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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펫보험 꼭 들어야 할까?

이경희 사단법인 반려동물지속가능협회 이사장

2024. 03. 21

1000만 반려인 시대를 맞이해 펫보험 시장이 블루오션으로 부상했다. 높은 관심에 비해 정작 펫보험 가입률은 약 1%로 미미한 수준. 펫보험 가입을 고민하는 이들을 위해 준비했다.

필자는 얼마 전 감기에 걸려 병원을 찾았다. 진료 후 약을 처방받은 다음 병원비를 내는데 보험 적용으로 5200원을 지불했다. 지난달 눈에 염증이 난 반려견을 데리고 간 동물병원에서는 병원비로 4만5000원을 낸 기억이 떠올랐다. 반려동물 양육에 있어서 가장 큰 비용 부담 중 하나가 진료비다. 농립축산식품부가 실시한 ‘동물복지에 대한 국민의식조사’ 결과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반려동물 1마리당 월평균 양육비 중 병원비 비중은 각각 34.4%, 39.6%, 34.6%로 높게 나타났다. 펫보험 가입을 고민하는 반려인이 늘어나는 까닭이다.

정부도 펫보험 활성화에 적극적이다. 지난해 10월 금융위원회는 농림축산식품부·기획재정부·금융감독원 등 관계 부처와 합동으로 ‘반려동물보험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개선 방안으로 개체식별 강화, 진료기록 증빙 및 진료 항목 표준화 등 보험 인프라 구축부터 소비자 편의를 위한 원스톱 서비스와 맞춤형 상품 개발 활성화 등을 제안했다. 그런데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한 지 4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국내 펫보험 가입률은 1%대다. 비싼 보험료에 비해 보상 폭이 작다는 것이 이유로 꼽힌다. 국내 펫보험은 왜 활성화되지 못할까?

스웨덴, 10명 중 4명이 펫보험 가입

펫보험 가입률 40%대인 스웨덴을 통해 짚어보자. 스웨덴은 반려동물보험을 최초로 출시한 국가로 개의 90%, 고양이의 50%가 펫보험에 가입돼 있다. 국가적 차원에서도 체계적인 동물복지 시스템과 법률 규정을 마련한 것은 물론이고 펫보험 전문 기업들도 즐비하다.

대표적으로 1890년 설립된 펫보험 회사 아그리아 동물보험(Agria Djurforsakring, 이하 아그리아)이 있다. 이곳은 반려동물 특성에 따른 맞춤형 보험 상품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응급 상황을 포함해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모두 보장받을 수 있는 상품을 판매한다. 보험료는 나이, 품종, 중성화 여부 등에 따라 다르게 책정되는데, 월 19파운드(약 3만 원)로도 반려동물 일생을 보장하는 상품에 가입할 수 있다. 한 살 전에 반려동물 등록 칩을 삽입하거나 펫보험에 가입할 경우 그리고 여러 마리를 양육할 경우 펫보험 가입 시 할인도 받을 수 있다. 매년 보험이 갱신돼 금액이 증가하지만 반려동물이 다섯 살이 될 때까지 꾸준히 접종하거나 1년에 한 번 수의사에게 진찰한 사실이 입증되면 추가 금액을 내지 않아도 된다.

이 외에도 아그리아는 연중무휴 24시간 수의사 영상 진료를 제공하며, 반려동물을 잃어버렸거나 호텔링하다가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도 보장해준다. 반려동물은 내 가족이자 평생 함께할 반려자로 인식하는 스웨덴의 반려 문화를 고려한 합리적인 보험 체계다.



한국 반려동물산업은 서구권보다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아직은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2019년 이후 반려동물을 위한 ‘애완용품’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매년 역대 최고 기록을 갈아 치울 정도로 반려동물산업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국내 시장에 맞춘 전문적이고 체계화된 시스템을 장착한 펫보험이 자리 잡는 것도 시간문제. 펫보험 활성화를 위해 선제적으로 갖추어야 할 4가지 지점을 살펴보자.

