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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아이 글쓰기 실력 높이고 싶다면, 자신을 글감 삼아 자주 쓰게 하세요"

‘글쓰기 대통령’ 강원국

전혜빈 기자

2025. 03. 27

청와대 연설비서관 출신으로 ‘글쓰기 대통령’이라 불리는 강원국 작가가 초등학교 아이들의 글쓰기 실력 높이는 비법을 알려줬다.

요즘 초등학생들의 손은 틈날 때마다 스마트폰의 짧은 영상을 휙휙 넘기기에 바쁘다. 이로 인해 책을 읽거나 글 쓰는 활동에서 점점 멀어지며 ‘문해력’이 떨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교육의 근간이 되는 문해력을 키우려면 독서와 더불어 글쓰기가 효과적이다. 아이 손에 노트와 연필은 쥐여줄 수 있지만, 막상 글쓰기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는 학부모들이 많다. 글쓰기에 두려움을 겪는 학부모들과 어린이들을 위해 ‘글쓰기 대통령’이라 불리는 강원국 작가가 나섰다. 그는 신간 ‘글쓰기 대통령 강원국의 초등학생 글쓰기’를 통해 초등학생이 글쓰기를 겁내지 않고 생각을 효과적으로 정리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강원국 작가는 청와대 연설비서관 출신으로 2000년 청와대 공보수석실 행정관, 2003년 대변인실 행정관을 거쳐 2004년부터 참여정부 말까지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비서관으로 일했다. 청와대 입성 전에는 1997년부터 1999년까지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 비서실에서 김 회장의 연설문을 작성하는 업무를 했다. 2014년에 출간한 ‘대통령의 글쓰기’는 지난해 기준 50만 부 이상 팔렸을 만큼 대중적으로도 큰 인기를 모았다.

강원국 작가는 “요즘처럼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한 시대일수록 글쓰기 능력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그에게 두려움을 떨치고 즐겁고 재미있게 글 쓰는 비법을 들어보았다.

우울했던 어린이, 대통령의 글을 쓰다

어릴 때부터 글쓰기에 관심이 있었나요.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님이 위암으로 돌아가셨어요. 초등학교 때 전학을 두 번 가서 세 곳의 학교에 다녔고요. 외로움과 우울함이 늘 친구처럼 따라다녔죠. 다만 초등학교 교사셨던 어머님이 생전에 책을 집에 가져다 놓으셨거든요. 아이들이 쓴 일기나 편지글을 모아놓은 문집이요. 당시에는 텔레비전도 없고 단행본도 많이 안 나올 때였어요. 다른 사람들이 써놓은 글을 보는 것이 그나마 재미있었습니다. 글쓰기를 아주 좋아하진 않았는데 글쓰기 대회에서 상도 곧잘 받곤 했죠. 글 쓰는 데 소질은 있었던 것 같아요.

글 쓰는 일이 직업이 될 거라 예상했나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대학 다닐 때도 글을 쓰는 활동을 특별히 하지 않았어요. 대우증권에 취직했는데 홍보실에 배치받았어요. 첫 번째로 맡겨진 업무가 회사 창립 20주년을 기념하는 책자를 발간하는 일이었습니다. 책자의 집필자는 따로 있었는데 저는 그분을 보조하는 일을 맡았지요. 집필자가 다른 책을 베꼈다는 사실이 드러나서 결국 제가 집필을 맡게 됐고요. 그때 글쓰기와 인연이 맺어졌습니다.

어떻게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을 쓰게 됐나요.

대우증권에서 사보와 사내 방송 원고를 쓰다가 김우중 회장님 연설문을 쓰는 팀으로 이동하게 됐어요. 김우중 회장이 당시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이셨거든요. 연설할 일이 많으니 전문 스피치 라이터가 필요했죠. 김대중 대통령 임기 중반 즈음, 경제에 관한 연설을 쓸 사람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전경련 회장 연설문을 썼던 저를 청와대에서 발탁한 거죠.

기업 총수와 대통령의 연설문을 썼던 분이 ‘어린이’를 위한 글쓰기 책을 내셨어요.

