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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부부의 각별한 미술 사랑

글 윤혜진 프리랜서 기자

2022. 05. 02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부부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미술 애호가로 유명한 대통령 당선인과 전시 기획자로 능력을 인정받아온 아내 김건희 여사의 시너지가 한국미술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의 깊게 지켜보는 이가 많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11월 27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마스커레이드전’을 관람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11월 27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마스커레이드전’을 관람하고 있다.

3월 대선 이후 새 정부가 대통령 집무실을 서울 용산으로 이전하겠다고 발표하자 미술계가 들썩였다. 집무실 인근의 한남동 화랑가가 새로운 문화 중심지로 자리 잡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에서였다. 해외에서는 이런 경우가 매우 많다. 예를 들어 프랑스 대통령 집무실인 엘리제궁 근처에는 유명 현대미술 갤러리들이 포진한 마티뇽 거리가 있다. 미국 백악관 주변은 세계적인 관광지다. 백악관과 함께 스미소니언박물관, 링컨기념관 등 19개 박물관 및 미술관을 둘러보는 관광 코스가 인기다. 현재 삼성미술관 리움을 비롯해 세계적인 갤러리의 분점이 다수 자리한 한남동 역시 대통령 집무실 이전 후 국내외에서 더 큰 주목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미술계가 기대에 부푼 이유는 또 있다. 대통령 당선인 부인 김건희 여사가 미술을 전공한 전시기획자일 뿐만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도 상당한 미술 애호가로 알려져 있기 때문. 요리와 미술 관람이 취미인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해 11월에도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린 청년 작가 특별 전시 ‘마스커레이드전’을 관람한 바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당시 “아내가 기획한 르 코르뷔지에전과 자코메티전이 이곳에서 열렸다. 여기를 자주 온 기억이 난다”며 “청년이 우리 사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해야 할 세대라는 것을 여기 예술 작품만 봐도 충분히 확신하게 됐다”는 관람 소감을 밝혔다. 아내 김건희 여사에 대해 언급하며 “오늘은 다른 일이 있어서 못 왔다.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2018년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첫 한국 전시회를 기획했을 당시 김건희 여사. 옆 작품은 자코메티의 대표작 ‘걷는 사람’이다.

2018년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첫 한국 전시회를 기획했을 당시 김건희 여사. 옆 작품은 자코메티의 대표작 ‘걷는 사람’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올 1월에도 ‘ACEP 2022 한국 발달장애 아티스트 특별초대전’에 들른 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관련 사진을 올리고 “집무실 책장 속 작은 전시회, 작품을 직접 마주할 때의 감동이 다시 밀려옵니다. 다시 한번 멋진 작품을 선사해주신 여러분을 응원합니다”라는 감상 평을 올렸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부부는 올해로 결혼 10주년을 맞았다. 일밖에 모르던 검찰총장과 사업가를 결혼에까지 이르게 만든 공통분모 역시 미술이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해 국민의힘 대선 경선 예비 후보 1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 출연해 아내와의 러브 스토리를 공개하며 “검사가 사람을 감옥에만 넣는 줄 알았는데 미술 얘기를 하니 제 처가 보기에 좀 기특했던 모양”이라고 회고했다. 김건희 여사를 만나기 전부터 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윤석열 대통령은 “과거 지방 근무할 때 열차나 비행기 안에서 미술책을 좀 읽었고 시간이 나면 미술관에 다녔다”고도 했다.

전시기획자 김건희, 블록버스터급 전시들로 흥행 홈런

김건희 여사가 2013년 기획한 사진전 ‘점핑 위드 러브’를 관람한 문재인 당시 민주당 의원이 점프하는 모습.

김건희 여사가 2013년 기획한 사진전 ‘점핑 위드 러브’를 관람한 문재인 당시 민주당 의원이 점프하는 모습.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2009년 전시기획사 ‘코바나컨텐츠’를 설립해 대표가 된 김건희 여사의 미술 사랑은 말할 것도 없다. 최근 다시 공개 전환한 김건희 여사의 SNS를 살펴보면 게시물 대부분이 전시와 관련된 것이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 배우 이영애 등이 그가 기획한 전시회를 다녀간 사진도 보인다.



김건희 여사의 미술에 대한 애정은 코바나컨텐츠의 기획력으로도 증명된다. 코바나컨텐츠가 제작 투자사로 참여한 ‘앤디 워홀의 위대한 세계전’(2009)과 ‘색채의 마술사 샤갈전’(2010~11), ‘불멸의 화가 반고흐 in 파리’(2012~13) 등은 대중과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이후에도 김건희 여사는 굵직굵직한 작가의 국내 첫 전시를 잇달아 주최했다. 프랑스 현대사진 1세대 작가 마크 리부의 대표작을 공개한 ‘에펠탑의 페인트공 마크 리부 사진전’(2012), 인물사진작가 필립 할스만의 ‘점핑위드러브전’(2013~14), 미국 추상회화의 대가 ‘마크 로스코전’(2015), ‘현대 건축의 아버지 르 코르뷔지에전’(2016~17), 피카소가 부러워한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 한국특별전’(2017~18) 등 일일이 꼽기에 벅찰 정도다.