01 반려인의 적극적인 자세

우선 펫보험의 필요성에 대한 반려인의 공감대가 필요하다. 동물복지와 건강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반려동물을 위한 유기농 제품이나 영양제를 구매하는 반려인들이 늘어났다. 나아가 사람과 마찬가지로 동물도 꾸준한 건강관리를 위해서는 정기적인 검진과 병원 진료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쌓여야 한다. 이후 반려인이 펫보험에 대한 정보를 꼼꼼히 습득하는 것이 필요하다. 펫보험 가입 전 반려동물의 나이나 건강 상태에 따른 보험 가입 제한 조건을 자세히 확인해야 한다. 보험의 종류, 보장 범위, 비용 등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최근 여러 손해보험사의 상품을 세심히 비교해주는 플랫폼이 나와 있으니 이를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반려동물 커뮤니티 활동을 한다면 다른 반려인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도 추천한다. 본인의 반려동물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다른 반려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떤 부분을 좀 더 신경 써야 하는지 알 수 있어서다. 나아가 펫보험에 대한 경험을 커뮤니티 안에서 공유하는 걸 넘어 보험사에 제안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를 통해 보험사는 반려인과 반려동물의 니즈에 부합하는 다양한 상품을 기획하고 현재 상품을 개선할 방안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반려동물 담당 수의사가 있다면 그에게 본인의 반려동물이 질병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 혹은 향후 발생할 질병이 있는지 등을 미리 상담한 후 그 부분이 보장되는 보험에 가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02 맞춤형 보험 상품의 다양화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개의 품종은 대략 340여 종이며, 고양이는 약 70여 종에 달한다. 이 많은 개체 수에 맞는 보험 상품을 모두 개발할 수는 없다. 하지만 평균적으로 많이 발생하는 질병 위주로 나이와 체격, 건강 상태 등을 고려해 다양한 펫보험 상품을 개발할 필요는 있다. 이렇게 유연한 펫보험 상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많은 DB(데이터베이스)가 필요하지만, 아직 국내 펫 보험사에 축적된 데이터가 적은 것이 현실이다. 유럽연합(EU) 국가들은 진료기록부 발급을 의무화하는 반면 한국은 현행 수의사법에 따라 진료기록부 발급 의무가 없다. 손해보험업계는 이 때문에 손해사정이 어렵고 해외 국가에서 반려동물 관련 데이터를 사 상품을 개발한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수의업계는 동물약품은 수의사 처방전 없이 구매할 수 있는 만큼 진료기록부 공개 시 반려인의 자가 진단에 따른 약품 구매가 우려된다고 지적한다. 펫보험 상품 개발을 위해서는 두 업계의 조율이 필요한 실정이다. 최근 카드사나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에서 펫 관련 상품을 내놓는 추세다. 아직은 질병을 보장하는 상품이 아닌 병원비, 반려동물용품·미용 청구할인, 펫 적금 등 생활용 혜택이 대부분이지만 곧 반려인의 니즈에 맞는 보험 상품도 다양하게 출시하지 않을까 한다. 특히 아그리아 같은 펫보험 전문 스타트업이 등장하면 반려인의 상품 선택 기회가 훨씬 커지리라 본다.

03 합리적인 보험료 책정

펫보험이 반려인의 경제적 부담을 완화할 것이라 기대하지만 현재 펫 보험료는 한 달 기준 최소 4만 원대에서 최대 10만 원대로 다소 부담스럽다. 보장 범위도 한정적이다. 주변 한 반려인의 반려동물은 보험 가입을 했는데 노환으로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질병에 걸리진 않아서 그간 병원을 한 번도 안 갔다며 비싼 보험료 대신 적금을 들 걸 그랬다고 말했다. 물론 무병장수는 사람이나 동물이나 모두에게 좋다. 큰 질병 없이 잘 지내는 것이 가장 좋지만, 보험에 가입한 동안 보장받을 수 있는 범위가 폭넓다면 비싼 보험료에 따른 경제적 부담과 걱정이 조금 덜어지지 않을까. 예컨대 아그리아의 제일 광범위한 보장 상품은 예방접종이나 정기검진 등 일상적인 관리 비용에 대한 보조금으로 매년 5만 원의 바우처를 제공한다.

04 간편한 보험금 청구

보험사에서 요청하는 서류는 일반적으로 치료비 세부 명세가 기재된 동물병원 진료비영수증과 수의사가 작성한 진료기록부, 소견서, 카드 매출 영수증, 반려인 신분증 등이다. 요청한 서류를 제출한 후 보험사의 손해사정사가 청구한 반려동물의 심사를 하는데, 이때 동물병원을 직접 방문해 확인하기도 한다. 간혹 진료기록부를 발급해주지 않는 동물병원 때문에 반려인이 보험금 청구할 때 어려움을 겪는 일도 있다. 보험사는 보험 청구 과정이 간편하면 보험금을 자주 요구하는 일이 생기고, 사람과 달리 반려동물은 품종이 같으면 식별하기 힘들기 때문에 예전에 진료받은 반려동물이 현재와 같은 반려동물인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하지만 보험금 청구 과정이 간편하면 보험금이 신속하게 지급돼 반려동물 치료를 빠르게 진행할 수 있고, 반려인은 보험사에 대한 신뢰로 다른 반려인에게 소개하는 등 자발적 광고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을 것이다.

스웨덴의 펫보험 회사 아그리아는 개를 대상으로 하는 펫보험 상품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스웨덴의 펫보험 회사 아그리아는 개를 대상으로 하는 펫보험 상품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펫보험은 반려인에게 마음의 평화를 선사할 뿐만 아니라 반려동물의 건강과 복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다. 지금 펫보험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가입을 주저하고 있다면 앞으로 일생을 같이할 반려동물의 건강한 삶을 위해서라도 조금씩 알아가면 어떨까. 건강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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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게티이미지 
사진출처 아그리아 동물보험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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