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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맛과 서사의 향연, ‘흑백요리사’ 에필로그

김명희 기자

2024. 10. 24

‘미쉐린 가이드’ 스타 셰프와 맛집 사장들이 차려내는 먹음직스러운 식탁에 짠내 나는 인생, 요리 하나만 보고 달려온 장인정신이 풍성하게 담기고 여기에 서바이벌이라는 양념이 더해졌다. 장안의 화제, ‘흑백요리사’의 뒷이야기들을 취재했다. 

지난 몇 주 대한민국은 요리사들의 마법에 빠졌다. ‘미쉐린 가이드’ 스타 셰프부터 이름난 식당의 오너 셰프, 인플루언서, 반찬 가게 사장님과 급식의 대가, 독학으로 요리를 배운 재야의 고수까지 100인의 요리사가 1000평 키친에서 펼치는 압도적 스케일의 요리 전쟁은 한순간도 시선을 뗄 수 없는 박진감과 도파민을 선사했다. 9월 17일 공개 직후부터 3주 연속 넷플릭스 비영어권 TV 시리즈 1위를 차지했으며, 이모카세(김미령 셰프)가 참기름과 들기름을 섞어 맛깔나게 구운 김과 세미파이널 ‘무한 요리 지옥’의 재료였던 두부는 영화 ‘기생충’의 짜파구리,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속 달고나처럼 K-푸드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렸다.

출연자들이 운영하는 식당은 예약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워졌다. 식당 예약 앱 캐치테이블에 따르면 나폴리 맛피아(권성준 셰프)가 운영하는 ‘비아 톨레도 파스타 바’는 우승자 발표 다음 날 오픈런에 11만 명이 몰려 앱이 마비됐고, 다른 셰프들의 식당도 비슷한 상황이다. 네이버 지도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셰프들의 식당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전국 114개에 달하는 식당을 모아 ‘흑백요리사’ 저장 리스트를 마련했는데, 10월 11일 기준 약 43만 명의 이용자가 식당 리스트를 조회한 것으로 나타났다.

프로그램의 메인은 물론 침샘을 폭발시키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요리였지만, 요리에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찾은 재미교포 출신 백악관 만찬 셰프 에드워드 리(이균 셰프), 거친 듯하지만 맛에 관한 천부적인 감각을 지닌 요리하는 돌아이(윤남노 셰프), 칼질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트리플스타(강승원 세프), 학교 급식에 대한 인식을 업그레이드한 급식대가(이미영 셰프) 등 각자 다른 배경을 지닌 요리사들의 서사와 이들이 요리를 대하는 자세 등도 인기를 견인한 요소였다. 특히 요리하는 돌아이는 지난 10월 7일 열린 톱 8 기자간담회에서 “부모님이 냉면집을 운영하다 어머니가 암 진단을 받으셔서 가게를 지키고자 시작했다. 요리를 시작할 때 어머니께서 걱정을 많이 하셨는데 보란 듯이 이겨내고 잘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어머니가 누워 계실 때 내가 나온 TV 프로그램을 하루 종일 보시는 걸 보고 돈 안 드는 효도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출연 배경을 밝혔다.

‘흑백요리사’ 우승자 나폴리 맛피아(왼쪽)와 준우승자 에드워드 리 셰프.

‘흑백요리사’ 우승자 나폴리 맛피아(왼쪽)와 준우승자 에드워드 리 셰프.

방송은 요리사들을 흑수저와 백수저로 나누고 계급 전쟁을 타이틀로 내걸었지만, 그 어떤 배경보다 오직 실력으로 승부를 겨루고 그 결과를 수긍하는 품격도 보여주었다. 우승자인 나폴리 맛피아는 “아직까지 크게 달라진 삶을 살고 있진 않다. 그전에도, 앞으로도. 가게에 집중하는 스타일이다. 쉬는 날에도 밖에 잘 안 나가서 크게 피부로 와 닿지는 않은데 여러 가지 제의가 많이 오고 있다.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는데 팔로어가 늘고 있어서 그 점에서 조금 인기가 생겼다고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매번 명성에 걸맞은 창의적인 요리로 감동을 준 에드워드 리는 방송이 끝난 후 SNS에 “어린 시절 대부분을 한국 문화와 떨어져 보낸 사람에게, 이렇게 제 한국적 유산과 연결되고, 한국 음식을 저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며, 여러분의 응원을 받는다는 것이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의미가 크다”며 “함께 경쟁했던 모든 셰프들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정말 말도 안 되는 경험이었고, 여러분 모두를 친구라고 부를 수 있게 돼 너무 행운이었다. 여러분들과 함께 일할 수 있어서 정말 즐거웠다. 그리울 거다”라고 소감을 남겼다.

