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현 교수 조언 ‘도둑 맞은 집중력 되찾기’
요즘 왜 이렇게 집중력에 대해 관심이 많을까요.
일종의 트렌드라고 볼 수 있어요. 예전에는 정서에 대해 한창 관심 두다가 기분, 세로토닌, 집중력과 관련된 도파민 등으로 관심사가 옮겨가고 있잖아요. 집중력이란 트렌드가 생긴 이유를 살펴보면 ‘빨리빨리’를 원하는 사회적 요구와도 연관이 있어요. 디지털이 발전하면서 AI시대로 넘어왔잖아요. 디지털은 집중력과 엄청난 관련이 있어요. 효율적인 부분을 자꾸 생각하다 보면 단시간 안에 얼마큼 빨리 할 수 있느냐로 얘기가 흐르고 아무래도 집중력에 대해 관심이 생기죠.
의학적인 측면에서 바라본 집중력의 정의는 무엇인가요.
결국은 집중력은 충동 조절하고 관련이 있어요. 우리가 하고 있는 행동을 스톱하거나 또는 계속 끌고 갈 수 있는 힘도 충돌 조절이 되기에 가능한 부분이거든요. 그런 면에 있어서 우리가 싫어하거나 꺼려하는 일은 금방 관심을 돌려버리는데, 오히려 그 싫어하는 일 안에서 나한테 필요한 것들을 끄집어내고 지속적으로 해나갈 수 있는 능력이 진정한 집중력이라 할 수 있죠. 블럭 몇 시간씩 조립한다고 아이가 집중력이 좋은 건 아니란 얘기에요.
집중력과 관련해 ‘몰입’과 ‘중독’이라는 단어도 많이 쓰이는 것 같아요.
몰입은 내가 어떤 행위를 하고 안 하고, 짧게 하고 오래 할 때 능동적으로 하는 거예요. 반면 중독은 마약이나 술을 하게 되면 자꾸 찾게 되고 수동적으로 의지하게 되잖아요. 능동적이냐, 수동적이냐 이 차이가 굉장히 큽니다. 왜냐면 능동적으로 한다는 건 단순히 좋아하는 것을 넘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계획이 있고, 그 계획에 따라 결국 무엇을 할 것인지 목표가 있어요. 중독에는 어떤 행위를 계획도 목표도 없이 충동적으로 하는데, 그렇다고 진정한 쾌락을 추구하는 것인지 살펴보면 또 그렇지도 않아요. 게임이 재미있어서 밤을 새우며 하는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간절히 원하고 즐기며 하는 시간은 한두 시간에 불과해요.
“게임해서 공부 못 하는 게 아니라 공부 안 돼서 게임해요”
요즘 특히 청소년들의 게임 중독, 도박 중독 문제가 심각합니다.대학병원에 있다 보니 아무래도 어떤 병적인 상황에 놓인 아이들을 많이 봅니다. 저는 아이들이 게임이나 도박에 빠지기까지 인과관계도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존에 이 아이가 가지고 있던 주의력 결핍, 우울증, 충동 조절 장애 같은 공존 질환이 있어서 문제가 될 만큼 게임을 하게 되더라는 거죠. 우울하기 때문에 게임이나 도박을 무의미하게 반복하는 것일 수 있어요. 그런데 게임은 도박과 다릅니다. 게임은 중독의 영역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예를 들어 도박과 게임이 같은 UI·UX(사용자 환경·사용자 경험)를 사용하더라도 게임은 스토리텔링이 있어 그 과정도 즐기지만, 도박은 스토리텔링 없이 그냥 보상과 자극만 있어요. 눈에 보이는 것이 똑같다고 해서 이 두 개를 같이 묶는 건 반대예요. 또 게임이 술이나 마약 중독과도 다른 게 알코올 중독과 마약 중독은 해당 물질을 안 하게 하는 치료를 하면 되지만, 게임은 게임을 안 하게 하는 치료만 해서는 아이의 병이 낫지 않아요. 아이가 가진 여러 문제 중에 하나의 증상이 게임을 많이 하는 것이죠.
그런데도 부모들은 포커스를 게임에 맞춰요. 부모들은 아이가 게임을 많이 해서 공부를 못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얘기를 들어보면 공부가 안 돼서 게임을 하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최근 ‘게임이용장애 국제세미나’에서 게임과 뇌, 집중력과는 관련이 없다고 발표하셨죠. 그동안 우리가 게임을 오해하고 있었던 건가요.
약 20년 전에 일본의 한 교수가 ‘게임을 즐길 때 사람의 뇌가 치매 환자의 뇌처럼 변하며 전두엽의 기능을 저하시킨다’는 내용의 책을 냈어요. 책에서 ‘짐승뇌’라는 극단적인 표현도 썼는데 두 명의 뇌파 검사만으로 결론을 낸 거예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하면 전두엽이 녹아내려 바보가 된다, 마약과 똑같다는 논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거죠.
