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술화랑’을 운영하는 김수미 독서문화연구원 대표는 26년간 독서교육 한길을 걸어왔다. 더 전문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교육학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현재 고려대학교 교육문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있다. 최근에는 독서교육 노하우를 담은 책 ‘성적 초격차를 만드는 독서력 수업’을 펴냈다. 김수미 대표가 말하는 ‘독서력’은 문해력과 비슷해 보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문해력을 포함하는 상위 개념이다. 문해력(literacy)이 독해력(reading)과 사고력(intelligence)이 합쳐져 만들어지는 능력이라면, 독서력은 책 읽기에 대한 정서(sensitivity)와 문해력이 필요한 능력을 일컫는다. 즉, 독서력은 독해력과 사고력, 책 읽기에 대한 정서가 합쳐져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 아이들이 한글을 쉽게 배우기 때문에 독서력도 저절로 얻어지리라 생각하기 쉽지만, 탄탄한 독서력을 갖는 건 결코 쉽지 않다. 논술화랑 대치본점에서 만난 김수미 대표는 “조급한 마음에 책 읽을 시간을 빼서 문제집을 푸는 게 결국 문제”라면서 “독서교육의 결과는 당장 보이지 않지만 꾸준히 쌓아 올렸을 때 결국 학습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고 강조했다.
정독으로 시작해 다독으로 전환
독서를 체계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골든타임이 있나요.탄탄한 독서력을 가진 아이를 만들기 위한 여정의 첫 단추는 책에 대한 좋은 정서를 만드는 일이에요. 이건 갓난아기 때부터 책을 읽어주는 부모의 노력으로 만들어져요. 아이가 스스로 읽을 수 있게 되어도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계속 부모가 읽어주는 게 좋아요. 아이가 한글을 배우기 시작하면 이때부터 3년 동안은 혼자 책을 읽을 때 텍스트 하나하나를 빠짐없이 꼼꼼히 읽는 정독 습관을 들여주세요. 이건 두 번째 단추라고 할 수 있어요. 이때는 부모님이 읽어주는 동화 구연과 아이가 스스로 책을 읽는 훈련 2가지를 병행하는 게 좋아요. 또 열 권의 책을 한 번씩 읽는 것보다는 한 권을 열 번 반복해서 읽는 편이 좋답니다. 정독 습관이 자리 잡고 나면 이후 2년 정도는 다독 시기를 갖습니다. 결국 책에 대한 정서 만들기부터 다독 전환을 훌륭하게 완수하기까지는 적어도 12~15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해요.
요즘 아이들은 하교 후 곧장 학원에 가는 등 바쁘잖아요. 독서 습관이 자리 잡을 때까지 연령대별로 독서에 어느 정도 시간을 투자해야 하나요.
10세 이전에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죠. 하지만 아이가 자라면서 독서 말고도 해야 할 일들이 점점 늘어나요. 즐거운 놀이이자 휴식인 독서가 학습으로 인식되는 건 무척 서글픈 일이지만, 강제하지 않으면 중요한 시기에 독서 공백기가 생겨버릴 수 있으니 숙제 같은 독서 시간이 필요해요. 운동이 하루에 몇 분 혹은 일주일에 몇 회가 적당한지 표준이 없는 것처럼 독서 시간도 정해져 있진 않지만, 아이들의 학습 환경을 고려했을 때 초등학교 3~4학년은 1시간 30분~2시간, 5~6학년은 1시간 정도가 어떨까 제안해요.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아침에 30분, 저녁에 1시간 하는 식으로 읽어도 좋죠. 만약 하루 1시간이 부담스럽다면 주말에 몰아서 일주일에 3~4시간(250페이지 분량 줄글 책 1권)이라도 책을 읽게 해야 해요.
