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전거를 처음 배우는 아이의 뒤에서 부모는 잡아줄까 말까 끊임없이 고민한다. 최근 배우 김정태와 둘째 아들 시현 군이 같은 기획사와 전속계약을 맺었다. 부자가 한솥밥을 먹는 일도 드문데, 심지어 시현 군은 이번 계약을 통해 본격적인 배우 활동에 나선다. 2013년생인 김시현 군은 가족 예능 프로그램 ‘공부와 놀부’, 웹드라마 ‘거실에 아이돌이 산다’에 출연했으며 개봉 예정 영화 ‘컨설턴트’와 ‘가족여행’에서도 모습을 볼 수 있다. 오래전 KBS 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해 영재 면모를 보인 ‘야꿍이’는 두 살 위 형 지후 군이다.
자전거에 탄 신인 아들과 뒤에 선 28년 차 베테랑 배우 아빠의 다음 스텝은 무엇일까. 평소 김정태는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활동하고, 동서대 건축학과 겸임교수인 아내와 두 아들은 부산에서 지낸다. 방송 출연 외 처음인 부자 인터뷰를 하기 위해 하루 전 상경한 두 사람은 첫눈이 쏟아진 날 하필 집 보일러가 고장 나 호텔에서 묵었다고 했다. 시현 군에게 “호텔에서 자니까 여행 같았겠다”고 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아들을 보며 김정태가 “우리 많이 닮았나요?” 물었다. 훤칠한 키와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 답할 필요가 없는 질문이었다.
“우리 엄마가 그랬듯, 저도 아들의 잠재력을 봤어요”
시현 군은 연기를 본격적으로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시현 원래는 태권도를 좋아해서 태권도 선수를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아빠가 배우를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하는 거예요. 처음에는 별생각이 없다가 아빠와 예능 프로그램 촬영을 해보니 카메라 앞에 서는 게 재미있더라고요. 그때 ‘연기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태 어린 학생이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럽게 말하고 행동한다는 게 쉽지 않잖아요. 제가 보기에 아들이 끼, 잠재력이 있길래 조금 욕심이 났죠. 아직 어리니까 재능은 여러 관계 속에서 성장하는 가운데 조금씩 드러나겠죠. 그 드러난 부분이 대중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만큼인지는 시간이 더 지나 봐야 할 듯해요. 일단은 본인이 하고 싶어 하고 의지가 있으니 제가 도와줄 부분은 도와주려고요. 당연히 스스로도 노력 많이 해야죠.
보통 자녀가 중학생이 되면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키려 하는데, 과감하네요.
정태 부모는 자식에 대한 촉이 있잖아요. 저도 35년 전에 엄마가 배우 하라고 서울에 올려보냈어요. 옛날에 한석규 선배와 촬영하면서 매일 사우나를 같이 다녔는데, 저한테 “어떻게 배우가 됐냐”고 물으시더라고요. 제가 “엄마가 배우 하라고 했다”고 하자 “지금까지 배우 생활하면서 엄마가 시켜서 된 사람은 처음 봤다”며 신기해하셨어요. 그런데 정말이에요. 제가 어릴 때 엄마 앞에서 연기를 해봤겠어요? 어떤 순간순간에 느껴지는 게 있잖아요. 엄마는 제가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서울의 연기학원에 등록시켰고, 대학도 연극영화학과를 가라고 온 집안이 다 나서서 갔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선택했다면 주저하느라 출발이 늦어지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래서 조심스럽긴 하지만 제 경험에 대한 믿음이 있어요.
시현 군은 연기를 해보니 어때요. 아빠가 감독으로 데뷔하는 ‘가족여행’에도 출연했잖아요.
시현 아빠가 연출하는 영화는 분량이 어느 정도 있는 캐릭터라 몰입하기가 좀 어려웠어요. 눈물을 흘려야 하는 신에서 눈물이 너무 안 나오는 거예요. 촬영 전날 일부러 늦게 자서 촬영할 때 하품 많이 해 눈물이 최대한 고이게 하고 그랬어요. 어려웠지만 다양하게 연기를 해볼 수 있어서 더 재미있긴 했어요.
정태 그 역할이 제 아역이었어요. 처음에는 아역배우를 찾다가 ‘내 아들이 하면 생김새가 제일 비슷하니까 괜찮겠다’ 싶었죠. 아빠의 부재를 확인하는 장면도 있고, 연기하기가 어렵긴 했을 거예요. 아들의 감정신 촬영 때는 자유롭게 연기하도록 될 수 있는 대로 자리를 피해줬어요. 나중에 촬영본 보니까 아주 잘한 건 아니고 고만고만하게 했어요(웃음). 2026년 개봉 예정이에요.
인공 눈물을 안 쓰고 연기했으면 잘한 거죠.
시현 인공 눈물이 있어요? 그런 게 있으면 알려주기라도 하지.
