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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페미니즘의 고전 '백래시' 다시 읽기

성지연 에세이스트, 국문학 박사

2024. 04. 16

‘백래시’는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국 사회에서 생소한 단어였다. 페미니즘이 사회적 의제로 떠오르고 젠더 갈등이 점화되면서 백래시라는 단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백래시: 미국 여성들에 대한 선전포고 없는 전쟁’은 이 용어를 30년 전 미국 뉴스 헤드라인으로 올려놓은 책이다.

1970년대 활발했던 여성 해방 운동. 사진은 1970년 12월 미스 월드 대회에 반대하는 시위.

1970년대 활발했던 여성 해방 운동. 사진은 1970년 12월 미스 월드 대회에 반대하는 시위.

새로운 개념을 마주할 때마다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는 걸, 사회가 변화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예를 들어 플랫폼, 포스트트루스(탈진실), 젠트리피케이션 같은 개념은 마흔을 넘어서 만난 말들이다. 이제는 신문과 방송에서 일상적으로 쓰이는 이 개념들을 젊은 시절 알지 못했다. 세상이 그만큼 변했고, 나 역시 기성세대가 됐다는 의미일 터다. 오늘 주목하려는 ‘백래시’도 그런 개념 가운데 하나다.

백래시를 널리 알린 책은 미국 저널리스트 수전 팔루디의 ‘백래시: 미국 여성들에 대한 선전포고 없는 전쟁’(1991)이다. 2017년 출간된 우리말 번역본의 부제는 ‘누가 페미니즘을 두려워하는가?’다. 백래시는 진보적인 사회·정치적 변화에 대한 기득권의 반격을 뜻한다. 이 책은 부제에서 볼 수 있듯 미국 사회 이야기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에 걸친 레이건·부시 정부의 보수주의 시대 여성 인권에 가해졌던 ‘반격’에 관한 이야기다.

1980년대, 미디어는 여성의 사회 진출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퍼뜨리기 시작했다. ‘나이 들수록 결혼하기 어렵고 임신 가능성도 떨어지니 일찍 결혼해 가정에 충실하라’는 게 요지다. 우리 사회에서도 지겹도록 통용된 말이다. 20대 시절 나는 이런 말을 듣고 화를 낸 게 아니라 오히려 공포심을 키웠던 기억이 있다.

일하는 싱글 여성이 불행하다는 오류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이 있다. 팔루디에 따르면, 많은 경우 언론이 인용한 통계는 진실과 멀었다. 1986년에 공개된 ‘하버드-예일 연구’는 대졸 여성들이 점점 결혼하기 어려워진다는 조사결과를 내놓았다. 결혼 경험이 없는 30세 대졸 여성의 결혼 가능성은 20%였고, 35세는 5%, 40세는 1.3%로 내려갔다는 통계가 근거였다. 나이 들수록 ‘남자 품귀 현상’이 벌어진다는 주장이었다. 이 연구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보도됐다. 통계치는 주요 신문의 1면을 장식했고, 뉴스와 토크쇼의 주요 화제가 됐다.

하버드-예일 연구는 여성이 평균 2∼3세 많은 남성과 결혼한다는 가정에 기반한 통계였다. 연구가 발표된 시점에 이 가정은 사실과 달랐다. 게다가 그즈음 미국 내 결혼 궁핍 사태가 미미하다는 연구가 발표되기도 했다. 하지만 미디어는 하버드-예일 연구와 반대되는 연구 결과를 무시했다.



미국 인구조사국의 한 인구학자 연구에 따르면, 30세 대졸 여성의 결혼 가능성은 58~66%로 하버드-예일 연구 결과보다 3배 더 높았다. 35세 여성은 7배, 40세 여성은 23배가 높았다. 30세 대졸 여성은 고졸 여성보다 결혼 가능성이 더 높았다. 전체 인구에서 결혼율이 떨어지고 있는데도 25세에서 45세 사이에 결혼한 대졸 이상 학력의 여성 결혼율은 증가하고 있었다.

실제로 남자 품귀 현상 같은 건 없었다. 팔루디는 실제 인구조사표에서 25~34세 싱글 여성보다 싱글 남성이 약 190만 명 많았고, 35~54세 사이의 연령대에선 50만 명 정도가 많았으니, 실제 결혼 상대가 부족한 건 남성이었다고 지적한다. 당시 언론의 주장대로라면 1980년대의 싱글 여성이 결혼을 위해 고투하고 있어야 했는데, 실제 상황은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버드-예일 연구는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연구가 발표되고 1년 만에 전체 싱글 여성 중 결혼하지 못할 수 있다고 걱정하는 비율이 14%에서 27%로 늘어났다. 연구 대상 집단이었던 25세 이상 여성의 경우 39%까지 치솟았다. 이 연구가 대대적으로 소개된 다음 해에 여성의 초혼 연령이 약간 하락했고, 가족으로 구성된 세대수가 비가족 세대수보다 빠르게 증가했다.