51세에 직장을 그만두게 됐어요. 그래도 돈은 계속 벌어야 하잖아요. 회사 밖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더라고요. 학교와 회사는 ‘듣기와 읽기’에 초점이 더 맞춰져 있거든요. 상사나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것을 잘 듣고 읽어서 그대로 실행하면 되니까요. 그런데 회사 밖에서 돈을 벌려면 그것으로는 부족해요. 나만의 생각, 나의 재능을 표현해서 자신을 잘 포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 생각난 것이 아이들이었습니다. 지금의 아이들은 저희 세대보다 온라인을 통해 자신을 표현할 창구가 많죠. 회사원으로 살지 않더라도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어요. 또 글쓰기는 ‘습관 기억’이거든요. 어렸을 때 습관을 붙여놓으면 평생 몸에 익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글쓰기 습관을 갖고 삶을 주도적으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이 책을 내게 됐습니다.

어른의 글쓰기와 어린이의 글쓰기는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글의 본질에는 전혀 차이가 없습니다. 차이점이라면 저자가 경험한 내용이겠죠. 경험의 깊이가 깊으면 아무래도 생각이 깊을 확률이 높아요. 하지만 오히려 자신의 경험을 과신해서 생각이 고착화되고 선입견이 생길 수도 있고요. 그에 반해서 아이들은 편견이 덜해서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어요. 그래서 아동문학이나 동시가 존재하는 거고요.

글을 쓰실 때 특별히 준비하는 방법이 있나요.

저는 글을 쓰기 전 저만의 ‘루틴’을 수행합니다. 이를테면 카페에 가서 커피를 시키고 안경을 닦습니다. 안경을 닦고 있으면 제 몸이 저한테 글을 쓸 준비가 됐다는 것을 알려줘요. 다른 루틴도 있는데, 산책 후 커피를 마시고 샤워를 한 다음 글을 쓰는 거예요. 산책하고 샤워할 때 쓸거리를 떠올리곤 하지요. 마치 제조 공정의 레일 위에서 제품이 만들어지듯, ‘글쓰기 제조 공정’이라는 레일 위에서 글쓰기 모드로 전환하는 거죠.

글쓰기 자체를 두려워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요.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욕심’ 때문입니다. 글을 잘 쓰고 싶은 욕심, 좋은 평가를 받고 싶은 욕심에서 글을 쓰기에 두려운 마음이 생기는 것이죠. 저는 글쓰기 전 두려움을 잠재우기 위해 ‘내가 지금 천하의 명문을 써야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내 글에 관심이 없다’ ‘이번만이 기회가 아니다’ 이 3가지 생각을 해요. 두려움이 아예 없어지진 않더라도 좀 잠재워집니다.

올해 2월 1일 강원국 작가가 경기도 포천시 오색그림책방에서 학부모들에게 글쓰기 강연을 하고 있다.

올해 2월 1일 강원국 작가가 경기도 포천시 오색그림책방에서 학부모들에게 글쓰기 강연을 하고 있다.

수영하듯 글쓰기 바다에 풍덩!

욕심이 없어도 글쓰기가 두렵다면요.

두려움을 내려놓는 방법은 2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글을 자주 써서 익숙해지는 것이고요. 두 번째는 우선 쓰기 시작하는 겁니다. 일단 첫 문장을 쓰면 부담감이 많이 줄어들어요. 대부분이 글쓰기 직전의 두려움에서 머물고 첫 문장을 쓰지 않아요. 글쓰기는 마치 수영과 같아요. 밖에서 물을 볼 때는 뛰어들기 무섭지만, 막상 물과 몸이 닿으면 두려움이 확 줄어들잖아요. 수영한다는 마음으로 글쓰기를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처음에 어떤 주제로 접근하면 좋을까요.

자기 자신을 글감으로 삼는 것을 추천해요. 홈그라운드에서 경기가 있으면 선수들이 더 편하잖아요. 자신을 자신만큼 아는 사람도 없기 때문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거죠. 자기의 감정, 생각, 상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쓸 수 있고요. 또 자신에게서 가족, 친구로 확장해 글을 쓸 수도 있어요.

