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0일 개봉한 영화 ‘히든페이스’는 범죄 액션과 공포, 오컬트 등 특정 장르에 편중된 우리나라 극장가에 모처럼 등장한 19금 멜로 스릴러다. 2011년 개봉한 동명의 콜롬비아 영화가 원작으로, 실종된 약혼녀 수연(조여정)의 행방을 쫓던 성진(송승헌) 앞에 수연의 후배 미주(박지현)가 나타나고, 사라진 줄 알았던 수연이 그들과 가장 가까운 비밀의 공간에 갇힌 채 두 사람의 벗겨진 민낯을 목격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장르 자체는 낯설지만, 관객들에겐 몇 가지 익숙하면서도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우선 ‘음란서생’ ‘방자전’ ‘인간중독’ 등 인간의 욕망을 탐구하는 관능적인 작품을 만들어온 김대우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송승헌(48)과 조여정은 김대우 감독의 ‘인간중독’에서 이미 한 차례 부부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또 ‘히든페이스’의 공간적 배경은 조여정이 출연한 영화 ‘기생충’ 속 대저택과 유사하다. ‘기생충’에서 계급의 간극을 상징하던 음침한 반지하 공간은 ‘히든페이스’의 숨겨진 성적 욕망을 담고 있는 기괴한 밀실과 묘하게 닮았다.
송승헌은 극 중 오케스트라 지휘자 성진 역을 맡았다. 성진은 금수저 약혼녀 덕에 신분 상승을 이뤄냈지만 마음 한구석엔 출신 배경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는 인물. 수연이 결혼을 앞두고 영상 편지만 남긴 채 홀연히 사라지자, 수연을 대신해 그녀의 후배 미주가 오케스트라에 입단하고 성진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미주에게 본능적으로 끌린다. 성진은 겉으론 고상하고 젠틀해 보이지만 본능과 욕망에 충실한 인물이다. 노출과 베드신의 수위도 꽤 높다. 그간 주로 바르고 정의로운 상남자를 연기해온 송승헌에게는 ‘인간중독’ 이후 또 한 번의 도전인 셈이다.
‘인간중독’ 때 김대우 감독과 함께하면서 좋은 기억이 많았다. 감독님이 오랜만에 작품을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게 미팅을 요청했을 때 작품 제안을 하실 거란 걸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히든페이스’의 성진은 그동안 내가 했던 어떤 캐릭터보다 땅에 발을 디디고 있는 현실적인 인물이다. 뭔가 의뭉스럽고 욕망이 있다. 음악재단 이사장의 딸인 수연을 만나 약혼하고 오케스트라 지휘자까지 됐지만 또 다른 여자를 만나면서 욕망을 품는다. 실제로 촬영하면서도 감독님께 “나, 얘(성진) 너무 별로다”라고 말하기도 했고, 사회에서 딱 마주치고 싶지 않은 스타일의 남자다. 그런 캐릭터를 연기해본 적이 없어서 재미있을 것 같았다. 기존에 내가 연기했던 캐릭터보다는 현실에서 볼 수 있는 솔직한 인간 내면의 모습이 담겨서 좋았다. 만약 이런 작품을 더 어릴 때 제안받았다면 힘들었을 거다. ‘인간중독’에서도 부하의 아내를 사랑하는 불륜 캐릭터였는데, 그때만 해도 ‘왜 굳이 이런 불륜 연기를 하나’ 싶었지만 나이가 들어가니 이런 연기도 해보고 싶더라.
조여정 배우와 ‘인간중독’ 이후 10년 만에 다시 만나 화제가 됐다.
여정 씨와 “우리는 왜 이런 관계로만 만나지?”란 얘길 나눴다(웃음). ‘인간중독’에서는 여정 씨가 와이프고 내가 후배의 아내를 좋아하는 관계였는데, 이번에는 결혼을 앞둔 여정 씨의 후배와 일탈을 하게 된다. 여정 씨가 워낙 연기 베테랑이고 현장에서 상대 배우를 든든하게 만들어준다. ‘괜히 좋은 배우란 소리를 듣는 게 아니구나’ 싶고, 되게 배울 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중독’ 이후 조여정 배우는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에도 참석하는 등 커리어가 굉장히 업그레이드 된 상황에서 재회했는데, 달라진 부분은 없었나.
