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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업계 VVIP, ‘대치동 최고 셀럽’ 일타강사의 세계

김명희 기자

2023. 03. 03

드라마 ‘일타 스캔들’의 인기로 일타강사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대한민국 사교육의 정점에서 스타 부럽지 않은 인기와 재벌에 맞먹는 수입을 올리는 ‘입시판 미다스의 손’ 일타강사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tvN 드라마 ‘일타 스캔들’

tvN 드라마 ‘일타 스캔들’

“제 별명이 뭔지 아세요? 1조 원의 남자. 현강, 인강, 출판, 거기에 부가가치까지 합치면 연평균 약 1조 원의 가치를 만들거든요. 그럼 최치열의 10분은 얼마일까요? 1조 원을 365일로 나누면 하루에 약 27억, 1시간엔 어림해서 약 1억. 고로 내 10분의 가치는 1700만 원이네.”

드라마 ‘일타 스캔들’에서 수학 일타강사 최치열(정경호)은 “딱 10분만 촬영을 더 하자”는 CF감독에게 자신의 10분 가치는 1700만 원이라고 말한다. 이는 세계 축구선수 가운데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킬리안 음바페(파리 생제르맹)의 10분 급여 270만 원보다 6배나 많은 액수다. 연 매출로 따지면 현대백화점 압구정점, 카카오게임즈, BHC그룹 등과 비슷한 수준이다.

1조 원이 드라마상 과장된 수치라고만 볼 수는 없다. 지난해 6월 메가스터디 소속 수학 일타강사 현우진이 은퇴를 암시하는 듯한 발언을 했을 당시 메가스터디교육 시가총액은 이틀에 걸쳐 약 1300억 원 증발했다. 일타강사의 경제적 위상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대한민국 일타강사는 학생과 학부모들 사이에서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며 수십억~수백억 원의 연봉을 받고 고급 부동산과 명품시장의 큰손으로 군림하는 ‘입시판 미다스의 손’이라 할 수 있다.

일타강사는 현강(현장 강의)이 가장 빨리 마감되는 강사 또는 메가스터디, 대성마이맥, 이투스 등 온라인 강의 플랫폼에서 과목별 수강생이 가장 많은 강사를 지칭한다. 과목별로 수학에서는 메가스터디의 현우진, 대성마이맥의 한석원, 이투스의 정승제를 꼽을 수 있다. 영어는 조정식(메가스터디)과 이명학(대성마이맥) 투톱 체제에 이투스 주혜연도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국어는 강민철·김동욱(메가스터디), 유대종·김승리(대성마이맥), 김민정(이투스)이 대표적이다.



수능에서 점점 더 영향력이 높아지고 있는 과탐·사탐 영역에서는 윤도영(생명과학, 윤도영통합과학시스템), 배기범(물리, 메가스터디), 방인혁(물리, 대성마이맥), 김준(화학, 대성마이맥), 이훈식(지구과학, 대성마이맥), 이지영(생활과윤리·윤리와사상·사회문화, 이투스), 이다지(한국사·동아시아사·세계사, 메가스터디), 임정환(생활과윤리·윤리와사상·사회문화, 대성마이맥), 이기상(한국지리·세계지리, 메가스터디), 최적(정치와법·사회문화, 메가스터디) 등이 일타강사로 꼽힌다.

올해 서울대·연대·가톨릭대·고대·성균관대·울산대 등 메이저 의대 합격생 110명을 배출하며 ‘메디컬 입시 최강자’로 떠오른 시대인재학원의 김은양(국어), 이신혁(지구과학) 등은 현강을 잡기 어려운 것은 물론 대기조차 잘 빠지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천문학적 연봉과 이적료 받는 명품시장 VVIP

tvN 드라마 ‘일타 스캔들’

tvN 드라마 ‘일타 스캔들’