2019년 9월 청와대에서 열린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한 윤 대통령 당선인 부부가 충무전실에 걸린 그림을 함께 감상하고 있다.

2019년 9월 청와대에서 열린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한 윤 대통령 당선인 부부가 충무전실에 걸린 그림을 함께 감상하고 있다.

블록버스터급 전시를 많이 기획한 점도 눈에 띈다. 르 코르뷔지에전은 2016년 르 코르뷔지에 건물이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최초로 열린 전시이면서 역대 르 코르뷔지에전 사상 최대 규모여서 큰 화제를 모았다. 이 전시에서 한국 관객은 르 코르뷔지에의 미공개작 140여 점을 포함해 500여 점에 달하는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출품작의 보험 평가액 총합이 2조5000억원에 이른 ‘마크 로스코전’은 2015년 예술의전당 예술대상에서 ‘최다 관람객상’ ‘최우수작품상’ ‘기자상’ 등 3관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코바나컨텐츠가 연이어 흥행 성공 기록을 세운 비결로 기획자의 작품을 고르는 안목과 대중 가까이로 다가설 줄 아는 기획력을 꼽는다. 김건희 여사는 과거 동아비즈니스리뷰(DBR)와의 인터뷰에서 “작품에 가치를 부여하고 그 가치를 실현하는 데 사활을 건다”며 “이 전시회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무엇일까 늘 치열하게 고민한다”고 말했다. 관람객이 예술가와 자신을 비교해보고 어떤 메시지를 얻어갈 수 있도록 전시를 쉽게 구성해야 한다는 게 김건희 여사가 기획자로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라고 한다.

실제로 ‘마크 로스코전’은 철학자 강신주에게 로스코와 작품 세계에 대한 책 집필을 의뢰해 관람객의 이해 폭을 넓혔다. 르 코르뷔지에전 때는 그의 작품인 프랑스 ‘롱샹성당’을 드론으로 촬영해 VR 체험이 가능하도록 했다. ‘점핑위드러브전’ 때는 작가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점프 사진에 초점을 맞춰 ‘용기’ ‘희망’ 등의 메시지를 강조했다. 이때 필립 할스만의 사진 외에 피겨 여왕 김연아와 당시 민주당 의원이던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유명인이 점프하는 사진을 특별 전시한 점도 눈길을 끌었다.

물론 이처럼 ‘튀는’ 기획이 매번 찬사만 받은 것은 아니다. 비난에 직면한 일도 있다. ‘스티브 잡스가 사랑한 화가 마크 로스코전’이란 부제를 단 ‘마크 로스코전’의 경우, 대중에게 친숙한 스티브 잡스를 내세워 일반인이 잘 모르는 마크 로스코를 소개하려는 의도였으나 오히려 화가에 대한 자유로운 해석을 방해했다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마크 로스코 평전을 쓴 프랑스 문화역사가 코엔 솔랄은 전시 감상 뒤 “대중에게 로스코를 알렸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전시장에서 로스코를 신비주의자로 만들었다는 인상을 받았다. 로스코는 감상자가 스스로 작품 해석의 주인이 되길 바랐다”며 아쉬워했다.

민화, 추상화를 걸어둔 자택 거실

SBS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공개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자택에는 여러 점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위부터 김현우 작가의 ‘바다 모래 수학드로잉’, 조선 민화 ‘책가도’, 이강소 작가의 ‘무제-94045’.

SBS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공개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자택에는 여러 점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위부터 김현우 작가의 ‘바다 모래 수학드로잉’, 조선 민화 ‘책가도’, 이강소 작가의 ‘무제-94045’.

대통령 당선인 내외의 미술 사랑은 모던한 갤러리처럼 꾸민 집 인테리어에서도 잘 드러난다. 지난해 9월 예능 프로그램 ‘집사부일체’를 통해 공개된 서울 서초동 자택 모습을 보면 김현우 작가의 ‘바다 모래 수학드로잉’, 한국 실험미술의 선구자 이강소 작가의 ‘무제-94045’, 조선시대에 유행한 ‘책가도’ 등이 거실과 주방에 걸려 있었다.

이 중 강렬한 색감이 돋보인 ‘바다 모래 수학드로잉’은 지난해 5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김현우 작가 전시를 둘러본 후 직접 구입한 작품이다. 다운증후군 장애가 있는 김 작가는 자신이 경험하고 상상하는 모든 것을 픽셀로 조형화하고 그 위에 평소 좋아하는 수학 공식, 음표, 도형 등을 그려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을 표현한다. 전시회 방문 당시 김 작가의 그림에 감동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작가에게 어떤 순서로 작업했는지, 무슨 재료를 사용했는지 등을 물어보며 50분가량 꼼꼼히 전시장을 둘러봤다는 후문이다.