시즌 2 확정, 온라인에선 출연 희망 요리사 라인업도 돌아

심사위원 백종원과 안성재 셰프도 큰 인기를 얻었다.

심사위원 백종원과 안성재 셰프도 큰 인기를 얻었다.

요리 경연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맛이라는 주관적인 영역을 얼마나 객관적으로 평가하느냐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외식 경영인이자 온 국민 요리 멘토 백종원과 국내 유일 ‘미쉐린 가이드’ 3스타 ‘모수 서울’ 안성재 셰프는 때로는 의견을 달리하기도 했지만, 요리에 대한 높은 경험치와 통찰력을 바탕으로 설득력 있는 답을 찾아나갔다. 이와 관련해 톱 8이 참석한 기자간담회에서 최현석 셰프는 “섭외 요청을 받았을 때 요리사가 아닌, 심사위원인 줄 알았다”고 밝히면서도 “백종원 심사위원은 제작진의 말을 안 듣고 본인 소신대로 가는 분이라서 범용성을 두고 잘 평가할 거라 생각했다.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홍콩 등 미식으로 발전한 나라가 많은데, 예전엔 한국이 미식 신에선 떨어진다는 평가가 있었다. 안성재 셰프가 ‘미쉐린 가이드’ 3스타를 받음으로써 대한민국 셰프님들이 위상을 많이 높여놓았다. 3스타를 받았다는 건 요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퍼펙트하다는 의미”라며 심사위원들의 권위를 인정했다. 다만 최 셰프는 안성재 심사위원에 대해 “제가 걱정된 건, 저와 결이 너무 다르다는 거다. 안성재 셰프와 예전에 1시간 동안 메뉴를 바꾸는 문제로 통화한 적도 있다. ‘미쉐린 가이드’는 메뉴를 잘 바꾸지 않는다. 근데 전, 무릎이 깨져도 새로운 걸 계속 시도하는 스타일”이라고 강조했다.

의외의 난관은 심사위원들이 워낙 많은 음식을 맛보다 보니 배가 불러 힘들어했다는 것. 김학민 PD는 “그럼에도 백종원 심사위원은 대기실에서 도시락을 드시고 맛 평가도 해주셔서 인상적이었다”고 촬영 뒷이야기를 전했다.

초반에 팀전이 많아 셰프들이 개인적인 역량을 다 보여주지 못한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특히 8~9회에 공개된 4라운드 팀전에서 요리 및 재료 구성을 다 마친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팀별로 한 명을 방출한다는 설정은 공정성 논란까지 일었다. 이 과정에서 갑자기 팀을 구성하게 된 대한민국 조리 명장(안유성 셰프), 철가방요리사(임태훈 셰프), 만찢남(조광효 셰프)이 고배를 마셨다. 이에 김학민 PD는 “100명의 요리사를 모셔서 진행하는 서바이벌이다 보니 기획할 때부터 다양한 모습을 담아내려고 규칙을 만들었다”며 “다만 사전 제작 방식이다 보니 저희도 (촬영 이후) 반응을 뒤늦게 살피게 됐다”고 입장을 밝혔다.

업계에 따르면 ‘흑백요리사’의 제작비는 100억 원 안팎이다. 김은지 PD는 넷플릭스와의 작업에 대해 “스케일만 놓고 보면 넷플릭스 아니면 불가능했을 프로젝트”라면서도 “(넷플릭스가 제작비를 무한대로 지원한다는 오해가 있는데) 만약 40명이 동시에 조리하는 세트를 만들고 싶다고 하면 거기에 합당한 선에서 지원을 해주지, 무한정 지원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어찌 됐든 작품당 수백억 원이 들어가는 드라마나 영화에 비하면 ‘흑백요리사’는 적은 제작비로 큰 화제성과 수익을 창출했다. 이에 넷플릭스는 시즌 2 제작을 확정, 내년 하반기 공개 예정이다. 온라인에선 이미 시즌 2에 나오길 바라는 요리사들의 예상 라인업도 돌고 있다.

#흑백요리사 #나폴리맛피아 #에드워드리 #여성동아

사진 지호영 기자 
‌사진제공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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