그러잖아도 촬영하면서 “이번엔 너한테 묻어가야겠다”고 농담을 했다. 여정이든, ‘오징어 게임’의 이정재 선배든 한국에서 작품 활동을 하면서 해외에서 그 정도로 화제가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을 거다. 이렇게 한국 콘텐츠가 사랑받는 시대에 배우로 활동한다는 건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고, 그만큼 배우로서 부담도 되고 책임감도 따르는 것 같다.
노출신을 위해 따로 몸을 만들었는지.
촬영할 때 감독님이 “따로 운동하지 마라. 많이 먹고 배 좀 나오면 어떠냐”고 편하게 말씀하셨지만 결과물을 내가 받아들여야 하니 그럴 수는 없었다. 캐릭터상 지휘자이다 보니 근육질 몸은 어울리지 않겠고, 적당히 슬림한 몸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운동을 조금 하면서 다이어트를 할 수밖에 없었다. 노출신 촬영 3주 전부터는 견과류 위주로 식사량을 많이 줄였다. 원래 굶는 다이어트는 안 하는 편인데, 식사량을 줄이니 사람이 예민해지더라.
파격적인 베드신이 있는 작품은 배우들이 원치 않아도 포커스가 그쪽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그에 대한 부담감은 없는지.
“‘인간중독’ 때도 그렇고 이번 작품도 김대우 감독님이 아니면 못 했을 거다. 감독님 작품들을 보면 노출을 위한 노출이 아니라 상황이 그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다는 걸 설득력 있게 그려나간다. 그래서 배우들도 자신감을 갖고 편하게 연기할 수 있다. 어느 선까지 (노출)할 것인지, 사전 약속을 하고 그걸 정확하게 지키신다. 다른 현장 얘기를 들어보면 “일단은 찍고 나중에 편집하면 돼”라고 해서 배우들이 힘들어한다는데, 감독님은 그런 걸 전혀 용납 안 하신다.
김대우 감독의 노출신 디렉션이 명확하다고 하던데 어느 정도인가.
액션신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감독님께서 남자 조감독과 둘이서 “여기서 이렇게 하라”며 시범을 보여주신다. “배우들이 알아서 해봐” 이런 게 절대 없다. 감독님이 조감독님과 같이 시범을 보이는 걸 보는 게 좀 힘들긴 했지만 배우로서는 편했다.
노출만큼이나 지휘 연기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감독님이 실제 지휘자처럼 보였으면 좋겠다고 해서 일대일 레슨까지 받았는데 쉽지 않더라. 지휘를 하려면 오케스트라가 악기를 연주하기 한 템포 전에 손짓으로 “이 부분에 이 악기가 나와야 한다”고 사인을 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모든 음악을 숙지하고 악보도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나는 평소 클래식은 물론 대중가요조차 즐겨 듣지 않는다. 악보도 볼 줄 모른다. 그런 상황에 이 부분이 첼로인지, 바이올린인지 파악하고 있어야 하니 너무 어렵게 느껴졌는데 감독님은 “그래도 할 수 있을 거야”라고 말씀하시더라. 결국 촬영 기간 동안 영화에 나오는 그 음악만 계속 듣고 외우며 익혔다. 리허설 촬영을 하는데 내가 손짓을 하지 않으니 음악이 나오질 않아서 순간 너무 당황했다. 처음에는 ‘오케스트라 단원이 그냥 알아서 연주해주시면 안 되나’ 생각했는데 그분들은 지휘자의 손짓을 받지 않고 음악을 연주하는 방식에 익숙지 않으신 거였다. 자연스레 내 손짓이 느려지면 음악도 같이 느려지고, 내가 손짓을 빨리하면 음악도 같이 빨라졌다. 마치 말을 타는 느낌이었다. 말을 제대로 길들이지 않고 타면 말이 달리는 대로 내 몸이 흔들리고 휘둘리지 않나. ‘지휘자가 괜히 지휘자가 아니구나’를 느꼈다.
어릴 때 피아노를 치다가 두 번이나 그만뒀다. 유치원 때는 선생님이 결혼하는 바람이 그만뒀고, 중학교 때는 엄마가 또 “피아노는 꼭 배워야 한다”고 해서 형이랑 학원에 다녔는데 선생님이 손을 세우라며 볼펜 심으로 손가락을 콕콕 찌르시는 바람에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만날 집에는 피아노학원 간다고 하고 나와서 땡땡이를 쳤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좀 잘 배워둘 걸 그랬다. 작품에선 초반에만 내가 치다가 뒷부분은 전문가 선생님의 도움을 받았다.
원조 한류 스타인데, 요즘 K-콘텐츠의 인기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지.