주방 쪽 벽에 간격을 두고 나란히 걸린 이강소 작가의 ‘무제-94045’와 민화 ‘책가도’는 장르는 다르지만 한국적인 무드를 가진 점에서 비슷하다. 리드미컬한 붓 터치가 매력적인 ‘무제-94045’는 이강소 작가가 1994년 제작한 4연작 세트 판화집 중 하나다. 리소그래피(석판화) 기법으로 제작해 원화에 비하면 고가는 아니다. 이강소 작가 작품은 최근 단색화 열풍을 타고 인기 상승 중인데, 지난해 37점이 거래됐고 가격은 수백만원에서 수억원대까지 형성돼 있다. 3월 열린 ‘2022 화랑미술제’에서는 회화 작품 하나가 약 2억원에 판매되기도 했다.

주방에서 거실로 연결된 벽 한 면을 장식한 ‘책가도’는 조선시대 민화의 한 종류다. 책을 중심으로 문방구, 도자기 같은 물건이 그려진 그림으로 학문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다. 독서를 즐겼던 조선 제22대 왕 정조의 명으로 처음 그려진 이래 민간에서도 널리 유행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부부가 소유한 ‘책가도’는 서울역사박물관이 소장한 ‘책가도’(유물번호 운현궁 000574)의 이본이거나 원작을 그대로 재현한 작품으로 추정된다. 서울역사박물관 기증유물 담당자는 “우리 박물관에 있는 ‘책가도’는 흥선대원군의 사저이던 운현궁에 걸려 있던 것을 기증받은 것”이라며 “이본이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또 “윤석열 대통령 자택에 있는 ‘책가도’를 직접 보지 못해 정확히 확인하기는 어려우나, 개인적인 견해로는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책가도’를 보고 다른 작가가 그린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대통령 당선인 내외는 전통미가 느껴지는 작품을 택했지만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책가도’도 인기가 많다. 그림 속 물건들이 부와 명예, 장수를 상징하는 데다 동양화와 서양화가 섞인 듯한 세련된 분위기를 자아내 서재나 거실에 걸기 좋다. 4월 문을 연 국내 세 번째 애플스토어인 ‘애플 명동’도 2층의 대형 미디어 월을 ‘책가도’ 스타일로 꾸몄다.

틀을 깨는 디자인 가구 활용법

SBS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자택 거실 모습(오른쪽). ‘베르판’의 ‘VP 글로브’ 펜던트와 ‘라팔마’의 ‘씬 스툴’, ‘프리츠한센’의 검은색 데이 베드가 놓여 있다(위부터).

SBS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자택 거실 모습(오른쪽). ‘베르판’의 ‘VP 글로브’ 펜던트와 ‘라팔마’의 ‘씬 스툴’, ‘프리츠한센’의 검은색 데이 베드가 놓여 있다(위부터).

화이트 벽과 우드 톤 마루 등 모던한 인테리어에 다양한 그림이 생동감을 불어넣어 준다면 소파, 식탁, 의자 등 디자인 가구는 마침표를 찍는 느낌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부부는 가구를 세트 제품으로 통일하지 않고 다양한 브랜드의 아트 피스를 조화롭게 배치했다. 부엌만 해도 모듈형 가구로 유명한 ‘USM’의 ‘할러 시스템’ 테이블에 150년 전통을 지닌 덴마크 가구 브랜드 ‘프리츠한센’의 ‘시리즈 세븐 체어’, 이탈리아 브랜드 ‘라팔마’의 ‘씬 바스툴’을 믹스 매치했다. 디자인이 각각 다른 대신 검은색으로 통일감을 주고, 그 위에 20세기 대표 디자이너 베르너 팬톤이 1969년 디자인한 ‘베르판’의 ‘VP 글로브’ 펜던트 등으로 포인트를 줬다.

일반적인 가구 배치의 공식을 깬 점도 돋보인다. 사실 우리네 거실 풍경은 거의 비슷비슷하다. 소파에 앉거나 누워서 시청할 수 있도록 한쪽 벽엔 TV, 맞은편 벽엔 소파를 둔다. 반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부부는 거실 가운데 테이블을 두고 그 주변에 프리츠한센의 검은색 ‘PK80’ 데이 베드와 다른 브랜드의 흰색 소파를 ‘ㄱ’ 자 형태로 배치해 벽에 걸린 그림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모듈형 수납장이 부엌 아일랜드(싱크대와 분리된 조리대 겸 탁자) 구실을 하는 것도 독특하다.

이 같은 개성 있는 가구 배치는 김건희 여사의 문화 콘텐츠 사업에 대한 지론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김건희 여사는 과거 인터뷰에서 “잘되는 전시, 누구나 알고 있는 교과서적인 전시가 아니라 아직 잘 알려지지 않거나 사람들이 모르는 것을 찾아내 선보이는 게 즐겁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또한 대선 후보 당시 신년 인사에서 “제가 가진 선입견과 편견을 제거하고 낮은 자세로 듣겠다”고 발표했다. 집은 사는 사람을 닮는다. 발달장애 작가의 그림부터 민화, 가구계 명품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집에서 두 사람의 개방적인 성격이 엿보인다.

#윤석열김건희 #미술사랑 #여성동아

사진 뉴시스 청와대사진기자단 
사진출처 인스타그램 인터넷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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