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년 KBS ‘개그콘서트’로 데뷔해 SBS ‘골 때리는 그녀들’ 등 각종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뛰어난 운동 실력과 활기찬 이미지로 사랑받아온 그가 첫 만남에 불쑥 꺼낸 고백이다. 이미 화보 촬영을 위해 20분가량 트램펄린 위에서 신나게 점핑 시연을 보여준 뒤이기도 했다. 의아해하는 모양새에 그는 솔직하게 옛이야기를 터놓았다. 여성 코미디언으로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캐릭터가 ‘강한 여자’였을 뿐 실제 본인은 수줍음이 많고 내성적인 사람이었다는 설명이다. 방송 일을 할수록 대중이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과 진짜 자아 사이의 괴리가 커지면서 결국 그는 우울증을 앓기도 했다. 2015년 모든 걸 내려놓고 홀로 독일행 비행기에 오른 까닭이다. 표면적으로는 ‘유학’이었지만, 스스로 말하길 “죽으러 갔다”는 표현이 과하지 않을 정도로 힘든 시기였다고.
독일에서 만난 남편 스테판 지겔과의 인연은 그의 삶을 다시 움직이게 한 시작이었다. 남성스러운 역할을 했던 과거 영상을 보고 “귀엽다”고 말해주며 곁에 있어주는 남편 덕분에 그는 조금씩 숨을 골랐다. 아무도 자신을 연예인으로 알아보지 않는 낯선 환경 속에서 다시 ‘김혜선’이라는 사람을 되찾을 수 있었다고. 마음 건강을 회복한 후 귀국한 그는 개그 무대로 돌아왔지만, 이내 또 다른 무대 위로 뛰어올랐다. 바로 트램펄린 위였다. 그는 2018년 점핑 피트니스 브랜드 ‘점핑머신’을 창업하고 올해로 8년째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피트니스 업계가 대거 타격을 받은 가운데서도 버텨냈다. 처음에는 수강생 한 명으로 시작한 센터가 이제는 전국 50개 가맹점으로 확장됐고, 최근 독일에 1호점을 연 데 이어 베트남과 필리핀에서도 러브 콜을 받았다. 그는 이제 ‘K-점핑’으로 세계 무대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운동은 싫지만 잘하는 여자

남편이 외국인이다 보니 연애할 때, 남편을 한국으로 데려오려면 제가 안정적인 일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코미디언은 방송을 안 하면 수입이 없거든요. 사업이 아니더라도 무엇이든 나만의 일을 해야겠다고 고민하던 차였죠. 그게 운동 관련 사업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지만요.
운동 사업은 할 생각이 없었다고요.
원래 운동을 좋아하지도 않고 귀찮아하는 편이에요. 캐릭터를 유지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해왔죠. 좋아하지는 않은데 잘하다 보니까요(웃음).
그런데 점핑 사업을 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다른 점핑 운동 브랜드에서 타임 강사로 일했고, 그때까지만 해도 제 브랜드를 차릴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그런데 주변에서 저한테 직접 배우고 싶다는 요청이 꾸준히 들어와서, 결국 떠밀리다시피 시작하게 됐죠.
헬스, 축구 등 다양한 운동을 해왔는데 점핑만의 특별한 매력이 있다면요.
짧고 굵게 끝낼 수 있다는 점이요(웃음). 아무래도 운동을 좋아하지 않아서요. 또 긍정적이고 행복한 에너지를 주고받을 수 있어서 좋아요. 파워풀하게 소리도 지르고, 신나는 노래도 듣고, 안무와 함께 연기도 하면서 사람들과 같이 스트레스를 풀고 우울감도 해소하죠. 점핑은 마치 거울 같은 운동이어서 서로가 서로에게 정열적인 에너지를 전할 수 있어요.
우울감 해소에도 도움을 준다고요.
우울증은 완치가 어려워서 다 나았다 싶다가도 어느 순간 갑자기 훅 올라와요. 그럴 때면 다른 생각하지 않고 트램펄린 위에서 짧고 굵게 뛰어요. 특히 강사로서 수업을 하면 음악, 박자, 다음 안무, 동작, 회원들 반응까지 신경 써야 할 게 많아요. 여러 가지에 집중하다 보면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어집니다.
슬로건 ‘대충 뛰다 걸리면 죽는다’는 어떻게 정했나요.
회원들이 운동하면서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슬로건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야식 그만 찾고 S 라인 찾자’ 같은 것도 떠올렸는데 임팩트가 없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평소에 대충 하는 것을 싫어하기도 하고, “죽는다, 너!” 같은 말도 많이 해요. 이를 아는 코미디언 김명선 씨가 잘 조합해서 만들어줬죠.
요즘 영상만으로 수업하는 곳도 많은데 직접 점핑 강연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최근 무인 점핑 센터도 생기는 추세지만 개인이 영상만으로 수업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점핑은 안전과 직결된 운동이기 때문에 강사의 정확한 코칭이 필수예요. 회원들이 뛰는 걸 보면서 상태에 따라 운동 동작을 변형해주는 게 정말 중요하거든요. 코로나19 이후 혼자 운동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기는 했지만 영상 수업만으로는 우울감이 해소되지 않아요. 우울감 해소에 가장 중요한 건 에너지를 주고받는 소통이에요.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 점핑 수업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죠.