내가 원조는 아니지 않나(웃음). 개인적으론 드라마 ‘가을동화’ 이후 갑자기 해외에서 인기가 많아졌다. 그때만 해도 인터넷이 없었기 때문에 팬레터를 보내거나 직접 찾아오는 팬들이 많았다. 지금은 BTS를 포함한 아이돌 그룹이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지만 당시에는 되게 신기한 일이었다. 금방 꺼지는 거품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모든 신드롬은 거품에서 시작되는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은 한국 가수나 배우들에게 무척 좋은 상황이면서도 또 어떻게 보면 위기인 것 같기도 하다. 이럴 때일수록 더 잘하고 더욱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동년배 남자 배우들 가운데 최강 동안이다. 비결이 무엇인가.
동안 비결은 메이크업 덕분이 아닐까(웃음). 그런 얘기는 하지 마라. 이제 그런 얘기가 나오면 쑥스럽다. 굳이 비결이라면 담배 끊은 지 20년 됐는데 정말 잘한 일 같다. 시간 나면 체육관에 가서 운동하고 테니스도 치고 겨울엔 스키도 타고, 최근에는 필라테스도 시작했다. 비타민제 챙겨 먹고 그 외엔 따로 비결이랄 게 없다 .
내년이면 데뷔 30년인데 소감이 어떤가.
나도 깜짝 놀랐다. 시간이 정말 빠르다. 데뷔 때는 20대였는데, 선배들이 “좋을 때”라는 말을 많이 했다. 당시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요즘 후배들한테 그런 말을 한다. 그땐 그걸 즐기지 못했고 사람들이 환호해주면 ‘왜 그럴까’ 싶기도 했다. 연기는 남들 직장 다니듯 그저 일이라고 생각했고, 재미도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 직업에 감사하라’는 팬레터를 읽고 연기에 대한 태도를 바꾸게 됐다.
배우로서의 고민이나 앞으로 포부가 있다면.
20〜30대 시절 나는 언제까지 연기자를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지금은 이순재 선생님처럼 그 연배가 돼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싶다. 수십 년간 한길을 걸어오셨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젊었을 때도 그렇지만, 중후하고 멋지게 나이 들고 싶다. 나한텐 ‘멋지게 나이 들기’가 숙제다.
#송승헌 #히든페이스 #여성동아
사진제공 스튜디오앤뉴 쏠레어파트너스(유)
장르 자체는 낯설지만, 관객들에겐 몇 가지 익숙하면서도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우선 ‘음란서생’ ‘방자전’ ‘인간중독’ 등 인간의 욕망을 탐구하는 관능적인 작품을 만들어온 김대우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송승헌(48)과 조여정은 김대우 감독의 ‘인간중독’에서 이미 한 차례 부부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또 ‘히든페이스’의 공간적 배경은 조여정이 출연한 영화 ‘기생충’ 속 대저택과 유사하다. ‘기생충’에서 계급의 간극을 상징하던 음침한 반지하 공간은 ‘히든페이스’의 숨겨진 성적 욕망을 담고 있는 기괴한 밀실과 묘하게 닮았다.
송승헌은 극 중 오케스트라 지휘자 성진 역을 맡았다. 성진은 금수저 약혼녀 덕에 신분 상승을 이뤄냈지만 마음 한구석엔 출신 배경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는 인물. 수연이 결혼을 앞두고 영상 편지만 남긴 채 홀연히 사라지자, 수연을 대신해 그녀의 후배 미주가 오케스트라에 입단하고 성진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미주에게 본능적으로 끌린다. 성진은 겉으론 고상하고 젠틀해 보이지만 본능과 욕망에 충실한 인물이다. 노출과 베드신의 수위도 꽤 높다. 그간 주로 바르고 정의로운 상남자를 연기해온 송승헌에게는 ‘인간중독’ 이후 또 한 번의 도전인 셈이다.