초등학생들이 숙제로 일기를 자주 쓰는데, 글쓰기 능력을 배가시키는 방법이 궁금해요.

오늘 한 일을 단순히 나열하는 방식은 지양해야 합니다. 오늘 한 일 중에 특정 사건이나 장면을 골라서 일기를 쓰는 것이 좋습니다. 일과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사건을 떠올려보세요. 그 상황에서 자기감정과 교훈, 다짐 등을 덧붙이면 글을 풍부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사건에서 자기가 느낀 것을 하나의 주제로 집약하고, 하나의 메시지나 주제가 있으면 좋은 일기가 되죠. 일기의 주인공을 엄마, 아빠 혹은 친구로 확장하거나 지난주에 있었던 일 또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기대를 주제로 삼는 것도 다양한 일기를 쓰는 방법입니다.


2월 22일 서울 강남구 레번 북카페에서 열렸던 글쓰기 강연 모습.

2월 22일 서울 강남구 레번 북카페에서 열렸던 글쓰기 강연 모습.

독후감도 초등학생들의 필수 과제인데, 글쓰기 함양에 어떤 효과가 있나요.

글을 잘 쓰려면 글감과 문체, 2가지가 필요합니다. 문체는 자신만의 글 쓰는 방법을 말해요. 2가지를 길러주는 글쓰기 형식이 바로 독후감입니다. 책이야말로 글감 창고죠. 책에는 글에 쓸 재료들이 풍부합니다. 또 학생들이 읽는 책 대부분은 잘 쓴 글입니다. 이렇듯 잘 쓴 글을 반복해서 읽다 보면 그 책의 문체를 닮아가요. 그러면서 자신만의 문체를 갖게 됩니다.

한 가지 책을 반복해서 읽는 경우도 있는데요.

어머니들 가운데 간혹 아이가 한 가지 책만 읽는 것을 걱정하시는 분이 있어요. 아이에게 ‘애착 책’이 생겼다는 건 저자처럼 쓰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고 이해할 수 있어요. 어머니들이 그 싹을 잘라선 안 되죠. 편독하지 않고 다양하게 읽었으면 하는 마음도 이해는 하지만 요즘 세상에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는 거거든요. 다양한 정보는 검색해서도 찾을 수 있어요. 하지만 글 쓰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은 남의 글을 읽으면서 스스로 해야 합니다. 한 가지 책만 읽더라도 기다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독후감을 염두에 두고 책을 읽을 때 신경 쓸 부분은요.

머리말과 목차를 신경 쓰세요. 글의 얼개나 전체 줄거리 흐름을 목차에서 파악하고요. 머리말을 읽으면 저자가 어떤 의도로 어떤 배경에서 어떤 독자를 대상으로 책을 썼는지를 알 수 있어요. 그 2가지만 잘 봐도 자신의 의견을 덧붙여서 독후감을 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장별로 한두 줄로 요약하고, 인상적인 문구에는 줄을 치거나 포스트잇을 붙이면 책의 내용을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영감이 떠오르는 대목에 감상을 메모해도 좋고요.

초등학교와 고학년의 글은 어떤 것이 달라야 할까요.

우선 어휘와 문장 수준이 달라야겠죠. 저도 글을 쓸 때면 온라인 국어사전에서 예문까지 꼼꼼히 살펴봐요. 아이들의 경우에는 교과서에 학년에 맞는 어휘가 나와 있으니 교과서를 충실히 읽어보게 하세요. 또 글은 장르별로 난이도가 달라요. 쉬운 순서대로 글의 종류를 나열해보면 서사, 묘사, 서술, 마지막은 논증입니다. 저학년 때는 자신의 이야기를 서사로 쓰거나 본 것을 그대로 묘사하는 정도의 글을 쓴다면, 고학년 때는 자기 생각을 서술하고 주장을 밝히는 논증의 단계로까지 나아가는 거죠.

엄마, 아빠가 말동무가 되어주세요!

논설문 잘 쓰는 법이 궁금합니다.