마치 코미디 무대 위에서 관객들과 소통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드네요.
맞아요. ‘점핑’이라는 단어만 붙은 무대예요. 핀 조명도 있고요(웃음). 코미디언으로서 제가 하는 일이 사람들에게 웃음과 행복을 주듯, 점핑도 사람들에게 건강과 행복을 동시에 줄 수 있어서 정말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코미디언과 운동 강사, 2가지가 잘 어우러져 시너지를 내는 것에 감사해요. 이는 ‘김혜선’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싶어요.

김혜선은 지금도 모든 가맹점 오픈 기념 행사에서 직접 점핑 수업을 진행한다.
코미디언에서 점핑 CEO로
사업이 초기부터 잘 풀렸나요.아니요. 제가 직업은 연예인이지만 의외로 내성적이고 수줍음이 많아요. 홍보에 서툴다 보니 초반에 지하에서 오픈했을 때 수강생이 딱 한 분밖에 없었죠. 그러다가 입소문이 나고 점점 회원이 늘어나면서 큰 곳으로 옮겼는데 그때 딱 코로나19가 터졌어요. 몇 개월은 아예 문을 못 열었죠. 그래도 본점은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지금의 김포로 이사 와서 자리를 잡았어요.
팬데믹 시기에 피트니스 산업이 특히 힘들었는데 어떻게 버텼나요.
당시 가맹점이 20개 정도 있었는데 절반 이상이 문을 닫았어요. 은행 대출로 꾸역꾸역 버텼죠. 그 시기에 “네가 유명하지 않아서 우리가 망했다”며 험한 말을 하면서 떠난 가맹점주들도 있었어요. 그때도 “함부로 말하지 말라”며 “대표님은 정말 열심히 하신다”고 얘기해준 분들 덕분에 버틸 수 있었죠.
축의금도 빚 갚는 데 모두 썼다고요.
센터 오픈한 지 한 달도 안 된 시점에 결혼했는데, 당시 회원이 딱 한 명밖에 없었고 계속 대출을 받는 상태였어요. 축의금을 정말 10원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전부 센터에 썼어요. 남편한테 얼마 들어왔는지 얘기도 안 했어요. 남편도 전혀 물어보지 않았고요. 시간이 좀 지나서 솔직히 고백했는데, 남편이 아무렇지 않게 “어차피 네 돈이니까 마음대로 해”라고 하더라고요.
남편이 환경학 석사인 만큼, 한국에서 전공을 살리지 못하는 데 대한 아쉬움이 있진 않나요.
남편이 한국 생활을 한 지 2년쯤 지났을 때, 독일과 한국의 업무 스타일이 달라서 자신과 잘 맞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바쁘게 일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남편이 집에 있어) 온기가 감도는 게 좋아서 지금이 만족스러워요. 또 제 점핑 관련 기록을 남편이 사진이랑 릴스로 꼼꼼하게 남기고 정리해주고 있어요.
타국에서 혼자 집에 있을 텐데, 심심해하지는 않나요.
남편은 되게 느릿한 나무늘보 같지만 친화력이 굉장히 좋아요. 제가 없는 날에도 센터에 와서 회원님들이랑 사진 찍으며 마스코트 역할도 하고요. 친구도 엄청 많아요. 동네에 있는 국밥집 사장님이랑도 다 알고 지내요. 심지어 며칠 전 독일 가기 전에는 “저 독일 갔다 올게요~ 언제 돌아와요~”라고 인사를 다 하더라고요. 오히려 제가 고립된 생활을 하는 거지, 남편은 사회생활을 너무 잘하고 있어요. 가끔은 직접 점핑 운동도 하고요.
남편도 강사로 활동하는 건가요.
아니요. 강사는 평생 못 해요(웃음). (남편이) 이벤트성으로 몇 번 뛰었는데, 우스갯소리로 저희 강사들을 다 자르라고 하더라고요. 운동 강도가 너무 세서 도저히 못 하겠다면서요.
혜선 님 수업을 수강하기도 하나요.
센터에 한 번 왔었는데, 제가 남편 때문에 웃겨서 제대로 뛰질 못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그냥 트램펄린 위에서 통통거리기만 하고 있더라고요. 귀여운 나무늘보처럼 움직이니까, 웃느라 운동이 안 돼요. 그다음부터는 제 수업은 안 들어요.
최근 독일에도 지점을 냈는데, 그 과정이 궁금합니다.
사람 인연이 참 신기한 게, 예전에 독일에서 남편과 결혼 서류 접수할 때 서류 공증을 도와준 회사가 있었어요. 그 회사에서 독일에 점핑머신을 오픈하고 싶어 하는 분과 연결을 해줬어요. 직원들과 함께 독일에 가서 장소도 직접 보고, 인테리어부터 무대 세팅까지 같이 진행했고요. 지난해 여름에는 작게나마 공연을 열고 독일에서 함께 점핑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남편의 고향이라 의미가 남달랐을 것 같아요.