불임에 관한 연구도 여성에게 공포감을 심었다. 1982년 공개된 불임에 관한 한 연구는 여성의 임신 가능성이 30세 이후 급락하며, 31세에서 35세 사이 여성의 불임 가능성은 40%에 이른다는 통계를 내놓았다. 이 연구는 ‘뉴욕타임스’ 1면에 게재됐다. 수십 곳의 신문과 방송에 언급됐고, ‘생물학적 시계’를 다룬 책들을 통해 재생산됐다.

언론은 불임을 직장여성 탓으로 돌렸다. 자궁내막증 같은 불임의 의학적 원인이 똑똑한 여성들에게 있다는 비난이 가해졌다. 여기에 더해 여권 신장으로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다는 비난도 있었다. 그러나 1980년대, 출산율은 하락하지 않았다.

주목할 것은 미디어와 대중의 공격 대상이 주로 싱글 여성과 유급 직장여성이었다는 점이다. 특집 뉴스와 자기 계발서 등은 싱글 여성들이 기록적인 수준의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고, 직장여성들은 광범위한 심신질환을 유발하는 ‘번아웃 증후군’에 굴복하고 있다는 주장을 퍼뜨렸다. 1980년대 싱글 여성들이 정말로 우울해졌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싱글 여성의 정신 건강 변화를 추적한 연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 사회과학 연구는 다른 결과를 내놓았다. 고용이 싱글 여성의 정신 건강을 향상한다는 거였다. 일하는 싱글 여성은 자녀가 있건 없건 집에 있는 기혼 여성보다 심신의 건강이 훨씬 나았다. 싱글 여성과 기혼 여성을 비교하면 결혼은 여성의 건강에 유해할 수 있었다. 한 정신 건강 연구에 의하면 여성 우울증의 대표적인 2가지 원인은 낮은 사회적 지위와 결혼이었다.

여기서 팔루디는 반격에 주목한다. 반격의 논리는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의 향상이 여성의 정서적 행복을 위협했다는 것이다. 팔루디는 이 같은 논리에 실제로는 여성운동이 여성을 우울하게 만든 게 아니라 남성들을 괴롭힌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한다. 통계적으로 아내가 주부인 남성보다 아내가 직장여성인 남성의 우울증이 더 높았다는 것이 그 증거의 하나다.

부정확한 통계 자료를 인용해 높아지는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대한 우려를 나타낸 이유는 뭘까. 여성이 있어야 할 곳은 사회가 아니라 가정이라는 메시지를 널리 퍼뜨리려는 것이었다. 페미니즘에 대한 반격의 언어와 주장. 이것이 다름 아닌 백래시다. 다시 말하면 안티페미니즘이다.

미국 역사에서 이러한 반격이 1980년대에만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여권 신장을 위한 투쟁은 19세기 중반, 1900년대 초, 1940년대 초, 1970년대 초 힘을 얻었고, 매 시기마다 투쟁은 반격에 굴복했다. 1980년대의 백래시 역시 1970년대 여권 신장에 대한 반격이었다. 1970년대 여성운동은 고용과 출산, 두 영역에서 성과를 이뤘다. 1980년대 반격은 바로 이 두 지점에 맞춰졌다.

팔루디는 이 반격의 원인으로 경제적 평등을 위한 페미니즘의 노력이 남성성을 위협했다는 점을 주목한다. 당시 한 연구에 따르면, 남성성에 대한 가장 영향력 있는 정의는 ‘가족을 잘 먹여 살리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 전통적인 남성의 실질임금은 크게 줄어들었고, 전통적인 남성 부양자는 멸종 위기에 처했다.

1980년대 미국 사회는 큰 변화를 겪고 있었다. 중산층이 감소했고, 1946년 미국 정부가 기록을 시작한 후 가장 심각한 계급 양극화가 나타났다. 중간계급 가족이 소득 사다리에서 떨어지지 않을 방법은 맞벌이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남성의 자존심과 정체성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공격 대상이 필요했고, 그 대상이 여성에게로 향했다.

주목할 점은 당시 언론의 태도였다. 1980년대에 한 트렌드 연구자는 ‘고치 짓기(cocooning)’를 전국적인 트렌드로 내세웠다. 안락한 집에 둥지를 틀고 ‘엄마표’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는 거였다. 그런데 이 고치 짓기가 중립적인 개념이었음에도 언론은 고치 짓기 현상을 여성에게 해당하는 사항으로 퍼뜨렸다. 여성에게 해당하는 현상으로 퍼트렸다. 집에 머무는 걸 선호하는 사람이 늘어날 거라는 트렌드를 여성이 일 대신 가정을 택할 거라고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고치 짓기에 부합하지 않았다. 성인 여성은 점점 가족과 직장을 양립하려 했고, 전업주부로 사는 것에 관심이 줄어들었다.

“설득력 있고 불온한 저작”

1991년 ‘백래시: 미국 여성들에 대한 선전포고 없는 전쟁’을 출간한 수전 팔루디.

1991년 ‘백래시: 미국 여성들에 대한 선전포고 없는 전쟁’을 출간한 수전 팔루디.

