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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플라스틱 레볼루션

윤혜진 프리랜서 기자

2023. 06. 08

매년 6월 5일은 세계 환경의 날이다. 세계 각국은 플라스틱으로 인한 환경오염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각종 규제를 내놓고 있다. 과연 우리는 플라스틱 없는 삶에 얼마큼 가까워졌을까. 

우리 주변의 물건 70% 이상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다. 플라스틱은 가볍고 튼튼해 다양한 곳에 쓰이며 산업 발전에도 이바지한 바가 크다. 다만 쓰임을 다한 후 뒷모습이 아름답지 못해 문제다. 비닐봉지와 플라스틱 병이 완전히 썩으려면 500년 이상 걸린다. 매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플라스틱 쓰레기 800만t이 자원의 보고인 바다로 떠내려가고 있다. 바다로 간 플라스틱은 해양 생태계를 파괴한다. 심지어 잘게 부서진 미세플라스틱 형태로 변형돼 생선과 조개 등에 스며들고 결국 우리 밥상에 오른다.

눈에 띄는 큰 플라스틱 쓰레기는 그나마 수거라도 할 수 있지만 크기 5mm 미만의 미세플라스틱은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문제의 심각성을 파악한 세계 각국에서는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세금을 부과하는 등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플라스틱세’ 도입한 유럽, 폐기물 수입 중단한 중국

폐플라스틱 수출 상위국인 미국은 현재 자국 내에서의 플라스틱 폐기물 재활용보다 매립의 비중이 높다. 이에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2030년까지 재활용률을 50%로 높이기 위한 국가적 재활용 전략을 세웠다. 2032년부터는 국립공원 400여 곳을 포함한 공공부지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의 판매와 유통 등을 완전히 중단할 계획도 갖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21년부터 플라스틱 비닐·음식용기·컵 등 10개 품목 판매를 금지했다. 같은 해에 재활용 불가능한 플라스틱에 대해 kg당 0.8유로의 분담금을 부과하는 ‘플라스틱세’도 도입했다. EU는 2030년까지 플라스틱 포장재에 대해 재생 원료를 30% 이상 사용하도록 의무화할 계획이다.

세계 최대 플라스틱 생산 및 소비국인 중국의 경우 환경오염 문제를 해결하고자 2017년 말부터 폐플라스틱, 폐금속 등 폐기물 수입을 중단했다. 2021년 1월부터는 전국의 식당과 주요 도시의 상점에서 플라스틱 빨대 제공을 금지하고 있으며,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의 5개년 로드맵에 따라 2025년까지 사용 제한 대상을 확대해나갈 예정이다.



지구는 둥글고 세계 각국의 동시다발적인 노력은 필요하다. 다만 세계 재활용 쓰레기의 50% 이상을 수입하던 중국에서 수입을 중단하자 곳곳에서 후폭풍이 일고 있다. 먼저 갈 곳을 잃은 폐플라스틱을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가 받아들이면서 동남아시아에 환경오염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주요 수입국 중 한 곳인 태국은 환경오염이 심각해지자 올 2월 폐플라스틱 수입을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플라스틱 쓰레기 수입을 단계적으로 줄여 2025년에는 전면 금지할 예정이다. 지금도 폐플라스틱을 수출하지 못한 일부 국가에서는 예전보다 더 많은 양을 매립 또는 소각하고 있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않는다면 치솟은 폐플라스틱 처리 비용을 감당하지 못한 국가에서 저렴한 불법 폐기장을 이용하고 불법을 묵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세계 환경단체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초 유엔환경총회는 2024년 말까지 법적 구속력을 지닌 국제 플라스틱 협약을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플라스틱 국제협약 논의가 본격화되면 플라스틱 생산, 유통, 소비, 수거, 재활용 및 국제무역 등 전생애 주기에 걸쳐 세계 각국 국민의 생활과 기업의 경제활동에 미치는 영향이 클 전망이다. 플라스틱 사용을 원천적으로 줄이고, 재활용률을 높이는 제품 설계와 생산을 촉진하는 인프라 개선이 시급하다.

