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0년대 활발했던 여성 해방 운동. 사진은 1970년 12월 미스 월드 대회에 반대하는 시위.
백래시를 널리 알린 책은 미국 저널리스트 수전 팔루디의 ‘백래시: 미국 여성들에 대한 선전포고 없는 전쟁’(1991)이다. 2017년 출간된 우리말 번역본의 부제는 ‘누가 페미니즘을 두려워하는가?’다. 백래시는 진보적인 사회·정치적 변화에 대한 기득권의 반격을 뜻한다. 이 책은 부제에서 볼 수 있듯 미국 사회 이야기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에 걸친 레이건·부시 정부의 보수주의 시대 여성 인권에 가해졌던 ‘반격’에 관한 이야기다.
1980년대, 미디어는 여성의 사회 진출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퍼뜨리기 시작했다. ‘나이 들수록 결혼하기 어렵고 임신 가능성도 떨어지니 일찍 결혼해 가정에 충실하라’는 게 요지다. 우리 사회에서도 지겹도록 통용된 말이다. 20대 시절 나는 이런 말을 듣고 화를 낸 게 아니라 오히려 공포심을 키웠던 기억이 있다.
일하는 싱글 여성이 불행하다는 오류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이 있다. 팔루디에 따르면, 많은 경우 언론이 인용한 통계는 진실과 멀었다. 1986년에 공개된 ‘하버드-예일 연구’는 대졸 여성들이 점점 결혼하기 어려워진다는 조사결과를 내놓았다. 결혼 경험이 없는 30세 대졸 여성의 결혼 가능성은 20%였고, 35세는 5%, 40세는 1.3%로 내려갔다는 통계가 근거였다. 나이 들수록 ‘남자 품귀 현상’이 벌어진다는 주장이었다. 이 연구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보도됐다. 통계치는 주요 신문의 1면을 장식했고, 뉴스와 토크쇼의 주요 화제가 됐다.하버드-예일 연구는 여성이 평균 2∼3세 많은 남성과 결혼한다는 가정에 기반한 통계였다. 연구가 발표된 시점에 이 가정은 사실과 달랐다. 게다가 그즈음 미국 내 결혼 궁핍 사태가 미미하다는 연구가 발표되기도 했다. 하지만 미디어는 하버드-예일 연구와 반대되는 연구 결과를 무시했다.
미국 인구조사국의 한 인구학자 연구에 따르면, 30세 대졸 여성의 결혼 가능성은 58~66%로 하버드-예일 연구 결과보다 3배 더 높았다. 35세 여성은 7배, 40세 여성은 23배가 높았다. 30세 대졸 여성은 고졸 여성보다 결혼 가능성이 더 높았다. 전체 인구에서 결혼율이 떨어지고 있는데도 25세에서 45세 사이에 결혼한 대졸 이상 학력의 여성 결혼율은 증가하고 있었다.
실제로 남자 품귀 현상 같은 건 없었다. 팔루디는 실제 인구조사표에서 25~34세 싱글 여성보다 싱글 남성이 약 190만 명 많았고, 35~54세 사이의 연령대에선 50만 명 정도가 많았으니, 실제 결혼 상대가 부족한 건 남성이었다고 지적한다. 당시 언론의 주장대로라면 1980년대의 싱글 여성이 결혼을 위해 고투하고 있어야 했는데, 실제 상황은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버드-예일 연구는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연구가 발표되고 1년 만에 전체 싱글 여성 중 결혼하지 못할 수 있다고 걱정하는 비율이 14%에서 27%로 늘어났다. 연구 대상 집단이었던 25세 이상 여성의 경우 39%까지 치솟았다. 이 연구가 대대적으로 소개된 다음 해에 여성의 초혼 연령이 약간 하락했고, 가족으로 구성된 세대수가 비가족 세대수보다 빠르게 증가했다.
불임에 관한 연구도 여성에게 공포감을 심었다. 1982년 공개된 불임에 관한 한 연구는 여성의 임신 가능성이 30세 이후 급락하며, 31세에서 35세 사이 여성의 불임 가능성은 40%에 이른다는 통계를 내놓았다. 이 연구는 ‘뉴욕타임스’ 1면에 게재됐다. 수십 곳의 신문과 방송에 언급됐고, ‘생물학적 시계’를 다룬 책들을 통해 재생산됐다.
언론은 불임을 직장여성 탓으로 돌렸다. 자궁내막증 같은 불임의 의학적 원인이 똑똑한 여성들에게 있다는 비난이 가해졌다. 여기에 더해 여권 신장으로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다는 비난도 있었다. 그러나 1980년대, 출산율은 하락하지 않았다.
주목할 것은 미디어와 대중의 공격 대상이 주로 싱글 여성과 유급 직장여성이었다는 점이다. 특집 뉴스와 자기 계발서 등은 싱글 여성들이 기록적인 수준의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고, 직장여성들은 광범위한 심신질환을 유발하는 ‘번아웃 증후군’에 굴복하고 있다는 주장을 퍼뜨렸다. 1980년대 싱글 여성들이 정말로 우울해졌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싱글 여성의 정신 건강 변화를 추적한 연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 사회과학 연구는 다른 결과를 내놓았다. 고용이 싱글 여성의 정신 건강을 향상한다는 거였다. 일하는 싱글 여성은 자녀가 있건 없건 집에 있는 기혼 여성보다 심신의 건강이 훨씬 나았다. 싱글 여성과 기혼 여성을 비교하면 결혼은 여성의 건강에 유해할 수 있었다. 한 정신 건강 연구에 의하면 여성 우울증의 대표적인 2가지 원인은 낮은 사회적 지위와 결혼이었다.
여기서 팔루디는 반격에 주목한다. 반격의 논리는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의 향상이 여성의 정서적 행복을 위협했다는 것이다. 팔루디는 이 같은 논리에 실제로는 여성운동이 여성을 우울하게 만든 게 아니라 남성들을 괴롭힌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한다. 통계적으로 아내가 주부인 남성보다 아내가 직장여성인 남성의 우울증이 더 높았다는 것이 그 증거의 하나다.
부정확한 통계 자료를 인용해 높아지는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대한 우려를 나타낸 이유는 뭘까. 여성이 있어야 할 곳은 사회가 아니라 가정이라는 메시지를 널리 퍼뜨리려는 것이었다. 페미니즘에 대한 반격의 언어와 주장. 이것이 다름 아닌 백래시다. 다시 말하면 안티페미니즘이다.
미국 역사에서 이러한 반격이 1980년대에만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여권 신장을 위한 투쟁은 19세기 중반, 1900년대 초, 1940년대 초, 1970년대 초 힘을 얻었고, 매 시기마다 투쟁은 반격에 굴복했다. 1980년대의 백래시 역시 1970년대 여권 신장에 대한 반격이었다. 1970년대 여성운동은 고용과 출산, 두 영역에서 성과를 이뤘다. 1980년대 반격은 바로 이 두 지점에 맞춰졌다.
팔루디는 이 반격의 원인으로 경제적 평등을 위한 페미니즘의 노력이 남성성을 위협했다는 점을 주목한다. 당시 한 연구에 따르면, 남성성에 대한 가장 영향력 있는 정의는 ‘가족을 잘 먹여 살리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 전통적인 남성의 실질임금은 크게 줄어들었고, 전통적인 남성 부양자는 멸종 위기에 처했다.
1980년대 미국 사회는 큰 변화를 겪고 있었다. 중산층이 감소했고, 1946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