노출 연기 3주 전부터 다이어트
어떻게 보면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은데,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뭔가.‘인간중독’ 때 김대우 감독과 함께하면서 좋은 기억이 많았다. 감독님이 오랜만에 작품을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게 미팅을 요청했을 때 작품 제안을 하실 거란 걸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히든페이스’의 성진은 그동안 내가 했던 어떤 캐릭터보다 땅에 발을 디디고 있는 현실적인 인물이다. 뭔가 의뭉스럽고 욕망이 있다. 음악재단 이사장의 딸인 수연을 만나 약혼하고 오케스트라 지휘자까지 됐지만 또 다른 여자를 만나면서 욕망을 품는다. 실제로 촬영하면서도 감독님께 “나, 얘(성진) 너무 별로다”라고 말하기도 했고, 사회에서 딱 마주치고 싶지 않은 스타일의 남자다. 그런 캐릭터를 연기해본 적이 없어서 재미있을 것 같았다. 기존에 내가 연기했던 캐릭터보다는 현실에서 볼 수 있는 솔직한 인간 내면의 모습이 담겨서 좋았다. 만약 이런 작품을 더 어릴 때 제안받았다면 힘들었을 거다. ‘인간중독’에서도 부하의 아내를 사랑하는 불륜 캐릭터였는데, 그때만 해도 ‘왜 굳이 이런 불륜 연기를 하나’ 싶었지만 나이가 들어가니 이런 연기도 해보고 싶더라.
조여정 배우와 ‘인간중독’ 이후 10년 만에 다시 만나 화제가 됐다.
여정 씨와 “우리는 왜 이런 관계로만 만나지?”란 얘길 나눴다(웃음). ‘인간중독’에서는 여정 씨가 와이프고 내가 후배의 아내를 좋아하는 관계였는데, 이번에는 결혼을 앞둔 여정 씨의 후배와 일탈을 하게 된다. 여정 씨가 워낙 연기 베테랑이고 현장에서 상대 배우를 든든하게 만들어준다. ‘괜히 좋은 배우란 소리를 듣는 게 아니구나’ 싶고, 되게 배울 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중독’ 이후 조여정 배우는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에도 참석하는 등 커리어가 굉장히 업그레이드 된 상황에서 재회했는데, 달라진 부분은 없었나.
그러잖아도 촬영하면서 “이번엔 너한테 묻어가야겠다”고 농담을 했다. 여정이든, ‘오징어 게임’의 이정재 선배든 한국에서 작품 활동을 하면서 해외에서 그 정도로 화제가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을 거다. 이렇게 한국 콘텐츠가 사랑받는 시대에 배우로 활동한다는 건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고, 그만큼 배우로서 부담도 되고 책임감도 따르는 것 같다.
노출신을 위해 따로 몸을 만들었는지.
촬영할 때 감독님이 “따로 운동하지 마라. 많이 먹고 배 좀 나오면 어떠냐”고 편하게 말씀하셨지만 결과물을 내가 받아들여야 하니 그럴 수는 없었다. 캐릭터상 지휘자이다 보니 근육질 몸은 어울리지 않겠고, 적당히 슬림한 몸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운동을 조금 하면서 다이어트를 할 수밖에 없었다. 노출신 촬영 3주 전부터는 견과류 위주로 식사량을 많이 줄였다. 원래 굶는 다이어트는 안 하는 편인데, 식사량을 줄이니 사람이 예민해지더라.
파격적인 베드신이 있는 작품은 배우들이 원치 않아도 포커스가 그쪽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그에 대한 부담감은 없는지.
“‘인간중독’ 때도 그렇고 이번 작품도 김대우 감독님이 아니면 못 했을 거다. 감독님 작품들을 보면 노출을 위한 노출이 아니라 상황이 그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다는 걸 설득력 있게 그려나간다. 그래서 배우들도 자신감을 갖고 편하게 연기할 수 있다. 어느 선까지 (노출)할 것인지, 사전 약속을 하고 그걸 정확하게 지키신다. 다른 현장 얘기를 들어보면 “일단은 찍고 나중에 편집하면 돼”라고 해서 배우들이 힘들어한다는데, 감독님은 그런 걸 전혀 용납 안 하신다.
김대우 감독의 노출신 디렉션이 명확하다고 하던데 어느 정도인가.
액션신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감독님께서 남자 조감독과 둘이서 “여기서 이렇게 하라”며 시범을 보여주신다. “배우들이 알아서 해봐” 이런 게 절대 없다. 감독님이 조감독님과 같이 시범을 보이는 걸 보는 게 좀 힘들긴 했지만 배우로서는 편했다.