2016년 기준 국민 1인당 플라스틱 폐기물 배출량 세계 3위국이었던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은 어떨까. 환경보호 단체 그린피스와 장용철 충남대 교수 연구 팀이 최근 발표한 ‘2023 플라스틱 대한민국 2.0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대표적인 일회용 플라스틱인 생수 페트병, 일회용 플라스틱 컵, 일회용 비닐봉지의 소비량이 모두 증가했다. 특히 일회용 플라스틱 컵은 2017년 국민 1인당 65개에서 2020년 102개로 가장 많이 증가했다.

탈플라스틱 사회로 나아가려는 세계 각국의 움직임이 본격화하면서 우리 정부도 폐기물 처리 중심에서 순환경제 체제로 전환하는 제도 설계에 집중하고 있다. 환경부는 각 분야의 의견 수렴을 거쳐 플라스틱 관련 정책을 수립하고 플라스틱 국제협약에 대응하는 ‘플라스틱 순환경제 전문가 포럼’을 구성해 운영할 예정이다.

한편 전문가들은 플라스틱 생애 주기에 따른 거시적 정책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규제만 내놓을 게 아니라 재활용 효과를 높이는 ‘디테일’도 동반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장용철 충남대 교수는 “한국은 EU, 캐나다 등과 달리 일회용 플라스틱에 대한 법적 정의가 따로 없고, 이를 ‘일회용품’ 안에서 포괄적으로 규제하고 있어서 구체적인 감축 전략과 규제를 시행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며 “일회용 플라스틱의 구체적인 감축 전략과 이행 방안 수립, 목표 설정, 대체 제품 개발, 관련 통계 구축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재활용률 세계 1위인 독일의 경우 2003년부터 일회용 음료 포장재에 0.25유로의 보증금을 붙여 판매한 뒤 소비자가 해당 용기를 판매점에 반환하면 보증금을 되돌려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회수율이 98%에 달하는데 더 놀라운 부분은 회수하는 음료 용기 자체를 재사용 가능한 친환경 플라스틱으로 전환해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 우리는 지난 2021년 12월부터 모든 공동·단독 주택에서 ‘투명 페트병의 라벨 제거 후 분리배출’을 의무화한 지 햇수로 3년째인데도 집중 홍보가 필요한 수준이다. 투명 페트병은 라벨을 제거해 배출하고, 제거한 곳에 접착제의 흔적이 남으면 일반 페트병으로 분류해야 한다. 자신이 내놓는 것이 투명 페트병에 해당하는지부터 헷갈리는데 접착제 흔적 여부에 따른 분류까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래서는 고품질의 재활용 원료를 만들 수 없다. 이에 환경부는 지난 5월과 6월을 집중 홍보 기간으로 정하고 각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참여 독려에 나섰다.

쏟아지는 규제와 실천 방안 중에서 무엇이 진짜 환경에 도움이 되고 우선해야 할 일인지 따져보는 ‘디테일’도 필요하다. 지난해 11월 24일부터 카페, 식당, 편의점, 대형마트 안에서 종이컵, 플라스틱 빨대, 우산 비닐 등의 사용이 법적으로 금지됐다. 이 중 플라스틱 빨대의 대체제로 종이 빨대가 제공되고 있는데 필요성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평소 카페에서 업무 미팅을 자주 갖는 회사원 최 모 씨는 “대화를 나누다 보면 컵에 넣어둔 종이 빨대가 눅눅해지고 종이맛이 난다”며 “플라스틱 빨대보다 종이 빨대의 원가가 높다는데 차라리 빨대가 필요 없는 뚜껑을 보급하는 편이 더 낫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현재 시중에서 볼 수 있는 종이 빨대는 폴리에틸렌이나 아크릴 수지로 코팅해 완전한 종이라 할 수 없다. 무엇보다 폴리에틸렌 코팅 때문에 음료를 마시면 미세플라스틱을 동시에 마시는 셈이 된다. 따라서 환경 활동가들은 “환경을 위한다면 아예 종이 빨대도 사용하지 않는 편이 가장 좋다”고 입을 모은다. 빨대가 꼭 필요하다면 스테인리스나 실리콘 등의 소재로 만든 다회용 빨대 사용을 권한다.

플라스틱 문제, 누구의 책임이 가장 클까?