정태 인공 눈물은 극약 처방이지. 너한테 지금부터 편법을 가르쳐줄 수는 없잖아. 그러면 연기를 겉으로만 하는 거야. 캐릭터에 완전히 몰입해서 연기를 해야 멋진 배우가 될 수 있어.
집이 아닌 현장에서 보는 연기자이자 감독으로서 아빠는 어땠나요.
시현 집에서는 다정하고 보듬어주는 아빠인데, 촬영장에서는 진짜 무섭게 변했어요. “이렇게 해라” “제대로 해라” 강하게 지시하고요. 그것도 나한테만 그랬어요. 엄청 무서웠어요.
정태 시현이 말하는 그날을 알 것 같아요. 당시 야외 촬영이라 빨리 찍어야 하는데 하필 감정신이라 시간은 오래 걸리고 정신이 없더라고요. 제가 좀 설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시현 현장에서 아빠한테 물어보는 경우는 잘 없었어요. 간혹 물어볼 게 생겨서 아빠한테 가면 아빠는 절 보지도 않고 다른 곳에 가버렸어요. 그래서 하라는 대로, 대본대로 했어요.
정태 그렇게 해서 ‘OK’가 났으면 잘한 거야. 어떻게 일일이 다 가르쳐주냐.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실수도 하고 NG도 내보고 해야 배우죠. 혼자 해내라고 놔뒀어요. 아빠가 너무 나서면 시현이 연기할 때 부담스러울 수도 있고, 저와는 좀 떨어져 한 사람의 배우로서 자리를 잡도록 해주는 게 성장에 더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정태 글쎄요. 어쩌다가 이벤트로 한 번씩 같이 작품을 할 수는 있겠으나 저는 저고 김시현은 김시현이니까 각자의 길을 걸어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다만 부모로서 괜히 이 험난한 딴따라 세계에 애가 발을 들이도록 했나 싶어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어요. ‘내가 겪어봤으니 시현이 힘들지 않게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과 ‘혼자 맨몸으로 부딪혀봐야 힘든 게 자양분이 될 거야’라는 마음이 상충해요. 대표님, 아내와도 의논을 많이 했는데요. 결론적으로 인큐베이팅은 잘하는 선수에게 맡기려고요. 자신의 색깔은 스스로 만들어가야죠.
시현 아빠가 말하는 세계에 대해 아직 완전히 알지는 못하지만, 약간 어렵고 무서운 세계 같기는 해요. 그런데 이미 발을 들여놓았으니까요. 하는 김에 제대로 해보고 싶어요.
1999년 영화 ‘이재수의 난’으로 데뷔한 김정태는 2010년 영화 ‘방가?방가!’를 통해 명품 조연으로 떠오른 후 ‘7번방의 선물’로 천만 배우 반열에 올랐다. 2009년, 고등학생 때 만난 아내와 19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할 당시만 해도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다. 부모님 두 분 다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어 결혼 전부터 아내가 병시중을 들고 자신의 적금과 보험을 깨 생활에 보탰다. 인기와 함께 형편이 풀려갈 즈음에는 김정태에게 병이 찾아왔다. 2018년 드라마 촬영 도중 건강 이상을 느껴 검사를 했다가 간암 초기 진단을 받았고, 2019년 수술과 치료를 거듭한 끝에 완치 판정을 받았다. “배우가 아니면 시인이 됐을 것”이라는 김정태는 거친 삶의 파도에 맞서며 틈틈이 쓴 시를 모아 2024년 ‘내 눈 속에 사는 사람’을 펴내기도 했다.
행복하게 사는 게 최고
시현 군의 연기 활동에 대해 아내도 동의한 건가요.정태 우리는 둘 다 아이들한테 무언가 강요하거나 크게 바라지 않아요. 살아보니 ‘행복하게 사는 게 최고구나’ 느꼈어요. 공부 잘하는 사람,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 많이 만나봤지만 행복한 사람은 별로 없더라고요. 그래서 아이가 가고 싶어 하는 길이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면 해보라고 해요. 해봤는데 아니면 또 다른 행복의 길을 찾아가면 되는 거고요.
지금 얘기한 교육관이 일찌감치 각자의 분야를 찾아가는 아이들로 키운 비결인가요.
정태 비결이 뭐 있겠어요. 저도 처음 사는 생인걸요. 부모 자식 사이에 마음을 열어놓으니 아이가 자신이 좋아하는 걸 얘기하게 되더라고요. 아이들 얘기를 들으면 한번 해보라고 해요. 중학교 3학년이 되는 첫째의 경우 워낙 컴퓨터에 관심이 많아요. 다른 친구들이 컴퓨터 게임을 할 때 지후는 게임을 만들려고 하더라고요. 첫째는 정보보호영재교육원을 2년 수료했고, 2027년 부산소프트웨어마이스터고등학교 진학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어요. 그곳을 졸업하게 되면 해외 유학을 가고 싶대요. 어려서부터 언어 습득이 빠르더니 영어도 잘해요.