뇌와도 관련이 없다면 왜 게임이 이렇게 여러 문제들의 원인으로 꼽히는 거죠.
아이들이 아침에 나가 학교, 학원 들렸다 밤이 되면 집에 옵니다. 아이들도 뇌를 쿨링시켜야 하잖아요. 그 밤에 할 수 있는 건 옛날에는 데스크탑, 요즘은 스마트폰이죠. 사실 지금은 게임도 많이 안 해요. 오히려 숏폼이나 SNS 사용률이 더 올라가고 있어요. 우리는 이제야 게임 중독이냐 아니냐, 진단 기준을 제대로 만들었는지 논하고 있고 스마트폰 중독에 대한 기준은 아예 없는 상태인데요. 의료시스템의 근본을 건드려서 실제 필요한 진료를 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의 디지털 생활은 앞서나가고 있어요.
아이의 스마트폰 사용을 줄이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우리 집 아이들도 스마트폰을 많이 사용해요.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때는 스마트폰 할 시간을 없게 만들었어요. 둘째의 경우 운동선수는 아닌데 피겨 스케이팅을 했거든요. 연습하고 대회 나가느라 시간을 다 쏟으니 가만히 스마트폰 할 시간이 많지 않았죠. 또 “운동 잘한다. 노력하는 모습이 멋있다” 등 아이가 인정받고 있다고 느끼도록 칭찬 많이 해줬어요. 현재 청소년들이 피드백을 받고 잘한다고 인정받을 게 성적밖에 없잖아요. 성적으로 기분 좋을 애들은 한 반에 10%밖에 안 돼요. 다른 취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자존감이 낮아졌다면 회복하게 도와주세요.
부모와의 애착 관계가 돈독한 아이는 공부, 운동, 사회에서 인정받는 욕구의 강도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 차근차근 성공에 이르는 경험을 반복하고, 재미를 찾기 위해 무언가에 끌려다니지 않으며 스스로 즐거움을 느끼는 능동성을 갖는다면 잘못된 중독이 아니라 바른 몰입으로 향할 것이다. 이에 게임이나 스마트폰 중독으로 일상생활이 흐트러진 아이의 부모에게 한덕현 교수는 “아이를 심리적·물리적으로 독립시켜야 한다”고 가장 많이 조언한다.
도무지 집중 못 하는 나, 혹시 성인 ADHD?
집중력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병이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다.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의료용 마약류 중 ADHD 치료제인 메틸페니데이트 처방 환자 수와 처방량이 각각 전년 대비 26.7%, 28.4% 증가하고, 특히 10대부터 30대까지의 환자의 처방량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메틸페니데이트 처방이 늘자 식약처에서 오남용 처방이나 강남 학원가 등에서 유행처럼 번진 것은 아닌지 급증 원인 분석에 들어갔어요. 어떻게 보시나요.
한때 집중력 높여주는 약으로 유행했었죠. 지금은 학부모들이 부작용이 있다는 걸 알고 아이들에게 주지 않아요. 왜냐면 전두엽에서 떨어진 도파민 수치를 올리기 위해 약을 먹는 건데, 정상인 아이에게 도파민이 더 들어가면 토할 것 같고 머리가 엄청 아파요. 진짜 ADHD인 아이가 이 약을 먹고 집중력이 좋아져 어느 정도 성적이 올라간 걸 보고 중간에서 위로도 올라갈 것이라 생각했다간 큰일 납니다.
유년 시절에는 전혀 ADHD 기미가 없다가 성인이 되어 갑자기 생길 수도 있는 건가요.
거의 없다고 봐요. 대부분 어렸을 때 발견이 안됐다가 어른이 되어 일이 많아지면서 내가 집중력이 없나 의심하다 알게 되는 거죠. 미국에서 조사를 했는데 성인이 돼서 갑자기 없던 ADHD가 생긴 케이스가 1~2%뿐이었어요. 그 1~2%도 어린 시절부터 갖고 있던 것인데 발견 안됐을 확률이 있고 다른 뇌 질환 전조 증상일 수도 있어요. ADHD가 아니더라도 집중력 저하 증상을 보이는 병은 많거든요. 우울증, 조현병이나 치매 초기 증상에도 집중력이 떨어져요.
성인 ADHD의 경우 어린이 ADHD와 어떤 차이가 있나요.
초등학교 1~2학년까지는 과잉 행동이 많이 나타나요. 과잉 행동 내지는 부주의형이 섞인 경우가 많은데 나이가 들면서 과잉 행동은 좀 줄고 부주의형이 많아지죠.