이름처럼 자투리 플라스틱을 빻아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플라스틱방앗간. 쓸모없는 플라스틱 뚜껑을 건네고 알록달록한 업사이클 제품을 받아가는 재미가 있다.

이름처럼 자투리 플라스틱을 빻아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플라스틱방앗간. 쓸모없는 플라스틱 뚜껑을 건네고 알록달록한 업사이클 제품을 받아가는 재미가 있다.

빨대 하나를 바꾸는 것도 이토록 불편한데 생활 속을 파고든 플라스틱을 전부 사용하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이찬희 한국포장재재활용사업공제조합 이사장은 저서 ‘플라스틱 시대’를 통해 “가장 확실한 해결책인 플라스틱 사용하지 않기가 불가능하다면 대안은 플라스틱을 최대한 현명하게 사용하고, 플라스틱 사용으로 인한 나쁜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이라고 제안한다. 특히 “플라스틱 문제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소비자, 플라스틱 원료 및 제품 생산업체, 플라스틱 회수 및 선별업체, 재활용업체, 과학기술계 등 모든 주체가 함께 움직이지 않으면 기대하는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고 강조한다.

각 주체의 협력으로는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가 대표적이다. 세계 곳곳에서 시행 중인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는 생산업체가 제품을 생산할 때부터 재활용이 가능하도록 만들고, 사용 후 발생되는 폐기물의 재활용까지 책임지도록 한 제도다. 생산자에게 과중한 책임을 전가하는 악법으로 보일 수 있으나 여러 주체의 공유책임제도를 전제로 한다. 제품의 설계와 포장재 선택 등에서 결정권이 가장 큰 생산자가 재활용 체계의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는 대신, 정부는 생산자를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재활용되지 않는 폐기물을 처리하며 재활용 폐기물을 회수해 재활용 공정에 투입되게 하는 등 전반적인 책임을 진다.

소비자에게는 제품 구매 후 폐기물을 올바르게 배출해야 하는 몫이 있다. 기업의 환경분담금이 올라가면 제품의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결국 소비자 부담으로 연결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적극적으로 분리배출에 참여하고 배출 시 헷갈리는 부분은 ‘내 손안의 분리배출’을 참고해볼 것. 내 손안의 분리배출은 환경부, 한국환경공단, 한국포장재재활용사업공제조합,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가 협업해 제작한 앱으로, 이곳에 품목별 분리배출법이 자세히 나와 있다.

플라스틱 없는 삶은 멀리 있지 않다. 평소 제로 웨이스트 매장을 이용하거나 친환경 캠페인에 참여해보자. 서울환경연합의 자원순환 프로젝트인 플라스틱방앗간은 글로벌 커뮤니티 ‘프레셔스 플라스틱’이 제공하는 오픈소스를 기반으로 한다. 재활용되지 않는 작은 플라스틱 쓰레기를 수거해 분류, 분쇄, 사출 과정을 거쳐 다양한 생활용품으로 재탄생시킨다. 원래 서울을 거점으로 상시 운영했으나 올 4월부터는 활동 반경을 넓혀 찾아가는 방앗간 형식으로 운영 중이다. 플라스틱방앗간에 플라스틱 병뚜껑을 모아 가면 하루 기준 1인당 1리워드를 제공하며 이 리워드로 튜브 짜개, 벽 호크, 카라비너 등 업사이클 제품으로 교환할 수 있다. 20·30대 여성의 참여율이 가장 높고 10대와 40대도 관심이 많은 편이다.

플라스틱방앗간에서 업무를 담당하는 활동가 서정아 씨는 “플라스틱방앗간은 개인의 일상 속 자원순환을 독려하고 나아가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며 “다만 이러한 개인들의 노력이 빛을 발하려면 기업의 플라스틱 제품 생산단계부터 여러 부분에서 다 같이 변화가 일어나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 소비자의 요구로 요구르트에 부착된 빨대를 제거한 매일유업의 사례처럼 변화는 어디서든 시작될 수 있다. 소비자의 몫을 다하려는 적극적인 자세가 중요하다. 찾아가는 플라스틱방앗간의 오픈 일정은 플라스틱방앗간 SNS를 통해 알 수 있다.

#플라스틱 #재활용 #분리배출 #여성동아

사진 게티이미지
사진제공 플라스틱방앗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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