드라마 ‘일타 스캔들’ 자문에 참여한 현우진은 일타강사계의 아이콘과 같은 인물. 1987년생,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건너가 스탠퍼드대 수학과를 차석으로 졸업한 그는 대치동 현강에서 실력을 입증받고 2014년 11월 메가스터디에 입성했다. 매년 수능 수학 만점자를 상당수 배출하면서 입시판에서 존재감을 높여왔다. 노베, 시발점, 수분감, 뉴런, 드릴, 드릴드, 킬링캠프 등 중하위권에서 최상위권까지 아우르는 넓은 스펙트럼의 커리큘럼과 질 좋은 콘텐츠, 완성도 높은 교재가 강점. 직접 집필, 제작한 ‘뉴런’ 시리즈는 2018년 한 해에만 99만 권이 팔렸으며 그 이후로도 매년 100만 권 이상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메가스터디 연봉에 교재 판매까지 더하면 1년에 500억 원 이상 벌어들일 것이라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막강한 현금 동원력을 바탕으로 2017년 당시 국내 최고가 아파트였던 서울 강남구 청담동 ‘PH129’의 분양권을 250억 원에 매입해 화제가 됐다. 장동건·고소영 부부, 골프선수 박인비, 채승석 전 애경개발 대표이사 등이 이웃사촌이다. 2018년에는 약 320억 원에 달하는 논현동 빌딩을 대출 없이 사들였으며,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쿠사마 야요이의 그림 ‘Infinity Nets’를 공개하기도 했다. 그는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만 4개 보유하고 있는데 도합 낙찰가는 108억5000만 원으로 알려졌다.

메가스터디 수학 일타강사 현우진.

메가스터디 수학 일타강사 현우진.

큰 키에 모델 핏을 자랑하는 현우진은 인강 때 디올, 톰브라운, 베트멍, 발렌시아가 등 명품 브랜드 의상을 즐겨 입으며 3억5000만 원 상당의 리차드밀과 오데마피게 등 명품 시계를 착용한 모습도 포착됐다.

대성마이맥의 일타 강사들. 왼쪽부터 유대종, 한석원, 이명학, 임정환, 이훈식.

대성마이맥의 일타 강사들. 왼쪽부터 유대종, 한석원, 이명학, 임정환, 이훈식.

누적 수강생이 350만 명에 달하는 이투스 사탐 강사 이지영은 서울대 윤리교육과 학부와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고스펙 강사다. 대학 졸업 후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 EBS와 스카이에듀를 거쳐 2019년 12월 이투스로 옮겼다. 고등학교 시절 문과였음에도 전국 물리 경시대회에서 입상할 정도로 두뇌가 비범하다. 강사 초년병 시절, 학생들의 고민 메일에 일일이 답해주며 아이들이 어떤 부분을 어려워하는지 파악하고 강의에 반영한 것이 일타강사로 성장한 비결이라고 밝힌 바 있다. 매년 수능 직후 해설 강의에서 사탐 과목 등급 컷을 정확히 예측해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종종 유튜브와 SNS를 통해 통장 잔고를 인증하거나 고급 스포츠카, 요트, 명품 백 사진을 올리기도 한다. 유튜브 채널을 통해 “2014년 이후 연봉이 100억 원 이하로 내려간 적이 없다”며 “연회비가 200만 원이 넘는 카드를 사용하고 있다. 차 살 때 1억 원이 넘는 금액을 긁어본 적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투스의 일타강사들. 왼쪽부터 정승제, 이지영, 김민정, 주혜연.

이투스의 일타강사들. 왼쪽부터 정승제, 이지영, 김민정, 주혜연.

이들 외에도 수학 일타강사 정승제는 강의를 통해 번 돈으로 부동산에 투자해 서울 마포의 신축 빌딩을 매입했고, 수리논술 일타강사 여상진은 2016년 중소 규모 자산운용사 골든브릿지자산운용을 사들여 화제가 됐다. 영어 일타강사 조정식은 얼마 전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패션 브랜드의 초청으로 전세기를 타고 해외 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다”고 밝히며 명품 브랜드 VVIP임을 알렸다. 대치동 터줏대감인 수학학원 깊은생각의 대표원장이기도 한 한석원은 2012년 재단법인 마음동행을 설립하고 국내외 소외 청소년들의 문화 활동을 지원하고 있으며, 1억 원 이상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다.

일타강사는 어떻게 이렇게 많은 돈을 벌까. 일타강사의 수입은 현강과 인강 강의료, 교재 수익이 주를 이룬다. 현강은 강사와 학원이 6:4, 인강은 3:7 정도로 나누는 것이 업계 관례지만 강사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바뀌는 추세다. 여기에 학원을 옮길 때마다 스포츠 스타처럼 이적료가 붙기도 한다. 보통 수십억 원 단위가 오가며, 강사 영입을 두고 학원끼리 법정 소송을 벌인 적도 있다. 일타강사의 높은 몸값은 결국 학생과 학부모의 부담으로 고스란히 돌아온다는 지적도 있다. 2024학년도 전 강좌를 들을 수 있는 패스(고3 환급형)의 가격은 2월 17일 기준 메가스터디 60만 원, 대성마이맥 38만 원, 이투스 45만 원부터다.