그 부주의함 때문에 업무능력이나 대인관계 등에서 불필요한 오해를 받기 쉽잖아요. 차라리 주변에 알리고 도움을 받는 건 어떨까요.
ADHD란 이야기를 듣는 순간 선입견을 품게 될 수밖에 없어요. 아직은 우리나라가 그런 정신 질환에 대해 중립적이지 못해요. 사회적으로 준비가 되어 있다면 얼마든지 얘기하고 이해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성인 ADHD라고 알리고 도움을 받으란 말은 저는 못 하겠어요. 결국 환자가 혼자 이겨내야 하는 게 아직까지는 현실이에요.
현실이 가혹하네요. 심지어 현대 사회는 멀티태스킹을 요구하잖아요. 꼭 ADHD가 아니더라도 내가 멀티태스킹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 양치하고 밥 먹고 회사에 제때 출근하는 것도 멀티태스킹이에요. ADHD는 시간 약속을 지키는 게 잘 안 돼요. 회사에서도 11시 30분까지 일하고 누구와 점심 약속을 해서 낮 12시에 점심 먹고, 2시에 미팅을 하는 정도의 스케줄은 보통 하잖아요. 이 일상 스케줄이 안 될 때 멀티태스킹이 안 된다고 해야지, 3가지 일을 하는 사람이 5가지 일을 못 해내서 멀티태스킹이 안 된다고 말하면 안 되죠. 많은 일을 못 한다고 해서 ‘내가 ADHD인가’ 생각하지 않았으면 해요. ADHD 자가진단을 10명이 하면 12명이 그렇다고 나와요. 나뿐만이 아니라 주변 사람까지 다 끌어들여서요(웃음). 실제로 병원을 찾는 사람들을 보면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일을 줄일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좀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까요.
한꺼번에 5가지 일을 하려 하지 말고 2가지씩 쪼개서 하세요. 처음 계획을 세울 때부터 나눠 세우고 해결한 다음 다른 일을 하면 되죠. 또 스케줄을 짜거나 업무를 볼 때 도움이 되는 보조장치 앱들을 활용하세요.
열심히 노력한 나를 믿고 하던 대로 해야
국가대표 지도자 대상 심리특강 및 스포츠 팀분석 설명 중인 한덕현 교수.
올림픽 국가대표 선수들은 어떤 고민을 갖고 있나요.
엄청난 경쟁 속에 있으니까 부담감과 결과에 대한 걱정이 많죠. 그런데 이 선수들에게 제가 해주는 건 치료의 개념이 아니에요. 스포츠 정신의학은 원래는 잘하던 운동선수가 병적인 불안, 우울 등으로 퍼포먼스가 떨어지게 되면 그 질환을 치료해 주는 과정을 말합니다. 그런데 파리 올림픽 대표팀은 병을 정상으로 돌리는 레벨이 아니라 신 레벨로 향하는 중이에요. 신끼리의 전쟁에 있어서 전투를 잘하게 해주는 건 치료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또 선수마다 처해있는 환경이 달라요.
그럼 선수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나요.
“하던 대로 하자! 지금 파리 가서 더 잘해야지 생각하는 건 사기다”라고요. 우리는 이미 한국에서 가장 무거운 걸 들고 제일 빨리 뛰는 사람을 뽑은 거예요. 더 열심히 하면 더 높이 뛸 수 있을 것 같은 가능성을 보고 뽑은 게 아니라 이미 제일 잘하는 사람을 선발한 것이니 그냥 하던 대로 하면 된다고요.
하긴 긴장하면 공부 잘하는 아이도 시험지에 답 밀려 쓰는 실수를 하잖아요.
긴장의 근원은 현실 부정이거든요. 나는 이거보다 더 잘해야 해, 이거보다 못하면 큰일나 생각하고 내가 갖고 있는 능력보다 더 바라면 오히려 떨려요. 어느 시험을 통과하면 주는 자격증을 예로 들어볼게요. 나는 원래 시험을 통과할 자격이 없는데 이걸 통과할 갑작스러운 ‘초 울트라’ 힘이 생기면 좋겠다고 바라면 안 되죠. 선수들에게 지금까지 열심히 해온 만큼 그 실력껏 하라고 말해줘요.
선수들이 집중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하는 방법들 중 일반인이 일상에서 실천해볼 만한 방법을 소개해 주신다면요.
없습니다. 신의 레벨에 다가가려고 하지 마세요. 하하. 불안을 떨치기 위해 복식 호흡을 하고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고 이런 방법들이 여기저기 많이 나와 있지만 그렇게 해도 불안은 계속 생겨요. 집중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중력을 기르려고 하지 말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능력 안에서 집중력을 발휘하게 만드는 게 정답이에요.
#집중력 #ADHD #파리올림픽 #여성동아
사진 박해윤 기자
사진제공 대한체육회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