시집에 담은 시 ‘중학교 1학년’에서 “너무 가난해서 사춘기가 안 왔다”고 했잖아요. 이제 딱 시현 군이 중학교 1학년이 됩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맞는 ‘내 아이의 사춘기’는 어떤가요.
정태 안 그래도 한 번씩 얘기해요. “아빠는 너희 나이 때 너무 힘들었어. 너희는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지내야 해”라고요. 아이들을 보면 가끔 묘한 기분이 들어요. 타고난 운명이란 게 있나 봐요.
시현 아빠가 어린 시절 가난했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예전에 아빠에게 “왜 피아노 학원을 다녀야 하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그때 아빠가 “나는 어릴 때 음악을 하고 싶었지만 너무 가난해서 하질 못했다”고 했어요. 그래서 열심히 다녔어요. 아빠 얘기는 가끔 잔소리 같은데 듣는 거죠(웃음).
정태 시현이, 오늘 부산까지 걸어가야 할 것 같아.
시현 부산까진 너무 먼데? 아빠는 기차 타고 와. 나는 비행기 탈게.

2023년, 영화 ‘컨설턴트’ 촬영 당시만 해도 개구쟁이 같던 시현 군. 어느새 “형처럼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내 사춘기를 보내려 한다”는 의젓한 예비 중학생이 됐다.

얼마 전 치른 첫째 지후 군의 정보보호영재교육원 수료식 날.
정태 투병 이후 제가 정말 많이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부산에 와서도 사람들 만나느라 집에 좀 소홀했는데, 아픈 뒤로는 술을 마실 수 없으니 자연스럽게 집에 있게 되더라고요. 마침 아이들도 대화가 될 시기라 함께 있으면 재미있고,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모습이 예뻐서 집 밖을 더 안 나가게 됐어요. 제가 부산에서 지낼 때 오후 8시에서 10시 사이에 일이 있는 걸 제일 싫어해요. 아이들 씻기고 숙제하고 잘 준비를 해야 하거든요. 제 색깔이 많이 변했죠.
시현 아빠가 수술할 때 제가 병원에 갔었는데, 아빠가 너무 아파 보였어요. 돌아가실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어서 무서웠어요. 그 이후로 아빠와 같이 다니고 게임도 같이 해요. 사실 요즘은 집에 있을 때 아빠가 부르면 좀 귀찮기도 한데요. 막상 가면 재미있어요.
중학생이 되면 아빠와 놀 시간은커녕 바빠질 텐데요.
시현 엄마와 얘기를 해봤는데, 제가 진학할 중학교는 1학년 1학기에 시험을 본대요. 시험을 한 번 쳐보고 성적이 잘 안 나오면 필요한 학원을 다니기로 했어요. 현재 학원은 영어, 수학, 태권도, 농구를 다니는데요. 영어 학원은 이번 달까지만 다니려고요.
정태 태권도와 농구가 어떻게 학원이냐, 노는 거지. 일단 연기 수업은 받아야 하고요. 시현이가 생각보다 공부를 잘해요. 게다가 앞으로 시현이 수학 성적은 걱정 안 해도 될 게, 대표님이 수학 학원을 오랫동안 운영했던 일타강사 출신이에요. (회사 관계자 일동 폭소) 공부와 연기를 겸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회사입니다.
시현 군은 앞으로 해보고 싶은 역할이나 롤 모델이 있나요.
시현 와이어 타고 날아다니는 액션 연기를 해보고 싶어요. 블루스크린 앞에서 연기하면 나중에 CG가 많이 들어가는 그런 작품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배우는 아이유와 박보검, 김우빈, 박보영, 김태희, 수지예요. 이 배우들이 출연했던 작품이 재미있어서 좋아해요.
정태 너의 의식에는 아빠가 자리 잡고 있지 않구나. 내 작품 중에는 네가 볼 만한 내용은 별로 없었던가? 영화 ‘7번방의 선물’은 봤니? 제 작품 중에도 정말 좋은 작품이 많습니다.
당연히 알죠(웃음). 더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가 있나요.
정태 새로운 작품이요. 저는 늘 새 작품이 ‘나의 베스트’가 될 거라 생각하고 지나간 작품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아요. 그 작품에 대한 애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빨리 차기작에 들어가야 하니까 이런 습관이 길러졌어요. 2026년에도 더 많은 곳에서 활동하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아마 곧 제가 무얼 준비하고 있었는지 아시게 될 거예요.
시현 저는 2026년에 영화나 예능 프로그램에 좀 더 도전하고 싶어요. 또 형은 나중에 미국에 유학을 가야 하니까 제가 돈 많이 벌어서 저도, 형도 하고 싶은 일들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정태 누가 보면 네가 가장인 줄 알겠어. 하하. 제가 아이들한테 어릴 때부터 혼자 용돈을 받으면 형제끼리 나눠 가지라고 했거든요. 출연비 받으면 형 용돈 주는 착한 동생이에요(웃음).
#김정태 #배우 #가족여행 #여성동아
사진 조영철 기자 사진출처 인스타그램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