스카이’ 학벌은 기본,
따뜻하고 때론 뼈 때리는 조언으로 학습 동기 유발‘

드라마 ‘일타 스캔들’의 배경이 된 대치동 학원가.대부분의 일타강사들은 대치동 현강 강사 출신이다.

드라마 ‘일타 스캔들’의 배경이 된 대치동 학원가.대부분의 일타강사들은 대치동 현강 강사 출신이다.

일타강사들은 공부가 가장 큰 무기이기에 거의 대부분 학벌이 좋다. 한석원(기계설계), 여상진(지질학), 김동욱(국문), 이지영(윤리교육), 유대종(철학), 김준(화학교육) 등은 서울대 출신이고 이투스 국어 김민정은 고려대(국어교육), 이명학(영문)과 이신혁(천문우주)은 연세대를 나왔다. 스탠퍼드대 출신 현우진, 미국에서 중고등학교를 유학하고 서울대 영문과를 나온 이투스 영어 윤훈관처럼 해외파도 있다.

사범대 출신인 이투스 이지영과 김민정, 주혜연은 일선 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강사로 전향했다. 최근에는 화학 김준, 생명과학 박선우(대성마이맥), 국어 이원준(메가스터디)처럼 PEET(약학대학입문자격시험)나 LEET(법학적성시험) 강사들이 수능 강사로 넘어오는 경우도 있다. PEET가 폐지된 탓도 있지만 그만큼 수능의 난도가 높아졌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일타강사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푸는 스킬을 가르치고 대학으로 가는 지름길을 찾아주는 역할을 하지만, 입시라는 관문 앞에서 방황하고 좌절하는 수험생들에게 때론 인생 내비게이터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온라인 사이트와 수험생 커뮤니티에서는 일타강사들의 어록이 회자되고 있다. “모든 꽃이 피는 시기가 다르듯이 여러분 인생에서도 언제 포텐셜이 터질지 몰라요. 지금 당장 성적이 안 나오고 내가 생각하는 뭔가가 그려지지 않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말고 남과 비교하지 말고 나만의 꽃을 피울 시기를 기다리는 거야”(이다지), “인간이 언제 가장 불행해지는 줄 알아? 본인의 의지로 극복 불가능한 분야에 집착할 때야. 내가 어떤 가정환경에서 태어났는지는 내 의지로 컨트롤 불가능한 영역이지만, 내가 언제 자고 일어나며 어떻게 공부하는지는 나의 의지로 컨트롤 가능한 영역이잖아”(이지영) 등이 좋은 예다.

수학 일타강사 현우진은 수학 용어를 활용한 뼈 때리는 조언을 통해 학습 동기를 유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시대는 지수함수로 변하는데 로그함수만큼 공부하면 간극은 더 벌어진다” 같은 식이다. 정승제는 “세상은 금수저들만의 리그가 아니라 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만의 리그”라는 말로 학생들을 책상 앞에 불러 모았다.

전국 1등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자리인 만큼 구설과 사건, 사고도 많다. ‘일타 스캔들’에서 삼타강사 송준호(윤석현)가 최치열을 저격하고 진이상(지일주)이 악성 댓글을 다는 에피소드와 비슷한 사례도 있었다. 2016년에는 유명 국어 강사가 모의고사 지문 유출에 연루돼 물의를 빚은 적도 있다. 최근에는 대치동 모 일타강사가 학부모 커뮤니티에 자신에 대한 비판 글이 실리자 욕설이 담긴 게시글을 올려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일타강사는 학벌주의와 사교육 의존이 낳은 지구상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현상이다. 하지만 아이비리그 교수들도 울고 갈 초고난도 수능 문제를 풀어내야 하는 학생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자, 미로 같은 입시판에서 학생·학부모와 함께 답을 찾아가는 이들이기도 하다.

#일타스캔들 #현우진 #여성동아

사진 조영철 기자
사진제공 대성마이맥 메가스터디 이투스 tvn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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