서론, 본론, 결론 중에 본론을 먼저 씁니다. 어떤 주제가 있으면 그 주제에 해당하는 나의 주장부터 써요. 그리고 주장에 해당하는 이유와 근거를 덧붙입니다. 그 후에 서론을 씁니다. 서론은 일종의 바람잡이 같은 역할을 해요. 주제에 대한 관심을 끌고 주의를 환기시키죠. 본론을 쓰고 그것에 해당하는 복선인 서론을 쓰는 것이 훨씬 쉽습니다. 결론은 주장을 다시 한번 강조하거나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쓰면 좋아요. 서론, 결론은 입출구를 인테리어 하는 과정이고, 집을 짓는 과정은 본론이므로 본론을 먼저 쓰는 것을 추천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디지털 환경에 더 익숙한데 손으로 쓰기와 키보드로 쓰는 방법 중 어떤 게 더 좋은가요.

손으로 쓰기와 키보드로 쓰기 모두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쓰는 단계에 따라 다른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좋아요. 글의 발상 단계에서는 손 글씨로 아이디어를 적습니다. 펜으로 낙서하듯이 아이디어를 쓰는 거예요. 컴퓨터 앞에 앉으면 뇌는 이것을 숙제라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바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거든요. 바둑 둘 때 옆에서 훈수를 두면 수가 더 잘 보이잖아요. 마찬가지로 글쓰기에서 한 발자국 나와 생각하는 것입니다. 앉아서 쓸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핸드폰으로 기록을 해둘 수도 있어요. 아이디어를 충분히 구상했다고 판단되면 마지막에 키보드로 글을 쓰는 거죠. 손으로 쓰는 것보다 편집이 더 자유롭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글을 쓸 때는 키보드로 쓰는 것이 좋습니다.

책에서 글쓰기 역량을 대인관계 능력으로 확장하신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가장 원초적인 글이 일기고 그다음이 편지라고 생각합니다. 편지는 독자가 한 명인 글쓰기죠. 근본적으로 글은 독자에게 읽히기 위해서 쓰는 거잖아요. 독자와 나의 관계 맺음이 글 안에 담겨 있는 거죠. 글을 쓰면 자연스럽게 글을 읽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되고 그 사람을 위하는 마음이 생겨요. 글쓰기는 결국 사람의 공감 능력을 키워주죠. 남을 생각하는 역지사지의 마음이 커지면 인간관계도 훨씬 원만해집니다.

아이들이 즐겁게 따라 할 수 있는 글쓰기 방법이 있다면요.

글쓰기 놀이 방법을 알려드리고 싶어요. 우선 친구랑 둘이 짝을 맺어서 자신이 글로 쓰고 싶은 것을 말로 이야기를 해줘요. 이야기를 들은 친구는 그 내용을 글로 쓰면 돼요. 그리고 쓴 글을 친구와 같이 보면서 “이 말은 네가 잘못 들었나 보다” “네가 쓴 글을 보니까 내가 하지 못했던 생각도 난다”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역할을 바꿔서도 하고요. 그럼 글쓰기와 말하기 연습이 한 번에 됩니다. 친구와 함께하니 즐겁고, 부담스럽지 않게 글쓰기 역량을 키울 수 있죠.

부모님들이 아이들의 글쓰기 능력을 키워주기 위해 노력할 부분이 있다면요.

글쓰기는 말하기와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님께서 아이들의 말동무, 글동무가 돼주셔야 해요. 엄마가 먼저 아이에게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물어보고 또 말을 들어주면서 “그 말이 참 좋은데 글로 써보면 어때?”라고 해주세요. 글을 쓰면 같이 읽어보고 칭찬도 해주시고요. 글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함께 또 다른 글감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타인이 글을 봐주는 게 글쓰기에 도움이 되나요.

글을 지속적으로 쓰려면 읽어줄 사람이 필요해요. 저는 아내가 제 글을 읽어줍니다. 제 최초의 독자죠. 아내한테 보여주는 것으로 저의 글쓰기는 끝납니다. 그다음 출판사나 언론사에 글을 보내요. 아내가 성의 있는 평가를 해주진 않더라도 제 글을 읽어주는 것만으로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부모가 글을 읽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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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지호영 기자 
‌ 사진제공 메디치미디어 강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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