무엇을 읽는가도 중요할 텐데, 연령대별로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은가요.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삽화가 예술적인 그림동화, 올바른 가치관과 태도를 심어줄 수 있는 전래동화, 세계명작동화가 특히 좋아요. 3~4학년의 경우에는 올바른 자아를 수립하는 데 모델이 되어줄 위인들의 이야기를 추천해요. 사회성이 막 발달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아이를 둘러싼 사회적 환경을 이해할 수 있는 지리, 문화, 법, 정치, 경제 등의 영역에 배경지식을 만들어주는 책을 읽히는 것도 좋습니다. 5학년 이후 특히 좋은 장르는 추리소설과 모험에 대한 명작 소설이에요. 아이의 논리적 사고력을 키워주고, 더 단단한 아이로 만들어줍니다.
읽기 독립 시기에 부모 대신 읽어주는 펜을 보조교사로 삼는 건 어떤가요.
아동심리학자 브루노 베텔하임에 의하면 아이들은 타인의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고 해요. 아이들의 이런 능력은 책을 읽을 때도 여지없이 발휘돼요. 부모님이 책을 읽어줄 때 아이는 단지 책의 내용을 수집하는 게 아니라 부모님의 마음을 고스란히 느껴요. 아이는 이런 과정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깨닫습니다. 이 아이가 나중에 리더십을 가진 어른으로 성장하고요. 한편 책을 읽어주는 펜이나 영상은 기계이기 때문에 아이는 여기에 공감하지 않아요. 펜은 텍스트에 담긴 메시지를 전달할 수는 있지만 책에 대한 정서를 만들어주진 못해요. 그러니 부모가 해줘야 할 책 읽어주는 시간을 펜이나 영상으로 대체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정독 습관 형성기에 논술화랑에서 음독 훈련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음독할 때는 활자를 시각 정보로 전환해서 뇌에 넣고, 이걸 음성 정보로 꺼내 다시 청각 정보로 넣는 복잡한 과정이 필요해요. 비효율적인 독서 형태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음독 훈련을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비효율 때문이에요. 음독하면 읽는 속도가 늦춰지면서 활자 읽기의 집중력을 높일 수 있어요. 여기에 음독을 통해 낱글자를 정확히 발음하는 연습을 하면 발음 교정도 돼요. 말을 더 또박또박 전달력 있게 하는 습관을 만들 수 있죠. 음독은 활자 읽기 습관을 처음 들일 때 3년 동안, 보통 7~10세 사이에 매일 7분씩만 해도 충분합니다. 글을 읽어도 내용 이해가 어려운 어른 역시 음독 연습을 하면 문해력이 늘어요.
“아이들이 영어와 수학 학원 사이에 힐링하러 온다”는 김 대표의 말처럼, 논술화랑 대치본점은 알록달록한 그림이 가득한 미술관 혹은 북 카페처럼 꾸며놨다. 책 읽기는 재미있다는 인식이 중요하다. 여기에는 부모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김수미 대표는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만들려면 부모와 아이가 2인 1조가 되어야 한다. 12세까지는 부모가 아이와 함께 책을 읽어주는 게 좋다”면서 “독서가 습관으로 자리 잡으면 12세 이후 부모가 빠져도 아이는 책이라는 위대한 스승과 2인 1조가 되어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정도 되면 교과목도 늘고, 부모 마음이 급해집니다. 독서의 난도는 얼마나 높이는 게 좋은가요.
우선 딱 초등학교 3학년을 기준으로 하는 것보단 정독 습관이 어느 정도 형성되었다고 판단했을 때 난도를 높이는 게 좋아요. 이때 기존에 즐겨 읽던 이미지가 많은 동화에서 줄글 동화로, 선호하는 장르의 편독에서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는 다독으로 읽기 전환을 이뤄야 해요. 이건 기존에 타던 네발자전거의 보조 바퀴를 떼고 집에서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과 같은 일이에요. 그러니 정독 습관이 충분히 준비된 게 아니라면 독서 난도 높이는 시기를 늦추는 게 좋습니다. 그렇다고 학년이 올라가는데 계속 정독 습관만 들이고 있을 순 없어요. 저는 다독 전환의 데드라인을 초등학교 4학년 2학기라고 생각해요. 새로운 장르의 책을 읽을 땐 부모님이 곁에서 함께 읽으며 모르는 부분을 설명해주는 것도 좋고, 친구들과 같이 읽어보는 것도 좋답니다.
