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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미국과 헤어질 결심

이승원 한양대학교 교육대학원 겸임교수

2025. 03. 24

동맹보다 이익을 우선하는 트럼프 2기 정부의 기조는 유럽을 혼란에 빠뜨렸다. 미국이 스스로 만들어온 질서를 뒤흔들며 세계는 새로운 생존 전략을
모색해야 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2월 28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2월 28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지난 2월 28일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역사에 두고두고 기록될 외교적 참사였다. 무엇보다 이 참사는 우발적 상황에 의한 사고가 아닌, 다분히 의도에 기댄 사건이었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앞세우며 세계 최강국의 지도자로 재등장한 트럼프와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자국 영토 20%가량을 점령당한 젤렌스키의 격돌은 세계의 미래를 암시한다. 이 장면은 트럼프 2기의 대외정책 방향, 약한 국가를 대하는 트럼프의 태도 그리고 향후 펼쳐질 혼란의 시대를 말해주기 때문이다.

트럼프 ‘동맹이 뭐예요?’

트럼프에게 기존 개념과 질서는 무의미하다. 군사적 동맹,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가치 동맹’으로까지 동맹의 개념을 확장시켜온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은 물론, 이전 공화당 출신 대통령과 달리 트럼프에겐 동맹의 개념도, 민주주의에 대한 의지도 찾아보기 힘들다. 동맹국은 그저 무임승차자고 민주주의와 인권은 거추장스럽다. 그에게 최고의 가치는 눈앞에 보이는 이익이다. 돈과 부동산을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듯한 트럼프식 관점에서 우크라이나는 그저 미국 국민의 세금(무기 지원)에 기댄 무책임하고 나약한 국가일 뿐이다. 현상 변경을 꿈꾸는 러시아에 대한 견제라는 미국의 기본 입장을 유지하기보다는 우크라이나라는 부담을 빨리 떨쳐내고 싶은 게 트럼프다.

이를 두고 대중국 견제를 위해 러시아와 관계 개선을 추구하는 큰 그림이라고 보는 입장도 있다. 미국의 중국 견제는 오바마 행정부(2009~2017년)부터 본격화된 이후 트럼프·바이든 행정부까지 유지, 강화돼왔다. 중국이라는 거악을 물리치기 위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확실한 적이었던 러시아가 이제는 친구가 되는 것이다. 과거 닉슨 행정부가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과 손을 잡았던 것처럼.

미국의 돌발 행동은 이전부터 예고돼왔다. 지난 2월 18일 우크라이나를 제외한 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미국-러시아 고위급회담을 개최한 바 있다. 같은 달 24일에는 ‘러시아의 침략 규탄’이 명시된 유엔총회 결의안에 대해 러시아, 북한 등과 함께 반대표를 던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번 트럼프와 젤렌스키의 격돌은 전 세계 많은 국가에 경악을 안기기에 충분했다.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역시 유럽이다. 미국과 유럽은 지난 80여 년간 이른바 ‘대서양 동맹’을 바탕으로 과거 소련, 현재 러시아라는 공동의 적을 막기 위해 함께 싸워왔지만 이제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뺨을 때리는 형국이다. 뿐만 아니라 ‘유럽의 안보는 유럽이 책임져야’ 하며, 그동안 전쟁에 쏟아부은 돈을 회수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의 광물 자원은 모두 나의 것’이라는 희대의 딜을 제시하는 트럼프를 보면서 유럽은 말 그대로 충격과 공포, 무엇보다 분노에 휩싸여 있다.

트럼프의 우크라이나 압박이 현실화되자 영국과 프랑스의 주도로 유럽연합(EU) 국가들은 지난 2~3월 수차례 공식·비공식 정상회담 등을 줄줄이 이어가고 있다. 당장 시급한 안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우리는 역사의 갈림길에 섰다”고 말했고, 폰데어라이엔 EU집행위원장은 “유럽은 급히 재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말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실제 영국은 회원국들과 유럽 전체의 ‘방위 펀드’ 창설 논의를 시작했다. EU집행위원회는 3월 4일 8000억 유로(약 1299조 원) 규모의 ‘유럽 재무장 계획(REARM Europe Plan)’을 발표했다. ‘무기 조달을 위한 대출금’ 지원과 ‘국방비 증액 시 EU 재정준칙 적용 유예’ 등이 골자다. 유럽연합의 유일한 핵보유국 프랑스도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프랑수아 바이루 총리는 “(미국이) 젤렌스키를 침략자들의 요구에 굴복하게 하려던 것”이라며 이례적으로 미국을 공개 비판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가 “미국이 우리 편에 서지 않을 때를 대비해야 한다…. 우리의 핵 억지력이 유럽 동맹국들도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지 전략적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고 도발했다.