팔루디는 1970년대와 1980년대 언론의 태도가 변화했다는 것을 지적한다. 1970년대 언론은 싱글 여성을 자신감과 확신, 안정감을 가진 사람으로 묘사했다. 하지만 1980년대 언론은 싱글 여성이 성공을 위해 관계를 희생시켰고, 이에 따른 정신적 문제를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러한 변화는 1980년대 영화의 여성 캐릭터 묘사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당시 영화에서 여성의 분노는 개인적 차원의 우울로만 그려졌다. 여성의 삶은 좋은 엄마가 이기고 독립적 여성은 벌을 받는다는 도덕적 이야기의 틀에 갇혀 있었다.

팔루디는 이러한 반격의 기원으로 1970년대 등장한 뉴라이트를 꼽는다. 이들은 성평등이 여성의 불행을 낳는다고 주장했다. 신도가 줄고 있는 시골의 근본주의 성직자들과 청중이 감소하고 있는 방송 설교사들이 그 대표 주자였다. 이들은 철 지난 질서나 상상 속의 세계를 복원하려고 했다.

팔루디에 따르면, 1980년대 뉴라이트의 희생양은 페미니스트들이었다. 뉴라이트가 페미니즘을 공격 대상으로 삼은 것은 앞선 1970년대 여성운동의 힘을 역으로 입증했다. 미국 여성운동의 최대 승리는 1972년 헌법에 성평등을 명시하는 남녀평등 헌법 수정안 승인과 1973년 대법원의 낙태 합법화였다. 뉴라이트 핵심 집단들은 이러한 페미니즘의 승리가 이뤄지고 2년이 지나지 않아 활동을 시작했다.

반격은 여러 결과를 가져왔다. 팔루디는 3가지 측면에서 이를 분석한다. 심리 영역에서는 여성들을 미혹시켰고, 노동시장 영역에서는 직장여성들에게 적지 않은 타격을 입혔다. 그리고 신체 영역에서는 낙태 반대 운동이 격렬하게 진행됐다.

이러한 결과에서 특히 인상적인 것은 심리 영역에 관한 팔루디의 분석이다. 상담 전문가들과 자기 계발서 저자들은 해방된 여성이 과도한 독립에 매달리는 바람에 오히려 건강하지 못한 상태가 됐고, 그 결과 ‘자아도취증 환자’ 또는 ‘아이도 없는 멍청이’가 됐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여성 스스로 자신의 위험을 자초했다는 이러한 논리는 여권 신장에 대한 악의적인 반격과 다름없다.

‘백래시: 미국 여성들에 대한 선전포고 없는 전쟁’은 1991년 출간하자마자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다. 시사주간지 ‘뉴요커’는 서평에서 그 반향을 “전적으로 설득력 있고 대단히 불온한 저작”이라고 요약했다. 페미니즘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에게 이 책은 위험했다. 그러나 동시에 양성평등이 인류 미완의 과제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공감과 동의와 지지를 보냈다.

여권 신장에 대한 단호한 목소리

1990년대 초 제3세대 여성 운동이 시작되기 시작했다. 사진은 1993년 여성행동연합(WAC)의 시위.

1990년대 초 제3세대 여성 운동이 시작되기 시작했다. 사진은 1993년 여성행동연합(WAC)의 시위.

우리 사회에서 백래시가 시작된 것은 미국에서 ‘백래시: 미국 여성들에 대한 선전포고 없는 전쟁’이 출간된 지 20년이 지난 2010년대였다. 사이버 공간에서 진행된 페미니즘에 대한 반격이 그것이었다. 이러한 반격은 재반격을 가져왔다. ‘된장녀 대 한남충’과 ‘일베(일간베스트) 대 메갈리아’는 반격과 재반격을 상징하는 말들이었다. 이러한 대결 구도는 사회문화적 영역을 넘어서 정치적 영역까지 확대됐다. ‘이대남과 이대녀’의 투표 성향 차이는 정치 영역의 성별 대결 구도를 상징하는 증거다.

여성의 관점에서 볼 때 어느 나라든 여성으로 살아가기는 고단한 일이다. 많은 경우 백래시는 마치 여성을 걱정하고 진정한 행복을 찾아주고 싶은 것처럼 말하지만, 여성에게 현실과 맞지 않는 공포감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반격의 선동가들은 여성에게 가정으로 돌아가라고 주장하지만, 그런 전통적인 가정은 이미 소멸해가고 있다.

분명한 것은 여성의 사회적 참여와 남성과 동등한 대우는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라는 점이다. 이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온화할 수도, 단호할 수도 있다. ‘백래시’는 그 어떤 책보다 단호한 목소리로 여성의 평등과 해방을 고취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유연한 접근도, 근본적인 접근도 필요하다. 여성의 사회 참여와 권리 신장이 인류의 중대한 과제라고 생각하는 이들이라면 때로는 단호한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우리말 번역본 ‘백래시’는 801쪽에 달하는 긴 책이다. 그럼에도 한번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성지연의 다시 만난 그녀들
1970년 출생.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어른의 인생 수업’이 있다.


#백래시 #수전팔루디 #다시만난그녀들 #여성동아

사진 게티이미지 
사진제공 아르테 펭귄랜덤하우스 
사진출처 구글아트앤컬처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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