노출만큼이나 지휘 연기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감독님이 실제 지휘자처럼 보였으면 좋겠다고 해서 일대일 레슨까지 받았는데 쉽지 않더라. 지휘를 하려면 오케스트라가 악기를 연주하기 한 템포 전에 손짓으로 “이 부분에 이 악기가 나와야 한다”고 사인을 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모든 음악을 숙지하고 악보도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나는 평소 클래식은 물론 대중가요조차 즐겨 듣지 않는다. 악보도 볼 줄 모른다. 그런 상황에 이 부분이 첼로인지, 바이올린인지 파악하고 있어야 하니 너무 어렵게 느껴졌는데 감독님은 “그래도 할 수 있을 거야”라고 말씀하시더라. 결국 촬영 기간 동안 영화에 나오는 그 음악만 계속 듣고 외우며 익혔다. 리허설 촬영을 하는데 내가 손짓을 하지 않으니 음악이 나오질 않아서 순간 너무 당황했다. 처음에는 ‘오케스트라 단원이 그냥 알아서 연주해주시면 안 되나’ 생각했는데 그분들은 지휘자의 손짓을 받지 않고 음악을 연주하는 방식에 익숙지 않으신 거였다. 자연스레 내 손짓이 느려지면 음악도 같이 느려지고, 내가 손짓을 빨리하면 음악도 같이 빨라졌다. 마치 말을 타는 느낌이었다. 말을 제대로 길들이지 않고 타면 말이 달리는 대로 내 몸이 흔들리고 휘둘리지 않나. ‘지휘자가 괜히 지휘자가 아니구나’를 느꼈다.
금연과 필라테스, 테니스 등 꾸준한 운동이 동안 비결
극 중 피아노를 치는 장면이 있던데 따로 배웠나.어릴 때 피아노를 치다가 두 번이나 그만뒀다. 유치원 때는 선생님이 결혼하는 바람이 그만뒀고, 중학교 때는 엄마가 또 “피아노는 꼭 배워야 한다”고 해서 형이랑 학원에 다녔는데 선생님이 손을 세우라며 볼펜 심으로 손가락을 콕콕 찌르시는 바람에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만날 집에는 피아노학원 간다고 하고 나와서 땡땡이를 쳤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좀 잘 배워둘 걸 그랬다. 작품에선 초반에만 내가 치다가 뒷부분은 전문가 선생님의 도움을 받았다.
원조 한류 스타인데, 요즘 K-콘텐츠의 인기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지.
내가 원조는 아니지 않나(웃음). 개인적으론 드라마 ‘가을동화’ 이후 갑자기 해외에서 인기가 많아졌다. 그때만 해도 인터넷이 없었기 때문에 팬레터를 보내거나 직접 찾아오는 팬들이 많았다. 지금은 BTS를 포함한 아이돌 그룹이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지만 당시에는 되게 신기한 일이었다. 금방 꺼지는 거품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모든 신드롬은 거품에서 시작되는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은 한국 가수나 배우들에게 무척 좋은 상황이면서도 또 어떻게 보면 위기인 것 같기도 하다. 이럴 때일수록 더 잘하고 더욱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동년배 남자 배우들 가운데 최강 동안이다. 비결이 무엇인가.
동안 비결은 메이크업 덕분이 아닐까(웃음). 그런 얘기는 하지 마라. 이제 그런 얘기가 나오면 쑥스럽다. 굳이 비결이라면 담배 끊은 지 20년 됐는데 정말 잘한 일 같다. 시간 나면 체육관에 가서 운동하고 테니스도 치고 겨울엔 스키도 타고, 최근에는 필라테스도 시작했다. 비타민제 챙겨 먹고 그 외엔 따로 비결이랄 게 없다 .
내년이면 데뷔 30년인데 소감이 어떤가.
나도 깜짝 놀랐다. 시간이 정말 빠르다. 데뷔 때는 20대였는데, 선배들이 “좋을 때”라는 말을 많이 했다. 당시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요즘 후배들한테 그런 말을 한다. 그땐 그걸 즐기지 못했고 사람들이 환호해주면 ‘왜 그럴까’ 싶기도 했다. 연기는 남들 직장 다니듯 그저 일이라고 생각했고, 재미도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 직업에 감사하라’는 팬레터를 읽고 연기에 대한 태도를 바꾸게 됐다.
배우로서의 고민이나 앞으로 포부가 있다면.
20〜30대 시절 나는 언제까지 연기자를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지금은 이순재 선생님처럼 그 연배가 돼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싶다. 수십 년간 한길을 걸어오셨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젊었을 때도 그렇지만, 중후하고 멋지게 나이 들고 싶다. 나한텐 ‘멋지게 나이 들기’가 숙제다.
#송승헌 #히든페이스 #여성동아
사진제공 스튜디오앤뉴 쏠레어파트너스(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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