떤 모습을 보일 때 ‘느리다’고 느끼나요.
아이가 기질적으로 까다롭거나, 예민하거나, 산만하거나, 조금만 느려 보여도 또래와 다른 것 같다며 “느리다”고 표현해요. 요즘은 느림이 단순히 속도가 늦다(slow)보다는 다르다(different)는 의미로 많이 쓰이는 것 같아요. 보통 언어와 운동 발달이 늦을 때 가장 많이 걱정하시는데요. 최근에는 예전보다 사회성에 관한 관심도 커져서 눈치가 없다거나 사회적인 교감이 잘 안 되는 모습도 느리다고 생각해요.
발달 지연과 발달장애는 어떻게 구별할 수 있나요.
비언어적 소통이 잘되는지, 안 되는지에 따라서 구별할 수 있겠죠. 단순 발달 지연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정상 발달 단계로 돌아올 수 있는 경우를 말해요. 가장 걱정하는 게 언어 지연인데, 말이 늦더라도 지연 정도가 6~8개월, 길어도 1년 이내여야 해요. 12개월 이상 지연되면 치료가 필요할 수도 있고요. 눈빛 교환이나 몸짓언어 같은 비언어적 의사소통이 잘되는 아이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우리가 외국어를 몰라도 몸짓과 몇 마디 말로 해외여행을 하는 것처럼요. 반면 발달장애라고 하면 자폐스펙트럼장애나 지적장애를 일컬어요. ADHD처럼 발달은 정상인데 행동 조절이 어려운 경우도 발달장애로 분류되고, 약물치료가 필요할 수 있어요.
자폐스펙트럼장애는 보통 언제 증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나요.
생후 18개월 전후부터 증상이 뚜렷해져요. 이때는 아이들이 혼자 걷기 시작하면서 넘어지기도 하고, 이것저것 일을 저지르는 시점이거든요. 그러면 엄마가 “OO아”라고 이름을 부르고, 아이는 엄마를 쳐다보면서 표정을 읽고 ‘아, 지금 이 행동을 멈춰야 하는구나!’ 판단해요. 이걸 사회적 참조라고 합니다. 그런데 자폐스펙트럼장애 아이들은 사회적 참조 능력이 떨어져요. 불러도 쳐다보지 않고, 사람보다는 사물에 관심을 두거나 주변 눈치를 잘 보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부모님들이 병원에 오면 “눈을 안 마주쳐요” “사람을 신경 안 써요” “산만해요”라고 설명하세요.
자폐스펙트럼장애는 만 3세 이후에 정확한 진단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의심이 생기더라도 그때까지는 기다려야 할까요.
정확한 진단은 생후 24개월에서 36개월 사이에 가능하지만, 초기 신호는 생후 2~3개월부터 보일 수 있어요. 다만 100일, 8개월, 12개월도 안 된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오는 건 이르다고 봐요. 이 시기에는 병원보다 가정에서 제1차 양육자가 아이에게 얼마나 사회적 자극을 주는지가 핵심이에요. 생후 18개월 이전에 이상 신호를 알아차려서 얼굴을 자주 마주 보고, 눈을 맞추게 유도하는 훈련을 해주면 좋아요.
양육에 꼭 필요한 3가지
말은 늦지만 공룡 이름을 줄줄 외우고 숫자에 강한 아이를 ‘영재’로 착각하는 부모가 종종 있다. 그러나 교감과 소통 없이 반복적인 관심사에 몰두한다면 이는 고기능 자폐의 신호일 수 있다. 최근에는 부모의 양육 방식, 우울·방임 등 환경 관련 문제로 인한 아이의 행동을 오해하는 경우도 느는 추세다.자폐스펙트럼장애 아이를 ‘영재’로 오해하는 경우도 많다고요.
맞아요. 서너 살밖에 안 됐는데 1부터 1000까지 읊고, 곤충 이름을 다 알고, 공룡도 티라노사우루스나 브라키오사우루스를 넘어 발음이 어려운 이름을 말하고, 아파트 이름까지 줄줄 외우는 아이들이 있어요. 그러면 부모님들은 ‘우리 아이가 말은 늦었지만 지적 능력이 뛰어난가 보다’ ‘영재인가?’ 생각하죠. 그것과 더불어 또래 아이들과의 교감이나 상호작용 능력이 형성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 능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이 있어요. 좋아하는 주제 외에는 관심이 없고, 친구와 대화하다가도 금방 자기 관심사로 돌아가죠. 이렇듯 사회적 소통 능력은 부족한데 특정 분야에 편향된 지식과 암기력이 뛰어나다면 자폐스펙트럼장애 증상일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이는 고기능 자폐일 가능성이 높아요. 이런 아이들은 언어와 인지 능력은 뛰어난, 기능이 좋은 자폐라고 해서 ‘아스퍼거증후군’으로 불리기도 했어요.

