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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도 제덕쿵야!" 올림픽 특수 누리는 '총‧활‧칼'

윤채원 기자

2024. 08. 28

2024 파리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단이 활약했던 ‘사격·펜싱·양궁’ 연습장이 올림픽 특수를 누리고 있다. 컴퓨터 게임 대신 사격, 펜싱, 양궁으로 체력 단련뿐 아니라 ‘미래의 금메달리스트’를 꿈꾸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엄마 나 10점 쐈어! 이거 옆엔 9점, 9점, 8점!”

8월 12일 오후 6시, 서울 구로구의 한 양궁클럽, 초등학생 8명이 한창 활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키 1m 남짓 초등학교 1학년부터 160㎝가 훌쩍 넘는 초등학교 고학년까지, 흰색 선 앞에 일렬로 선 아이들은 자신의 키보다 더 큰 활을 들고 왼쪽 눈을 감았다. “하나, 둘, 셋! 당겨!” 10m 거리 과녁에 있는 풍선 7개가 빵 터졌다. 클럽을 울리는 큰 소리에도 아이들은 입술을 앙다문 채 끝까지 과녁을 쳐다봤다. 3초가 지나자 아이들은 헤벌쭉 웃으며 새로운 화살을 활에 끼웠다.

“휴대폰 게임보다 양궁이 좋아요”

 단체전 3연패를 달성한 2024 파리 올림픽 한국 양궁 남자대표팀.

단체전 3연패를 달성한 2024 파리 올림픽 한국 양궁 남자대표팀.

2024 파리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단이 활약했던 ‘총·칼·활’ 연습장이 올림픽 특수를 누리고 있다. 기자가 직접 방문한 사격, 펜싱, 양궁 등을 실제로 해볼 수 있는 스포츠클럽과 체험 카페 등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창원국제사격장은 8월 일 방문자 수가 평시 대비 150~200명 늘었다. 8년 만에 남녀 개인전과 단체전, 혼성단체전 등 전 종목을 석권한 양궁도 올림픽 특수를 누리고 있다. 양궁클럽 대표 이경화(44) 씨는 평소 대비 문의 전화가 4배 이상 늘었고, 블로그 일 조회수도 한 자릿수에서 1400회로 늘었다고 밝혔다.

이날 양궁클럽에서 만난 김미진(46) 씨는 2024 파리 올림픽 양궁 경기에 감동받아 아들 김동윤(8) 군의 손을 잡고 양궁클럽에 방문했다. 김 씨는 올림픽 3관왕 김우진 선수의 경기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 아들에게도 그런 기쁨을 누리게 해주고 싶어 체험 수업을 예약했다. 평소 활발한 성격인 동윤 군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연신 활을 쐈다. 종종 화살이 과녁에서 튕겨 나갔지만 입꼬리는 계속 귀에 걸려 있었다. 인터뷰 내내 동윤 군은 “엄마, 이거(양궁) 계속하고 싶어요”라고 엄마 손을 끌었다. 김 씨는 “혹시 알아요? 우리 아들도 ‘동윤쿵야’ 해볼 수 있을지”라며 웃었다.

2020 도쿄 올림픽으로 ‘◯◯쿵야’를 꿈꾸며 활을 잡은 아이들은 휴대폰·컴퓨터 게임보다 양궁이 더 재미있다는 반응이다. 정하율(13) 군은 “게임은 온라인으로 하지만, 양궁은 친구들 얼굴 보고 같이 시합도 할 수 있다”며 좋아했다. 김태우(12) 군도 “양궁은 내가 직접 쏘는 거니까 더 재밌다”며 “10점을 쏘면 스스로가 더 대단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올림픽 경기에 혹해서 시작해 그 이후에도 양궁을 쭉 즐기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대한양궁협회가 주관하는 ‘춘·추계 생활체육 양궁대회’ 참가자는 2017년 235명에서 2024년 362명으로 늘었다. 이날 만난 양궁클럽 수강자들도 3~5년씩 꾸준히 양궁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양궁의 매력을 ‘명확한 목표에 따른 몰입’과 ‘나 자신과의 싸움’을 꼽았다. 1년 전 양궁을 시작한 김정원(30) 씨는 양궁은 “잡념이 사라지는 스포츠”라고 말했다.

“헬스 PT, 수영을 할 땐 몸이나 체력 변화가 더뎠다. 스트레스 풀려고 오는 건데도 잡생각이 자주 들어 하다가 그만두곤 했다. 양궁은 활을 쏘면 바로 몇 점인지 보이니까 인풋과 아웃풋이 확실해서 재미를 붙일 수 있다”는 게 김 씨의 설명이다. 김미진 씨 역시 “과녁을 향해 활을 당기고 있으면 나만의 방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며 “활을 들면 과녁 색깔만 보인다”고 말했다.

기자도 활시위를 당겨봤다. 1m 남짓 활을 드니 왼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강사가 일러준 대로 팔과 가슴을 곧게 펴려고 했지만, 그간 노트북으로 굽은 거북 목을 세우기는 쉽지 않았다. 가장 초보자 코스인 4m 거리에서 활을 쐈다. 실제 올림픽 양궁 경기 표준 거리는 70m다. 8점, 9점, 7점…. 10점은 딱 한 번 맞췄을 뿐이지만 어쨌든 과녁 중앙에 화살이 몰렸다. 8회 정도 쏘고 나니 땀이 나기 시작했다. 옆에서 같이 활을 쏘던 김 씨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이건 초등학생용 활이라 가벼운 편이에요.” 운동 효과까지 만점이었다.