사실 점핑머신의 최종 종착지는 독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아직 우리 부부는 나중에 나이가 들면 한국에서 살지, 독일에서 살지 결정을 못 했거든요. 그래서 독일에 미리 사업체 하나 정도 갖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빨리 오픈하게 됐죠. 남편한테 물어봤더니 “한국에 맛있는 게 많은데 굳이 왜 독일에 가냐”고 하더라고요(웃음).
독일 진출을 하면서 남편분이 든든한 사업 파트너로서의 역할도 하나요.
네. 정말 도움이 많이 돼요. 독일 지점 오픈할 때나 책을 쓸 때 남편이 독일어를 직접 번역해줬어요. 특히 똑같은 독일어라도 문화적 차이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이 있으면 남편이 다시 한국식으로 잘 번역해서 알려줘요. 그렇게 두 번 번역이 이루어지는 거죠. 독일에서의 사업 방향도 남편이 많이 조언해주고 있고요. 지금은 한국에서도 남편이 독일과의 소통을 도와주고 있어요.

트램펄린 타고 세계로
독일에서도 ‘대충 뛰다 걸리면 죽는다’는 슬로건을 밀고 계시잖아요. 현지 반응은 어떤가요.독일 지점은 재활치료 목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만큼 한국처럼 격렬하게 수업하지는 않아요. 수업을 진행하는 그곳 대표님도 재활치료사 출신이고요. 실제로 암 환자나 축구 선수들이 재활을 위해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요. 나이대도 다양하고요. 현지 센터에서 매 수업 후 피드백을 메일로 보내주는데, “오늘은 인공관절 수술을 받은 60세 할머니가 오셨는데, 운동 후 굉장히 만족하셨다”거나 “사이가 좋지 않았던 부부가 함께 운동하면서 관계가 좋아졌다” 등의 내용이 많아요. 저도 재활 중심의 점핑을 보면서 많이 배우고 있어요.
점핑 운동은 격하다고 생각했는데 재활 목적으로도 많이 활용되나요.
지금은 에어로빅처럼 변형된 형태로 잘 알려져 있지만 점핑은 원래 재활치료 목적으로 나온 운동이에요. 실제로 회원들 연령대도 소아 비만으로 고민하는 초등학생부터 60대 어르신까지 다양해요. 특히 점핑은 1인 1트램펄린 방식이기 때문에 개개인이 운동 강도를 조절할 수 있어요. 강사가 하는 대로만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 수준에 맞게요. 저도 무릎인대 파열, 최근에는 종아리근육 파열 등의 부상을 겪었지만 트램펄린 위에서 직접 재활을 하고 있어요. 단, 혼자가 아닌 전문 강사의 관리와 지도가 꼭 필요합니다.
독일 사람들은 워낙 정적 이미지가 강한데, 격한 점핑 운동에 관심을 보이는 편인가요.
맞아요. 독일은 일반적으로 조용하고 심심한 나라라는 이미지가 있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클럽이 있는 곳도 독일이에요. 독일 사람들은 이렇게 숨겨진 흥을 표출할 수 있는 활동을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점핑도 독일에서 충분히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곧 직원들과 함께 세계 최대 규모의 스포츠 박람회인 ‘독일 FIBO 국제 피트니스 박람회’에 답사를 갈 계획이에요. 향후 3년 안에 이 박람회에서 K-점핑, 즉 한국의 점핑머신을 유럽 사람들에게 선보이고 같이 뛰는 날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다른 나라의 점핑과 한국의 점핑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우리나라 점핑은 확실히 더 파워풀하고 에너제틱해요. 특히 한국인 특유의 흥이 있어요. 이 흥은 한국인이 아니면 절대 따라 할 수 없는 요소거든요. 이를 트램펄린 위에서 격렬하게 운동하며 쏟아내는 거죠. 실제로 독일 지점 대표님이 제 수업을 보고 나서 “독일 사람들이 이 에너지를 보면 정말 좋아할 것 같다”며 기대를 많이 했어요. 실제로 작년 독일에서 작게나마 수업을 몇 번 진행했는데 참여한 분들이 굉장히 신기해했어요. 충분히 K-점핑만의 메리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피트니스 사업가로서 입지를 다져가는 지금, 김혜선에게 ‘코미디언’은 어떤 의미인가요.
예전에는 운동과 코미디를 따로 분리해서 생각했어요. 프로 선수들이나 갈 법한 행사에 초대를 받으면, ‘내가 코미디언으로 초대된 건지, 운동 강사로 초대된 건지’ 고민이 됐죠. 지금은 그 구분 자체가 의미가 없어졌어요. 결국은 제가 점핑하는 코미디언으로서 유일무이한 존재잖아요. 그냥 김혜선은 김혜선이에요. 제가 가진 에너지를 더 많이 발산하고, 그런 기회들을 더 많이 만들고 싶어요.
#김혜선 #점핑머신 #여성동아
사진 이상윤 사진출처 김혜선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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