이 시기에 어휘나 독해 문제집을 푸는 건 도움이 될까요.
문해력을 향상하는 데 있어 어휘력이 중요한 키 역할을 한다는 건 이미 알고 있을 거예요. 그런데 문제 풀이나 암기를 통해 어휘량을 단시간에 늘린다고 해도 그건 기억에서 금방 휘발돼요. 진짜 오래 남고 쓸모 있는 어휘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어휘력 구성의 3요소인 어휘량, 어법 이해(문법), 어휘 활용 능력 중 세 번째 어휘 활용 능력을 높여야 해요. 이 능력은 문제집을 푼다고 올라가는 게 아니라 책을 읽거나 대화하며 그 맥락에서 자연스럽게 수집되고, 이때 어휘는 무의식에 활용되는 그런 어휘예요. 부모님이 정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면 문제집을 한 권씩 풀리는 것도 나쁘진 않아요. 하지만 이는 어휘량이 아닌, 말 그대로 어휘 문제 풀이 능력을 올리기 위한 일이라는 점을 명심하세요.

문해력 부족하다면 문학부터 읽기
다독 단계에서 비문학 지식 책과 문학책을 어느 정도 비율로 읽으면 좋을까요. 아이가 읽고 싶은 책과 읽어야 할 책 사이 괴리가 큰 경우가 있잖아요.상당히 공감 가는 질문이에요. 독서지도 전문가 중에는 “아이들이 꼭 다독을 할 필요는 없다. 좋아하는 분야를 편독만 잘해도 충분하다”고 말해요. 하지만 아이들은 다양한 분야를 탐색하며 진로를 정해야 해요. 더구나 학교 교과가 다양한 지식을 다루는데 좋아하는 과목만 공부할 순 없어요. 이런 다독의 목적에 비춰볼 때 비문학 쪽 책이 더 쓸모 있는 것처럼 보일 거예요. 하지만 인간을 이해하는 문학은 절대적으로 필요해요. 저는 문학과 비문학의 비중을 반반으로 두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해요. 비문학의 영역은 학교 교과 공부로 어느 정도 채울 수 있으나, 문학은 국어 시간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러니 아이의 문해력과 책 읽을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면 둘 중 더 우선시해야 하는 건 문학이에요. 물론 둘 다 보면 그게 바로 베스트죠.
특히 어렵게 느껴지는 고전과 과학에 좀 더 쉽게 다가가는 팁이 있을까요.
한국 고전의 경우 배경지식이 있어야 재밌게 읽는 경우가 많은데 그 부분이 걸림돌이 돼요. 예를 들어 ‘한중록’은 기묘사화가 배경인데, 이를 이해하려면 조선 후기의 정치 사회적 배경을 모두 알아야 비로소 재밌게 읽을 수 있어요. 그런데 부모들은 고전을 전래동화의 상위 호환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고전은 역사의 상위 호환이에요. 고전을 어려워한다면 역사책 먼저 충분히 읽은 후 고전을 접하는 게 좋습니다. 과학책을 어려워하는 경우에는 일단 스토리 중심의 과학책을 읽는 게 좋아요. 모든 지식에는 목적이 있는데, 그 목적이 나에게 부합해야만 흥미를 느낄 수 있어요. 스토리 중심 과학책은 그 쓸모를 등장인물을 통해 부여하고, 지식을 통해 문제해결 과정을 간접 체험하게 만들어줍니다.
독서는 읽고 쓰는 것으로 비로소 완성되나 몇 줄 쓰는 것도 버거워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글쓰기 분량을 늘리려면 어떤 훈련부터 해야 할까요.