EU 최대 경제 대국인 독일도 태세 전환 중이다. 독일은 패전국 트라우마와 경제 집중 정책 등으로 국방력 강화를 자제해왔지만, 이제는 국방비 증액을 위해 헌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차기 총리로 유력한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독민주당 대표는 프랑스와 ‘핵 공유’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유럽 내 강국인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이 줄줄이 ‘미국 없는 세상’을 구상해야 한다고 공개 발언하는 상황인 것이다. 이미 1기 트럼프 정부와 갈등을 겪은 데다, 재집권한 그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정보 지원을 한 차례 중단하고 러시아 밀착 행보를 이어가자 의심은 확신으로 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와 푸틴이 전후 질서를 무너뜨릴 때 유럽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라는 칼럼에서 “유럽은 무법 시대에 ‘하드파워’를 행사하는 법에 대해 신속한 과외가 필요하며, 그렇지 않다면 신세계의 무질서에 희생될 것”이라고 논한 바 있다.

안보, 경제 모두 홀로서기 도전

안보만큼 경제도 중요하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부터 일상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경제안보’ 개념을 이제 유럽도 강화하기 시작했다. 관세와 자국 이기주의를 무기로 휘두르는 트럼프를 피해 전 세계 다른 국가에서 활로를 찾는 것이다. 폰데어라이엔 EU집행위원장은 미 대선 한 달 뒤인 2024년 12월 메르코수르(남미공동시장: 아르헨티나, 브라질, 파라과이, 우루과이) 4개 회원국과 무역협정에 서명했다. 또 말레이시아와의 협상을 재개하고 인도를 방문하는 등 보폭을 빠르게 넓히고 있다. 라틴아메리카 인구 약 4억 명을 포함해 인도까지 수십억 명의 잠재 고객이 있는 중남미와 남아시아 시장으로 거래 대상을 확대하겠다는 의도다. 그동안 유럽의 친환경 정책 등으로 중남미나 인도 등과 협정이 지지부진했지만 이제 유럽과 등지는 미국을 우회하기 위해 논란이 있더라도 이들과 양자 및 다자 무역협정을 맺겠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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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 특히 유럽 언론들은 ‘대서양헌장’에서 시작된 80년 동맹이 깨지고 있다고 우려한다. 유럽이 새로운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파이낸셜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는 지난 2월 ‘미국은 이제 서방의 적(敵)이 됐다’는 제목의 글에서 “오늘날 독재 정권은 점점 더 자신감을 가지고 있으며, 미국도 그들 편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썼다. 근거로 △미국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의 우크라이나방위연락그룹(UDCG) 회의 연설 △J. D. 밴스의 뮌헨안보회의 연설 등을 들었다. ‘이코노미스트’는 칼럼 ‘미국의 괴롭힘을 당하는 동맹국들은 강해져야 한다’를 통해 트럼프가 캐나다 같은 ‘찐’ 우방과도 관세전쟁을 시작했다는 점 등을 강조하며 “아부나 양보가 아닌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경고했다. 미국 내 대표적인 현실주의자 스티븐 월트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 교수 역시 ‘포린폴리시(FP)’ 기고에서 트럼프, 밴스 등은 유럽에 무관심한 정도가 아니라 적대적이라고 지적한다. 미 언론들은 현 상황을 두고 미국이 오히려 전쟁을 일으킨 푸틴 대통령에게 ‘보상’을 해주는 격이라고 비판한다.

1월 20일 취임 이후 트럼프의 발언과 행보는 전형적인 민족주의, 팽창주의, 권위주의를 보여준다. 미국 우선주의, 그린란드 구매 및 가자지구 소유 발언, 언론 및 대학 등에 대한 탄압과 공무원 해고 조치 등이 단적인 예다. 이는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이 스스로 만들어놓은 질서를 깨겠다는 뜻으로 해석돼, 미국과 동맹인 한국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는 한국전쟁 이후 수십 년간 미국 자유주의(다자무역 선호·민주주의·인권 등)와 북한 위협에 대한 핵우산이라는 전제 위에서 경제 및 안보 시스템을 마련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보호무역, ‘동맹’에 대한 불신 등을 보면 기존 질서가 상당 부분 파괴될 가능성이 높다. 당장 북한과 전쟁이라는 끔찍한 가정을 해보자. 과연 미국은 한국을 도와줄까. 전쟁에서 이긴다고 하더라도 우크라이나의 광물을 빼앗듯 한국 내 주요 자산을 가져가겠다고 협박하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야 한다. 더불어, 상당 부분 미국에 기대온 한국의 경제도 유럽처럼 다른 활로를 모색해야 할 시점인지 모른다.

세계는 냉전 종식 후 약 30년간 초강대국인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 속에서 자유주의를 바탕으로 생존해왔다. 하지만 이제 판이 바뀌었다. 제1·2차세계대전을 거치며 미국과 혈맹 수준의 관계를 맺었던 유럽이 가장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2025년, 지금의 현실이다.

#트럼프정부 #러우전쟁 #여성동아

사진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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