천근아 교수가 세브란스 유튜브 채널에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 진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반응성애착장애’라고 해서 부모가 심한 우울증을 앓거나, 알코올·게임 중독이거나, 정서적으로 방임하는 경우 아이가 적절한 자극을 못 받아 발달이 늦어진 거죠. 기본적으로 시기별로 아이에게 충족시켜야 하는 생리적·정서적 자극 등 필수 자극이 있어요. 기저귀가 젖었을 때 즉각 갈아주는 것, 울면 달래주는 행위 등이 뇌의 신경 면적을 늘어나게 하는 일종의 환경적 자극이거든요.
이런 것을 기본 이상만 해주면 되는데 10%도 안 한다면 아이는 멍해지고, 언어 발달이 늦어지고, 사람을 봐도 시큰둥해서 언뜻 자폐 초기 신호처럼 보일 수 있어요.
진료할 때 가정환경도 꼼꼼히 들여다보겠네요.
부부가 어떤 식으로 양육했는지 가정환경 조사를 철저하게 해요. 영아기라고 해도 아이는 부부 싸움을 감각적으로 느껴요. 부모의 정서적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아이에게 눈을 맞추고 편안한 환경을 제공하기 어려워지는데, 이로 인해 발달이 늦어지죠.
특히 생후 36개월까지는 결정적 시기예요. 이 시기 뇌는 가변성이 높아요. 환경적 자극과 양육 방식에 따라 아이가 어떤 인성을 갖고, 어떻게 발달하느냐가 결정돼요. 이걸 ‘뇌 가소성’이라고 합니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속담이 뇌 과학적으로 입증된 말이거든요. 이때 일관성, 반응성, 민감성 등 양육에 필요한 3가지를 잘 제공하면 애착 형성도 잘되고, 정서적으로 안정된 뇌로 발달해요.
그래서 엄마가 혼자 힘들게 키우거나, 부부 싸움이 잦은 환경 속에서 자란 아이가 의심 증상을 보일 때는 6개월에서 1년 정도 환경을 먼저 조정해보자고 조언해요. 양육자가 자주 바뀌면 안 되고, 어린이집을 일찍 보냈다면 아이와 일대일 관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어요. 엄마가 아이와 눈을 맞추고 잘 놀아주는 것만으로도 증상이 교정되는 경우가 많아요. 이런 변화가 보이면 자폐나 발달장애 진단을 미룰 수 있는 거죠.
의사의 진단 이후 부모가 해야 할 일은 병명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아이만의 시간표’를 인정하는 것이다. 자폐든, 단순 지연이든 중요한 건 적응력과 자존감. 아이가 성공 경험을 쌓고, 부모가 정서적으로 보듬으며 마음을 달래주는 일명 정서적 수선 과정이 뇌 발달에까지 긍정적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기능보다 정서가 먼저”라는 천 교수의 육아 철학은 그가 두 아들을 키우며 깨달은 진심이기도 하다.
교수님은 아이들을 어떻게 키웠을지 궁금합니다.
저는 1998년에 결혼하고 1999년과 2000년에 두 아이를 낳았어요. 연년생 육아와 소아정신과 수련을 동시에 했죠.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이들이 일종의 실험 대상이었어요. 유명한 인지심리학자 장 피아제가 자기 아이들을 데리고 실험해서 ‘인지발달이론’을 정립했거든요. 저도 어설프게 아이들의 연령별 발달 과정을 비디오로 찍고, 매일 관찰하면서 ‘잘 발달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말겠다’는 심정으로 키웠던 게 기억나네요.

천근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과학교실 교수.