아이들이 쓰기를 싫어하는 이유는 딱 2가지예요. 하나는 쓸 때 손이 아프기 때문이고요. 두 번째는 잘 못 하기 때문이에요. 요리를 잘하지 못하는데 요리가 끝날 때마다 누가 와서 내 요리에 대해 지적한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우리는 글을 쓰는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부담을 줘요. 글씨도 예쁘면 좋겠고, 맞춤법도 맞아야 하고, 일목요연하게 구조화된 내용을 풍부한 어휘로 담고, 거기에 창의력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죠. 글쓰기는 누구에게나 어려워요. 특히 처음 글을 쓸 때는 더욱더 어렵죠. 하지만 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는 아이가 결국엔 긴 글을 자신감 있게 척척 쓰는 아이가 돼요. 그 ‘불구하고’를 만드는 마법이 바로 부모님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학생부상의 독서 활동 기록은 대입에 반영되진 않지만, 창의적 체험활동이나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을 통해 녹여낼 수 있는데요. 이때 어떤 내용을 담는 게 좋은가요.
학생을 선발하는 상급학교가 바라는 인재상에는 공통적인 부분이 있어요. 첫 번째는 자기주도학습이 되는 아이, 두 번째는 인성이 훌륭한 아이, 세 번째는 미래에 대한 목표가 분명한 아이예요. 창의적 체험활동이나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에 이 세 부분을 어필해야 해요. 어떤 책을 읽든 그 책이 3가지 중 무엇을 어필하는 데 효과적일지 곰곰이 생각해보고 활용해야 해요. 예를 들어 오프라 윈프리의 자서전을 읽었다면 ‘끊임없이 책을 읽고,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를 본받아 공부를 해야겠다’는 내용으로 자기주도학습을 어필할 수 있고, 오프라 윈프리의 됨됨이를 중심으로 인성에 대한 부분을 어필할 수도 있어요. 오프라 윈프리와 같이 저널리스트가 되고 싶은 아이라면 진로를 어필할 수도 있을 거예요. 셋 중 어디에 쓸지는 아이가 결정해야겠지만 이 3가지 중 하나를 전략적으로 어필하는 건 공통 공식이에요.

아버지가 좀 큰 회사에서 정년퇴직을 하신 후 33㎡(10평) 남짓한 작은 서점을 하셨어요. 서점 이름이 ‘시민서림(市民書林)’이었는데, 시민을 위한 책의 숲이란 뜻으로 지은 거죠. 아버지는 책을 정말 사랑하는 분이셨어요. 제가 몸담은 독서문화연구원은 1998년에 아버지가 만든 회사예요. 책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순수한 마음이 만들어낸 작은 회사죠. 저는 대학생 때부터 여기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졸업 후에도 자연스럽게 일하게 됐으니까 독서는 제가 아니라 아버지가 선택한 과목이죠. 독서교육은 정말 어렵고 배고픈 분야예요. 옛날엔 “아버지가 그때 영어를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우스갯소릴 많이 했어요. 최근에는 “아버지가 그때 수학을 했어야 했는데”라는 말을 종종 하죠(웃음). 하지만 저는 독서가 좋아요. 독서문화연구원이었기 때문에 젊음과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었어요.
대표님의 인생 책은 무엇인가요.
콕 집어 하나만 말하기가 어려워요. 삶의 굽이굽이에서 언제나 책이 길을 알려줬거든요. 예를 들어 열등감이 많은 고등학생 때는 ‘백범일지’가 인생 책이었어요. 위인전, 역사책에 등장하는 백범과 스스로가 쓴 백범이 너무 다른 거예요. 자서전에 묘사된 백범은 허풍이 크고, 다혈질에 두려움도 많은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조금씩 성장해가는 모습을 통해 ‘나도 저렇게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고요. 이후 저는 자서전 마니아가 됐어요. 사장이 된 후 부족한 재정과 낮은 인지도로 긴 시간을 견뎌야 했을 땐 ‘내 자서전의 클라이맥스를 써가고 있다’는 생각으로 매 순간 최선을 다할 수 있었어요. 이 외에도 대학에 갈 무렵 친구 문제로 고민할 땐 ‘삼국지’가 길을 알려줬고요. 교육에서의 인생 책은 루소의 ‘에밀’, 경영에서는 ‘최강의 리더십’이에요. 제일 재밌게 읽은 책은 펄 벅의 ‘대지’였어요. 인생 책들이 대개 고전 장르라는 공통점이 있더라고요. 삶을 가장 깊이 있게 살아가도록 만들어주는 장르가 고전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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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홍태식 사진출처 논술화랑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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