찌르고, 찔리면서 성장하는 아이

이번 올림픽 펜싱 사브르 남자대표팀은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번 올림픽 펜싱 사브르 남자대표팀은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펜싱도 이번 올림픽에서 3개의 메달을 수확했다. 사브르 남자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따낸 오상욱에 이어 남자 사브르 단체전에선 금메달을, 새로 꾸린 여자 사브르 대표팀도 단체전 은메달을 따냈다. 메달 행진에 지자체는 ‘종목 성지’ 이미지 구축에 한창이다. 대전시는 대전시청 소속 오상욱·박상원 선수가 이번 올림픽 남자 펜싱 사브르 개인·단체전을 석권하자 새로 만들 펜싱 경기장 이름에 ‘오상욱’을 붙이겠다고 공언했다.

펜싱클럽도 덩달아 올림픽 특수를 누리고 있다. 8월 13일 오후 4시 30분, 서울 서초구의 한 펜싱클럽. 이곳도 파리 올림픽 펜싱 경기가 끝나고 체험 수업이 3배 늘었다. 김성렬(63) 관장은 “올림픽 같은 대형 이벤트가 있을 때면 펜싱을 체험해보고 싶은 부모님과 아이들이 함께 온다”고 말했다.

이날 만난 김정원(9) 양과 이예준(9) 군도 각각 2020 도쿄 올림픽과 2024 파리 올림픽을 보고 펜싱에 발을 들였다. 실제 에페 종목에 쓰이는 칼은 110㎝ 정도지만, 아이들은 자기 몸통보다 조금 더 긴 90㎝ 칼을 들었다. 펜싱 시합을 하면서 몰랐던 자신의 모습까지 발견했다. 정원 양은 “처음 펜싱을 시작했을 땐 무서워서 그냥 맞기만 했는데 나중엔 공격할 수도 있게 됐다. 하다 보니까 찔릴 수도 있고, 찌를 수도 있단 걸 알게 됐다. 나중엔 이기고 싶단 마음도 들었다”고 말했다. 정원 양 어머니 한송희(42) 씨도 “승부욕이 없던 아이가 의욕이 생겼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기자도 사브르 경기에 쓰이는 칼을 들어봤다. 남자 사브르 단체 결승전 경기에서 봤던 도경동 선수의 칼처럼 포물선 모양으로 휘려면 얼마나 휘둘러야 하는지 궁금했다. 손바닥에 쿡쿡 찔러도 휘지 않던 칼은 바닥에 대고 지그시 눌러야 휘어졌다. 코치 주영훈(28) 씨는 자신도 오늘 시합으로 작은 멍이 생겼다며 팔뚝을 걷어 올렸다. 길이 17m 피스트(경기 중 선수들이 움직이는 바닥) 끝에서 김 관장이 한번 체험해보겠냐고 손짓했다. 들었던 칼을 슬그머니 내려놨다.
재야의 펜싱 고수들은 이런 찰나의 두려움만 넘으면 일희일비하지 않는 의연함도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펜싱 10년 차 정은석(63) 씨는 “오랜 기간 생활체육 펜싱 시합을 나가다 보면 아이들이 달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며 “저학년 친구들은 지면 분한 마음에 울지만 나중엔 울기보다 더 연습해 다음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고 말했다. 2년 전 펜싱을 시작한 김태호(15) 군에게 시합에서 질 때 기분을 묻자 “분하긴 하지만 연습을 더 해야죠”라며 어깨를 으쓱했다. 정 씨는 손자·손녀를 만날 때면 펜싱을 권한다.

실제로 양궁과 펜싱 등은 고급 스포츠라는 인식과 달리 장비나 복장 등의 가격대가 높지 않아 진입장벽이 낮은 편이다. 양궁클럽 이 대표와 펜싱클럽 김 관장은 체험 문의 전화가 올 때면 “몸만 오시라”고 권한다. 입문자용 활과 칼, 팔·가슴 보호대, 대여용 펜싱 도복을 클럽에서 다 갖추고 있어 체험비 외에는 부대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것. 양궁은 수영이나 헬스 트레이닝처럼 정해진 복장이 없어 따로 옷을 살 필요도 없다.

2024 파리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단 최연소 선수였던 반효진(17) 선수.

2024 파리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단 최연소 선수였던 반효진(17) 선수.

전문가는 올림픽 특수가 반짝효과에 그치지 않으려면 수요자 중심 프로그램 운영, 생활체육 활성화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국내 펜싱 대표팀과 대만 대표팀을 지도한 김 관장은 “펜싱 경쟁력을 키우려면 결국 선수 풀이 넓어져야 한다”며 “엘리트 코스를 밟은 선수뿐 아니라 생활체육으로 입문한 선수도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올림픽 유도 종목에서 동메달을 딴 2000년생 김하윤 선수도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유도를 시작했다. 학교 교사의 추천으로, 취미로 찾던 체육관에서 유도를 배웠다. 고등학생 때부터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을 했지만 단숨에 메달까지 획득했다. 홍윤숙 한림성심대 레저스포츠과 교수도 “경제 수준이 높아지면서 양궁과 펜싱 등 ‘고급 스포츠’에도 관심이 많아졌다. 학교 스포츠클럽 등 이를 즐길 수 있는 여건을 확충하고 재정적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파리올림픽 #양궁 #펜싱 #올림픽특수 #여성동아

‌사진 윤채원 기자 뉴시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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