아이만의 시간표를 인정하는 게 먼저
육아하면서 어떤 점이 힘들었나요.아는 게 병이라고 펠로(전임의) 시절엔 소아정신과 지식이 많아서 아이를 느긋하게 못 보겠더라고요. 뭔가 조금만 이상해도 ‘이게 뭐지?’라는 생각에 걱정이 앞섰어요. 소아정신과 의사가 되면서 제일 중요하게 배운 건 ‘부모는 완벽할 수 없고, 빨리 교정할 수 있는 부모가 좋은 부모’라는 거예요. 두 아들을 키우면서 초반에는 ‘패키지 육아’를 했어요. 옷도, 가방도, 학원도 똑같이요. 그런데 두 아이의 기질이 정반대더라고요. 큰애는 조용하고 얌전한 성격인데 둘째는 축구를 좋아하는 활동적인 아이였어요. 제가 쌍둥이나 연년생들의 경우 절대 패키지 육아를 하지 말라고 하는 게 다 경험해서 우러나온 말이에요.
저도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고 혼을 내는데, ‘정서적 리페어(수선)’만큼은 잘해줬다고 생각해요. 엄마가 화를 내고 얼마나 빨리 아이들을 위로해줬느냐에 따라서 (그 화가) 아이의 뇌 회로에 상처로 남는지, 흉터로 남는지를 연구한 논문이 있어요. 여기서 상처와 흉터는 은유적 표현이에요. 적어도 1시간을 넘기지 말아야 해요. 부모가 화낸 것을 아이들은 사랑의 표현이라고 믿지 않아요.
진료실에서 아이한테 “엄마가 OO이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라고 물어보면 전혀 모르겠대요. 그럼 엄마가 옆에서 “어떻게 엄마가 널 사랑하는 줄 모를 수가 있어?”라고 되물어요. 그럼 아이는 “맨날 소리만 지르잖아”라고 얘기하죠. 아이들은 표현하지 않으면 부모님이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몰라요. 표현해줘야 해요. 저도 완벽하진 못했지만 정서적인 수선은 빨리해줬어요.
발달장애 진단을 받았다면 그 이후에는 어떻게 키워야 할까요.
아이의 느림은 종류가 다양해요. 단순 발달 지연이면 부모님들이 ‘내가 열심히 하면 괜찮아지겠구나’ 하면서 조금은 안도하죠. 가장 힘들어하는 건 자폐스펙트럼장애를 진단받았을 때예요. 자폐 정도도 너무 다양합니다. 백이면 백, 예후도 다르고 치료 방향도 달라요. 연령에 따라 접근 방식도 달라지고요. 그래서 저는 부모님들께 “진단에 갇히지 말고, 아이의 장점을 어릴 때부터 발굴해보라”고 말씀드려요. 특히 초등학교 2~3학년 무렵부터는 자립에 도움이 될 부분을 찾아주는 게 중요합니다.
최중증 아이들은 부모님의 정서 관리가 정말 중요해요. 반면 자립이 가능한 경도 아이들이라면, 너무 낙담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일찍부터 훈련하면 30~50% 정도 자립이 가능한데, 부모가 우울함이나 무력감에 빠지면 자립할 수 있는 아이도 자립을 못 하는 경우가 있어요.
경계선지능이나 단순 발달 지연은 ‘아이만의 시간표’를 인정해주셔야 해요. 학습은 단순히 성적을 잘 받거나 대학을 가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뇌 발달을 자극하는 활동이에요. 공부를 재밌게 하는 방법을 고안해야 해요. 3학년이 1학년 수준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도 괜찮아요. 성취 경험이 쌓이면 뇌가 활발해지고 공부가 덜 두려워져요.
부모님들께 꼭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부모라면 누구나 ‘우리 아이가 빠른 줄 알았는데 산만한 거였네’ ‘순한 줄 알았더니 느린 거였네’ 등 고민하는 순간이 있을 거예요. 이미 아이가 치료 중이라면 많은 욕심을 내지 마시고, 아이가 자존감을 갖고 ‘이 세상은 살 만하다’고 느끼게 해주세요. 자꾸 ‘넌 이것도 못 해?’ 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면 아이는 진짜 자신을 부족한 존재로 받아들여요. 진단명이 같아도 아이는 다 달라요. 아이만의 특징을 인정해주고, “네가 우리 아이여서 너무 행복해”라고 표현하며 사랑해주면 어느 시점에 뇌가 갑자기 계단식으로 발달하면서 삶을 헤쳐나갈 수 있는 아이로 성장할 거예요. 그러니 용기 잃지 마시고 조금 더 힘내서 오늘 하루도 행복하게 양육하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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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해윤 기자 사진출처 세브란스 유튜브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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